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 그림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이 익숙해진 아베히로시의 책이다.
이 책에 나온 그대로 아베히로시는 25년간 작은 마을의 도서관에서 사육사로 일을 해 왔고, 동물들과 자연을 보며 끊임없이 관찰한 그대로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가. 25년후 동물원 일을 그만두고 그림책 작가로의 삶을 시작했다.

사실 <폭풍우 치는 밤에>는 <가부와 메이 이야기 1>에 해당하는 책이다. 처음 그림책톡 모임에서 그림책을 만났을 때의 첫인상이 워낙 강하게 닿아서, 여전히 시리즈로 다 읽어보고 싶은 책 중 1권이다. 그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아베 히로시가 궁금했었고, 이 책이 조금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고 해야할까.

더군다나, 사육사로 25년을 지냈다니 !!
사실, 어릴 적에 꿈이 수십 번도 더 바뀌었던 나에게 사육사라는 직업도 한 번은 꿈 꾸기도 했었다.
동물의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이 너무 순수하게 느껴졌었고,
그저 말없이 모든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든든한 친구라고 생각했었고.
동물원 이야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사육사들의 모습도 부러움 가득 담긴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용들이 마치 그 때의 나의 기억들을 불러오는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어째서 동물원이 있는걸까.
어째서 동물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생명이란...
죽음이란...

점점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도 전혀 그 답을 알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저 동물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쾌적하고 너무 좋은 시설이 아니었던 탓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오히려 그 '없음'에서 '무한함'을 발견해냈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동물원이 존재하게 하는 이유에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였다. 정말 동물들을 보호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 하기보단, 생명과 죽음에 맞닿아있는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죽음 앞에서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초월함까지. 그들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보여주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림을 그릴 때는 형과 색, 질감 등을 응시한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동물들을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눈으로 그렸다. 그런 식으로 접촉하며 피부로 느꼈던 동물이 내 몸에 익었다. 그리지 않아도 좋았다. 화가가 되려고 했을 무렵에는 한 장이라도 더 많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것이 능숙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육사 시절의 나는 달랐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도 걱정이 없었고, 실제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이상으로 '그리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림에 빠져 지내며, 종이를 자전거에 싫고 다니며 산과, 들, 하늘을 그리던 그의 열정이 사육사 일을 하면서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눈과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 냄새 등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다시 그려내곤 했다.

이제부터 나의 일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육사로서 나는 많은 동물과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깊게 사귀고, 많은 '생명'과 접했다. '동물원이나 동물의 생명'을 응원하는 작품을 창조하자.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자. 어중간한 작품을 만들면, 흔쾌히 일을 그만두게 해 준 동물원 동료들에게 면목이 없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을 위해 동물원 일을 그만두면서도 온전히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우리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졌던 것이겠지.

이 책이 그저 그의 자전적인 소설에 지나지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인상적인 것은 너무 그의 삶을 비관적으로 그리려 애쓰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그래서 더 평범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어릴적부터 생각하던 것도 아니었고.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히 도쿄에 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고, 그저 돈을 벌어야지 생각하며 일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그 역시 사육사 일을 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조금씩 그리면서 예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너무 많이, 당연하게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하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이라. 이 책이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억지로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눈물 짜내게 하려고 극대화 시키지 않았다. 자신도 어찌될지 모르는 그 시절을 그대로 떠올려보고, 그게 그냥 나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우리 어른들도 누구나 그러지 않았나?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그 극복기가 대단할 수록 더 많은 감동을 주고, 더 많이 깨닫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나에겐 이 책이 더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지 못한다해도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 나 역시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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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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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속닥모임에서 그동안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선택된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의 굴레에서 더 이상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게 내 일이 되어버렸고, 읽어보고도 싶었던 책이어서 망설임은 없었다.

책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녹여냈을지 우선 궁금했고.

저자인 은유 작가님은 이미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총 6파트로 나눠지는데
part1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part2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part3 사유 연마하기
part4 추상에서 구체로
part5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part6 부록 - 학인들의 글

개인적으로는 프롤로그 부분부터 나에겐 깊이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겐 수많은 플래그를 붙이게 만든, 글쓰기 입문서로써 멋진 책이었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일선에서 물러서기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는 늘 유예되는 진리다. 이미 경험한 자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는 설명이 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글쓰기는 물러서서 숨 고르기의 쉽고 좋은 방편이다.

쓸모없는 시간이 삶을 쓸모있게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라니.
표현이 어찌나 맘에 들었는지 모른다.
저자가 쓴 프롤로그 부분에서 저자의 나이가 마침 나와 같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동시에 공부를 매일 해 나가는 나의 모습에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달팽이처럼 엄청 느리고 눈에 띄지 않겠지만, 분명 나는 일을 하고 있고, 틈틈히 공부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육아에 갑자기 뛰어들어 나에 대해 쓸모없이 낭비되는 내 삶의 시간들을 지나왔는데. 쓸모없이 여기는 시간들조차 후에 삶을 쓸모있게 만들어주게 될거라니. 그 땐 왜 몰랐을까 싶기도하다. 여튼, 그 시절 생각이 우선 나는걸보니 여전히 지나온 것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이구나.

'어떤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 다음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글을 쓴다는 게 언젠가부터는 아주 막막하게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어려워졌다. 글쓰기 대회를 좋아했고 독후감상문 쓰는 걸 좋아했고 일기 쓰거나 교환노트 쓰는 것도 좋아했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글쓰기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겠지?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 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
나도 그것에 완전히 공감하고 싶어졌다.

문장이 길든 짧든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문장의 호응, 문법적으로써 글쓰기를 설명하는 게 아닌, 삶에서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는 글을 쓰는 게 중요하고 삶과 연결지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냥 단순히 '글을 써야 한다'며 주장하고 반복하지 않아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글쓰기와 내 삶을 연관지어지게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마사 킨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내용을 적어내려가야 할지. 보여져서 좋다고 인정받는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기보단, 내가 나의 진실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싶은지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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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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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읽고 싶던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어요.
그 결과는 대만족! 라틴어 수업이라니. 실제로 서강대에서 강의를 하는 양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에 대한 강의록이라는 느낌도 들었구요.

저는 개인적으로..지식을 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으로써의 생각.
순간을, 지금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에 대한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역사의 언어로만 존재하는 라틴어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언어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문화, 생각들과 철학들이 온전히 담아져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을 말하면서 '역사'의 언어이지만 지금 파생되어온 수많은 언어들로 '현재'를 살며 존재하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단 과거의 언어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단순히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지식, 즉 '어떤 것에 대해 아는 것' 그 자체가 학문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문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은요? 좋은 직장 (과연 좋은 직장이라는 기준은요?)에 가는 것을 목표로?
좋은 직장을 간다는 것은? 잘 벌고 잘 살기 위해서?
그저 알아야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 알고나면 끝인 학문이 되어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해서인지 계속 생각을 거듭하게 되더라구요.
'인생'을 위해서 배울 수는 없을까요? 학교를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여행을 하며 삶을 배우는 것에서 더 큰 뭔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단순히 어학 점수를 높이는 게 아니라 그 언어를 둘러싼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 철학을 배우는게 더 값진 것 아닐까요?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한다.

이미 강을 건너 쓸모없어진 배를 아깝다고 지고 간다면 얼마나 거추장스럽겠습니까? 본래 장점이었던 것도 단점이 되어 짐이 되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려움이 닥치고나서야 한 때의 장점이 거꾸로 저를 옭아매는 단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제의 메라튬(장점)이 오늘의 데펙투스(단점)가 되고, 오늘의 데펙투스가 내일의 메리튬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거죠. 우리는 무엇하나 명확히 답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튬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내 안의 기준, 기준점을 잘 정해야 하는 것이죠.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하는 것. 매번 간과하는 점 아닐까요? 일단, 한 고비를 넘기고나면 한 숨 돌리고 그것에 집중하면서 성찰보다는 살아 내는것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어떤가? 절로 계속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미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없이 대답할 거예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겁니다." 라고요.
-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오복음 6장 34절'

걱정과 불안이 하루 종일 제 기억을 지배하는 날이 있곤해요. 그 때마다 왜 나는 남들처럼 지금은 즐기지 못할까? 내 상황이 왜이럴까? 이런 생각도 들지요. 하지만 이 말이 저에겐 또 다른 바람처럼 다가왔어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내일로 미룬다니.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라는 말을 많이들하죠. 하지만 그 강박관념을 벗어나서, 마음을 새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룬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저는 이 1권의 책에서 내가 살아가는 지금 필요한 지혜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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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글쓰기 - 글쓰기의 시작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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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정신적인 스승이고 멘토이지 않을까요?

한국의 교육자·아동문학가, 우리말 연구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다. 저서 《우리문장 바로쓰기》,《우리글 바로쓰기》는 번역말투, 일본말투를 걸러내고 우리말과 글을 다듬은 명저로 꼽힌다.[네이버 지식백과] 이오덕 [李五德]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에 올라가있는 지식인이시죠. 제가 굳이 과거형을 쓰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선생님의 마음이 깊은 울림으로 와 닿게 되니 과거보단 현재까지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목표가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다 헛된 일이다. 헛도니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것만 못한,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해치는 결과가 된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을 쓸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워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글쓰기는 참으로 귀한 수단이다. 목표는 사람이고,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목숨이고, 그 목숨을 곱게 싱싱하게 피어나게 해 주는 것이지,
굳이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요긴한 삶의 태도는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저 역시 이제 아이들의 독서를 지도하고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마음이 힘들기도 했어요. 전 정말 어떠한 형식 다 떠나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내길 바랬는데 어느새 정해진 내용에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여전히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들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방법이 되길 바래요.

나는 오늘날 학생들이 좀더 그 마음속에 쌓여 있는 온갖 사연들을 시원스레 밖으로 내뿜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아이들이 병드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이른바 불량 청소년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밖으로 표현하는 길을 꽉 막아 놓고 온갖 잡동사니 지식과 어른들 멋대로의 생각을 쑤셔 넣기만 할 때 아이들의 목숨은 시들어버리거나 폭발해 버린다. 이런 사실을 모른다면 교육할 자격이 없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과 아이들의 글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해서 과감하게 비판하고 생각을 펼쳐보이셨죠.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신경쓰고 쉬쉬하는 어른들 아래에서 아이들은 표현할 수 없고 감정이 쌓이고 또 쌓여만 가는 거겠죠. 그게 분출되면 이제서야 그 죄를 찾고, 어른들을 탓하게 되죠. 근본적인 것을 탓하지는 않아요. 그 아이가 쌓이고 쌓일동안 그 곁의 어른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해왔냐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이 책이 비단 교육하는 사람들에게만 읽혀져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도 이 책을 보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저 역시 동시에 아이들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으로써 여러가지 지혜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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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키는 카메라 소설의 첫 만남 3
김중미 지음, 이지희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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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만남 03

꿈을 지키는 카메라  


 



손이 워낙 작은 제 한 손에도 착 감기는 귀여운 책을 만났습니다.

시리즈 이름 그대로, 아이들을 동화에서 벗어나 소설로 가는 첫 길목에서 만나게 되리란 희망으로 엮어졌지요.


사실, 저도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책보다는 일단 내몰린 수학과 영어, 방과후 수업들에 지친 모습을 많이 봐오곤해요.

책을 좋아해도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좋아할 틈도 없다거나. 읽어도 권수에 매달리거나.

우리 성인들도 같은 의미에서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든 경우도 많으니, 이해가 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인데. '마음 마중'이 중요한 것인데 말이죠.


그런 아이들이 동화를 벗어나 소설로 가는 길에서 조금이라도 부담을 적게 느끼게 하려는 창비 출판사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


전, "꿈"이라는 단어에 이끌려서 이 책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꿈이 여러 번 바뀌곤 했는데 말이죠.

외교관, 방송작가, 영화 연출, 번역가, 작가.

아빠가 선생님이어서,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길 권유받았지만 제 자존감이 낮았던지라,

절대 되지 않겠노라 했는데 지금 이렇게 아이들을 독서 지도하게 된 선생님이 되리라고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꿈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지금도 여전히 꿈꾸는 엄마인데

지금 아이들에게 되고 싶은게 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들려올까요?

여러 현실들에 막힌 걸 아이들도 이미 알고 그 현실에 순응할지, 벗어날지의 선택도 본인임을 이미 알테구요.

하지만 여기 아람이를 만나면서 꿈이라는 것이, 막막하지만 어쩌면 어려운 자신의 위치에서 시작된 소소함이.

절실함과 바람으로 바뀌며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지금도 여전히 개발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 곳에 터전을 닦고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갈등이 존재하지요.

저에게 그 모습은, 그냥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안일하고 편협한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요!

그 안에서도 삶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가요? 우울하고, 기운빠지지만 도리어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에 담아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꿈을 꾸게 되는 아람이와 그를 지켜보는 선생님. 선생님의 편지.

아람이와 언니의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와 그걸 모두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시선까지.

아람이의 모습으로 작가는 이야기하죠.

힘보다 희망으로, 평화를 이기자고.

세상의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고.

작은 것에서의 변화가 어쩌면 큰 울림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어요.



언니는 야무지고 똑똑하니까 언니 말대로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언니가 가엾다.

나는 언니의 꿈이 교사일 때가 그립다. 언니랑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친구들 얘기하고,

같이 다리가 길어지는 체조도 하고, 만두를 먹으며 드라마를 보던 그때가 그립다.

74p




백 년 전통의 만둣집을 이어 가자고 약속했던 아버지와 내 꿈도, 유아용품 가게를 하며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겠다던

연서네 꿈도 모두 깨졌다. 그렇다고 모든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장 씨 아저씨는 명성시보다 작은 지방의 도시에다

또 다른 'Jang's 가죽 슈즈'를 낼 거고, 12월에 출소할 아버지는 명성시 변두리에다 우리 만둣집을 다시 낼 거다.

꼭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나도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81p





비록,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들을 담아내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아람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현실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는 장르와 동시에 현실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듯 합니다.


동화에서 벗어나 현실에서의 목소리를 내게 될 아이들을 위해. 마중물 독서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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