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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 - 거대 플랫폼은 어떻게 국가를 넘어섰는가
라나 포루하 지음, 김현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평점 :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빅테크, 즉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구글에 대한 비판적 논의이기 때문이다. 네 기업은 미국 주식 시장 전체 지수를 끌어올릴 정도로 막강하고 거대하다. 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주가 전망 또한 밝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책의 서두 '저자의 말'의 부제는 '스스로 악마가 된 빅테크 독점가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부편집장인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더라도 부제는 꽤 자극적이다. 물론 이를 번역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뉘앙스 차이로 이해할 수도 있다. 책의 제목 "돈 비 이블Don't be evil"은 '사악해지지 마라'로 번역되었다. 해당 문구가 구글 임직원들의 첫 행동 강령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의 부제는 이의 대구로 스스로 사악해진 빅테크 독점가들이라는, '자신의 행동 강령을 스스로 어긴' 빅테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책의 내용은 빅테크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빅테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책 요약 : 빅테크의 문제점 세 가지
1. 독점
미국 기업 약 10%에 불과한 기업들이 재계 자산의 약 80%를 소유한다.
지구 전체 검색의 90%가 단 하나의 검색 엔진, 구글에서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30세 이하 성인 중 95%는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전세계 신규 광고 지출의 약 90%가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들어가며, 전 세계의 휴대전화 중 1%를 제외한 나머지 휴대전화는 모두 구글과 애플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의 전자상거래 매출 절반은 아마존 몫이다.
2. 인간 존중 의식이 없는 알고리즘
1)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자사 컨텐츠를 소비하도록 외부 자극과 인간 행동의 인과관계를 연구하여, 아이들, 취약계층과 같은 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대상을 더 공략하는 약탈적인 알고리즘의 횡행.
2) 급격한 일자리 감소.
3) 맞춤형 타깃팅 광고를 위한 개인 정보의 무자비한 수집과 활용 → 감시 자본주의의 출현.
3. 재계의 정치 장악
지난 미국 대선 때 러시아의 비밀 세력들이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플랫폼들을 이용해 도널드 J. 트럼프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은 이제 우리도 아는 사실이다. (14p)
2018년 봄,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선거 조작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미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했다. 당시 AP기자가 촬영한 저커버그의 메모지에는 "페이스북의 독점력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페이스북이 무너지면 중국 기술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미국이 불리해질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39p)
구글의 토론토 스마트시티 계획. 해안가 하이테크 구역에는 소음과 오염을 감지하기 위한 센서가 설치되고, 로봇이 지하 통로를 따라 우편물을 배달하게 될 것. 사실상 스마트시티로 이어지는 자체 도시 교통망 건설을 구글이 계획했다. 캐나다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폭로에 따르면 이러한 대가로 구글은 토론토 시 정부 금고로 들어가는 재산세와 땅값 인상분, 개발비용 등을 일정 부분 나눠 갖는 조건을 달았다. (356-357, 재구성)
구글은 2019년에 쿠바의 인터넷 접속 환경 개선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구글의 계획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약속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쿠바는 베네수엘라에 첩보를 제공하는 나라다. 구글이 어떻게 쿠바의 인터넷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들게 됐을까? 에릭 슈밋과 구글의 세 경영자가 2014년에 쿠바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당시 쿠바에 대한 금수 조치가 한창이었음에도 구글이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구글 경영진은 쿠바를 방문할 수 있었다. 구글의 쿠바 방문 6개월 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정책을 수정했다. (335p)
2014년 트위터는 자사 플랫폼을 이용해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136쪽짜리 안내서를 내놨다. (338p)
생각 정리 : 빅테크의 가장 큰 문제 네 가지
상기 내용을 토대로 빅테크의 가장 큰 문제를 아래의 네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1. 어떤 기업이나 개인에게 자사 네트워크의 활동을 허락할 것인가 허락하지 않을 것인가에 관한 빅테크의 권한은 디지털 시대에서 경제적 생존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권을 모두 박탈할 수도 있는 막대한 권한이다. 그리고 이 권한의 작동 방식은 영업비밀이라는 베일에 쌓여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아마존의 입점 제한, 유튜브의 노란 딱지, 계정 삭제 등)
2. 아동 학대, 음란물, 인종차별, 살인, 범죄 등과 같은 유해한 컨텐츠가 업로드되고 전파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할 의무를 가져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빅테크는 검열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된다.
3. 미국 기업의 약 10%에 불과한 기업들이 재계 자산의 약 80%를 소유하듯, 빅테크는 자본의 소수 집중화를 더욱 가속시켜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한다. (일론 머스크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2위의 부호가 되었다. 세계 1위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다. 점점 더 많은 부가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인데, 빅테크는 이 속도를 가파르게 가속시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지속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4. 국가 간 경쟁은 과거의 무력 전쟁에서 현재는 경제 전쟁(화폐, 무역, 기술)으로 그 양상이 달라졌지만, AI의 발달로 인해 기술력이 곧 군사력을 의미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의 발달은 우수한 알고리즘과 방대한 데이터, 이 두 가지 요소가 핵심인데 이중 방대한 데이터는 미국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보다 중국과 같은 중앙통제국가가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AI 경쟁력의 핵심은 알고리즘의 우수성보다는 데이터의 방대함에 달려 있다. 이는 보다 경쟁력 있는 국가 모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기술 산업이 세계를 향해 던지고 있다는 뜻이다.
빅테크의 리더십에 대한 질문
현 상황과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 빅테크는 단지 뛰어난 기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 방식(교육 활동, 소통 활동, 경제 활동)을 설계하고, 국가 간 경쟁(전쟁까지도)의 척도가 되며, 인류의 현 정치·경제 시스템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둘다에 대해 강력한 질문을 던지는 질문자임과 동시에, 더 나은 대답을 제시해야 하는(왜냐하면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빅테크이고,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법, 정치, 경제 등)에서는 미래 경쟁력 있는 대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과 산업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어 짧은 시간에 급속히 성장해 온 지금의 빅테크 경영진들은 경영자가 아닌 사회 리더로서의 역량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세 가지다. 하나는 일반 시민의 뜻이 모이고 이를 정치가 반영하여 거대한 빅테크를 유의미하게 쪼개어 영향력을 낮추거나(페이스북에 대한 미 정부의 반독점 소송이 진행 중이다), 현 빅테크의 경영진들에게 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재교육하거나, 사회 리더로서의 자각이 있는 젊은 기술인들이 새로운 빅테크 스타로 떠오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빅테크는 티핑 포인트에 다다랐는가?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의 활성화를 통해서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방대한 지식의 세계'가 어마어마하게 접근하기 쉬운 손 안의 세상이 되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 수 년째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빅테크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개인에게 '정보 접근과 네트워크의 자유'를 제공하고자 했던 빅테크가 이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자유롭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읽고서 한번쯤 나의 호의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빅테크가 티핑 포인트에 다다라서 더는 개인의 자유를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8년 페이스북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에 사용자의 비공개 대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39p)
빅테크는 그저 한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빅테크는 모든 것을 위한 플랫폼, 즉 인생의 운영체제가 되고 싶어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인 기업은 아마존일 듯하다. (54p)
서구 방식의 개인적 자유를 전혀 전제하지 않는 시스템 내에서 성인이 된 중국인들은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다양한 편의를 얻기 위해 기꺼이 개인의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은 건강 상태 추적 관찰을 위해 체내에 삽입하는 의료용 센서와 시민들이 거의 모든 활동을 할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방식의 사회 신용 시스템에 동의할 것이다. 마치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시스템이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빅데이터 사회 신용 시스템 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쉽게 돈을 빌리고 집을 구할 수 있다.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차별을 받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된다. (376p)
(Louise Lucas and Emily Feng, "Inside China's Surveillance State", Financial Times, July 20, 2018.
빅테크가 티핑 포인트에 다다랐는지 판단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효과적이다.
"이윤을 얻기 위해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기보다 소비자 행동을 유도(조종)하는 게 더 유리하다면, 과연 빅테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언급에 동의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빅테크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 중 가장 단순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69p)
기술 발달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수많은 개별 국가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기술 산업 주위에 경계선을 그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 빅테크와 관련해 걱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살펴보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23p)
투자자가 부딪치는 역할 갈등
주식 투자자는 독점 기업을 선호한다. 강력한 이윤 창출 능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할 때 안전하게 많은 투자 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주식 투자자는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을 선호한다. 전세계적으로 그린 뉴딜 산업이 주식 시장에서 뜨거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한 산업에서 강력한 독점과 강력한 새로운 흐름이 동시에 발생하고, 이를 단 몇 개의 기업이 과점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한 산업이 다른 산업들을 무제한 삼켜 간다면.
개인 투자자가 어떤 예측을 하든지 아마도 우리는 현실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결과가 단지 투자자의 투자 수익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 어쩌면 인류 전체에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우리가 주식 투자자로서만이 아니라 다른 정체성, 이를테면 '부모', '민주사회 시민', '근로자', '건전한 경제인'으로서도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는 거대 담론이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는 피부에 직접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는 낙수효과를 거치지 않고 빅테크가 일으키는 세계의 중요한 변화를 개개인에게 직접 유통한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사건 전개다.
다른 한편, 새해의 화두로 '리더십'을 꼽고 있는 나는, 개인이 자신의 여러 정체성을 통합해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조언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책이 빅테크에게 걸맞는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물음과 동시에 독자에게도 자신의 여러 정체성을 리더로서 어떻게 통합하여 이 질문에 대답할지 묻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에 쥔 작은 핸드폰을 통해 각 개인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거대한 담론에 당사자로 참여한다. 독자로서, 그리고 투자자이자 부모로서 나는 역할 갈등을 느끼며 이 담론에 참여한다. 책의 미덕은 바로 이 역할 갈등에 있다. 가장 손쉬운 대답은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다른 정체성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에는 리더의 역할이 없다. 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리더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 어린 자녀의 리더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