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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혼외정사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사회학과 교수 이혜정. 그리고 그녀의 논문을 돕기 위해 들어 온 심리학과 학생 이우상. 결혼은 했지만 별거 상태인 혜정은 나이와 신분(교수/학생)의 차이를 의식하면서도 조금씩 우상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우상을 만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2. 감상평 。。。。。。。            

 

     이 어설픈 영화는 뭘까. 사물의 비밀이라는 적당한 제목을 붙여서 복사기와 디카의 눈으로 사건을 비춰보겠다는 의도는 곧 복사기와 디카가 있는 곳에서만 사건을 진행시키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실제적인 문제에 부닥치면서 간간히 극의 맥을 끊는 내레이션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여기에 극의 전체 구조와는 거의 동떨어진, 그저 알몸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뜬금없는 정사신과, 멜로도 아니고 불륜의 최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 어설픈 장르 설정 등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냥 수많은 졸작 중에 하나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인데(이런 걸 집중력 있다고 해야 하는지 그냥 단순하다고 봐야하는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아라 라는 굉장히 나이브한 세계관에 대한 변호이다. 최소한 이런 도전적인 제안을 하려면 영상 안에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극 내부에서라도 공감이 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 따위는 하나 쯤 제시해 주어야 할 텐데 그 또한 없으니 참 영화 보기 힘들다.

 

 

 

     이것저것 적당히 구색은 맞춰놓은 듯하나, 작품성이란 건 여배우 옷 좀 벗겨 놓고 감정놀음 좀 한다고 해서 생기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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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4-2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인가부터 작품성이 유명 여배우가 옷을 벗고 열연을 펼쳤다는 말을 의미하기 시작했네요. 도무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노란가방 2012-04-20 12:53   좋아요 0 | URL
그냥 돈때문이겠죠. 저예산으로 볼거리 만들어서 적당히 벌겠다는 의지의 표현.. 근데 돈이나 벌릴까 모르겠어요;;
 

 

사람은 어떨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까.

절망이든 슬픔이든, 채무든 식구의 불행이든 실연이든 뭐든

자살할 가치가 있는 조건이 갖춰졌을 때일까.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컵 속에 있는 물은 반드시 가득 차야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 있을 때도 컵이 기울어지면 쏟아져 버린다.

 

누구의 컵도, 결코 텅 비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컵은 흔들리고 있다.

틀림없이, 누구나 저마다의 진폭으로.

 

내 컵은 지금 어느 정도 각도로 기울어 있을까?

 

- 시게마츠 기요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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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유능한 펀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 하지만 그녀는 단지 직장에서 일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기도 했기 때문. 정신없이 진행되어 가는 일상들을 그저 따라가는 것만 해도 어떻게 저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녀. 하지만 새로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점점 바빠지는 아내와 엄마는 늘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으로만 보이게 되고..

 

 

 

2. 감상평 。。。。。。。                    

 

     소위 워킹맘이라고 불리는 기혼직장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직장과 가정 양편을 챙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라마로 잘 보여준다. 익숙한 얼굴의 배우인 사라 제시카 파커가 주연을 맡아서 일단 관심이 갔고, 우리의 일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묘사에 어느 정도 공감도 갔다. 다만 역시 영화는 영화인지 가사업무와 직장업무 양쪽의 상황은 영화적 이미지에 맞게 손질이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저글링 하듯 양편의 요구에 겨우겨우 부응해 나가려고 애쓰는 주인공의 이미지만 보일 뿐 좀 더 리얼한, 그래서 종종 사람을 궁지로까지 몰고 가기도 하는 그런 종류의 위기들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두 가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건 개인적으로 나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사회적 성취이라는 가치가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작용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정의 완성이라는 가치가 더 크게 와 닿을 수도 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그저 저글링 하듯 당면한 문제들을 다시 위로 던지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케이트는 다행히 둘 모두에 성공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그녀와의 정서적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남편은 이미 지속적인 소외감을 느끼고 있기에 앞으로도 문제가 재발될 소지는 다분하다. 또, 회사로서도 필요할 때 가족을 이유로 번번이 빠져나가는 그녀를 언제까지 너그럽게 봐줄 지도 모르고.

 

  문제의 해결을 - 여성이 더 많이 사회적 진출을 할 수 있도록 - 국가가 육아와 교육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대 스파르타와 같은 강력한 국가주의적 사회를 구성하자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성장이란 단지 기능적인 차원에서의 향상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니까. (물론 보육과 교육에 들어가는 지나친 비용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행해져야겠지만.)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사고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개인의 성장에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 곧 국가가 한 개인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조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 사회주의적 발상도 역시 매력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가사분담 같은 주제는 문제의 본질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사실 이 부분은 가정과 국가의 기능과 구조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 즉 일종의 세계관적 질문에 대한 답이 선행되어야 풀릴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이 사회적 성취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성공과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로 여겨지는 사고 안에서는 딱 두 가지 결론 밖에 없을 것 같다. 모두 애 낳기를 포기하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직장전선에 뛰어들어 40년 후 인류가 동시에 멸망하던가, 아니면 일부의 지속적인 희생과 좌절감 위에 이 불안한 구조를 계속 진행하든지.

 

     결국 인간의 성장(이건 단지 유아와 아동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은 먼저 성장한 누군가가 진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나는 소위 ‘가사노동’과 육아 같은 일들을 일종의 전문적인 일로 평가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언제부터 그랬는지, 왜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지에 관한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한 두 마디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쯤에서 줄이자.)

 

 

     제법 길게 떠들어 댔지만, 영화 자체에서 이런 고민들을 찾아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일종의 응원이나 격려 같기도 하고, 또는 그렇게 이룬 성공에 대한 과시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의 시선은 가볍고 명랑한 영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기에, 괜한 위기를 조작해내거나 하는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딱 그런 마음으로 보면 될 영화다. 그런 밝은, 그리고 바른 시선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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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토론에서 성경적인 관점을 개진할 때,

우리는 공익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성경의 계시가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다고 해서,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모든 주장을

끌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 찰스 콜슨,『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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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 개정판
제임스 사이어 / IVP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역사 이래로 존재해왔던 세계관을 주요한 차이점에 따라 구분하고 각각의 내용과 한계 등을 정리하는 책이다. 저자는 유신론, 이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 (무신론적/유신론적) 실존주의, 범신론, 뉴에이지 등을 주요한 세계관들로 꼽고 있다. 각각 세계관을 차례로 검토한 후 저자는 어떠한 세계관을 선택해야 하는지 관해 몇 가지 조건들을 제시한다.

 

 

2. 감상평 。。。。。。。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읽었던 책인 ‘지성의 제자도’의 저자 제임스 사이어의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지 한참이 되어서야 이렇게 기본적인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니 좀 머쓱하다. 세계관과 여러 세계관들에 대한 이해는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에 아주 새로웠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각각의 세계관들 사이에 늘어져 있는 논리적 연속성을 고리로 설명을 해 놓으니 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 또 이렇게 가능한 주요 세계관들을 정리해 놓은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확대 개정판에는 포스트모더니즘 항목이 추가되고 책 전체의 몇 가지 강조점에 변화를 두었다고 하니 찾아 읽어봐야겠다.

 

 

     저자 자신은 이 책이 철학이나 신학 서적과는 다른, 일종의 선(先)이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그래도 책 전체는 상당히 철학적이기도, 신학적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철학에 관한 교양 수준의 이해라도 있어야 쉽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서양의 주류 세계관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책의 초중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동양의 범신론적 세계관과 이에 대한 어설픈 모방인 뉴에이지를 다룬 두 개의 장은 난해하다. 일단 다루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일관된 논리구조를 따라 정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 자신이 서양인인 때문에 동양적 사상에 관해 학문적으로 접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뉴에이지의 경우에는 워낙에 체계가 없는 일련의 무리들인 탓이 컸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교재로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같이 공부를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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