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법에 관한 책 5권
책을 읽는다는 건 뭘까?
작년에 갑자기 독서가의 길로 들어서서 이 책 저 책을 두서없이 읽기를 반 년,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책은 어떻게 읽는 게 좋은 거지?
말하자면 당구에 재미를 붙여서 막 치다보니까 80 다마가 되었는데,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든 거다. 근데 큐걸이를 어떻게 잡아야 좋은 거지? '공을 큐로 잘 친다'는 건 뭐지?
그리하여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기 시작했다. 책 쇼핑은 언제나 즐거운 일. 게다가 이번 쇼핑의 명분은 꽤 훌륭했기 때문에 아내의 타박도 없을 것이었다. 어떤 책이 좋을까. 독수리의 눈으로 탐색하다가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1. 기적의 독서법 - 니시오카 잇세이
2.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 - 장경철
3. 공부머리 독서법 - 최승필
4. 책 읽는 뇌 - 메리언 울프
5. 독서의 기술 - 모티머 J. 애들러외
오늘 쓰는 글은 위 다섯 권의 책 중 2번,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의 서평이다.
책의 구성 : 답답한 전반부를 뛰어넘는 훌륭한 후반부
책의 전반부를 읽을 때는 조금 답답했다. 후반부를 읽을 때는 같은 책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빨려 들어갔다. 책은 총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의 제목을 보면 나의 심정이 이해될 것이다.
Chapter 1 왜 공부해야 하는가
Chapter 2 어떤 대상을 찾아서 공부할까
Chapter 3 어떻게 책을 읽을까
Chapter 4 공부한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까
아래에서는 각 챕터를 간략히 설명한 다음 책을 읽으며 특히 좋았던 부분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싶다.
1. Chapter 1 왜 공부해야 하는가
이 챕터를 읽을 때는 반감이 많이 들었다. 일단 '왜 공부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제목부터 말이다. 첫 번째 이유로 인간의 '세계개방성'을 설명하는데, 인간이 세계개방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좋은데, 왜 인간'만'이 세계개방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지(제인 구달이 침팬지에게도 간단한 수화를 가르쳤는데 말이다), 그리고 '세계개방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러므로 그것을 반드시 개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말이다.
보통 이런 형태의 주장은, '인간에게만 신이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신학자들이 많이 하는 주장이다. 아마 신의 선물을 경건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잘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는 생각일 것이다. 좋은 행동을 의무감보다는 의욕으로 해내고 싶은 나는 이런 내용을 책에서 읽을 때면 조금 기운이 빠진다. 그래서 52 번째 페이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을 좀 했다.
예전에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어려움에 대해서 대답해줄 능력이 없었기에 저는 답장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메일의 끝에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한마디만 해달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말에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제가 쓴 답장이 있습니다. (52p)
(...) 한 가지 더 도움 말씀을 드린다면,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바라보지 말고 때로는 게임처럼 생각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영위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주 관계와 사업에서 실점을 하게 됩니다. 그때 실점을 없애려고 너무 과도한 집착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실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점을 혹 지울 수 있다면 그것은 지우개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득점으로 지워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 아픈 이유는 실점이 있기보다는 그것을 상쇄하고 압도할 만한 득점의 계기가 모자람이 아닌가 합니다.
득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열어달라고 간구하는 것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능력은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점을 안고도 계속 게임에 참여하는 능력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믿음을 갖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고의 자신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54-55p)
저자인 장경철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조직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2년생, 올해 나이 쉰아홉이다.
이런 이력의 저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게임'이란 단어를 쓴 것을 보고 일단 책을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2. Chapter 2 어떤 대상을 찾아서 공부할까
우리가 공부해야 할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자료는 문자화된 자료, 다시 말해 글로 표현된 정보나 자료이고, 두 번째 자료는 문자화되기 이전의 일상적인 자료들입니다. (61-62p)
다시 좌절감을 느꼈다. 아니 교수님, 유튜브는 안 보시나요? 영화는? 드라마는? 음악은? 아까 말씀하신 게임은?
아마도 저자에게 공부할 의미가 있는 텍스트란 '성경'으로 대표되는 책과 신이 주신 삶(일상), 이 둘이고 나머지는 하위 카테고리인가보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일인데 좌절하다니, 독자로서의 내 수양이 부족하다. 자, 이 챕터에서 특별히 좋았던 건 아래의 내용이다.
우리가 공부를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보통 공부의 대상이 되거나 공부의 결과물이 되는 것으로 정보, 지식, 지혜를 언급합니다. (87p)
정보는 습득한다. 얻는다.
지식은 쌓는다. 연마한다.
지혜는 깨달음
정보와 지식이 인풋이라면, 지혜는 '발휘한다'는 동사와 연계되는 아웃풋으로 볼 수 있다. 인풋이 내적으로 충분히 쌓여서 발효되면, 지혜라는 아웃풋이 된다. 좀더 풀어 보자면 이렇다. 인풋은 나에게만 소용이 있다. 반면 아웃풋은 나와 내가 만나는 외부에 모두 소용이 있다. 즉, 정보가 많은 자, 지식이 많은 자보다 지혜로운 자가 타인에게 더 이롭다. 그러므로 나의 현명함 추구는 '너'에게도 가치가 있다. 옳커니.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의 계보를 잇고 싶은데 이런 찰떡같은 명분을 만나다니, 즐거웠다.
3. Chapter 3 어떻게 책을 읽을까
저자는 다섯 가지 포인트를 꼽는다.
첫째, 금방 까먹을 것은 읽지도 마라.
둘째, 메모하고 노트를 만들어라.
셋째, 반복하고 활용하라.
넷째, 중요 단어를 정복하라.
다섯째, 쟁점과 대안을 찾아라.
제목만 읽어서는 그 내용의 훌륭함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챕터의 모든 내용이 좋았는데, 특히 '쟁점과 대안을 찾아라'가 백미였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 고전 읽기의 의미에서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고전 읽기가 왜 좋은지 이보다 체감되는 설명은 들은 적 없기 때문이다.
유학 중에 숙제에 관해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조언이 있습니다. 교수님은 숙제를 보고 "책 내용만 요약하지 말고 책을 비판한 여러분들의 독창적인 의견을 써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저희들에게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내용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날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상심했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어떻게 책을 비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나보고 책에 대해 비판하라고 하실까? 다 옳은 이야기니까 책에 쓰인 거 아닌가? 책 내용을 비판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뒤늦게 알게 된 점은 옳은 내용이라고 비판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관점은 언제나 유한합니다. 따라서 어느 지점에서부터 논점을 전개해야 하며, 그 논점은 다른 논점에서 볼 때는 언제나 비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19-120p)
쟁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독서를 하게 될 때, 우리는 비판적 독서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확장하는 책 읽기의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121p)
'고전(古典)'은 시간의 검증을 통과한 책으로서 중요한 쟁점에 대해 핵심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책을 뜻합니다. (...)
고전 읽기는 왜 중요할까요? (...)
첫째,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시대의 유행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둘째, (...) 다른 대안들을 검토하는 가운데 더 자유롭고 풍성한 시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
셋째, (...)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으며, 더 멀리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돈'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하는 지배적 가치가 된 현 시대에서, 우리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과연 현 시대의 관점이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시대의 유행에 함몰되지 않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다. 돈 버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행복을 희생하면서 계속 돈 버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돈 버는 일을 조금 희생해서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인간의 본질은 돈 버는 일인가 행복인가. 돈 버는 일이 현 시대에서 '인간의 사회화'의 의미를 갖는다면, 인간은 '사회화'를 추구하는 존재인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사회화 없이 행복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심리적 구조라면, 행복이 없는 사회화는 인간에게 어떤 심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등등.
문장을 적고 보니 전공병이 또 도졌다(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내가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아내는 말한다. "또 그런다 또"
'나의 기쁨은 나에게 무엇이며 또 나의 기쁨은 아내에게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대사를 속으로 읊으며 장난치는 게 나는 정말 즐겁다. 전공병은 맞지만, 그렇지만 이 병은 내가 사랑하는 병인 거다.
4. Chapter 4 공부한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까
제가 '학습'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학위 과정에 있을 때 공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세미나를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세미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언어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외국어로 공부하고 발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더 근원적인 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면서 평소 궁금한 내용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책 읽는 속도가 더딥니다. 책을 읽은 후에도 쉽게 잊게 됩니다.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글을 쓰려고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저는 식사를 하면서 틈틈이 질문했고,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깨달은 내용을 노트에 적어두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시도해봄으로써 저는 제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질문도 구체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내가 한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독서를 하기 이전에 한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세미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이전에 남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 결여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발표를 잘하기 전에 말하는 방법이 서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여러 번 시도해도 진전이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146-147p)
'축적하라'는 것은 모아두라는 것입니다. 돈을 대하듯이 지식을 대하면 누구나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163p)
에버노트에 가장 많은 분량을 요약한 챕터다. 좋은 내용이 무척 많았다. 그중 두 가지만 위에 적었다. 나머지는 이 책을 직접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서평 마무리
이 책은 다꿈스쿨의 유대열 대표가 추천사를 적었다. 유대열 대표는 '청울림'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유명한 투자자로 지금은 다꿈스쿨에서 성인들의 동기 부여에 힘쓰고 있다. 그는 예전에 보도 섀퍼의 '돈'을 특별히 추천하는 책으로 꼽은 적 있는데, '돈'에 관한 책 중에서 그보다 더 훌륭한 책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꿈스쿨' 자기경영 강좌에서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해 수강생들이 반드시 읽게끔 추천하고 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독서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유대열 대표가 쓴 추천사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를 믿을 만한 추천인으로 기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