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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갖는 것을 꼭 사치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왠지 특별하게 누린다는 뉘앙스를 풍겨 오해를 사지만,

취향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다.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고급 취향만이 취향은 아닌 것이다.


- 이재영, 『박물관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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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가 읽어주는 성경 - C.S. 루이스의 원작 소설에 숨겨진 성경 이야기
크리스틴 디치필드 지음, 김의경 옮김 / 크림슨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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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니아 연대기”는 다양한 해석을 하는 맛이 있는 책이다. 어떤 독자는 판타지 문학의 한 종류로 즐길 수도 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기독교 교훈에 집중해서 읽어나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작품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너무 교훈에 집중하는 건 문학을 문학으로 읽는 방법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작품에서 성경과의 연관성을 외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루이스 자신이 이 책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쓰지 않았다고 말하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 신앙이 묻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고. 사실 “사자와 마녀와 옷장” 같은 책 속에 등장하는 아슬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긴 한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 나니아 연대기 해설서들에도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이 책이 갖는 기독교적 함의에 대해 반드시 언급하는 편이다. 크림슨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출판사에서 나온(놀랍게도 이미 이 출판사에서 나온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또 다른 해설서가 내 책장에 한 권 있었다!) 이 책도 이런 부분에 집중한다. 아니, 그 중에서도 성경과의 연계에 집중한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나니아 연대기 7권의 책들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주요 사건들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인용해 덧붙이는 식이다. 책 제목처럼 나니아 연대기와 성경 읽기를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은 형식이다. 무슨 심오한 해석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또 직관적으로 딱 의도한 내용만을 정확하게 담아냈다.



애초에 책의 방향성이 명확하기에, 이 책의 쓰임 역시 분명할 것 같다. 나나이 연대기의 각 장면을 성경과 연결시켜주기 위해서 이 책을 사용할 필요까지는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문학은 문학으로 읽는 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 작품을 가지고 설교를 하려고 한다면? 또, 문학을 읽은 후 해석의 차원은 언제나 넓게 열려 있으니까, 그 한 쪽에 분명 자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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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처럼 우리 인간도,

짝짓기 시즌에 젊은 새들이 잔뜩 깃털을 뽐내고 다니는 건 매우 자연스럽지요.

그러나 현시대는 모든 새들을 가능한 한 빨리 그 시기로 몰아넣고,

가능한 한 오래 머물게 만들려 해서 문제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시기도, 가장 행복한 시기도,

가장 순수한 시기도 아닌데

어리석고 가련하게도 어떻게든 연장해 보려다가

다른 시기가 지닌 참된 가치들을 그만 다 놓치고 마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상업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가장 구매 저항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바로 깃털을 뽐내는 시기거든요.


- C. S. 루이스, 『루이스가 메리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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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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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노르웨이의 한 작은 어촌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그림 솜씨를 인정받아 후원자의 도움으로 독일의 예술학교로 유학을 온 젊은이다. 전도유망해 보였던 그는, 역시 뛰어난 화가이자 선생이었던 한스 구데에게 그림을 평가받아야 하는 날 아침부터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혹시나 선생이 자신더러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점점 커져서 결국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여기에 그가 하숙을 하고 있던 집주인의 딸 헬레네와의 관계 때문에(라스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헬레네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결국 하숙집에서 내쫓기게 되기까지. 이 모든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그의 정신을 압박해왔고, 깊은 우울감으로 시작된 환청과 환시, 그리고 망상이 더해지면서 라스의 정신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라스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등장한다. 조금 나아졌는가 싶었지만,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정신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병원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의 계획이 어찌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뭔가 이야기가 쭉쭉 진행되는가 싶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거의 300페이지에 달하는 부분이 앞에서 말한 이틀 간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 두 이야기는 오직 라스의 머릿속 생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활자는 그의 생각이 남긴 발자국인 셈.


그런데 언급했던 것처럼 라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보니 그의 생각 역시 끝없는 반복들로 채워져 있다. 스승이 자신에게 그림 소질이 없다고 말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수십 수백에 걸쳐 등장하고, 헬레네에 대한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점차 황당한 피해망상으로 진화해 나간다. 문장을 읽어 나가는 동안 내 정신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역으로 말하면, 작가는 그런 이상심리 상태에 있는 주인공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작가는 이를 뛰어난 상상력과 필체로 독자가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묘사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문장이라는 것도 단순한 반복만이 아니라 조금씩 변주를 주어가면서 점차 극단적인 상상으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말 그대로 물 흐르듯 묘사한다. 때로 폭력적인 언행을 폭발시키듯 터뜨리는 데도 다 나름의 내적 논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





II편에서는 라스의 동생인 올리네가 화자로 등장한다. 시간으로 앞서의 사건들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후로, 올리네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다. 항구 근처에서 생선 두 마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올켈로부터 남동생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집에 생선을 가져다 두고 방문하지로 한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작은 집(옥외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고셍서 회상에 빠진다.


전편의 혼란스러운 사고 서술에서 부족한 부분을 이 두 번째 파트에서 어느 정도 회상을 통해 정리해 주나 싶었지만, 웬걸 이쪽에도 문제는 있었다. 올리네는 아마도 치매의 경계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고, 그녀의 사고 역시 앞서 라스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반복되고, 뒤섞이고, 왜곡된다.


다만 그 와중에서도 희미하게 라스가 고향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후에도 증세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들은 보인다. 다만 전편에서는 라스의 머릿속 사고로 그걸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혼란스러운 올리네의 눈으로 그런 라스를 관찰하는 식으로 서술한다는 차이가 있다.





I, II편 모두 묘사의 방식이 독특하다.(어쩌면 노벨문학상의 선정자들은 이런 점에서 “예술”적인 무엇을 발견하고 높이 샀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고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면서 느리게 장면을 그려내는 게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면서도,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또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결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누군가의 생각을 단정 짓고 판단한다. 그건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학림원에서는 작가를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비록 작가의 책을 이번에 처음 보긴 했지만, 이게 어떤 뜻인지는 대략 짐작이 된다. 노벨상 선장위원들은 표현도 참 문학적으로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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