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죽는 순간을 상상해보곤 한다. 아마도 암으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병사하거나 혹은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제 노병으로 자연사하는 경우는 축복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병으로 사망하는 것과 사고로 사망하는 것,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쳇말로 소행성이라도 날아와 한순간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부터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고 하는데, 나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훨씬 두렵게 느껴지곤 한다.


표제작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의 윤승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점잖았던 아버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려 정신병원에 묶인채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합법적 안락사를 요청했고, 스쿨버스 전복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자신의 아이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의사 표시가 불가능해진 아버지와 아이의 생사를 결정했다는 자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알츠 하이머를 앓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 ‘치매안락사 보험’에 가입한다. 일단 치매 판정이 내려지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윤승은 산부인과 병원장으로 하루하루 쉴틈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고, 가족을 모두 잃은 후에는 과로와 고독만이 형벌처럼 무겁게 삶을 짓눌렀다. "저는 노인이 되고서야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바보입니다. 그게 보험 덕택인지,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오래오래 살아 이 행복을 누릴 거예요." (p.13)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젊은 시절의 윤승은 노년이 되어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통한 서비스로 매일 건강식과 운동 트레이닝, 각종 모임을 주선받으며 사소한 일상들에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윤승에게는 죽음이 다가온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아무 효력이 없어요. 진짜 할머니의 의지가 아니니까요. 할머니의 경우 증상만으로도 확실한 상태라 아까 받은 뇌 검사는 절차상 필요했을 뿐이에요. 이제 '품위 있는 삶' 특약이 적용됩니다. 치매 안락사 특약이지요. 중증 치매로 넘어가고 인격을 상실하면 시행됩니다." (p.31)


상조회사 광고들은 말한다.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으시죠? 당신의 장례를 책임져 줄 상조 보험에 가입하세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부모들은 이 광고를 보고 보험에 가입한다. 실제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이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원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서약을 미리 준비해놓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어떠한 질병으로 나의 생명력은 끝을 다해가는데 잠시라도 삶을 연장시키기 위한 연명 치료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락사'는 자연스러운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치매나 뇌사 같은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면 누군가 내 생의 마침표를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늙어서 생기는 증상들이 죽어 마땅한 이유가 되는 걸까요? 마지막인지 몰랐던 하준이의 인사가 기억납니다. 할머니, 꼭 끝까지 사셔야 해요. 몸이 아파도, 정신이 아파도 그것도 할머니니까 포기하지 마세요."(p.34)


사람의 생명만큼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 선 내 모습을 떠올리면 윤리적, 종교적, 도덕적 이념보다 이기적인 생각들이 들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알고 그랬겠어. 모르니까 무서웠던 거지. 그 알지도 못하는 것 때문에 도대체 난 인생을 얼마나 허비한 거냐."(p.45)


태어난 나와 죽을 나, 사이에 있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