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들은 배우 김혜자 씨 일화다. 귀한 손주를 얻었고 그 아이의 몸짓이 얼마나 이쁜지 손주 자랑을 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란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테니 30분만 내 손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겠냐고 사정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남의 이야기를 웬만해서는 들어줄 마음이 없다. 수사관에게 절대 입을 열지 않던 범죄자가 어떤 이유로 프로파일러들에게는 범행 동기를 세세하게 털어놓을까? 추궁과 경청의 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사관은 범죄자에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질문을 해대지만 프로파일러는 질문 대신 경청한다. 온몸으로 집중해서 오로지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잘 들어 주기만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말하는 동안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고 해결 방법도 탐색할 수 있다. 그러니 어렵지만 집중할 가치는 충분하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서 어려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테다. (p. 123)'<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는 프로파일러 이진숙이 범죄자들을 만난 이야기다. 1부에서는 피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심리상태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범죄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 사례를 통해 이런 상황이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도록 한다. 3부에서는 내 속의 악마와 싸워야 할 순간에 스스로를 잘 보살필 힘을 발견하고 그 힘을 키우는 방법을 돌아본다.이 책에 담긴 범죄자들 이야기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분노하고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될 것이 범죄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아니 통제할 힘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힘이 없다면 이들 범죄자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사람마저 넘어뜨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네 잘못이라고. 부모를 잘 못 만난 잘못,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잘못, 돈이 없는 잘못... 모두 개인의 잘못이라고 한다. 저런 사람을 본받지 말라며 내동댕이친다. 오히려 정부가 심리적으로 상처를 주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수치심을 유발한다. 갈라치기를 한다.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심지어 그들의 보이지 않도록 해 모습을 지워버리려는 시도까지 한다. 한때 나는 사회에 책임을 묻는 범죄자를 증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그들이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책임을 증오를 부추겨온 사회가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악마와 싸워 버틸 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힘은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야만 생긴다. 정부가 개인을 한 쪽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개인을 사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용기 내서 도움을 요청할 때 힘을 보태줄 사람, 슬픔을 불행을 아픔을 나눠가질 사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잘하고 있다고! 넌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누가? 내가, 이웃이, 사회가 그리고 정부가... 개인에게 '너 왜 그랬어'라며 질문하고 추궁하는 정부가 아니라 경청하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고개를 내미는 악마와 싸울 때 버틸 힘을 가진 건강한 사회가 된다.'그리고 그런 관심을 우리는 바로 알아차린다.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내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랑과 관심을 받은 사람은 타인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지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된다.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히 생기기 때문이다. (pp. 132,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