아직, 도쿄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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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묵혀두었던 숙제같은 일본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일본과 관련된 책이라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문학은 물론이고 여행 이야기, 역사, 에세이 등 다양하게 접하고 싶은 마음에 들뜨곤 한다. 더욱이 큰 아이가 도쿄로 떠나면서부터는 도쿄라는 도시가 그리움 이상의 도시가 되었다. 임진아 작가의 <아직, 도쿄>는 그런 그리움을 더욱 부추겼다. ‘아직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필명이 아직 임진아라는 작가의 소개말에 아직이란 단어가 새삼 신선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직 미지의 세계인 도쿄를 그리며 구글맵에 아직 도쿄라는 이름의 지도를 만들고 가보고 싶은 장소를 체크하며 정보를 모아갔던 작가의 설렘이 내 마음에도 전해질 정도였다.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가 왜 그렇게 좋은 걸까 묻는 작가와 동지가 된 듯한 공감을 하며 웃음이 났다. 그 많은 인파도 나에겐 활기로 느껴졌고 살아있는 도시로 느껴졌으니까. 두 번의 도쿄여행을 하였지만 아직발자국을 찍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 도쿄에 가면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담아올까, 기대하며 읽어나갔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모습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는 것 같다. 모험과 도전을 위한 활동적인 여행이 있을 테고, 이름난 곳을 순례하는 여행,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며 휴식을 하는 여행 등 다양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의 모습을 구경하는 일은 참 재미있었다. 작가는 도쿄의 상점, 카페, 밥과 술이 있는 곳, 미술관과 공원 등 산보할 수 있는 곳, 도쿄의 책방 등 자신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일본 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지난 3월에 읽었던 책들이 다시 떠오른다. 도쿄의 골목을 찾아 떠난 작가, 일본의 미술관을 순례한 작가의 이야기, 또 온천 명인이 된 작가의 이야기다. 언급한 책이 한 공간을 찾은 여행이라면 임진아 작가는 어떤 시간을 좋아해서 그 시간이 여기 없을 때그 시간을 향한 이동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놓인 를 구경하고 싶었고, 그 최적의 도시가 도쿄였다니.


 왠지 근사한 것 같다. 커다란 도시에 놓인 자신을 구경하는 일이. 여럿이 일정에 맞춰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틀에서 벗어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을 찾아 여러 공간에 앉아보는 일. 혼자 여행이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작은 도장부터 오래된 필기구와 잡화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문구점 사브로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문구점에서의 추억을 소환해낸다. 오랜 시간 눈에 새기듯이 구경을 하다가 작은 문구를 사고, 그 작은 문구를 소중히 여기던 미소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말에 따뜻해진다. 잡화식당 롯카(六貨에서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육화점이라는 뜻으로 많은 물건으로 넘치는 상점이 아니라, 적더라도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상점을 의미한다는 점주의 삶의 방식이 들어있었다. 의식주(衣食住) , 입고, 먹고, 사는 것과 함께 읽기, 만들기, 선사하는 것, 이란다. 조그만 가게이지만 나름의 운영방식으로 손님을 맞는 이 가게의 분위기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귀가 솔깃해진다.


 강아지도 환영받을 수 있는 카페, 어린아이와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책방 팡야노홍야(???本屋),폐점한 옛 점주가 쓰던 커피 잔을 사용하며 누군가의 추억을 이어주는 재즈 카페 킷사 하야시의 이야기가 훈훈하게 다가왔다. 각 장소마다 느껴지는 분위기와 간략한 메뉴 소개, 주소,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트위터 주소까지 상세하게 안내해 준다. 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일러스트는 그 장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가보고 싶은 장소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정보라서 여행할 때 유용할 것 같다.


여행이라고 해서 아주 거창한 경험을 얻게 되거나, 삶에 대해 새로이 깨닫게 되진 않는다. 비행기 타기 전과 비행기에서 내린 후가 완전히 다른 시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주어지는 시간이 내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 여행에서의 매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시작된다.’(P218)


 단조로운 일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여행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서 무작정 발을 뺄 수 없음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여행을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으로도 설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언젠가의 여행을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거창한 경험이나 새로운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때로는 길을 헤매기도 하고 혼자 여행의 울적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꿈을 꾸고 집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기도 한다. 길 위로 나서면 내 집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여행은 누구나가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용하고 묵묵하게 좋아하는 걸 하며 지내는 삶을, 영화라는 창을 통해 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도쿄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P247~248)


 좋아하는 일과 여행은 환상적인 세트가 아닐까. 나는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꿈을 꾼다. 당장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의 나의 여행을 떠올리면서 게을러지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책에서 드라마에서 본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듣고 나눈 것을 이야기로 쓰는 것, 그것은 꿈에 그리던 일이 되었다. 누구나 비슷하구나. 만화를 좋아하다가 그 작가의 원화 전시를 보러 여행을 하고, 머물렀던 공간에서 인연이 되어 도쿄 책방 서니 보이 북스(SUNNY BOY BOOKS)에서 개인전 [?はストレッチング(실은 스트레칭)을 열기도 한다. 전시를 위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온전히 함께 했던 시간은 다정함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여러 인연들이 차곡차곡 쌓인 도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있으면 좋겠지만.

[카페 뤼미에르]의 엔딩 노래 가사를 떠올린다.

언제나 이런 마음으로 내 삶을 살고, 여행을 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꾸준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을 내심 기다리면서도, 몸을 움직여 좋은 일 쪽으로 먼저 다가가면서 말이다.(P253)


 이야기 속에는 혼자 여행도 들어있고, 친구와 연인과 동행한 여행도 있다. 좋은 걸 보고 그 좋아하는 점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은 행복해 보였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요즘 대세인 소확행이 아닐까. 도쿄라는 같은 도시라도 여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숫자만큼의 여행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도쿄에 닿기 전부터 좋아하는 것을 마주하고 꿈꾸었던 것이 도쿄와 만나면서 교차되어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서 그런지, 감성이 알알이 스며있어서 좋았다. <아직, 도쿄>는 도쿄를 동경하고 그리움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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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빨강머리 앤 - 낭만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른이 된 앤 셜리가 전하는 말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허씨초코 그림, 신선해 옮김 / 앤의서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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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녀시대를 지배했던 빨강 머리 앤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특히 온갖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거는 다정한 앤단짝 다이애나와의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그 다음엔 길버트와의 우정사랑을 둘러싼 장밋빛 분위기는 어른이 되어 읽어도 설레고 미소를 짓게 한다책을 받아보니 예상보다 판형도 작고 얇았다빠르게 넘겨보니 간간히 들어있는 일러스트와 짤막한 문장이 마치 앤의 어록만을 따로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었다어라앤의 대학시절을 비롯한 뒷이야기가 완전히 들어있지는 않겠구나 싶었다역시 그랬다이 작품은 에이번리의 앤레드먼드의 앤윈디 윌로우즈의 앤앤의 꿈의 집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앤이 했던 주옥같은 말들과 그녀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장면들을 뽑아서 새로 엮은 것 같다또 영어로 된 원문도 함께 싣고 있어서 원작의 생생함도 맛볼 수 있다여백이 많은데 활자가 좀 컸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하지만 상상력으로 무장한 톡톡 튀는 앤의 대사는 살아 있었다온전하게 연대기적으로 엮어진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앤의 말을 통해서 이게 어느 부분에 들어있는 이야기였지상상하며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소녀 앤이 스무 살이 되었다꿈을 꾸는 듯한 눈빛과 끊임없이 공상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희망과 웃음을 주던 앤의 어록을 만나 보자.

 

 

방법이 있다면 네 인생에 오로지 행복과 기쁨만 있게 해주고 싶어.”

길버트가 닥쳐올 위기를 경계하듯 말하자 앤이 재빨리 맞받았다.

그건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야시련과 슬픔이 없으면 인생이 제대로 성장하고 원숙해질 수 없어물론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다 마음 편한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P25)

 

 세상에애어른이 따로 없다시련과 슬픔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말우리는 수없이 듣고 있다좋지 않은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가느냐 머뭇거리느냐는 삶의 태도와 자세에 있겠지앤의 초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는 의기소침해 있는 우리에게 다시금 일어설 의욕을 샘솟게 한다.

 

셜리 양 생각에도 내가 그렇게 늙었나요채신없이 굴고 싶진 않지만…… 전부터 늘 구슬 달린 망토를 무척 갖고 싶었어요누가 봐도 멋지다고 할 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했고…… 마침 요즘 다시 유행하니까요.”

난 자신 있게 말씀 드렸어.

늙었다니요당연히 아주머니는 늙지 않으셨어요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 사람은 절대 늙은이가 아니에요정말로 늙어버리면 꼭 집어 뭘 입고 싶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겠죠.”(P39)

 

이 세상은 썩 괜찮은 곳이에요어쨌든그렇죠마릴라 아주머니저번에 린드 아주머니는 세상이 별로가고 푸념 하셨거든요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잔뜩 기대할 때마다 반드시 어는 정도는 실망하게 된다면서……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요아마 그 말이 맞을 거예요하지만 그래서 좋은 점도 있는 걸요나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기도 하니까요……거의 항상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나와요.”(P53)

 

 살아있기에 기쁨도 슬픔도 느끼는 것이다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없다달도 차면 기울 듯이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기도 하고 그런 굴곡을 통해서 겸손도 배우게 되지 않을까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걱정거리를 만들어서 하기도 한다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나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기도’ 하다는 앤의 지혜로운 말에 감탄을 하게 된다온갖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무엇엔가 집중할 일이다항상 생각보다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앤의 말을 믿어보자.

 

결국 가장 즐겁고 기분 좋은 날이란 대단히 인상적이거나 경이롭거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벌어지는 날이 아니라그저 단순하고 소소한 기쁨들이 실에서 알알이 미끄러져 나오는 진주알처럼 살며시 연달아 다가오는 그런 날들이라고 생각해요.”(P63)

 

그러니까요선생님이런 상상들이 그렇게 많이 이상한가요?”

아니야 얘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어린이가 떠올리기엔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운 상상이라서 그렇지백 년이 걸려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거야하지만 폴상상하길 멈추지 마넌 언젠가 시인이 될 거야선생님은 그렇게 믿는단다.”(P65)

 

누구나 언제든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어요.”

(One can always find something lovely to look at or listen to.)(P92~93)

 

 그럭저럭 어제와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뭐 특별한 일 없을까지루해하기도 한다그러다가도 주변의 커다란 고통이나 아픔을 보게 되면 아무 일 없는 소박한 일상이 행복한 거구나 깨닫기도 한다앤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자. ‘소소한 기쁨들이 실에서 알알이 미끄러져 나오는 진주알처럼’ 그렇게 연달아 다가오는 날들이 기분 좋은 날이라고 하고 있다지금현재의 시간을 소박하게 보내면서도 절대 지루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폴과 나누는 대화는 정말 앤답다상상력의 대가가 아닌가꿈을 실어주고 응원을 한다기계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잠시도 딴 짓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떠오른다상상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도 키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확장되는 건 아닐까누구나 언제든지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앤의 열린 마음이 담대하고 멋지다상상하는 힘이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꿈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 일 것이다.

 

다이애나의 신혼집은 초록 지붕 집에서 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니 앞으로는 앤과 다이애나가 예전처럼 항상 붙어 다닐 수 없다고개를 들어 다이내나 방의 불빛을 바라보면서앤은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저 불빛에 얼마나 의지했느지를 생각했다그러나 이제 여름 저녁 어스름이 내려도 저 불빛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을 것이다괴로움에 겨운 눈물이 앤의 잿빛 눈에 넘칠 듯 차올랐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누구나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변할 수밖에 없다니!”(P123)

 

 영혼의 단짝이었던 다이애나가 결혼을 하게 되어 더 이상 붙어 다닐 수 없게 되자 앤의 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이 작품이 쓰인 시대적 상황과 지금의 비교는 차치하더라도 얼마나 부러운 장면인가서로가 경쟁자인 요즘으로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친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어여쁘기만 하다.

 

불쑥 레슬 리가 물었다.

그런데 외롭진 않은가요혼자 있을 때도…… 절대로?”

아뇨외롭다고 느낀 적은 평생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때에도 정말 좋은 벗이 있거든요상상역할놀이…….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답니다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음미하기 딱 좋거든요.“(P139)

 

앤은 꿈꾸듯 말했다.

나는 삶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싶어사람들에게 지식을 더 심어주는 게 아니라……

물론 그것도 가장 숭고한 포부인 걸 알지만…… 나로 인해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아간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존재하지 못했을소소하지만

기쁘거나 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며 살아간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아.“

길버트는 감탄하며 말했다.

난 네가 매일매일 그 꿈을 실현해내고 있다고 생각해.”(P153)

 

 참으로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앤의 순수한 마음과 그것을 사랑하는 길버트의 따뜻한 눈빛을 상상할 수 있다.

 

난 1년 내내 봄이게 해달라고 할래.

모두의 마음과 우리 모두의 삶도 언제나 봄이면 좋겠어.”(P155)

 

삶의 모든 것을 대학에서 배우는 건 아니야어디에서든 삶이 교훈을 주는 걸.’(P165)

 

꿈꾸기에 늙은 나이 같은 건 없어요그리고 꿈은 결코 늙지 않아요.”(P171)

 

 1년 내내 봄 같다면 좋겠지따뜻한 날씨처럼 삶도 봄 날씨 같다면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겠다우리가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마음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꿈을 꾸기에 늙은 나이늦은 나이란 없다고. 76세에 화가의 길에 들어선 모지스 할머니도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어떤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느냐에 있다오늘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하다고 했다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신혼기를 거치고 중년이 되고 할머니가 된 앤의 어떤 모습일까모습은 변했어도 상상력과 꿈을 꾸는 듯한 빛나는 눈빛은 그대로 일거라고.

 

다이아몬드 왕관도 대리석 예식장도 필요 없어그냥 너만 있으면 돼.(중략)

그리고 기다리는 문제라면그건 문제가 아니야우린 그저 행복할 거야서로를 기다리면 일하고 꿈꾸면서 말이야이제부터는 꾸는 꿈들은 무척이나 달콤할 거야.”(P217)

 

하지만 진주는 눈물을 부른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눈물은 슬퍼서만이 아니라 행복해서 나올 때도 있잖아.

나야말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마다 눈물이 나던걸마릴라 아주머니가 나더러 초록 지붕 집에서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전에는 한 번도 입어본 적 없었던 예쁜 드레스를 매튜 아저씨한테서 처음으로 선물 받았을 때네가 병마를 이기고 곧 회복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그러니까 진주로 된 약혼반지를 줘.

길버트난 삶의 기쁨과 더불어 슬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테니까.”(P221)

 

 사랑에 빠지면 용감해지는 걸까맨 마지막의 삶의 기쁨은 물론 슬픔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는 앤의 삶의 태도에 다시 한 번 감동하게 된다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조건이 붙는 등 예전과 많이 변질된 시대에 참 사랑이란 무엇인가 상기시켜 주었다물론, 몽고메리의 작품이 쓰인 시대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앤이 살았던 배경은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시골 마을그 자체로 감성을 풍성하게 하였지만우리는 높은 건물이 우뚝 솟은 회색 도시에 살고 있다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이다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다좌절하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어 달려보기도 하지만 역시 녹록치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소녀시절로 들어가 앤을 불러내어 만날 필요가 있다대학시절교사시절신혼시절을 모아놓은 짤막한 앤의 이야기는 샘솟는 옹달샘처럼 우리에게 웃음과 희망을 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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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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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누구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여행지이다. 나도 두 차례의 교토 여행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거의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녔다. 금각사, 은각사, 기요미즈데라, 아라시야마, 철학의 길 등 거의 외관을 둘러보는 것에 그친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인증하는 것에 만족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그런 패턴의 여행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교토의 오래된 노포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내력을 듣는다. 한 가문의 노포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굴곡진 삶은 물론 근현대사의 격동의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생생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골목 도쿄』는 거의 음식점에 관한 노포 이야기였는데, 이 책은 열 곳의 가게 중 음식점에 대한 것은 이즈우, 토카사이칸, 혼케오와리야 등 세 곳이고 나머지는 목욕탕, 게스트하우스, 술도가, 카페, 서점, 도장 가게, 500년의 역사가 있는 사탕 가게 등 다양한 업종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만큼 폭넓은 분야의 노포에 대한 장인정신 뿐만 아니라 가게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도 노포로 거듭나는데 지대한 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25년간 교토에서 살면서 교과서에도 소개된 대표적인 문화라고 부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오랫동안 대를 이어온 기업의 발자취와 그들의 증언, 자료로 남아있는 객관적인 역사를 재구성하여 살아있는 교토의 역사와 만나고 싶은 의도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어판으로 세 권이나 냈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특이한 이력도 놀라웠다. 여기서는 3대 이상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노포들을 다루고 있다. 3대 이상이라면 부모나 조부모의 가업을 잇고자 하는 의지와 가문의 전통과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경향이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월을 견디며 노포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의 배경속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사람과 따뜻한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거래처를 귀하게 여기고 손님들의 눈과 혀를 기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산이다. 일단 맛을 보증할 수 있다면 손님을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오늘에도 가게나 기업을 운영하는 행태를 보더라도 어떤 사업이 잘 된다고 하면 시세를 확장하기 바쁘다.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하고 초심을 잊어버린 방만한 경영은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고등어 초밥으로 까다로운 교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이즈우의 경우는 그러한 초심을 잘 간직한 사례다.


올라간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 올라갈 수는 없어. 올라가면 언젠가는 떨어질 때가 오는 법이야.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크게 벌인 것을 줄이는 일은 힘들단다. 고용한 사람들을 해고하거나 빚을 갚도록 해야 하니까.”(p40)


 참으로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단순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노포 이야기 속에서 삶의 처세도 찾을 수 있다. 호황이던 시절 가게를 넓히자고 했지만 선대의 지혜롭고 확고한 운영 방침으로 230년이나 되는 전통을 갖게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술이란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술을 잘 못하지만 술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오래전 전통주를 지키려는 장인에 대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고유의 맛을 유지하고 생산하는 과정도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판로 개척이나 마케팅 전략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쓰이 주조1726년에 창업한 일본 전통주를 만드는 회사인데, 13대 마쓰이 하루지에게 데릴사위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라서 흥미를 끌었다. 지금도 일본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소수에 그칠 정도로 가부장적 권위가 짙다고 하는데, 그 당시 처가의 성을 따르면서도 전통의 명맥을 이었다는 점이다. 전통과 가치를 그만큼 중시했다는 것이겠지.


 또한 맥주, 소주, 와인 등 각국에서 수입되는 술이 넘치는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월을 버티며 살아남았을까 궁금해진다. 2013년 교토 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배조례(교토 시 청주 보급 촉진에 관한 조례)를 교토 시장과 시의회가 힘을 모아 제정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된다. 건배조례의 목적은 시의 전통 산업인 청주로 건배하는 문화를 만들어 청주의 보급을 통해 일본 문화의 이해 촉진에 기여하는 것이란다. 전통주의 명맥을 유지하고 판매의 활성화를 위해서 관 차원에서까지 힘을 보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 상황에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을 좋아해서 여행 때마다 서점을 둘러보게 된다. 고서점 거리로 유명한 도쿄의 진보초나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츠타야 서점을 여러 차례 가보았다. 1872년 창업한 마루젠 서점은 좀 생소하다 싶었는데, 몇 년 전 도쿄 여행때 오차노미즈 역 근처의 서점에 더위도 피할 겸 들어갔던 곳이 바로 마루젠이었다. 1869년 하야시 유키치가 설립한 마루야마상사가 그 전신이라고 한다. 그는 개업의로서 의료 도구나 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등 서양 문물을 폭넓게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일본인에게 근대화를 실감케 하였다. 이러한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마루젠 교토 지점은 2005년에 문을 닫게 되는 위기에 처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놀랍게도 마루젠 서점이 부활했다는데... 서점마다 사람들이 북적였던 그들의  분위기를  봐 온 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후계자들이 현대식 교육을 받고 일부는 유학생활을 한 엘리트들도 있었는데 가업을 잇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로웠다.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이유로 또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하여 자연스레 가업을 잇는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몇 년에 걸쳐 혹독한 수행을 거치며 준비를 하는 과정도 대단했다. 전통과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와 분위기가 자연스레 스며든 가풍이 가업을 잇도록 이끄는 것 같았다. 특히 혼케오와리야의 점주가 된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던 이나오카 씨가 가업을 잇게 된 계기는 감동을 준다. 외국을 동경해서 해외에서 살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자기 안에 뿌리내리고 있던 어릴 적 교토 풍경이나 추억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다고. 이런 것을 볼 때 가업을 잇고 전통과 가치가 축적된 노포를 만드는 영광은 의무감 보다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맛을 찾고 어릴 적 향수를 그리워하는 단 한명의 손님이라도 반갑게 맞이하는 따뜻한 마음 말이다. 이러한 교토의 대표적인 노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에 대한 다른 관점을 알려주었다. 너무 현대적인 건물의 외관과 시세 확장으로 업종도 자주 바뀌는 우리의 경우를 볼 때 분명히 부러운 이야기였다. 돈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에서 노포는 탄생하지 않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교토 여행은 그들의 시간과 역사가 켜켜히 쌓인 노포를 돌아보고 싶다는 기대감에 충만해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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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 목욕 가방 들고 벳푸 온천 순례
안소정 지음 / 앨리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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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차례 일본 여행을 했지만 온천에 가 본 적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평소에도 목욕탕에 가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서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온천 명인이 되었다는 작가를 따라 온천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 가보고 싶어졌다. 피부에도 좋고 통증을 치유하기도 하는 온천이 좋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어온 것도 그렇고. 작가가 명인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떠나서 그 과정은 재밌기도 하겠지만 좀 번거로워 보이기도 했다. 88군데의 온천을 다니고 도장을 받아야 명인이 되는 것인데 하루에 열군데 정도를 다녀야 한단다. 그렇다면? 옷을 벗었다 입었다 열 번 정도를 반복해야 한다. 글쎄 나 같으면 못하겠다 싶어서 웃음이 났다.

 무겐노사토 슌카슈토(몽환의 마을 춘하추동)온천. 이름처럼 멋지고 환상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온천 순례가 아니었다. 같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과 뜻밖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친구가 되고 온천을 사랑하는 사람,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좋은 온천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함께 관리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힘을 얻어 운영한다는 푸근한 이야기를 알고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아주 오래되어 낡은 듯한 온천부터 호텔의 신식 온천, 특이하고 이색적인 온천까지 다양한 곳이 소개된다. 백년도 넘은 온천, 극장을 끼고 있는 온천, 식물원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온천 그 개성도 참 다양하다. 전세를 내다시피 유유자적 혼자 온천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에서, 오롯이 자신의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호사를 누리는 그런 시간들이 정말 부러웠다. 어느덧 나도 명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은 어떤 모습의 온천이 나올까,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기 바빠진다.

 

  

꿈이 뭐예요?”

과거의 나는 이 질문에 직업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게 직업적 성취가 아님을, 열정도 언젠가는 소모되는 자원임을 깨닫기 시작한 20대 끝자락에서 꿈을 놓치고 오히려 안도했다. 꿈꾸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진작 알았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P4-시작하며(꿈 대신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꿈꾸는 것과 행복은 다른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자신이 하는 일로 성공의 승부를 걸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고 시간에 쫓기게 되고 행복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게 되기도 한다. 행복이란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것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소개하는 온천의 주소, 영업시간, 교통편, 입욕 요금과 시설 정보가 자세히 들어있다.

각 장에는 먹거리와 머물 숙소의 정보도 들어있고, 온천 명인에 도전한 이야기인 만큼 온천 축제의 정보, 건강한 입욕을 위한 안전 수칙 등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찜질할 때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참 좋았을 것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 또한 온천 명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는 것. 그러면서 내게 알맞은 입욕법을 알아가는 것. 온천 명인이 된다는 건, 그런 일들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130초의 시간은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내게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자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온천 명인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P39)

 

 명색이 온천 명인에 도전 중인데 뜨거운 물속에 오래 있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라고 자위한다. 나의 상태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 일상에서도 자신을 향한 너그러운 태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무엇을 하다가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해서 나는 안 돼, 라며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씩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매일을 산다는 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쓰바라 온천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왔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고. 매일은 새롭게 도착하니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세상에 온천에게 이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을까. 엉뚱해서 웃음이 절로 났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물처럼, 꾸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온천을 좋아해야지. 그렇게 매일을 맞이해야지.’(P198)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작가는 매일 다른 온천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온천과도 마음을 공유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온천 또한 자신 속에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찰랑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도 했을까. 아무도 없는 공간, 누군가의 손길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는 온천을 보며 편안한 위로를 받으며 매일을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차나 식사를 주문하면 온천은 무료 이용할 수 있는 등 개성 넘치는 온천이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몸을 씻는 것처럼 마음도 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온천에 홀로 간다는 것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P310~31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은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나도 그렇고.) 뭔가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렇게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어진다. 물아일체가 된다는 것은 행복의 다른 말이 아닐까.

 

삶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라고. 온천에서 몸을 단정히 하는 일처럼, 그저 매 순간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온천을 만난 뒤, 평범한 매일 그리고 보통의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질문자에게 되묻고 싶다. “좋아하는 일은 모두 특별하지 않나요?” 사랑에 빠지면 연인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처럼, 온천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천이 내게 대단할 뿐. (중략) 벳푸 온천 명인 도전 길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상장도 수건도 아닌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누구에게나 유효할 거라는 희망도 함께였다.’(P317~319)

 

 삶이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고 행복도 그리 거창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꿈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써 행복을 찾은 작가가 달리 보였다. 탕 속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이 몸을 닦는 것처럼 매 순간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을, 평범한 매일과 보통의 자신을 조금 더좋아하게 되었단다. 무엇보다 언제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요 근래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권 읽었다. 오래된 가게를 좋아해서 도쿄 골목을 돌아다닌 작가 이야기, 미술관이 좋아서 일본 열도의 미술관을 탐방한 이야기, ‘꿈 없음에 만족하던 어느 날’ ‘벳푸 온천 명인을 알게 되어 온천 명인에 도전했다는 안소정 작가의 이 책까지.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이야기다. 나 또한 일본에 관심이 아주 많은 터라 언젠가 일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전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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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산책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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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미세먼지로 잔뜩 찌푸린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어 마음마저 그런 기분에 휩싸이기 쉬운 요즘, 봄 향기가 물씬 나는 싱그러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꽃과 나무 등 자연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일까,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 이소영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 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이다. 10여 년 동안 식물원과 수목원, 산과 들, 정원과 공터를 찾아 가 보고 만난 다양한 식물과 사람의 이야기다. 꽃과 식물을 채취하고 세밀화를 그리며 정성을 쏟는 일이기에 누구보다 남다른 애정이 생길 것 같았다. 더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면 닮고 싶어지고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초록빛 숲 속에서 떠도는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져 감동이 일었다.

 

 지난겨울 12월에 제주도 여행길에 들렀던 여미지 식물원이 생각났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선인장이나 평소에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짙은 초록으로 무성한 잎들이 달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면서 바쁜 삶으로 경직돼 있던 마음을 유연하게 해 주는 느낌이 좋았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던 관계로 워낙 넓은 식물원의 다양한 수목과 꽃들을 자세히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보통 마음을 치유하고 쉼을 위해 식물원에 가곤 한다. 하지만 식물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닌 종의 보존을 위해 식물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류학자, 생태학자, 원예학자, 조경학자 등 식물세밀화가 까지 식물을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숨겨진 노력 덕분에 우리의 삶이 한층 건강하고 풍요로워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국내의 수목원은 물론 세계 각지의 식물원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식물원에 대해서 다룰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일본의 하코네 습생화원이 인상적이었다. 언뜻 스치듯이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방치되어있던 논을 습지로 복원해서 조성한 곳으로 1979년 문을 열어 200여 종의 습생식물 외에도 1100여 종의 고산식물과 일본의 자생식물 등 1700여 종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3월부터 11월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곳은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다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정원이 떠오르는 풍경,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정원으로 동북아 자생 풀들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의 자생식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고 그럴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던 식물의 세계도 우리 인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보고 들은 적만 있는 식충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벌레가 식물의 잎을 갉아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벌레잡이식물은 원래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숲과 들에서 살았는데, 작고 약해서 점점 습지나 암벽으로 밀려나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은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작은 곤충이나 동물을 통해서 영양분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 식물들이 살기 위하여 생존 방법으로 사냥을 택한 것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끈끈이주걱은 끈끈한 점액질에 달라붙은 동물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둔 후 지쳐 죽도록 해서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화하려는 몸부림이 있었기에 식물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반면, 강자인 인간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대하며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식물을 다룬 이야기지만 과일 이야기도 나온다. 과일은 우리 생활과 너무나 밀접하고 친숙해서 생각지 못했던, 과일도 식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식물세밀화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했고 왜 굳이 그림이 필요할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알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원예식물의 식물세밀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단다. 사진으로는 식물의 종 특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데, 사진으로 담으면 식물 개체 각각의 변이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밀화에서는 어떤 종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징은 드러내되, 개체의 환경 변이 등은 축소해 표현하므로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내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식물 연구가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에서는 그림을 통해서 발표한다고 한다.

 

 최초의 식물세밀화는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16세기 최초의 식물학자들이 약용을 위해 식물의 생태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생체를 채집하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 약용식물을 얻기 위한 식물 연구가 식물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인류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식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식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약효가 증명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여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식물의 가치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에 달려 있고, 결국 그것은 인간이 결정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들은 식물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그러면 식물에게 미안해지고, 또 나는 그만큼 식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P166)

 

 한 종의 식물을 식물세밀화로 그려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니 오랫동안 그 식물의 생육과정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에 수십 번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식물을 채집하고 형태를 기록하며 연구하는 일련의 활동 속에는 식물들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종의 역사가 들어있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주변의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식물에게서 인간인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과일이나 화분에 심겨진 화초들이 소비자의 기호와 입맛에 따라 선택을 받으면 인기 있는 상품이 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멸종되기에 이르는 원예 산업의 역사적 사례에서도 사람들의 심리가 보였다.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번영과 소멸이 반복되는 식물세계의 흥미로운 변화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식물을 키운다. 관상, 식용, 약용 등 식물로부터 유익함을 얻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키울 때 잘 죽지 않고,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좋은가를 묻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질문을 통해서 나는 식물에게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지만, 식물은 내게 많은 걸 해주길 바란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데...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콕 집어 말하는 이 장면에 웃음이 난다

 

 여미지 식물원에서 정말 신기했던 것은 천장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화초들이었다. 이 책에서 알았는데 흙이 필요하지 않고 공중에서 자라는 틸란드시아였다. 선인장과 같은 다육식물이지만 전혀 다른 품종처럼 외관이 다르다. 흙이 필요 없으니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공기 정화 효과에 실내 장식의 기능도 활용할 수 있으니 사람들의 인기를 끌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들이 바라는 심리와 맞아 떨어져 운명이 갈리는 틸란드시아와 리톱스의 사례를 보아도 마냥 편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늘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 화초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바라볼까. 봄엔 푸릇푸릇 새싹으로 여름엔 짙은 녹색의 그늘을 베풀어주는 나무들. 꽃을 피우고 열매를 한없이 내어준다. 그들의 변화 속에서 위안을 얻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어쩌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그냥 지나쳤던 주변의 식물의 꽃 이름을 알아보고 한 번 더 돌아보는 작은 노력으로도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식물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이 리뷰는 채널예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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