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 그림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이 익숙해진 아베히로시의 책이다.
이 책에 나온 그대로 아베히로시는 25년간 작은 마을의 도서관에서 사육사로 일을 해 왔고, 동물들과 자연을 보며 끊임없이 관찰한 그대로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가. 25년후 동물원 일을 그만두고 그림책 작가로의 삶을 시작했다.

사실 <폭풍우 치는 밤에>는 <가부와 메이 이야기 1>에 해당하는 책이다. 처음 그림책톡 모임에서 그림책을 만났을 때의 첫인상이 워낙 강하게 닿아서, 여전히 시리즈로 다 읽어보고 싶은 책 중 1권이다. 그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아베 히로시가 궁금했었고, 이 책이 조금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고 해야할까.

더군다나, 사육사로 25년을 지냈다니 !!
사실, 어릴 적에 꿈이 수십 번도 더 바뀌었던 나에게 사육사라는 직업도 한 번은 꿈 꾸기도 했었다.
동물의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이 너무 순수하게 느껴졌었고,
그저 말없이 모든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든든한 친구라고 생각했었고.
동물원 이야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사육사들의 모습도 부러움 가득 담긴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용들이 마치 그 때의 나의 기억들을 불러오는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어째서 동물원이 있는걸까.
어째서 동물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생명이란...
죽음이란...

점점 근원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도 전혀 그 답을 알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저 동물들의 생활을 관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쾌적하고 너무 좋은 시설이 아니었던 탓에,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오히려 그 '없음'에서 '무한함'을 발견해냈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동물원이 존재하게 하는 이유에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였다. 정말 동물들을 보호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 하기보단, 생명과 죽음에 맞닿아있는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죽음 앞에서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초월함까지. 그들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보여주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림을 그릴 때는 형과 색, 질감 등을 응시한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동물들을 여러 각도로 관찰하고 눈으로 그렸다. 그런 식으로 접촉하며 피부로 느꼈던 동물이 내 몸에 익었다. 그리지 않아도 좋았다. 화가가 되려고 했을 무렵에는 한 장이라도 더 많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것이 능숙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육사 시절의 나는 달랐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도 걱정이 없었고, 실제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이상으로 '그리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림에 빠져 지내며, 종이를 자전거에 싫고 다니며 산과, 들, 하늘을 그리던 그의 열정이 사육사 일을 하면서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눈과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 냄새 등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다시 그려내곤 했다.

이제부터 나의 일은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육사로서 나는 많은 동물과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깊게 사귀고, 많은 '생명'과 접했다. '동물원이나 동물의 생명'을 응원하는 작품을 창조하자.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자. 어중간한 작품을 만들면, 흔쾌히 일을 그만두게 해 준 동물원 동료들에게 면목이 없게 된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일을 위해 동물원 일을 그만두면서도 온전히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우리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졌던 것이겠지.

이 책이 그저 그의 자전적인 소설에 지나지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인상적인 것은 너무 그의 삶을 비관적으로 그리려 애쓰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그래서 더 평범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어릴적부터 생각하던 것도 아니었고.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막연히 도쿄에 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고, 그저 돈을 벌어야지 생각하며 일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그 역시 사육사 일을 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조금씩 그리면서 예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너무 많이, 당연하게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하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이라. 이 책이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억지로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눈물 짜내게 하려고 극대화 시키지 않았다. 자신도 어찌될지 모르는 그 시절을 그대로 떠올려보고, 그게 그냥 나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우리 어른들도 누구나 그러지 않았나?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그 극복기가 대단할 수록 더 많은 감동을 주고, 더 많이 깨닫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나에겐 이 책이 더 아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답을 찾지 못한다해도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 나 역시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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