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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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복제직공으로 일하던 중년의 흑인부인 로사 파크스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다. 너무 피곤했던 그녀는 백인은 앞자리, 흑인은 뒷자리라는 소위 말하는 ‘흑백분리법’ 을 어기고 백인의 자리에 타게 된다. 백인인 운전기사는 로사 파크스에게 뒤로 가라고 요구했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시 조례를 위반한 혐의로 로사 파크스는 체포되게 된다. 이 사건은 4만 여명의 흑인들이 버스승차거부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운동에서 탁월한 웅변술과 지도력을 보여준 젊은 목사 마틴 루터 킹이 흑인들의 민권운동 지도자로 급부상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59년, 10월의 어느 밤, 이 책의 저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떠돌던 강렬한 생각 하나를 실행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직 머릿속에 미국의 역사니 노예제도니 하는 것들이 들어있지 않았을 때 한 영화를 보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백인들은 하나 같이 멋진 옷과 아름다운 머리를 하고는 말을 타고 놀러 다니거나 흑인이 내온 다과를 우아하게 즐긴다. 그에 반해 흑인들은 목화밭에서 일을 하거나 백인들의 시중을 들고 백인들의 몸치장을 도와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됐던 애틀랜타에 노예제도가 존재했고 후에도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비록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면서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남부지방의 흑인에 대한 차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핀이 처음 ‘결심’을 하게 된 계기도 남부지방의 흑인들의 자살률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 후였다.

사실 흑인이 억압당하는 땅에서 흑인이 되어 남부를 여행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글로 써보자는 그의 결심은 무모한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론 백인이 자기들이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환상을 깨게 하거나 두 인종이 서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내복약을 먹으면서 몸에 강렬한 자외선을 쏘이고 얼룩진 부분은 염색약으로 처리하고 곱슬머리가 아닌 것은 삭발해 감추는 등 변신을 하기 위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다. 거울을 본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흑인, 실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낯설고 무섭고 강렬한 외로움까지 느낀 그는 무엇보다도 그 모습에 동료의식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흑인이 된 그는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고 잠자리도, 먹을 것도 편하게 구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급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도 흑인전용 화장실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저자는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지성도, 이력도 그대로였지만 백인이었을 때 당연하게 제공되었던 모든 것들이 그를 거절한 것이다. 단지 흑인이기 때문에- 또 백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보내는 ‘증오의 시선’과 노골적인 차별은 점점 그가 흑인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으며 그들과의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였다. 나 또한 얼마나 동화됐던지 저자가 얻어 탄 차의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의거한 질문을 해댈 땐 같이 피곤함을 느꼈고 어느 가난한 흑인의 집에서 그의 대가족들과 초라하지만 사랑스러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았을 땐 같이 진한 감동을 느꼈다. 책의 여정은 50여일이 흐른 뒤 저자가 다시 백인가정의 남편으로, 아버지로 돌아오면서 끝이 나지만 책이 출간 된 후 어떤 후폭풍의 몰고 왔는지가 같이 실려 있어 독자의 소소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56년, ‘흑백분리법’이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흑인들에게는 버스 뒷자리를, 백인들에게는 타고 내리기 편리한 앞자리를 제공했다. 또 흑인들에게 선거세를 걷으면서도 선거권을 제한하는 등 백인들이 만든 편견으로 흑인을 이등시민으로 구분하고 교육의 혜택을 박탈하며 그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또는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으로 치부해 버리는 백인들의 생각은 일제치하 때 일본이 우리민족에게 시행한 우민정책을 떠오르게 해 가슴이 아팠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최초로 흑인대통령 자리에 오른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 이 책이 위대한 고전이라고 칭송받으며 읽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빼앗고 파괴하고 서로를 단절시키는 일들이 아직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사람들을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나 그룹이나 인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개개인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같이 살아간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말살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그 무서운 전쟁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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