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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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성산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화인처럼 아로새겨진 그이름 백두산은 쉽게 가보지 못함으로 인해 더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한다.

딱히 백두산에 관련된 책을 만나보지 못하다가 평소 애정을 갖고 있었던 정민교수님의 필체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급호감이 생겼다.

기존에 안재홍님이 한자로 쓴 기행문을 정민 교수님께서 풀어쓰셨다고 하니,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누른 채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민족은 세계로 세계는 민족으로'에서 가져온 민세라는 호를 사용하는 안재홍님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비타협, 비폭력, 실천적 저항의 지조를 지키고 행동한 독립운동의 표상이었으며, 그의 [백두산 등척기]는 치열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기행문이라고 한다. 안중근, 신채호, 윤봉길, 등 널리 알려진 분 외에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고생하셨던 그 시대의 독립지사들에 대해서 새삼 무지했음을 깨닫는다.

[백두산 등척기]는 1930년 7월 23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8월 7일 기차로 북청역을 떠나기까지의 장장 16일에 걸친 기록이며, 그 노정은 원산과 무산을 거쳐 농사동과 신무치, 무두봉을 지나 천지에 오르고, 허항령과 포태리를  경유해 혜산진으로 내려 풍산과 북청을 경유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안재홍님은 총 34회에 걸쳐 당시 부사장으로 있던 <조선일보>에 연재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 유성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하기에 이르른다. 정민교수님은 34회의 연재분을 총 23장으로 새로 정리했는데, 그 풀어쓰기의 원칙은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는다, 한자말은 풀어쓴다, 긴 글은 짧게 끊는다,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꾼다, 에 따라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진 것 없이 다 실었다고 전제하고 있다.

안재홍님을 비롯한 중심인원 6명과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이 동행한 이 여행길은 단지 팔도 유람하는 식의 관광이 아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앞날을 깊이 고민하는 그런 시간이 되어주었다. 백두산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서 이 나라의 과거역사를 되새기며 미래를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은 남북으로 분단된 채 긴장된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것, 또한 많다.

백두산 상상봉을 오르기 전 , 아침에 정갈하게 몸단장을 하는 저자의 모습은 백두산을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시대를 아우르는 진한 민족애를 느끼게 되는 거 같다.

지난 여름 8월에 약 20여명의 우리 일행들은 고구려 유적지 탐방 및 백두산 기행에 나서게 되었다. 다른 그 어떤 여행길에서보다 더 흥분되고 설렜었던 이유는 바로 백두산이 그 여정의 한가운데 정점에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단동을 거쳐, 압록강, 집안, 통화를 지나 백두산으로 향하는 길,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도 익숙해서 이곳이 과연 옛 우리의 땅 고구려가 맞구나, 하는 마음은 참으로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숲.(안재홍님은 이 책에서 옥으로 빚은 듯한, 이라고 표현한다).

언젠가 1박2일에서 북파로 천지를 올라가는 모습이 방영되었었는데,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서파로 천지를 올라가게 되었다. 백두산의 중턱까지는 차로 이동을 하고, 천지까지는 12,000계단을 오르면 되는 비교적 쉬운 코스였다. 차로 올라가는 백두산은 마침 비가 내려서이기도 했지만, 신비롭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바람에 운무가 꿈결처럼 흩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살짝 보여지는 풍경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비경들.

나무들은 초자연의 형상으로 자유로히 서 있고, 수풀들은 짙푸르거나, 희끄무레하거나 모두 그들만의  모습으로 수목들과 어우러진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은 보이지 않고, 고산지대 특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장한 마음으로 올라선 천지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저 짙은 안개 너머로 천지의 물결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꼼짝없이 서서 내려다 보았다.

하산하는 길에 금강대협곡, 고산화원, 제자하등을 관광하면서 너도나도 다시 백두산을 찾으리라, 그때는 꼭 이 두발로 등척을 하리라, 우리는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비록, 안재홍님과 내가 올라간 길은 같지 않지만, 그 가는 길에 만났던 풍광은, 그 풍광이 불러온 단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의 식견과 문장력이 부족하여 담아내지 못했을 뿐. 이 책은 당시 백두산을 다녀오면서 느꼈었던 나의 소회를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었다.

 

안재홍님은 백두산의 아름다운 경치 세 곳을 꼽고 있다. 상상봉과 천지가 첫째이고, 무틀봉 위로 펼쳐진 넓은 전망이 또 하나며, 삼지연의 맑고 고운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이 나머지 하나라고 정리한다. 이 중에서 무틀봉 위로 펼쳐진 전망은 꼭 만나보고 싶은 풍광이다.

안재호님은 백두산을 그의 나이 40에 올랐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내 나이를 가늠해보고 있다.

이미 안재홍님의 나이를 훌쩍 넘겼으나, 그 때보다는 영양상태가 좋으니, 앞으로도 몸관리가 우선되어야 할까?

연평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통일이후의 빛나는 조국의 앞날을 꿈꾸어도 좋을지...

어수선한 요즘에 만난 [백두산 등척기]는 왠지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기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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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2-0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산 등척기에 관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2007년 8월에 '종주'를 했었는데,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간절한 차에 오늘 문득 이 책을 발견했답니다. 살아생전 언젠가는 우리 땅을 밟고 올라가 백두산을 온전히 다시 보고 싶습니다.
 
건축, 그 천년의 이야기 - 상식으로 꼭 알아야
김동훈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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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광화문 현판의 균열문제는 어떻게 마무리되어가는지 궁금하다.

지붕도 일부 균열이 보인다며 금강송이 아닌 일반 소나무를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8.15 광복절을 맞춰 졸속처리한 보여주기식 업무처리에 문제점이 크다는 지적이 요란하다. 

건축이란, 단지 건물을 짓는 것만이 아닌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와 역사를 보여주는 종합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여행에서 만나고 싶은 풍경의 묘미도 자연경관을 제외하고는 오랜 세월을 거쳐온, 인간의 역사가 고대로 담긴 건축물들이 대다수인 것을 봤을 때도 그러하다. 건축물에는 그 자체로도 품격어린 아름다움이 있어 감동을 자아내지만, 그 뒤에 담겨 있는 많은 스토리들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삼양미디어에서 출간되는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는 매우 유용한 내용으로 가득한데, 이번에는 건축, 그 천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니 매우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은 당시 문화와 역사적 배경,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양식 뿐 만 아니라, 주변환경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기후환경, 지질환경, 등은 건축물에 쓰이는 재질이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건축관련 책으로는 이전에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을 만나봤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그리고 그 목적이나 예술적인 완성도의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들은 두꺼운 양장본에 담긴 채 한컷의 사진으로밖에 만날 순 없었지만,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지는 경이로움과 감탄을 선물해 주었다.

건축물의 재료, 위치, 건축배경, 디자이너, 등이 소개되어 있어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그에 반해서 삼양미디어의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다 쉽게 고대 그리스, 이집트에서부터 건축물의 역사와 각각의 양식에 끼친 영향, 시대적 배경 등이 이야기식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어 있어 보통의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용이했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할지라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축물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그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건축물들은 무생물이지만, 건축가의 혼이 담겨있기도 하고, 그 신의 향한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며,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 행복한 일상을 담아내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어 단지 딱딱한 무생물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건네 온다.

이 책에는 서양의 고대 건축에서부터 중세 기독교 건축, 서양의 근세.근대 건축, 그리고 동양의 건축 문화 유산과 기타 지역의 건축 문화 유산으로 나누어 소개해 놓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각종 수도원, 성당, 베르사이유 궁전, 독일의 바우하우스, 스페인의 가우디건축물, 페루의 마추픽추, 중국의 만리장성, 일본의 히메지성,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원화성등..익히 들어왔던 건축물에 대한 소개도 당연히 나오지만, 리비아의 사브라타, 말리의 젠네구시가지, 태국의 아유타야 역사도시...등등...처음 들어보는 건축물에 대한 소개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글로 건축물이 지닌 아름다움을, 그 경이로움을, 그 무게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화려한 사진이 곁들여지고 자세한 설명을 같이 한다면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 여행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즐거움과 다양한 감정(호기심, 여행에의 욕구,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 등 )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가. 그림을 좋아하는가. 아름다움을 세상의 최고의 선이라 생각하는가...그럼, 건축의 세상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 보시라.

자연이 있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자연과 어우러지는 멋진 건축물이 있어 또한 세상은 그 얼마나 황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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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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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작가상이 그 수상작을 어느새 15회에 이르렀다니! 새삼스럽게 그 횟수에 먼저 놀라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문학계에 큰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문학동네]라는 이름 그대로의 문학동네는 처음 출발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창작과비평이라든가, 현대문학이라든가 류의 딱딱한 이름이 아닌 부드러우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름부터가 마음을 잡아끌었고, 어느새 빠른 시간내에 급성장하는 문학동네가 되어버렸다.

해서, 문학동네작가상 또한, 젊은 층들에게 많은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가로는 김영하, 조경란, 박민규, 등을 우선 손꼽을 수 있겠는데, 이들은 열렬한 매니아층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저력이쓴 작가들이다.

이 외에도 <마요네즈>를 쓴 전혜성, <모던보이>를 쓴 이지민도 그 이름 석자가 꽤 귀에 익숙하다.

이번에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은 김유철의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라는 작품이다.

너무도 평범하여 오히려 쉽게 잊어버릴 것 같은 저자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작품의 타이틀과 수상작이라는 월계관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골자는 매우 단순하다. 

K라는 주인공 남자가 한 계절 동안에 겪는 헤어짐과 만남이라는 작은 일상의 사건들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생각을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소설화한 것 뿐.

먼저 '사라다 햄버튼'이라고 불리는 고양이와 살고 있는 남자가 나온다. 그는 얼마 전 동거하던 S라는 여자와 헤어졌다. 고양이 이름은 그다지 신경쓴 이름이 아니다. 샐러드를 좋아하여 사라다를, 마침 설기현선수가 속해 있던 울버햄튼의 경기를 보던 중이어서 발음이 편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사라다 햄버튼'으로 불리게 된 그 고양이는 그러나, K에게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됨으로서(처음 시작은 비록 가벼웠으나) 꽃이 되게 되었다.

어제까지도 사랑을 속삭이던 S가 갑자기 자카르타로 떠나면서 헤어짐을 고하고, K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갑자기 찾아든 고양이 '사라다 햄버튼'과 함께 흘려보내면서 지낸다.

그런 시간속에도 가끔씩 들르던 편의점의 여자 R과의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고, 고양이카페도 가는 등, 일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신 그러나 매우 주체적인 삶을 사셨던 어머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혼하고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사시는 아버지(알고 보니 새아버지), 자연스럽게 생부와 연결시켜 주는 아버지의 쿨한 모습.생부와 K는 서로의 관계를 짐작하면서도 확인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소설에 나타나는 모든 만남과 헤어짐은 순간의 갈등과 망설임이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가볍고도 경쾌하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파스텔톤의 쿨한 모습은 삶은 그렇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회자정리라고 했던가..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고.

어느새 K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버린 이제는 반려동물인 '사라다 햄버튼', K는 사라다 햄버튼의 원주인을 찾아 돌려주고자 한다. 이후, 갑자기 등장한 고양이탐정이나, 엄마의 숨겨진 이야기등의 소설적 장치들은 작가가 추리소설을 많이 썼다는 이력에서 아하, 하고 무릎을 친다.

전반적으로 구성이 치밀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오는 느낌이 절로 책을 가슴에 품게 하는,  그러면서도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담담하면서도 애정어린 문체는 소설을 읽고 난 뒷맛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소설가 편혜영은 심사평중에,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일상을 그저 산책하듯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의 초상을 묘파한 캐릭터 구축에 공력을 기울였다는 점"라고 평하였는데, 이 소설에 대해서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애정어린 평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보다도 저자의 살아온 삶이 더 흥미로왔는데, 난 이상하게도 김유철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하루키 소설'1Q84'에 나오는 '덴고'가 자꾸만 연상되었다.

그의 건필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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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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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에서 자전거녀와 자전거남의 만남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공원에서 자전거를 매개로 해서 스친 남녀가 서로를 잊지 못해 인터넷 공간에 글을 남겼는데, 각자의 글을 본 누리꾼들이 둘을 연결시켜 주자며 여기저기 퍼나른 결과, 서로 만나게 되었고 결국 연인으로까지 발전된 이야기가 누리꾼들의 열렬한 성원과 부러움속에 회자되었었다.

언뜻 운명적인 인연으로 읽혀질 만큼 나름 극적인 그들의 만남이 이토록이나 젊은 청춘들을 열광시킨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우리 청춘들에게 자연스런 연애를 즐길 만한 낭만적인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인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래도 사랑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사랑없이 무료한 날들이기보다는 고통의 바닷속일지라도 사랑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삶이 훨씬 낫다'..라는 말을 금언처럼 가슴에 품고서 살아온 날들이 내 젊은 날의 초상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이라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으로 처음 만났었던 저자 목수정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로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의 외모 또한, 도발적이면서도 지적인 그러면서도 묘하게 여성적인 모습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독특한 성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번에 두번째로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바로 <야성의 사랑학>이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는 참,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문체는 날카롭고 전투적이면서도 적확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섬세한 감성을 건드려 주기도 하여 개인적으로 외모와 마찬가지로 매우 호감이 간다.

처음의 책에서 그녀가 주장했던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으라는 메시지는 <야성의 사랑학>에서도 고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본능마저도 외면한 채, 짝짓기의 기본인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도 타인의 시선속에서 재단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그녀의  시선을 통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일찍이 이미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을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세상의 시선과 타협하고 있었을 뿐.

좌파적 시선, 혹은 페미니즘적 견해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사랑의 야성학>을 읽는 내내 들었다.

 

대학이 직장인 이유로 20대 젊은이들을 나는 날마다 대하고 산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밖의 테두리에서 보아온 20대의 모습은  왠지 나의 청춘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것 같다. 어쩌면 <야성의 사랑학>에서 목수정님이 언급한 것처럼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경험을 한 이후로 사람들은 가치관의 대변혁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조건에 더 집착하는 20대 초반의 여대생들의 모습은 제 아무리 화장과 명품옷으로 치장해도 아름답지 않았다. 펄펄 뛰는 싱싱한 생선처럼 살아 있는 야성의 본능은 과연 우리 시대에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서로를 존중하는 양성 평등의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사회를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예로 들어가면서 매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한 정치논리, 경제논리, 가부장적 제도, 기득권의 이해 등등..바야흐로 사랑불능의 사회가 갈수록 팽배되어가는 것은 그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제2의성 여자로 40여 년만 살아온다면 누구나 통감하는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그녀의 입을 통해 정리되어 있어, 그 동안 딸, 여학생, 여자, 주부, 엄마, 직장맘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다양한 나의 분노들이 그녀를 통해 위무받는 느낌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가 느꼈었던 의문과 분노와 체념과 타협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고, 더군다나 나의 탓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녀에게 강렬한 동지의식까지 느꼈다.

대학의 문을 들어서는 신입생들에게 교양필독서로 꼭 읽혀주고 싶은 책으로 손꼽고 싶을 지경이다.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제목에서 처음 기대했던 것은 조건이 아닌 순수한 본능에 충실한 사랑학 개론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남녀간의 사랑뿐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인류적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등..

그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롭게 열정적인 사랑을 통해서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것,

기쁨이 충만한 그래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누리라는 것. 그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나의 삶은 나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것.그것만이 황폐해져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환희를 가슴에 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고 또한 실천하고자 한다.

일테면, 딸아이에게는 굳이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네가 컸을 때 쯤이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다면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 엄마가 있는 힘껏 협조할께.

아들아이에게는 책임감있는 성을 누려야 한다. 여성의 의견을 존중해라. 의식주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는 니 손으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피임관련 콘돔에 대한 얘기까지도 나는 아이들에게 책임감있게 얘기해주고 있다.

비록 한국사회에서 견뎌내야 할 편견으로 인해 힘이 들더라도 난 우리 아이들이 자기자신 그대로 자유와 사랑을 주체적으로 누리면서 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성인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진한 안타까움이 있을 뿐,

목수정님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문화적 국격만큼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에 그녀의 삶의 공간이 너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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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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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고 많은 동물중에서도 유독 자신과 인연이 닿는 동물이 한가지쯤은 따로 있다.

내게 있어선 그것이 바로 '염소'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 친근한 가축이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탄생년도가 바로 염소해였던 것이다.

요즘은 양띠로 많이 지칭되지만, 우리 자랄 때는 원숭이띠도 잔나비띠라고 했고, 양띠도 쉽게 염소띠라고들 말했었다.

그러니까, 염소는 곧 나이기도 했던 것이며, 바로 그것이 내게는 처음 대하는 낯선 작가의 책인 <과테말라의 염소들>에 끌린 이유라면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것은 작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저 하늘의 별같은 의미인데, 그 어렵다는 신춘문예 삼관왕에 빛나는 이력이 저자의 첫 장편에 대한 궁금증을 더 크게 했다.

과테말라의 염소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계의 수단이 되는 아주 중요한 살림이었다. 우리에게는 육고기와 엑기스로 유용한 염소가 과테말라에서는 젖을 얻는 귀한 가축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관람했던 이은미 콘서트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붉은 염소 보내기 희망릴레이가 진행되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듯, 염소는 누군가에게는 생을 이어가는 아주 절실한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염소는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 염소가 직접적으로 '나'와 '엄마'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염소젖을 파는 호세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풀어가는 단초를 얻게 된다.

서울의 한 병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과테말라의 한 광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교차되어 전개되면서 우리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 지 깨닫게 된다.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채, 다큐작가로 자리를 잡은 엄마와 살아가는 '나', '나'는 늘 엄마의 정에 굶주려 있다고 생각하며  때때로 엄마의 사랑의 순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십년 된 친구들과 '나'는 정작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나'는 문득 개그맨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친구들의 비웃음을 뒤로 한 채 오디션에 임하지만,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에  몇 분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혼수상태인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위로하러 찾아온 친척들과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나'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얘기를 듣는다. 단선적으로 나와 엄마와의 관계속에서만 재단하려 했던 모습을 다른 이들과의 대화속에서 새롭게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된 나. 나는 결국 엄마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리라 굳게 믿으며 실행하고자 한다.

소설을 빌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산다는 것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 삶의 존엄성, 정도가 아니었을까?

 

과거에도 그랬듯이 헤어지는 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슬프고 아픈 일일 것이다.이 소설이 그걸 재밌고 즐겁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덜 슬프고 덜 아프길 바라는 마음이었단 것도.그거면 충분하다.-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아직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의 영원한 헤어짐을 경험해보진 못했다. 사람이 극도로 슬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고 담담하다고들 한다. 작가는 바로 담담한 상황, 혹은 아직 이별의 상황을 절실히 깨닫지 못한 채,  삶도 죽음도 아닌 상황이 종료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얼마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소설 이후) 혼자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지나오며 문득 문득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일상의 곳곳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 순간마다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슬픔을 맘껏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이십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작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삶속에서 '나' 또한, 엄청난 사건을 겪어내면서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며, 그녀의 삶이 더 성숙되어질 것이라고 믿어본다.

특별한 사건의 전개 없이도 소설은 참 빨리 읽혔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바탕에 깔아두고도 이십대만의 발랄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은

잠깐씩 그 암울한 분위기를 잊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세계전도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매우 익숙했지만, 그래도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했던 한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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