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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일찍이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나 내용을 많이 접해 보았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비록 인디언의 슬픈 비극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산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언 가족의 이야기였지만, 소설 간간히 배어 있는 인디언의 슬픈 역사가 나오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했던가. 많은 미국의 역사가들이 자국의 역사서를 쓰면서 미국의 개척시대를 "미국의 진보적 걸음이자 오늘날 미국의 바탕이 된 자랑스런 일이다"라고만 적어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할 진실이 있다. 지금 미국이 가진 넓은 땅은 그 땅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쫓아내거나 학살한 것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물론 백인들을 위협하고 약탈하는 인디언 부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만의 문명을 이어나가고 있던 부족들이었다. 
 
 그리고 인디언 부족이 많은 만큼이나 그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천 명의 백인신부』에 등장하는 '샤이엔 족'도 결국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는 '인디언 신부 계획(Brides for Indians)'과 연루되어 있는 흥미로운 인디언 부족인 샤이엔 족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은 '프롤로그'에 주로 담겨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도 써져 있듯이,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이 일부 들어가긴 하지만 전적으로 허구이다. 우리는 '백인 신부'의 주인공인 메이 도드가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 백인 신부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인공 '메이 도드'의 일기 방식(가끔 언니와 전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다)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메이 도드가 인디언 신부 계획에 참가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저자는 여기서부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헨리 에임스라는 남자와 불륜을 맺어 아이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그녀는 온갖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구속되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신부 계획에 참가하면 여기서 풀어준다는 말에 혹하여 동의하게 된다. 즉, 메이 도드가 처음부터 인디언의 신부가 되기 위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정작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그녀를 반긴 건 무엇이었나? 정부의 결정이 없이는 마음대로 이탈할 수 없는 '구속'이었다.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인디언의 풍습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한편, 백인들의 모순적인 행동과 횡포가 한 여성의 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유분방한 여성 메이 도드는 거리낌없이 정부의 행동을 고발한다.
 
 하지만 그녀가 참을 수 없는 미개한 행동(특히 동물적인 성교 행위)에 참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자신과 함께 했던 47명의 백인 여성들이었다. 제목이 '천 명의 백인신부'라 해서 1000명의 백인 신부가 다 등장하리라고 기대했다면 당장 버리라. 이 소설은 한 여성의 시점으로 쓰여진 일종의 1인칭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 도드가 본 것들, 들은 것들만 기록되어 있고 만나지 못한 여성, 기록하지 않은 여성들에 대해선 독자들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독자들에게 소설에 집중하게 해주는 효과를 해 준다). 인물의 수를 적게 한 만큼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주인공 메이 도드와 피미는 자유분방한 성격이고, 그에 비해 마사는 소극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존재이고, 보호받아야 할 여성들이다. 인디언 여성들이었던 콰이엇 원이나 페더 온 헤드도. 그리고 노새꾼 지미, 더티 거티도. 그러나 메이 도드 일행은 백인군의 공격과 한겨울의 추위로 죽는다. 그들은 여기에 오게 된 사연도, 그 동안 겪었던 일들도 달랐지만 그들은 인디언의 움막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태어난 시기와 장소는 많이 달랐지만 죽은 시기와 장소는 비슷했다. 세라는 예외지만. 

 비록 『천 명의 백인 신부』에는 지나치게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하여 '진짜 줄거리는 언제 나오나' 하며 지루해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인디언들의 라이프이자, 인디언들과 동화되려는 백인 여성들의 라이프다. 인생은 원래 굵은 뿌리보다는 자잘한 에피소드의 길이가 더 긴 법이니까. 그리고 그 한 줄기 줄기가 모여 누군가의 영양분이 되지 않겠는가? 비록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은 까닭은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했으며, 그 증거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마치 메이 도드가 존 버크와의 사랑을 과거의 인간 셰익스피어를 통해 연결했듯이. 짐 퍼거스가 보여주는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모든 면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이 소설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기묘한 운명이리라.
 
 "평화는 정복의 본성이다. 그 때는 양편이 모두 고결하게 누그러들고, 어느 편도 패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2부 4막 4장
 
 "가, 친구. 여기서 네가 버크 대위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릴게. 어서 가. 군인들한테 우리가 누구인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 줘. 그리고 존 버크 대위에게 이 말을 해 줘. '현명한 아버지는 자기 아이를 알아본다'고……." - 소설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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