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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1984 - 194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정영수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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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엘

나에겐 적어도 미래는 희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보다는 더 풍요롭고 여유롭고, 더 나은 사회가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가끔 이러한 희망도 요즘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미래가 주는 단어는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1984 >의 오세아니아의 세계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50년 전보다 더 퇴보된 사회다. 기억할 수 있는 과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회, 남아 있는 기억도 날조된 거짓이다.
빅브라더의 철저한 감시 사회에서 진보된 기술은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에서만 발달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p51)

거짓말은 역사가 되기도 진실이 되기도 한다.

<1984>의 오세아니아는 특정한 이념을 둔 세계를 겨냥한다는 편견된 관점이 글을 읽다 보니 윈스턴이 사상 경찰과 핵심 권력자 오버라이언의 시나리오에 맞게 철저히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은 불편한 현실이었다. 현실 사회에서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감시 체계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의 사회에서 윈스터의 반사회 사상은 끊임없이 그가 속한 현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윈스턴은 사상죄에 해당한다. 그것은 범죄이며 죽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미래 혹은 과거를 향해, 사상의 자유가 있고 저마다의 개성이 존중 받으며 홀로 고독하게 살지 않는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며 행해진 것이 사라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글을 썼다.˝ (p47)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빅브라더는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이다. 그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은 광고판이나 포스터 속의 얼굴과 텔레스크린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가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세아니아 사회는 궁극적으로 빅브라더는 전능하고 당은 완벽하다는 신념 위에 서 있다.˝ (p327)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평화부는 전쟁, 진리부는 거짓말을, 애정부는 고문을, 풍요부는 굶주림을 이러한 모순이 가득한 사회인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없다. 그렇다고 올더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처럼 다수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존재하는 당도 아니다. 단지, 권력을 위한 사회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어떠한 것도 날조가 되고 사라지는 무서운 사회인 것이다.
올더스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오 같이 이곳 사회에서는 철저히 개인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모두의 안정을 위햐여 철저히 개인의 자각과 주체성은 배제되어야 했고 절대적인 신분 계급으로 나뉘어져 자신의 위치에 불만 없는 상태였다면, <1984>의 빅브라더의 사회는 철저한 감시 아래 몇몇의 핵심 권력과 하층 계급으로 나뉘어 현재를 위해 과거도 날조하고 특정 권력에 의해 진실화 과정을 거친다. ‘사상범‘ 과거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때처럼 그들의 고문에서 거짓 자백을 받아 내는 것에서 끝났다면, 1984사회는 개인의 존재 자체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권력이 있다. 한 사람의 정신 세계를 오롯이 두지 않는다. 완전히 비우고 그들의 세상, 당의 날조된 세상으로 한 개인의 머리를 장악한다. 결국에는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만들어 버리고 어느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가장 위협적일때 인간은 다른 사람의 괴로움은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윈스턴 또한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버린다. 교묘히 인간 심리를 적용해 한 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과정은 나 자신이 무력해지는 씁쓸함도 느끼게 했다.
<1984>사회의 미래는 만들어지고 특정 권력에 장악된 채 유지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알면 안되는 사회에서 모든 인간 본능적 욕구는 없애야 한다.
한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비우고 그들의 사상을 주입시킨다는 것은 마치 AI로봇의 알고리즘을 다른 것으로 완전 교체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그런식으로 개조를 시킨다는 자체가 끔찍한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이미 한 사람의 인권도 생명도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 이 곳은 단지 필요한 부품을 만들어 내는 공장에 불과하다.
무기력한 한 개인의 주체성과 생각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윈스턴은 항복하고 말았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에서 극적인 결말은 기대할 수 없었다.
씁씁한 결말과 더불어 얼마 전 읽은 <멋진 신셰계>와 오버랩 되면서 참 서글퍼지는 책, 묘하게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 힘빠지는 책이다.

˝과거는 바꿀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거는 절대로 바뀐 적이 없었다.˝ (p436)


˝ 자신의 태도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p438)

그래도 내가 사는 사회에 희망을 기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암울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연대하는 시민이 있고 사랑이 남아 있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당연함이 느껴지는 내가 속한 사회에 다시 감사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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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대부분이다. 그 중 한 사람, 나 또한 마찬가지.
이는 당장 내 눈 앞에 벌어지는 극적인 요소가 적거나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란 것을 확실하게 느낀다.

전세계의 유명 도시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텅 빌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선명하게 보았다. 뛰어난 과학 기술과 그동안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렸던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엎어질 수 있다는 공포도 체험했다.

이 모든 외부적인 요인들이 다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니 그저 불편하다.

세계는 이제 공통의 문제에 함께 고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문제, 기후 위기, 바이러스등 ...

그레타 가족의 일상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에서 잠시 멈추고 경각심이 드는 순간이다.



기후 문제는너무 어렵거나 너무 규모가 커서 해결하기 힘든 게 아니라, 단지 희생을 각오하는 순간 생활이 너무 불편해지기 때문에 힘든것이다. 비를 맞아 텐트는 젖어 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몸을돌돌 말아 침낭 안에 안락하게 누운 채로 따뜻함을 만끽하고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몸을 일으킬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거의 대부분이 계속해서 잠을 청할 것이다.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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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가 불과 4년 전에 유라시아와 동맹을 맺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곧 완전히 지워질 게 뻔한 그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만일 당이 강요하는 거짓말을 사람들이믿는다면 (그리고 모든 기록이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표어였다. 과거는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진실인 것은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영원히 진실이었다. 아주 단순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기억을 눌러 이기는 것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현실 제어‘라고 불렀고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했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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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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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는 과연 존재 하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행복이라는 단어, 막연한 의미 또한 질문을 던진다.
한편의 SF영화를 보듯이 선명한 묘사와 지적 묘사는 책장을 넘길수록 몰입도가 더해졌다. 강렬하게 다가온 과학의 불편함은 책을 덮고도 잠시 멍하니 앉게 만들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는 ‘멋진 신세계‘는 한 마디로 공포다.
모든 것이 안정된 사회, 고통도 없다. 괴로움과 고통은 ‘소마‘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된다. 약물로 자신을 누르면서 환각이 주는 거짓 환상에 빠져 행복이라 느끼는 사회다. 무엇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 자연적 노화도 없다. 매끄러운 젊음을 유지하면서 살다가 그저 죽음을 맞이한다. 지나치게 쉽고 지나치게 편한 유아 상태 삶이 있는 문명 세계인 것이다.

신세계 문명세계에는 뭐든 새로운 것만 원하고 아름다운 것을 이해하고 논하지 않는다.
사회 안정을 위한 주요 수단인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거쳐 대량의 인력을 생산한다.
커다란 공장 속 투명한 병속에서 부화되는 신세계의 문명인들은 헨리 포드가 이룩한 혁명적 성과의 컨베이어 대량화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진다.

‘‘표준형 감마들과 다양성이 없는 델타들과 획일화한 엡실론들에 의해서 해결이 된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일란성 쌍둥이들. 대량 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도 적용된 것이다.‘‘(p36)

‘‘결정된 인력‘‘
문명 세계 사람들은 주어진 숙명적 계급과 직업에서 불만도 없고 심지에 자신의 해야 할 일에 대해 사랑한다. 욕심도 더한 욕망도 사라진 세계 ‘불안 없는 안정한 사회‘는 더할나위 없는 행복한 세계다.
개인은 누군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여기서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자발적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숙명처럼 주어진 사회적 계급이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심도 가져보지 못한다.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은 있을 수 없다.
책 속의 말을 빌리자면 ‘잘 길들인 착한 동물‘인 것이다. 이러한 문명 세계인 신세계는 진정한 ‘자유‘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문학 작품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의 강을 이루는 물방울처럼 하나로 만드소서‘‘
(p138)

아주 커다란 공장을 위한 필요한 부품이 되버린 인간들, 사회라는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 상품이 되버린
문명세계는 아주 절제된 과학기술로 인해 안정화를 이룬다. 가정의 의미가 추악함의 극으로 묘사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지어가 되었다. 최면 학습에 의해 주입된 생각들은 의심없이 진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야만인이 사는 보호구역의 삶과 문명 세계를 사는 문명인의 삶.
전혀 다른 세상과 너무나 다른 삶의 방식에서 서로가 적응한다는 것은 상상불가한 일이다.
거대한 공장을 돌리기 위한 부속품으로 서로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무너지는 일만 없으면 지속적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한,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는 고통 속에서 답을 찾아야 되고 어른이 되어가는 야만인이 사는 보호구역의 사회.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이미 우리가 놓인 현실 속에서 끝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책 속의 신세계가 멋진 신세계는 아니었지만 그 세계를 닮은 세상을 사는 현실에서 마냥 부정만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보호구역의 고통이 즐비한 세상, 그 고통이 도사리는 곳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삶이 개인적 삶에 있어 더 성숙한 삶이 될지라도 지금 누리는 온갖 편의성과 진보된 기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 기술이 자연의 순리에서 역행하는 길을 접어든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제대로 인지하고 각성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각성하고도 실천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나 조차도 부끄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단지, 노력만할뿐이다.

한병철의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현대 사회가
‘‘청결과 위생에 사로잡혀 부정성을 모두 역겨움으로 느끼는 긍정 사회‘‘ 이며
이러한 위생 강제가 다른 영역들까지 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식은 흔히 일정한 저항을 극복해야만 쟁취할 수 있고, 이런점에서 지식에는 부정성 또한 내재한다.‘‘
(아름다움의 구원 중에서,p23)

멋진 신세계의 문명 세계는 모든 부정성을 역겨움으로 여기게 만드는 체면학습으로 안정화를 이룬 사회다. 내재된 모든 부정성을 거부한 사회는 진정한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사회는 살아있을 수 없다. 그저 허상에 불과 할 것이다.

어떤 사회이든 완벽함이란 없다.
책 속 신세계 문명 세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꿈틀거림이 있었다.
알파이지만 신체적 결함으로 의식적으로 더 애썼던 버나드 마르크스는 모두가 안정적이고 행복한 사회에서 쉽게 동화될 수 없었다. 그와는 다르지만 탁월한 능력으로 섞일 수 없던 헬름홀츠, 두 남자의 공통점은 그들이 친구가 되는 계기를 만든다.
그들의 사회에서 외톨이로 혼자일 수밖에 없던 그들은 끊임없이 뭔가에 대해서 갈망하게 된다.
신세계에서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소마가 주는 안정을 이들은 불쾌했다. 소마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주입식 행복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감을 누리고 싶었다.

‘‘내가 내면에 지녔다고 느끼는 어떤 힘, 그런 잠재적인 잉여분의 힘을 스스로 사용하게 된 느낌이에요.‘‘
(p278)

곤경에 처한 현실에서도 그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주체적인 생각과 자유가 가져다준 결과였기 때문이다. 길들여진 생각과 그들이 누린 자유가 진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주체적 삶은 많은 대가를 치뤄서 만들어진 것이고 앞으로 닥칠 그들의 삶에서도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에 있어 그들은 책임질 의무가 있지만 그 선택이 그들에게 행운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뤄야 해, 행복은 대가를 치뤄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p345)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글귀일 것 같다.

결국 책의 마지막은 씁쓸함을 남겼다.
보호구역에서 문명 세계로 온 존,
그의 선택과 결말...

마지막으로 다음엔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도 나름 의미있게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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