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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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짱개'라는 말을 대학생 때 처음 들었다. 자장면을 배달시키자고 말할 때 종종 친구들이 '짱개 시키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줄곧 그 말이 불편했다. 이 말이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도 익숙하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싫었다. 티브이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임금 체불, 국제결혼을 빙자한 인신매매, 아이들이 쉽게 내뱉는 다문화 아이들을 향한 차별이 너무도 불편하다.


최정화의 『메모리 익스체인지』에는 주인공 니키는 더이상 살 수 없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다. '화성이 지구인들에게 입국을 허가해준 것은 지구인들만큼 싼 값에 노동을 제공하는 종족이 드물었기 때문(p.9)이다. 화성에 도착한 니키는 화성인에게 주어지는 아이디얼 카드가 없기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들이 화성에 적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인의 아이디얼 카드를 사는 것으로 이는 단순 신분증 거래가 아닌, 화성인과 이주민 간의 기억 자체를 교환하는 ‘메모리 익스체인지'를 뜻한다. 인종 차별을 넘어서 행성 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화성은 지구인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친절은커녕 같은 생명체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옆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것조차 거슬려 했다. 단지 곁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욕설이나 폭행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같은 생명체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p.10)


엄마는 대화 도중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들은 대다수 베트남이나 중국 등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하고, 더 힘든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때론 급여 인상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면, 그들의 요구가 은혜를 모르는 행동처럼 반응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엄마만 그럴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반응할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의 근원이 그들을 '우리와 같은 생명체'로 보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되살려낸 뒤, 수용소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기억 속에서 각기 개인이 다른 것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우리들은 제각기 달리 생겼는데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류였고, 감시와 치료의 대상이었다." (p.70)


이 작품에는 "사람들이 널 어떻게 대하든 간에, 넌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야."는 말이 수차례 등장한다. 그리고 우린 이런 말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귀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말, 하지만 이 말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듯 그 누구도 그렇다는 뜻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국제 결혼한 며느리도, 화성으로 이주한 니키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하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차별에 대한 전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철저히 존중받지 못할 때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준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은 그로인해 느끼는 상대적 권력이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든다고 여기는 탓이 아닐까? 사람을 진짜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삼촌은 '의미'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는 이 세상이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그 의미들을 발견하는 게 자신의 인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미를 찾는 건 삼촌의 삶이고, 내 인생의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인생말이야." (p.33)

 

조금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들로 삶이 채워지면 좋겠다. 우리가 지닌 자유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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