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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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헤엄치는 법』은 바로 지금이야 구독자 80만명의 유명 그림 유튜버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퇴사하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든 1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수영을 하며 버텨나간 기록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회사 퇴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갈 곳이 있거나 계획이 있다면 좋겠지만 어느 것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퇴사가 망설여집니다.

이연 작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하는 말처럼 우연히 겹친 이별, 입원 그리고 퇴사까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쓰러진 인생의 아픔 속에 인생의 혹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젠 조직에 나를 끼워맞추기보다 나에게 소속되겠다는 마음으로 명함을 파고 그림을 그리는 인생을 다짐합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는 잘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수영'입니다.

매일 할 수 있으면서 저렴하고 재미있는 운동이 바로 '수영' 이였거든요.

저는 수영을 중도에 포기했는데요 수영하면 바로 그 유명한 '음파' 호흡법을 배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육지에서는 숨쉬기는 가장 만만한 운동이지만 수영에서는 숨쉬기는 가장 어렵습니다. 이 숨쉬기가 이토록 어려워서 과연 수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됩니다.

뭔가를 배울 때 의외로 자신에게 잘 맞아서 빨리 배울 수도 있지만 의외로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인생처럼요. 『매일을 헤엄치는 법』 또한 그렇습니다.

숨쉬기부터 시작해서 자유형, 평형, 접영 등 만만치 않습니다.

배움도 그렇듯, 인생도 쉬울 때가 있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궁핍함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여름, 매트리스도 젖고 갈 곳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 작가는 소리지릅니다.

"이게 뭐예요? 제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정상화 …… 정상화하고 싶어.

우리는 모두 뭔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연말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져요. 자신이 해 온 게 모두 부질없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나는 멈춰 있지 않아.

그거면 된 거다.

 

저는 이 말이 너무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실 블로그 글쓰기를 열심히 하지만 이웃은 도통 늘지 않고 내가 제대로 한 건가 의구심과 함께 역시 나는 안 되나 보다라는 절망감이 교차했거든요. 그런데 이연 작가는 말해줘요.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고. 그러니 그거면 된 거라고요...

뭔가를 늘 시도했고 계속한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그 과정을 사랑하라고요.

저와 같은 감정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분들에게 저도 똑같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열심히 하셨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서는 인생의 추운 계절을 통과하는 작가의 기록이니만큼 수많은 갈등과 불안 속에서 수영을 하며 조금씩 인생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기록이 나옵니다.

매일 똑같은 수영장을 돌며 반복되는 일상같지만 하루 하루가 쌓여 매일 성장해가고 있음을 알려줘요.

그러니 결코 똑같지 않다고요. 우리가 하는 매일의 몸부림이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성큼 성장해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할 거라고요!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달라져 있어.

그래, 우리도 매일을 살면서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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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 서민갑부 고명환의 생각법, 독서법, 장사법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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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그맨보다 사업가로 유명한 고명환씨의 책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얼마짜리 사람인가 ?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버는 월급의 밥값을 하는가?" 

하지만 저자 고명환씨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가 던지는 그 질문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아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우리가 답을 했다면 다시 묻는다. 

내가 대답한 액수에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부족한가? 더 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의 삶, 자기 자신의 현 위치,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안 후에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 제목에서부터 과감하게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 재테크를 생각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며 돈 버는 방법을 이야기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고명환씨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고명환씨는 앞서 '나는 얼마짜리 사람인가?'라는 질문 다음에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도록 한다.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왜 장사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로 답하라. 

지금 당장 이 질문의 답을 만들기 시작하라.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벗어나 고차원적인, 이타적인 가치를 만들어 실행하는 장사. 그것이 바로 '끌어당김'의 원칙을 만들어낸다.  

책에서 고명환씨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가치가 무엇인가?" 등등.  이 질문들 앞에서 읽는 독자는 당혹해할 수 밖에 없다.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들었는데 왜 질문을 하지? 

하지만 읽으면서 알 수 있다. 질문을 생각하고 답을 해 나가는 과정에 답이 있다는 것을. 

바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는 과정이 바로 돈 버는 과정임을 저자는 말하며 그 생각은 바로 독서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IT 기술이 발달하며 SNS가 생겨나고 여러 미디어의 등장으로 남의 생각을 그냥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간다. 생각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생각하는 자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당신은 두 시간 동안 계속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누가 더 많이 벌겠는가? 

생각의 차이가 곧 수입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여려 책을 읽으며 자신이 '메밀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메밀국수 집이라는 장사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책으로부터 인사이트를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생각들을 행동으로 만들어가는지 유용한 팁을 제시해 준다. 가령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 나오는 글을 참고하여 자신의 가게도 20% 이익으로 정하며 실천하고 <도요타의 원가>에서 알려주는 원가 기획 단계를 보고 자신의 사업장의 원가 기획을 정확하게 산출해내며 사업을 기획한다. 

책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읽기 -> 생각-> 실천의 선순환이 그의 삶을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연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인가? 맞다. 그리고 그보다 돈이 벌릴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설명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명환씨의 아내 임지은씨가 고명환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처럼 행동하면 실패할 수가 없겠다." 

맞다. 고명환씨는 그런 방법을 알려준다. 실패할 수 가 없는 원칙. 그 원칙을 알려준다. 그러기에 이 책은 가까이 두고 계속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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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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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묻습니다.

 

" 작가 되려고 해?"

 

남편 또한 못마땅해합니다. 돈이 되는 실용서나 아이 육아서는 보지 않고 문학이나 에세이만 본다고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거나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정보성 위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단지 이야기를 좋아하고 책 속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인데 목적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할 때는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만 할까?

 

그런 의미에서 당인리 책 발전소로 유명한 저자 김소영씨의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는 제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에서 퇴사 후 서점 1,2호점을 내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흔들리거나 감정이 무뎌질 때마다 김소영 저자는 책이라는 우물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을 길어올립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종이책 구독 서비스로 책을 소개하는 책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또 다시 직면합니다. 그리고 . 함께 이 감정을 느껴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저자의 마음. 이 책 너무 좋은데 함께 읽지 않을래요라며 편지를 건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목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목차에서 선택하며 읽어도 됩니다.

용기를 내고 싶을 때, 또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다정함을 느끼고 싶을 때, 또는 사랑에 대해서 회의가 들 때,

목차를 보고 그 부분을 읽다보면 신기하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또는 옛 사건과 얽힌 감정이 떠올리며 그 사건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의 무뎌진 감정이 살아나는 경험이 저자의 글을 통해 그 감정이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중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며 엄마를 떠올립니다.

 

그녀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챘기 때문일 겁니다.

올리브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이 아닌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정말 외로웠을 거예요.

 

남들이 보기엔 괴팍한 중년 여성 올리브. 질투도 많고 남의 외모와 성격 비하는 기본 뒷담화도 서슴치 않는 성미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 올리브를 보며 자기애가 너무 강한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엄마. 정이 많지만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우리에게 엄마는 큰 섬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말해줍니다. 올리브가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힘들고 그만큼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그렇다면 엄마도 더 힘들겠구나. 우리가 힘든 게 아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엄마겠구나라며 엄마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녀가 가진 외로움은 무척 거칠고 뒤틀린 모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계속되는 '올리브'라는 인물의 특징은 엄마를 더욱 이해하게 합니다. 엄마의 외로움의 상처만큼 감정의 모습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그 모습이 바로 상처의 깊이라는 것을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들여다보며 더 늦기 전에 그 외로움을 함께 이겨내야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또한 권태기에 있는 자크와 사라 부부의 위기를 보여주며 그 부부 앞에서 저와 남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비추게 합니다. 이젠 설렘보다는 익숙함만이 남은 관계. 가끔씩 이런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때 저자는 자크와 사라 부부가 위기를 통해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나누며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주며 그것까지 껴안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말합니다.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

그러므로 사랑엔 휴가가 없다고 뒤라스는 자크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는 것처럼,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죠.

우리는 사랑의 종말이 '권태'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뒤라스는 사랑은 권태까지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주위에서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할 때는 흔히 말하는 18번지 충고인 것 같은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이 이야기들은 그럴 수도 있구나 납득하게 합니다. 사랑이 설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 감정을 함께 껴안고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려 줍니다.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에서는 이 밖에도 이민자로 삶을 살아가며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느끼는 큰 감정을 주류 사회에서 우습게 넘겨버리는 일들에 대해 쓴 <마이너 필링스>를 통해서는 지난 20대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설움을 떠올리게 하고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의 감정과 읽는 저의 감정이 함께 폭풍처럼 밀려오며 책의 내용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저자만의 감정이 아닌 읽는 이의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책이 되죠. 이게 바로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최종적인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털털하게 일상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글 속에서 위로를 발견해요.

무심해 보이지만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다정함을 눈치채고, 그런 마음이 담긴 사람의 글을 읽을 때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껴요.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니여도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감정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책을 통해 저자가 느꼈던 그 감정이 독자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책 속에 느껴집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따라 한 챕터만 읽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만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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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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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수.

한 때 그녀는 유능한 상담사였다.

텔레비젼 상담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만큼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그녀와 출연 후 자살한 이후로 그녀의 삶은 곤두박질쳤다.그녀를 향한 악플, 직장에서의 권고사직, 절친했던 친구와의 멀어짐, 남편 태주와의 이별..

그녀는 억울하다. 이렇게 한 순간에 끝내기에는 억울하다. 그녀에겐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던 사연이 있는데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편지를 쓴다.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자신은 방송에서야 알았다고.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하지만 끝내 편지를 끝맺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렇게 억울함과 외로움에 점철된 그녀의 삶에 한 고양이가 보여진다.

 

그 고양이는 동네 길고양이 . 그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하다. 앙상한 체구, 온 몸에 상처가 있어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한 아이가 말을 건다. 초등학교 3학년 세이. 고양이의 이름은 '순무'라고 알려주며 고양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먹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준다. 그 첫 번째 만남 이후 고양이를 통한 만남이 이어진다. 날마다 상처가 더 심해지는 고양이를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에 세이는 기꺼이 힘을 보태기로 한다.

 

소설은 그렇게 임혜수가 세이와 함께 고양이를 구조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서술한다. 고양이 순무를 치료하자는 뜻 하에 임해수는 세이와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순무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순무를 열심히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편지쓰기는 계속된다.

 

상담사라는 직업의 특성만큼 임해수는 말이 많았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치료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초등학생 세이와 고양이 순무는 말하기 보다는 관찰하고 듣기를 요구한다. 분명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세이이지만 함부로 자신을 내보이기를 경계하며 순무 또한 가까워져서 다가가려고 하면 야생성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조언자 또는 구원자 보다는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 주의깊게 보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그들의 삶을 자세하게 들어보고 이해하기를 요구받는다.

 

아니, 그 심정이야 나도 백번 이해는 가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속이야 상하겠지. 그런데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그쪽한테 뭐가 좋겠어요.

 

이 남자는 자신이 뭘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이 하는 말은 뭐가 다르다고 여기는 걸까.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남편 태주는 뭐라도 하라고 독촉하고 친구 수연은 유가족을 만나 사죄하라고 충고하고 그녀를 알아 본 사람들은 그냥 쥐죽은 듯이 있으라는 둥,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둥 온갖 훈수를 둔다. 선의라는 명목 속에 그들은 여러 말을 내뱉고 그녀를 판단한다.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반면 세이와 순무와의 만남은 느리다. 고양이 순무는 덫에 잘 잡히지 않고 세이 또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가 자신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피한다. 그저 그 느림 속에 해수는 그들의 삶을 여전히 관찰하고 들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지루할 수 있는 행위 앞에서 그녀는 바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말의 실체를.

상담자의 사연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여러 조언을 해 주던 상담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알아가고 비로소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게 경청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경청해 준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세이는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준다는 믿음 하에 그녀를 오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임해수도 끝까지 세이의 말을 들어준다. 그렇게 그들의 상담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그들의 비밀 상담이 첫 발을 내딘다.

 

경청 (傾聽) 의 뜻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를 뜻한다.

귀를 기울여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판단이나 편견도 배제한 채 온전히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청은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이 소설도 천천히 임해수가 세이와 고양이 순무를 보고 경청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있다. 경청하는 과정은 상대 뿐만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는 과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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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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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것은 삶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메시지다.

김영민 교수의 신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 질문에 가장 잘 마주하는 때는 언제일까? 아마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불치병을 통보받거나 또는 가까운 지인의 투병이나 부고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일시정지가 된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게 된다.


"이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결국 이 시한부 인생 뿐이라는 것인가?"


이 질문 속에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 없는 질문. 그 침묵 속에는 분노와 허망함이 찾아올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한때 직장 동료였던 지인의 부고를 받았을 때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부고에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며 질문했다. '왜 그렇게 즐기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 사셨어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인간을 허무에 빠뜨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허무의 가장 큰 주범인 죽음, 노화, 치매, 노동 등등..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어떻게 허무를 대해야할 것인가를 말한다. 저자는 독자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결국 삶 자체가 허무한 것임을. 죽음도 피할 수 없고 노년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기보다 허무를 인정하고 허무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부서진 성수대교는 말한다.

삶은 온전하지 않다고,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고,

과거에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버렸다고,

현재는 상처 없이 주어진 말끔한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과거의 잔해라고.

그러나 그 현재에 누군가 살고 있다고,

폐허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폐허를 응시할 수는 있다고,

폐허를 응시했을 때 인간은 관성에서 벗어나 간신히 한 뼘 더 성장할지 모른다고,

성장이란 폐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폐허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날을 되돌아본다. 2022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끝자락을 향해 있는 지금,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초조해하고 누군가는 설레여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목표를 달성하겠노라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자본주의 사회 또한 우리를 채찍질한다. 열심히 일하라고. 뼈를 갈아도 성공할까말까하다고.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목표를 달성 못하면 삶이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일까?

일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 기술이 진보했지만 과연 인간의 노동은 해방되었는가? 죽을 때까지 무거운 돌을 구르는 시시포스의 신화는 현대에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동은 우리를 허무하게만 만드는 존재인 것인가?

이 허무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재즈는 즉흥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예로 든다. 삶의 의미를 목표가 아닌 순간 순간을 연주하는 소울 재즈.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는 소울 재즈처럼 우리 인생에 의도하지 않은 즉흥곡이 흘러나오면 그 즉흥곡에 맞춰 춤을 추라고. 그 순간을 즐기라고 말한다.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의 과정을 돈 벌기 위한 목표 지향적인 관점이 아닌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재디자인해보라고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저서 <마흔에게> 에서 삶은 마라톤이 아닌 춤이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기가 아닌 춤을 추면서 기쁘게 내려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향해 뛰는 선수가 아닌 하는 일상의 순간 순간을 춤을 추며 나아가야 한다고. 이 춤을 추며 나아갈 때 우리는 오늘의 허무를 이겨나갈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죽음은 인간을 가장 큰 허무함에 빠뜨린다. 왜 그럴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 묻는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를 응용한다. 죽음의 사신에게 자신이 따라가기 전 아이들에게 맛있는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신은 이걸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핑계로 생각하지만 정성껏 빵을 만든 후 할머니는 홀가분해하며 사신에게 이제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죽음의 사신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찰다(cialda) 속에 레시피를 숨겨두었으니 이제 비밀은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이제 갈 시간이야."


비록 자신은 가지만 다음 세대에게 달콤함의 레시피를 남길 수 있다는 말. 그건 죽음 이후 몸은 떠나지만 그 이후에도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또 다른 세대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가지만 내 아이들이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의 삶은 다음 세대를 통해 영원할 수 있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저자다운 유머러스함으로 허무함을 대하는 여러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대답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삶이란 허무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무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그러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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