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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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가 글쓰기 이론이나 규칙을 알려주기보다는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담은 책이어서 그렇다.

SF 소설 <화씨 451>, <화성 연대기>로 널리 알려진 '단편의 제왕' 브래드버리는 70여 년 동안 작가 생활을 이어나갔다.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고 단편소설만 300여 편을 남겼다. '글을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불안해지고 이틀이면 몸이 떨리고 사흘이면 미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p. 8)'라고 할 정도로 그는 그의 삶으로 글쓰기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브래드버리가 글쓰기에 가졌던 열정과 사랑을 읽어가노라면 각자 자신들이 글쓰기에 쏟아붓는 열정과 사랑을 덧대며 위로를 얻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들으면서 오히려 글을 쓸때 내가 겪는 힘듦을 친구에게 마구 털어놓고 토닥임을 받는 느낌이랄까?


글감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의 태만을 정당화해온 나에게 브래드베리가 만든 표제 목록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나열해 놓은 단어들은 자극이 되었고 더 좋은 글감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표제 목록에서 단어들을 하나씩 뽑아 열두 살 때부터 매일매일 1,000단어씩 글을 썼다. 그렇게 삶에서 모은 단어들은 그가 쓴 소설에 포함되었다.

'이제 노트, 펜 그리고 표제 목록을 들고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만의 계단 밑에 있어보자. 단어를 떠올리고, 잠재된 자아를 깨우고, 어둠을 느껴라, '나만의 그것'이 저 위 어두운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부드럽게 읊조린다면, 종이 위로 튀어나오려는 오래 묵은 단어들을 써 내려간다면... 계단 꼭대기에 있는 나만의 그것이 나만의 은밀한 밤에... 분명 내려올 것이다. (p. 44)'


뮤즈, 예술가에게 사랑하는 이가 뮤즈라면, 작가에게 뮤즈는 잠재의식이다. 브래드버리는 이 뮤즈에게 음식과 물을 먹였고 뮤즈는 성장했다. 그 과정을 느낄 수 없었지만 변화하는 모습은 가끔 확인할 수 있었다. 뮤즈에게 어떤 음식과 물을 먹였을까?

매일 시를 먹였다. 시는 자주 쓰지 않는 근육을 풀어주었다. 접어놓은 종이꽃 같은 은유를 시를 읽어 활짝 펼칠 수 있었다. 에세이도 뮤즈에게 좋은 음식이다. 색, 소리, 맛, 질감의 감각을 키워주었다. 그 감각은 독자를 자극해 실제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당연히 소설도 먹였다.

'내가 쓰고 싶은 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 내가 생각하고 싶은 식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라. 그러나 또한 전혀 그렇지 않은 작가의 책도 읽어라.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극을 받자. (p. 55)'

뮤즈는 크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좋아해 다양한 인물들이 큰 소리로 부딪혀 대립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뮤즈는 '진솔한 사랑이 이야기를 할 때, 진정한 감동이 시작될 일어날 때, 증오가 연기처럼 몸을 휘감을 때 ( p. 60)' 평생 우리 곁을 지키고 떠나지 않는다.


'세 단어를 다시 보자. 순서는 원하는 대로 놓아도 좋다. 일, 이완, 생각 비우기. 한때는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과정 안에 있다. 일을 하면 결국 이완되고 생각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만 진정한 창조가 일어난다. (p. 175)'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일'이다. 글쓰기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1,000~2,000단어씩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글의 질이 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양은 경험을 가져다준다. 경험이 쌓이면 일 자체에 리듬이 생기고 기술적인 부분이 줄어들어 몸이 주도권을 가진다. '이완'된다. 이완과 함께 생각을 비우게 되고 '더 많은 생각 비우기'는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마주하는 것은 만화를 사랑하던 아홉 살짜리 꼬마다. 만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친구들의 비웃음에 굴복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기로 한 소년 말이다. (p. 203)'

그 소년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래서 좋았고 신났다. 성장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이 때때로 바뀌었지만 열광, 열정,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브래드버리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글을 쓰고 싶었고 열정은 불타올랐다. 쾌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글 쓰는 이유는 생존이었다. 그는 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다.


글쓰기에 용기를 내봄직했다.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몰입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 말이다. 글쓰기는 생존이고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곧 죽음이란 각오를 한다면?... 다시 한번 용기가 생겼다.

'매일 아침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지뢰를 밟는다. 지뢰는 나다. 지뢰가 터지고 난 뒤, 나는 파편을 끌어모으는 데 남은 하루를 다 쓴다. 이제, 당신 차례다. 뛰어들어라!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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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앤 더 클래식 - 국공립 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하는 클래식 도서
정재윤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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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 순간! 그 장면이 너무 깊게 각인된 나머지 영화의 모든 장면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노래인가 싶어 찾아보게 됐고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속 아리아임을 알게 됐다. 그 이후 우울할 때마다 이 곡을 들으며 마음으로 맘껏 울곤 한다.

카스트라토로 태어나기 위해 가난한 집 아이들이 거세당했다. 거세 시술의 사망률은 80~90퍼센트에 달했고, 10년 동안 고된 훈련을 이겨낸 1퍼센트만이 카스트라토 가수로 성공했다.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에 1878년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에서 카스트라토 고용을 금지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QR코드로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렉산드로 모레스키가 부른 <아메마리아>를 감상할 수 있다. 목소리에 담긴 카스트라토의 삶을 알아버려서 울컥 눈물이 난다.


곡 제목을 알고 베토벤의 <론도 아 카프리치오 G장조 Op.129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를 들으면 동전이 빙글 돌며 굴러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동전을 잃어버렸을 때 자연스레 이 곡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실력이지만 아내는 교회의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억 소리 나는 가격의 악기가 아님에도 습도를 신경 쓰고 부서지지 않도록 아내는 자신의 악기를 소중히 다룬다. 아내는 엄두도 못 내겠지만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장 고가는 약 190억 원)를 갖는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무리 슬퍼도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땅바닥에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한 농부와 같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p. 246)'

과르네리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비싼 이유는 공급이 적어서라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93년을 살면서 1,100여 대 만들었지만 과르네리 46세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150여 대밖에 못 만들었다. QR코드로 아내의 최애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치고이너바이젠>을 감상했다. 아~ 한수진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몸짓이 더해져 음악은 더욱 아름답게 들려온다.


뮤즈가 없는 예술가를 상상하기 어려우니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오귀스트 로댕의 뮤즈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면 브람스의 뮤즈는 스승의 아내인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이었다. 결혼을 반대한 스승이자 장인인 프리드리히 비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던 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가 맞다.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의 곁을 지키며 보살폈다.

'두 사람은 고전적 낭만적주의를 추구하는 음악적 견해가 같았고, 서로 영감이 되어 주며 정서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의 작품은 클라라의 연주로 완성되었다. (p. 322)'


<시티 앤 더 클래식>은 팟빵, 유튜브, 강연 등을 통해서 클래식을 알려주는 작곡가 정재윤이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음알못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쓴 클래식 교양서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스토리, 또 그 이야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 QR코드로 소개한다.

미술과 음악의 세계만큼 다가가고 싶은 곳이 있을까? 그 세계의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다가가지 못했다기보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을 그동안 못 했던 것 같다. 미술은 딸아이가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갈 마음이 생겼고 제법 이야기를 나눠 친해져 간다.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선 나는 아직 서성대고 있다.

낯설어 하는 수줍어하는 내게, 정재윤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는 문을 열고 음악의 세계로 한걸음 내딛게 한다. 음악의 속내를 읽고 알면 알수록 음악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생긴다. 이왕 정재윤을 책으로 만났으니 그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이번 기회에 음악과 친해져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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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 -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 이진숙이 만난 악마를 꺼낸 사람들
이진숙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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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들은 배우 김혜자 씨 일화다. 귀한 손주를 얻었고 그 아이의 몸짓이 얼마나 이쁜지 손주 자랑을 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란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테니 30분만 내 손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겠냐고 사정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남의 이야기를 웬만해서는 들어줄 마음이 없다.

수사관에게 절대 입을 열지 않던 범죄자가 어떤 이유로 프로파일러들에게는 범행 동기를 세세하게 털어놓을까? 추궁과 경청의 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사관은 범죄자에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질문을 해대지만 프로파일러는 질문 대신 경청한다. 온몸으로 집중해서 오로지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잘 들어 주기만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말하는 동안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고 해결 방법도 탐색할 수 있다. 그러니 어렵지만 집중할 가치는 충분하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서 어려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테다. (p. 123)'


<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는 프로파일러 이진숙이 범죄자들을 만난 이야기다. 1부에서는 피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심리상태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범죄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 사례를 통해 이런 상황이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도록 한다. 3부에서는 내 속의 악마와 싸워야 할 순간에 스스로를 잘 보살필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키우는 방법을 돌아본다.

이 책에 담긴 범죄자들 이야기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분노하고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될 것이 범죄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아니 통제할 힘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힘이 없다면 이들 범죄자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사람마저 넘어뜨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네 잘못이라고. 부모를 잘 못 만난 잘못,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잘못, 돈이 없는 잘못... 모두 개인의 잘못이라고 한다. 저런 사람을 본받지 말라며 내동댕이친다.

오히려 정부가 심리적으로 상처를 주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수치심을 유발한다. 갈라치기를 한다.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심지어 그들의 보이지 않도록 해 모습을 지워버리려는 시도까지 한다. 한때 나는 사회에 책임을 묻는 범죄자를 증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그들이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책임을 증오를 부추겨온 사회가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악마와 싸워 버틸 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힘은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야만 생긴다. 정부가 개인을 한 쪽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개인을 사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용기 내서 도움을 요청할 때 힘을 보태줄 사람, 슬픔을 불행을 아픔을 나눠가질 사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잘하고 있다고! 넌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누가? 내가, 이웃이, 사회가 그리고 정부가... 개인에게 '너 왜 그랬어'라며 질문하고 추궁하는 정부가 아니라 경청하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고개를 내미는 악마와 싸울 때 버틸 힘을 가진 건강한 사회가 된다.

'그리고 그런 관심을 우리는 바로 알아차린다.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내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랑과 관심을 받은 사람은 타인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지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히 생기기 때문이다. (pp. 132,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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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느낀 행복들 - 국제 문학 에이전트, 대한민국에 빠지다
바버라 지트워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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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신경숙 작가는 팔짱 끼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테지만, 동성 간에 스킨십은 우리에게만 흔한 일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신기하고 색다른 즐거움이며 편리하다고 감탄하는 것들은... 깨끗한 공공화장실, 지하철에 임부나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놓고 비워두기, 횡단보도 대형 파라솔,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 현황판, 고기를 칼이 아닌 가위로 자르는 모습, 산후조리원, 한국의 치안, 커플티와 같은 커플 아이템, 배달 문화 등등 부지기수다.

바버라의 눈에 띈 놀라운 광경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의 3분의 2가 등산화를 가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한국 땅 대부분이 산이어서 그렇겠거니 이해가 되는 한편, 많은 한국인들 취미가 등산이며 산에 가든 가지 않든 등산복을 즐겨 입는다는 건 신기할 따름이다.

저자인 바버라 지트워는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제 출판 에이전트다. 한강, 신경숙, 정유정, 황선미 등 많은 작가들이 그에 의해 외국에 내보였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오게 됐고 신경숙 작가와 함께 여행하며 경험한 것들은 이 책에 풀어놓았다.

인사, 음식, 집, 가족 등 열 개의 키워드로 우리가 느끼지 못한 행복들을 찾아내 소개한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우리 작가들이 바바라에게 소개한 우리 음식 레시피와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았다.


저자는 한국이 '투지와 즐거움 그리고 강한 공동체 의식이 빚어낸 장엄하고 아름다움 (P. 13)'을 가진 나라임을 알아낸다. 머리를 숙이는 인사에서 공손함이 사회적 관계의 성공 요인임을 깨닫는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함께할 때 더 행복을 얻게 됨을 알고, 자연을 중심에 둔 한옥에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낭만을 보고, 가족과 집을 같은 의미로 사용할 정도로 가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 중심 사고가 전통적 가족 구조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통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가족 건너편의 일도 살핀다.

한국인들은 왜 행복할까? 바버라 지트워는 '한'과 '흥', 그리고 '정'으로 한국인의 행복을 마무리한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끈기와 성공이 탄생한 건 '한'의 철학 때문이고, 한국의 자연과 문화에 즐거움이 존재하고 이를 '흥'을 통해서 즐기고...

''정'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와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과 희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p. 194)'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자신을 잘 아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이를 제대로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남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버라 지트워의 <한국에서 느낀 행복들>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한국을 보는 책이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는 행복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이를 데 없이 행복한 것이 된다. 그것이 왜 그들에게 행복인지 이해하고 알게 된다면 그 행복이 이제 우리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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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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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토리텔러, 즉 서사 산문 작가를 위한 안내서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보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이미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p. 4, 서문)'

이 책은 르 귄이 진행했던 글쓰기 워크숍에서 그가 했던 조언을 담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작가들을 위한 작법서여서 쪽글을 쓰는 나에게는 (특히 각 챕터 끄트머리의 연습 글쓰기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르 귄은 흔히 창작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글쓰기를 기술로 여긴다. 나 같은 글쓰기 초보자에게 희망을 주는 대목이다. 기술은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방법을 알고 꾸준히 연습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지는 내 몫이다. 나머지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갈아 넣을 정도로 열정이 없어 그럴 리는 없지만) 아무튼 뭔가를 익히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글쓰기 방법에 있어 (몇 가지 안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다른 르 귄의 조언이 눈에 띈다.

'문장과 단락을 짧게 쓰라는 '규칙'은 "나는 문학적으로 들리는 문장은 다 버린다"라며 뻐기는 작가들에게서 나왔다. (p. 69)'

짧은 문장이 좋다고 들었고, 짧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여러 번 곱씹어 읽은 글이다. 최적의 문장 길이라는 것은 없다고 르 귄은 말한다. 앞뒤 문장과 문장의 내용에 따라 길이가 정해져야 한다. 이 조언 때문에 짧은 문장이 좋다는 단순함이 복잡해져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 단락에서 같은 단어를 두 번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을 만들거나, 반복을 피하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서사적 산문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p. 73)'

한 단락에서 한 낱말을 반복하기 싫어서 같은 의미의 다른 말을 사전에서 찾곤 한다. 산문에서 리듬을 자아내기 어려운데 반복으로 그걸 할 수 있을뿐더러 글의 재미까지 줄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낱말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유용한 건 맞지만 경우에 따라 사전에서 찾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문장의 톤을 바꿀 수도 있다고 따끔하게 주의를 준다.


글쓰기 기술을 숙련하는 나에게 쏙쏙 들어오는 팁들도 가득했다. 글을 큰소리로 읽으면 리듬을 갖춘 생생한 글을 만들 수 있다. 원작자를 밝히고 모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글쓰기 연습은 없다. 지나친 형용사와 부사 사용은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 글에는 표정과 억양이 없으니 언어가 명료해야 한다.

초고를 쓸 때는 서슴없이 꽉 '메우고' 퇴고 단계에서는 대담하게 잘라내고 '건너뛰기'하라는 조언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글쓰기 기술이었다.


부록 '합평에 관해'는 합평뿐만 아니라 독서모임에 적용해도 좋을듯싶다. 6명 이하는 의견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 있고 12명 이상이 될 경우 모임 시간이 길어질 우려가 있으니 모임의 적당한 인원수로 6~7명에서 10~11명 사이를 권한다.

'합평회는 구성원 모두의 실력이 비슷한 수준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괜찮을 수 있고 심지어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재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으면 진지하게 글쓰기에 임하는 구성원들은 점점 의욕이 꺾일 수 있으며, 반대로 적당히 하는 사람들은 진지한 사람들 때문에 지루해질 수 있다. (p. 205)'


자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가 선 긋기를 끝없이 연습하듯 창작의 바탕은 기술의 숙련이다. 규칙도 알아야 규칙을 깨뜨릴 수 있다는 역설처럼 말이다.

이 책이 글쓰기 초보에게도 자신감을 주는 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쓰기도 창작의 영역에 이르기 전에 거쳐야 할 기술의 숙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숙련은 방법을 안 다음 그 방법을 반복하는 것이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반복. 그 결과로 내가 얻게 되는 건, 마법의 배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끄는 능력이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한 모든 것은 이야기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놔두기 위한 준비사항이다. 기술을 갖추고 기법을 익힌다면 마법의 배가 왔을 때 거기에 올라타서 배가 가고 싶어 하고 또 가야 만하는 곳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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