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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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오두막을 구입하기 전 책에 대한 사전지식은 거의 없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뜨던 배너 속에 미국 600만 독자를 울리다란 글씨. 그래서 막연히 생각했다. 아. 되게 슬픈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울고 싶은 일이 생겼다. 언제나 울 때엔 핑계가 필요하다. -혹시 누군가에게 우는 모습을 들켰을 것을 대비해 슬픈 영화를 봐서 혹은 슬픈 책을 봐서라고 말할 핑계 말이다- 망설임 없이 생각난 책이 바로 ‘오두막’ 이었다. 그 길로 당장 서점에 달려가 책을 사들고 침대위로 올라갔다. 책의 명성에 비해 내 계기가 참 보잘 것 없어도 어쩌겠는가. 우린 이미 만나버린 것을.


슬픔을 겪은 자들이 하는 질문, 신이여 당신은 어디 있나요?


 주인공인 매켄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집을 나와 현명한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다섯 명의 자녀를 둔 남자다. 매켄지는 그중 세 아이와 함께 캠핑을 떠났다가 사고를 겪고 잠시 막내딸 미시에게서 눈을 떼게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미시는 ‘꼬마숙녀 살인마’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결국 미시의 흔적은 낡고 작은 오두막에서 찢겨진 원피스조각과 함께 발견된다.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딸의 죽음은 매켄지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을 안겨주고 남은 가족들에게도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여기까지의 설정으로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출간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던 한 소설이 생각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청준의 ‘벌레이야기’ (영화명 밀양) 이다. 이 두 개의 소설은 종교가 관련되었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벌레이야기’의 주인공은 결국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끝내는 데 비해 ‘오두막’의 주인공은 결국 구원을 찾고 슬픔을 극복하게 된다. 사실 매켄지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엔 누군가와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매켄지에게 ‘파파’(하나님)가 보낸 쪽지가 도착한다. 바로 미시가 살해당한 그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것. ‘거대한 슬픔’ 이후 하나님과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그에 대한 신앙에 대해서도 흔들리고 있던 매켄지는 이 잔인한 장난일지도 모르는 쪽지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고통의 상징인 오두막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파파(하나님), 예수, 성령을 만나면서 매켄지의 마음이 열리고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면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매켄지가 ‘오두막’에 가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을 만나고서부터 책의 진도가 느려졌다. 워낙 사건중심의 소설에 익숙해져 그런지 대화중심의 책을 보니 의미를 하나하나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특히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이 대화로써 매켄지에게 깨달음을 줄 때 매켄지는 이해하고 나는 이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어 자꾸 앞으로 돌아가 두 번, 세 번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엔 몇 번씩 돌아가 말의 의미를 이해할 가치가 있다. 씹을수록 진한 향이 퍼지는 더덕같이, 먹을 때는 쓰지만 결국은 몸에 좋다는 그런 의미랄까.

키워드는 ‘사랑’과 ‘이해’ ‘관계의 복원’이다.


 작가의 소개 중에 눈에 띈 부분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뉴기니에서 원주민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그의 여섯 자녀에게 선물로 주기위해 라고 쓰고 있지만 책 내용으로 볼 때 작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책을 쓰면서 어렸을 때 당했던 성추행의 기억이 계속 떠올랐을 것이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책을 마무리 함으로써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게 된 건 아닐까?
 책을 읽다보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혹시 이 일이 내게 일어난 일이라면? 내 가족의 일이라면 난 매켄지처럼 극복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뒤숭숭한 뉴스를 볼 때마다 범인을 증오하고 내 가족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을 안도하면서 만약 이런 일이 내게 생겼을 때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란 의문은 나를 다시 책 앞쪽으로 데려다 놓는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담아 놓은 오두막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겪은 고통과 아픔들을 가둬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매켄지는 역설적이게도 제일 고통 받았던 오두막에서 슬픔을 극복하고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만나 화해하고 용서한다. 물론 선택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정 아픔을 극복하길 원한다면 시간이 치유해줄 것이라 기다리지 말고 매켄지처럼 당당히 자신의 상처를 마주보자. 혹시 누가 당신을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지 아는가. 당신의 오두막에서.

   
 

“모든 길이 당신에게로 이어진다는 의미인가요?”
 맥이 물었다.
“천만에요.”
 예수가 미소를 지으며 작업실 문으로 손을 뻗었다.
“대부분의 길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아요. 당신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느 길이라도 가겠다는 뜻이죠.”

p. 29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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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는 001-A143572025 입니다
 

 저는 책을 거의 알라딘에서 주문한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알라딘에 대한 애착이 심하다고 할까 그런거 같아요~ 알라딘에서 주문할 때엔 한번도 책 상태가 안좋아서라든지 하는 교환도 없었거든요. 배송도 제 시간에 오는 데다가 그 과정을 확인 할 수 있어서 참 좋답니다. 실제로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책 준비상태라던가 배송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너무 간략화 해서 배송 출발해서야 대기중이 풀린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취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하지만 알라딘에서는 한 번도 그런일이 없어서 만족이에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부터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까지 총 4권이 알라딘 당일배송으로 도착했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예전엔 오전 10시까지 당일배송으로 알고 있었는데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 .. 10시 40분 가량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당일배송이 가능하다고 써있었거든요.반신반의 하며 주문버튼을 눌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3시쯤 출고완료가 됐다는 문자가 오더니 5시 반쯤 울리는 초인종 소리~  

어디서부터 왔길래 벌써 온거니~하고 감동했어요. 경기도부터 저희 집까지 바로 도착한 제 책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어요 하하^^  

배송상태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충격방지용 쿠션과 함께 다소곳이 들어 있는 책들^^  한권 빼고는 중고책으로 구입했지만 상태도 최상인 만큼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을 싸게 사니 일석이조였어요. 요즘 알라딘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새로 나온 책 없나 살펴보는데 이렇게 당일배송으로 받고 나니 더더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에요. 빨리 읽고 다른 책들을 사고 싶네요. 장바구니가 벌써 넘치고 있답니다. ^^;




잘 읽을 순 없지만 당일 배송 과정이랍니다. 오전 10시 37분에 주문했고 5시 반 정도에 받았으니 정말 빨리 도착했지요? 당일 배송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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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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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서평을 위해 책을 읽게 된 계기 , 느낌 , 줄거리 등을 쓸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도저히 이 책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고 내가 엄마에게 한  

일이고 우리 가족 이야기니까. 

책을 볼 때의 느낌도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보는 내내 정신이 혼미했으니까 

너무 울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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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 The Accidental Husba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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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퍼스 왜 나온거야..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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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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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복제직공으로 일하던 중년의 흑인부인 로사 파크스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다. 너무 피곤했던 그녀는 백인은 앞자리, 흑인은 뒷자리라는 소위 말하는 ‘흑백분리법’ 을 어기고 백인의 자리에 타게 된다. 백인인 운전기사는 로사 파크스에게 뒤로 가라고 요구했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시 조례를 위반한 혐의로 로사 파크스는 체포되게 된다. 이 사건은 4만 여명의 흑인들이 버스승차거부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운동에서 탁월한 웅변술과 지도력을 보여준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이 흑인들의 민권운동 지도자로 급부상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59년, 10월의 어느 밤, 이 책의 저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떠돌던 강렬한 생각 하나를 실행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직 머릿속에 미국의 역사니 노예제도니 하는 것들이 들어있지 않았을 때 한 영화를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백인들은 하나 같이 멋진 옷과 아름다운 머리를 하고는 말을 타고 놀러 다니거나 흑인이 내온 다과를 우아하게 즐긴다. 그에 반해 흑인들은 목화밭에서 일을 하거나 백인들의 시중을 들고 백인들의 몸치장을 도와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됐던 애틀랜타에 노예제도가 존재했고 후에도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비록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면서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남부지방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핀이 처음 ‘결심’을 하게 된 계기도 남부지방의 흑인들의 자살률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후였다.

사실 흑인이 억압당하는 땅에서 흑인이 되어 남부를 여행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글로 써보자는 그의 결심은 무모한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론 백인이 자기들이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환상을 깨게 하거나 두 인종이 서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내복약을 먹으면서 몸에 강렬한 자외선을 쏘이고 얼룩진 부분은 염색약으로 처리하고 곱슬머리가 아닌 것은 삭발해 감추는 등 변신을 하기 위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다. 거울을 본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흑인, 실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낯설고 무섭고 강렬한 외로움까지 느낀 그는 무엇보다도 그 모습에 동료의식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흑인이 된 그는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고 잠자리도, 먹을 것도 편하게 구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급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도 흑인전용 화장실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저자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지성도, 이력도 그대로였지만 백인이었을 때 당연하게 제공되었던 모든 것들이 그를 거절한 것이다. 단지 흑인이기 때문에- 또 백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보내는 ‘증오의 시선’과 노골적인 차별은 점점 그가 흑인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으며 그들과의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였다. 나 또한 얼마나 동화됐던지 저자가 얻어 탄 차의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의거한 질문을 해댈 땐 같이 피곤함을 느꼈고 어느 가난한 흑인의 집에서 그의 대가족들과 초라하지만 사랑스러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았을 땐 같이 진한 감동을 느꼈다. 책의 여정은 50여일이 흐른 뒤 저자가 다시 백인가정의 남편으로, 아버지로 돌아오면서 끝이 나지만 책이 출간 된 후 어떤 후폭풍의 몰고 왔는지가 같이 실려 있어 독자의 소소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56년, ‘흑백분리법’이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흑인들에게는 버스 뒷자리를, 백인들에게는 타고 내리기 편리한 앞자리를 제공했다. 또 흑인들에게 선거세를 걷으면서도 선거권을 제한하는 등 백인들이 만든 편견으로 흑인을 이등시민으로 구분하고 교육의 혜택을 박탈하며 그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또는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으로 치부해 버리는 백인들의 생각은 일제치하 때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시행한 우민정책을 떠오르게 해 가슴이 아팠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최초로 흑인대통령 자리에 오른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 이 책이 위대한 고전이라고 칭송받으며 읽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빼앗고 파괴하고 서로를 단절시키는 일들이 아직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나 그룹이나 인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개개인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같이 살아간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말살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그 무서운 전쟁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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