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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앤 더 클래식 - 국공립 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하는 클래식 도서
정재윤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1월
평점 :
영화 <파리넬리>에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 순간! 그 장면이 너무 깊게 각인된 나머지 영화의 모든 장면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노래인가 싶어 찾아보게 됐고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속 아리아임을 알게 됐다. 그 이후 우울할 때마다 이 곡을 들으며 마음으로 맘껏 울곤 한다.
카스트라토로 태어나기 위해 가난한 집 아이들이 거세당했다. 거세 시술의 사망률은 80~90퍼센트에 달했고, 10년 동안 고된 훈련을 이겨낸 1퍼센트만이 카스트라토 가수로 성공했다.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에 1878년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에서 카스트라토 고용을 금지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QR코드로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렉산드로 모레스키가 부른 <아메마리아>를 감상할 수 있다. 목소리에 담긴 카스트라토의 삶을 알아버려서 울컥 눈물이 난다.
곡 제목을 알고 베토벤의 <론도 아 카프리치오 G장조 Op.129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를 들으면 동전이 빙글 돌며 굴러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동전을 잃어버렸을 때 자연스레 이 곡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 실력이지만 아내는 교회의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억 소리 나는 가격의 악기가 아님에도 습도를 신경 쓰고 부서지지 않도록 아내는 자신의 악기를 소중히 다룬다. 아내는 엄두도 못 내겠지만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장 고가는 약 190억 원)를 갖는 것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무리 슬퍼도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땅바닥에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한 농부와 같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p. 246)'
과르네리가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비싼 이유는 공급이 적어서라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93년을 살면서 1,100여 대 만들었지만 과르네리 46세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150여 대밖에 못 만들었다. QR코드로 아내의 최애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치고이너바이젠>을 감상했다. 아~ 한수진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몸짓이 더해져 음악은 더욱 아름답게 들려온다.
뮤즈가 없는 예술가를 상상하기 어려우니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오귀스트 로댕의 뮤즈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면 브람스의 뮤즈는 스승의 아내인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이었다. 결혼을 반대한 스승이자 장인인 프리드리히 비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던 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가 맞다.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후 브람스는 클라라의 곁을 지키며 보살폈다.
'두 사람은 고전적 낭만적주의를 추구하는 음악적 견해가 같았고, 서로 영감이 되어 주며 정서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의 작품은 클라라의 연주로 완성되었다. (p. 322)'
<시티 앤 더 클래식>은 팟빵, 유튜브, 강연 등을 통해서 클래식을 알려주는 작곡가 정재윤이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음알못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쓴 클래식 교양서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스토리, 또 그 이야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 QR코드로 소개한다.
미술과 음악의 세계만큼 다가가고 싶은 곳이 있을까? 그 세계의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다가가지 못했다기보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을 그동안 못 했던 것 같다. 미술은 딸아이가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갈 마음이 생겼고 제법 이야기를 나눠 친해져 간다.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선 나는 아직 서성대고 있다.
낯설어 하는 수줍어하는 내게, 정재윤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는 문을 열고 음악의 세계로 한걸음 내딛게 한다. 음악의 속내를 읽고 알면 알수록 음악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생긴다. 이왕 정재윤을 책으로 만났으니 그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이번 기회에 음악과 친해져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