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본심 - 아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의 속마음
윤용인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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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본심』 - 윤용인 저 / 디자인하우스 출판

사실은 남편들도 위로받고 싶다








최근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사무실 근처의 인터파크 명동 북파크를 방문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한 권에 이천원으로 책을 대여할 수 있는데, 두 권부터 반납할 때 무료음료 이용권을 주고 있어서 차 값이라고 생각하고 사천원으로 매주 두 권씩만 책을 대여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스릴러 소설 한 권과 더불어, 운용인 씨의 [남편의 본심]이라는 책을 빌렸다.

 

'아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의 속마음'이라는 부제목에서 풍겨지는 느낌처럼 이 책의 기획의도는 남자독자가 아닌 여성독자, 구체적으로 중년의 아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무작위로 넘겨 읽었던 몇 줄에서도 사실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대여했던 것은 뭐랄까 중년 남성의 넋두리 같은 투덜거림에서 묘한 공감대?!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요즘처럼 내 맘을 내가 모른다 싶을 때 이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이제 결혼을 3주 정도 남겨놓은 풋풋한 예비 신혼부부. 시기로만 보면 사실 매일 알콩달콩 재미있고 화기애애 해야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긴 우리 인연의 시간으로 보면 벌써 10년이 다 되었으니... 이미 왠만한 권태기를 지난 부부만큼의 정이 쌓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오래된 연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법 많은 것 같다. 오랜 연애기간을 거쳤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에서 서로 익숙하다는 말일 터. 서로에 관한한 그만큼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익숙함'의 반대급부로 그만큼 더 상대방을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쉬운 법이다. 단순히 연애라면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버렸겠지만,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꾸리는 상황이라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늘 말하고 다니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연애하는 것 같은 그런 풋풋함과 낭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물론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면서 자연스레 발생되는 그 책임감을 모른척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부담해야 할 책임감은 온전히 받아들이되 다만 서로에 대한 설레임과 존중, 그런 것들이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처럼 가끔은 밥 잘 먹는 모습이 참 예뻐보이기도 하고, 때론 머리 감지 않고 초췌하게도 보이는 편안한 모습이 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바로 그런 것 말이다. 정인지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런 감정이 유지될 때,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고, 그렇게 서로의 몫을 공유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결혼이 연애의 장점을 취하는 성숙한 과정이 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마음가짐만은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달라야하는게 아닐까?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뭐냐하면... 이 나름의 내 생각들, 고민들에 대해서 과연 여친느님께서도 함께 공감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것. 우리 사이에서 서로 간 갈등이 발생하는 유형은 거의 동일하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서로 힘들어도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상대방에게 그 마음의 온기를 나눠주자며 거시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나와, 당장 숨 막힐 정도로 사람 진을 빼놓는 결혼 준비 과정에 지쳐 일방적인 위로만을 원하는(엄밀히 말하면 상대를 위로할 여유가 없는) 여친느님 사이에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차 때문에 만들어지는 갈등. 물론 그런 여친의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걸 모른채 할 수는 없고, 결국 내 어려움과 마음의 응어리는 잠시 묻어둔 채 뜨뜨미지근한 위로를 위로랍시고 하게 된다. 당연히 여친의 입장에서는 그게 위로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 서로 찝찝한 감정으로 마무리를 짓고 그게 누적되고 나중에는 크게 터진다. 그래도 오랜 연애의 노하우랄까?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서는 감정표현이 직설적이고, 즉각적이며, 솔직한 편이다. 그래서 그 꽁한 감정이 쌓이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사실은 나 역시 너와 같은 작은 위로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남자라서 차마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알아주는 것', 이 인정만 있으면 사실 힘들고 어려운 것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 그게 남자다. 나 역시 그 남자고. 이 책에서 공감대를 느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남자, 남편에게도 폐경기가 있다는 전제에서 책은 그 시작을 알린다. 남편의 폐경기는 언제일까? 책 첫 장에 나오는 것처럼 빠진 머리칼이 머리빗에 잔뜩 얽히는, 탈모가 진행되면 폐경기 남편이 되버리는 걸까? 아니다. 남자의 폐경기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꽁한 자신의 본질을 더 이상 숨기기 힘들만큼 마음이 약해졌음을 인식하는 바로 그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나', 그리고 '평범한 남자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철들지 않는, 오히려 더욱 유치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들에 대해서도 곰곰히 살펴보게 된다. 어떤 모습에서는 그런 우리 남자들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ㅎ 그리고 이내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 선물을 이 책을 선물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아부지의 등이 이제 그렇게 외롭게, 또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머니도 이제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당신의 배우자를 당신만을 위한 슈퍼맨으로 만들고 싶다면 명심하자. 남자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다는 것을. 영원한 아이라는 것을. 게다가 멍청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럴수록 더더욱 우쭈쭈 해줘야만 한다. 자신이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는 것도, 때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남자니까 말이다





 남편들은 집에서도밖에서도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해요어려서부터 남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탓도 있고 감정을 표출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이유도 있으며 사회에서 자기 약점을 노출하면 손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죠.이런 자리에서라도 남편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옆에서 격려해주고 많이 공감해줘야 해요책망하고 힐난하면 입을 열려는 남자들도 더 굳게 입을 닫거든요. – p.7

 

 남자남편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유치해지고 허세 가득한 과시욕이 늘어나는 것은인지하는 자존감보다 낮은 현실의 성적표를 보며 일종의 퇴행 현상을 겪기 때문이다이럴 때 가장 좋은 처방은 격려와 지지다아직도 모르시나남자는 관에 들어가서도 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p.17

 

 화는 스스로의 경보장치이며 방어수단이라고 하지만이 땅의 남편들은 아내와의 소소한 갈등을 겪을 때 자기 말을 다할 수가 없다그랬다가는 졸지에 쪼잔한 남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기 때문이다. – p.19

 

 산업화와 함께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하나의 진정한 자아는 없다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안과 밖에서 서로 다른 남자의 행동은 성품이 아닌경쟁 사회가 빚어낸 우울한 초상일 수도 있다. – p.27

 

 남자가 신세타령을 할 때 여자의 대처법은 의외로 단순하다해야 할 것은 남자보다 대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자보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그것이 쇼쇼쇼라고 해도 그 약발은 신통방통하게 잘 먹힌다. – p.61

 

 나는 세상이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연민했으면 좋겠다. 100명의 아버지는 100개의 다른 외로움과 100개의 다른 사연을 지닌 인간임을 생각해주면 좋겠다바로 그 때 아버지들은 세상이 덧씌워준 가장이라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한 명의 늙은 인간으로 젊은 당신 앞에 휘청거리며 다가올 것이라고나는 생각한다. – p.75

 

 지나온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느껴지고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늙을 것이라는 실존의 공포도 어느 날에는 침대로 기어 들어온다그 괴물이 슬쩍 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무력하게 늙다가 속절없는 무용함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중략그렇게 삶의 숙명 앞에서 홀로 떨고 있을 때아내는 나를 가볍게 포옹해주고 등을 두드려줌으로써 몇 분의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준다. – p.94

 

 박 터지게 싸우고머리 나쁜 새처럼 화해하라. – p.102

  

 결혼한 사람은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자기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살피고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상대가 상처입지 않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중략마음 준비가 덜 됐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그나마 자기 조절이 된다 싶으면 결혼은 해도 좋지만 자식은 안 낳는 게 낫습니다. - [스님의 주례사 사랑하는 사이에 더 쉽게 상처받는다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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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 신랑감으로 거듭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고 해두죠.

한번 열심히 살아보고 나중에 또 불평불만 쏟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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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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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김탁환 저 / 다산북스 출판

달콤쌉싸름한 삶에 관한 기록들






책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책이 내용을 전하는 방식, 그러니까 독자로 하여금 내용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 역시 그 수많은 분류기준 중 하나가 된다.

 

어떤 책은 단순히 독자로 하여금 내용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이길 강요하는 책이 있다. 어떤 실험과 관련된 책이나 성공학 관련 서적 등 새로운 지식과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런 책들은 실제로 유용하게 쓰이는 면이 크긴 하지만 대체로 생각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 바꾸어말하면 읽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조금은 어렵다. 반면 호숫가에 돌맹이 하나를 던지듯, 내 머릿속으로 한 두가지 영감과 같은 특정 주제를 던지는(그 것에 대한 결론은 제시하지 않고 물음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는) 책들도 존재한다. 나는 이런 책들을 '화두를 던지는 책'이라 칭한다. 김탁환 씨의 신간인 [읽어가겠다] 역시 화두를 던지는 책에 속한다. 아니, 단순히 화두를 던진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화두를 던졌던 책들에 대한 나름의 입장정리를 밝힌 글이랄까?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소개하고 있는 23개의 소설들을 한 호흡에 읽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일부러 하루에 한 두편씩만 곱씹어 읽어본다. 최소한 화두에 대한 나만의 생각정리를 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책 속에서 저자인 김탁환 씨가 엘리스 먼로의 [디어라이프]를 이런 식으로 읽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같은 방법을 따르는 게 그의 정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이런 책들을 많이 읽는다. 대표적으로 얼마전에 읽었던 이동진 작가의 [밤은 책이다]와 매우 유사한 느낌. 그럴만도 한 것이 두 저서 모두 도서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저자분들이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책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묘하게나마 느껴지는 차이점은 존재한다. [밤은 책이다]의 경우, 책을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여러 날의 밤에 비유하고 있는 제목처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무작위적인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비중이 크다. 반면 김탁환 작가의 [읽어가겠다]의 경우에는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소설)들'이라는 큰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해당하는 23권의 책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의 내용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존재하는 방법이지만, 책 자체를 소개받고 그것에 대해 이해를 하기에는 [읽어가겠다]가 더 쉬운 느낌이다. 서문에서 김탁환 작가가 '꼭 읽히고 싶은 열망을 담아...' 글을 썼다고 표현하는데, 아마 그런 의도에서라면 훌륭한 책이다. 개인적 사정으로 많은 책을 읽기 어려운 요즘 그나마 이런 책 소개 에세이들을  많이 읽고 있는 편인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품들을 비교하는 매력도 제법 쏠쏠했다.



호기롭게도 작가는 처음 시작부터 이 책이 '젊음'과 관련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젊음의 구성요소는 '열망'과 '덧없음'이라고 힌트까지 제공한다. 그러더니 책을 1부와 2부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렇다. 1부에서는 '열망'에 관련된 소설들을, 2부에서는 '덧없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부와 2부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느낌이랄까? 1부에서는 삶에서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순간, 그러니까 '행복', '사랑', '연민' 등에 대한 소설 12편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그 끝 맛은 씁쓸하거나 슬프거나 처량하게 느껴진다. 또 삶의 허무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2부에서는 오히려 끝이 아닌 과정이 중요한 것과 같은 성찰의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이러한 전개와 배치는 아마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작가인 김탁환 씨가 생각하는 삶이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함이 공존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고난과 역경, 혹은 고독 등의 시련 속에서 더욱 아름다움의 가치가 피어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불행의 요소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죽음으로 인한 덧없음의 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오히려 삶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해질 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젊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정지은 것은 실은 삶 전체를 젊음처럼 살아야하고, 그리고 그 속에는 행복과 슬픔, 사랑과 고독, 이타성과 이기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서 일까?자연스럽게 23편의 소설문장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멤도는 듯하다. 그리고 그 문장 속에서 때론 달콤함이, 때론 쌉싸름함이 전해진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의 독백 글을 보며, 삶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시간을 진정 내것으로 만들며 살기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남방우편기]를 통해 행복과 불행, 그리고 각각의 가능성은 공존하며 어떻게 그것들을 인정하며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하게 된다. 또 때로는 뒤라스의 소설 [연인]의 달콤한 문구를 보면서 시리도록 차가운 사랑 이면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인간성의 상실을 강요하는 환경(크게는 삶 전체)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하나의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엄선한 책을 소개하는 방식의 이런 책들의 장점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대해 거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삶의 끝을 바로 코 앞에 둔 이라 하더라도 결코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알 수는 없을 터. 작가와 독자 역시 독서라는 간접경험을 토대로, 삶을 보다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읽어가겠다]는 그런 작가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내게는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탐구해야만 한다는 당부의 말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에는 '열망'과 '덧없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열망이란 견딜 수 없는 몸부림이자 결연한 단절이며 치밀한 계획이자 무모한 도전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게 방점이 놓이는 작품입니다. 성공여부를 떠나, 그 속에는 피와 땀이 흐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덧없음'은 실패와 이어진 감정이 아닙니다. 영원히 타오를 것 같던 이야기 사이의 짧은 침묵입니다.  - P.8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 - P.20 [크눌프] 中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 P.26 [자기 앞의 생] 中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중략)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P.30 [자기 앞의 생] 中

 

 슬픔은 단순히 멀리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 P.36

 

 불시착한 조종사의 삶과 어린 왕자로서의 이야기가 왔다갔다 한다. 이것은 가장 참혹한 현실과 또 가장 아름다운 환상이 교차하는 것과 같다. - P.42

 

 모두들 당신은 젊었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의 당신 모습이 그 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 당신, 그 쭈그러진 얼굴이 젊었을 때의 당신 얼굴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 P.59 [연인] 中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 P.95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中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 P.166 [이것이 인간인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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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출판의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지원된 도서에 관한 서평입니다.

직접 독서 후 어떠한 사심없이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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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했으면 이익을 내라 - 손님이 줄 서는 가게 사장들의 돈 버는 비밀 자영업자를 위한 ‘가장 쉬운’ 장사 시리즈
손봉석 지음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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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했으면 이익을 내라』 - 손봉석 저 / 다산북스 출판

경영을 이해하는 언어, 회계







이 책은 [회계천재 홍대리]로 유명한 손봉석 회계사의 신간이다.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분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손 회계사님의 기존 저서들을 보면서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회계의 개념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원리만을 추려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멋진 분이라 생각했었다. 이번 저서 [장사를 했으면 이익을 내라] 역시 회계사님의 그런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책이다. 오히려 소설 형식이 아닌 실제 예시를 들어가면서 설명하고 있기에 보다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힘을 빼고 편하게 읽었음에도, 겨우 출근하는 30분정도의 시간만으로 완독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유명 웹툰이자 요즘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 보면, 재무팀장이 “무슨 일을 하건 회계는 틈틈히 읽혀두도록 해. 회계는 경영의 언어니까.”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모 대학은 전공을 불문하고 ‘회계원리’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채택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면 회계의 중요도를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싶다.

 

그러나 회계가 지닌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회계를 ‘경리’, ‘부기’, ‘가계부’ 정도로의 의미와 혼용해서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회계를 경영의 언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숫자와 숫자의 흐름/변동 등을 통해서 경영과정의 흐름/변동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숫자를 꼬박꼬박 기록한다고 해서 경영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 할 수 있다.

 

[장사를 했으면 이익을 내라]에서는 ‘장사’와 ‘이익’의 개념을 통해 회계의 중요성을 직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선 ‘이익’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이익은 매출에서 원가 및 부대비용을 뺀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출(수익)과 이익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영인은 무작정 더 많은 매출에만 집중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밑지는 장사는 잘 없기에 매출이 많으면 좋겠지만, 투자한 기회비용 및 기타요소를 고려하면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장사는 ‘구매-가공-판매-결산’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절차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즉, 매출에서 장사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을 뺀 것이 이익인 것이다. 즉, 이익을 늘리려면 매출을 늘리는 만큼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운영상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그것을 통해 동시에 매출의 향상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은 바로 ‘회계’를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다. 

 

책은 매출/기회비용/손익분기점/고정비용 수익 및 비용과 관련된 기본적인 개념들을 확실하게 정리해준다. 즉, 눈에 보이는 수익과 비용만이 전부가 아니라, 매몰되는 비용이나 이익까지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회계는 시작되는 것이다. 책은 계속해서 매출(사업의 핵심부분)의 본질과 재고자산회전율(관리), 고정비용 및 매몰되는 감가상각비 등의 굵직한 사안들을 차근차근 설명해나가기 시작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재무제표 중 재무상태표(구 대차대조표)에 해당하는 항목들이다. 사실 재무상태표의 항목들만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수준에만 도달하더라도, 운영하는 업종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통제와 판단이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계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활용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손익계산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재무상태표의 항목들은 사업을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항목들이긴 하지만, 특정 시점에서의 수치(정적인 수치)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적인 숫자라는 단점을 보완하여 그 흐름을 알게하는 것이 바로 손익계산서다. 손익계산서는 시점과 시점 사이의 유동적인 숫자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실직적인 운영과 관련해서는 더욱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흐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봉석 회계사는 수입의 유입, 비용의 지출과 관련된 흐름 자체를 단편적으로 만들기를 권한다. 특히 수입의 경우에는 일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므로, 비용과 관련해서는 결제일을 조절하고 용도로 따라서 계좌를 별도로 관리하도록 충고한다. 이런 일들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더라도 실무에서 직접 따를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좋은 조언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제5장의 제목이기도 한 '매출은 손님이 가져오지만 이익은 회계가 가져온다'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회계를 잘 이해한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가지 팁들을 하나씩 적용하다보면 분명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그런 면에서 ‘손님이 줄 서는 가게 사장들의 돈 버는 비밀’이라는 부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회계’란 장사나 경영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도록 하는 도구인 것이고, 그것을 통해 (구매, 가공, 매출, 대금지급을 포함한 전체)운영 상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이 책의 핵심이 있다고 한다면, 매출을 늘리는 방법을 알려줄 듯한 부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장사를 하면서 겪는 큰 장벽이라 할 수 있는 세금이나 기타부분에 대해서도 언급은 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른 변수가 많은 부분이라서 그런지 원론적인 설명에 지치고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전문가들은 흔히들 전문성이 가진 자부심과 오만함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서 '어려운 것은 더욱 어렵게' 만들어 그 능력을 과대포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일을 행하는 건 참 어려운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손 회계사의 이 책은 장사를 하는, 그러니까 회계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회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당장이라도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장부정리가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허튼 장사를 하는 것은 확실히 막아준다. - P.20

 

 장사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네 가지로 요약하면 매출 / 이익 / 자금조달 / 투자금 회수다. - P.27

 

 숫자를 좋아한다는 말은 장사한 것을 숫자로 바꿔보는 것보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장사에 활용하는 것에 가깝다. - P.30


 사업 초기에 이익을 계산할 때는 투자한 돈 이후에 들어가는 재투자비용이나 추가 투자금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 P.63

(재투자비가 확실한 경우 감가상각비처럼 생각해서 함께 계산해주면 편리하다)


 나 혼자 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남의 힘을 빌리면 돈이 부족해도 가능하다. 돈이 없으면 남의 힘을 어떻게 빌릴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된다. - P.81

(감가상각 및 손익분기점에 대해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초기투자비용을 줄이고 부담가능한 부분을 선택한다. 이 때 투자는 단순한 유무형의 투자가 아닌, 시간 및 노동의 기회비용을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손익분기점에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그 만큼의 시간 혹은 노동을 절약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업종별 투자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투자자본을 감소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며, 혹은 시스템이나 특별한 아이디어, 기부 등을 활용하는 것도 초기투자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요약하면,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투자금을 절약하는 것이 좋다)


 안전한 사업을 원한다면 돈뿐만이 아닌 시간을 투자하라. 이 보이지 않는 투자가 리스크를 크게 줄여줄 수 있다. - P.85


 사업이나 회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어쩌면 이 질문은 너무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실제로 일을 하면서 무엇을 파는지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 P.105


 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 보다 해당 업종과 그 업종의 1등 가게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 - P.109


 업의 본질이란 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곳에 큰 돈을 쓴다. - P.110


 가격결정 시 고정비를 무시해야 가격결정에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중략) 가격결정은 단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 활용할 것이 아니라, 가격을 내리더라도 가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을 찾는데도 도움이 된다. - P.156


 인건비나 관리비보다 원재료값을 절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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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출판의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지원된 도서에 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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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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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박혜영 저 / 다산책방 출판

아름다운 미완의 사랑, 현대판 사랑손님과 어머니









오늘 가을치고는 많은 비가 내렸다비가 내려서 그런지 으스스하기까지 하다예년과는 달리 겨울이 무척 빨리 다가온 것 같다가을이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래서는 안되겠다가을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음먹고 출근 길에 사무실이 아닌 서대문역 근처에서 일부러 내렸다이곳에서 시청역까지 정동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진도 찍고감성을 느끼면서 가을을 찾아볼 요량으로.

 

평일 오전의 정동길은 고요했다노란빛 가을햇살 대신 거리를 채우고 있는 희미한 안개 때문에 한편으론 처량하게까지 느껴진다그나마 들어오는 햇빛마저도 간신히 생기를 유지하고 있는 단풍잎에 가려길은 차분하니 어둠과 빛을 공존시키고 있다덕분에 간만에 내 감성도 습기를 잔뜩 머금어 말랑말랑해졌다조용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마치 정원을 연상시킨다그리고 몇 일전 읽었던 소설 [비밀 정원]이 생각났다.





 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박혜영 작가의 첫 소설, [비밀 정원]. 이 소설을 내 식으로 요약하자면 현대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다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두 사람을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했던 장벽이 정절에 대한 시대적 관념’ 이었던 반면시간이 흐르고 정절에 대한 관념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 그러한 장벽의 역할을 삼촌과 엄마라는 보다 극단적인 요소로 바꾸고 있다그것도 너무 억지스러운 막장 드라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시대적 배경도 현재 시점이 아닌 70~90년대를 다루고 있다. ‘잃어버린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서’ 라던지, ‘비밀 정원에 숨겨둔 엄마와 율이 삼촌의 첫사랑이 애절하다라는 표지의 문구는 다소 자극적이게도 느껴진다하지만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가 그러한 금기시의 영역에 대한 서술도전이 아닐까 하기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요라는 인물이다이 인물이 노관이라는 강원도의 한 유지가문에 방문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거의 기억들을 언급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주변 인물들에 대한 설명들을 몇몇 장면들로 완곡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마치 작가가 그린 소설의 전체 구도를 직접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그렇게 이요 회상 속에서 그의 관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그의 유년시절 이야기부터 테레사 수녀인 이안의 편지들을 거쳐 마침내 어머니와 율이 삼촌과의 사랑 이야기가 언급된다그것도 수수께끼를 내듯 하나씩 하나씩천천히 천천히. (구체적인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하겠다)

 

일단 그림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체에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더라또 중간중간 인용되는 시들심지어 주인공 이요와 주요인물인 서교수’, ‘삼촌의 직업이 교수 및 작가라는 점만 보더라도 얼마나 예쁜 문체로 글이 서술이 되는지말랑말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다만 책의 말미에 여러 작가들의 평에서와 같이 아직 처녀작인만큼 불완전한 부분도 여실히 드러나는 건 사실이다이를테면 가장 핵심인물인 어머니와 율이 삼촌과 각각 긴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서술자)인 이요가 끝까지 서술자의 역할에만 충실한다는 점이다형식상 1인칭의 서술시점에서 그가 극에 관여하지 않고 서술에만 집중하다보니다소 방관자가 된 느낌이 들더라또 어머니에게서 모정의 측면보다는 한 여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는 것 같아서 조금 의외스럽기도 했고율이 삼촌이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서 교수에게 처음 털어놓는 부분도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책의 초반부에서 중반까지 이어지는 테레사의 편지도 너무 분량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문구와 문체는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계속해서 읽다보니 전체 줄거리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긴장감 역시 확연히 줄어들었다그럼에도 책을 모두 완독하고 나서는 그러한 장치들이 하나의 이야기 조직을 짜는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어서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꽤나 긴 시대의 흐름을 상대적으로 짧은 소설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다드라마 같은 것을 보다보면 (주로 마지막회에갑자기 몇 년 후라는 문구가 뜨면서 헤어스타일와 옷만 바뀐 모습의 배우들이 나와 연기하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이럴 때마다 나는 정말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곤 한다나는 그것이 긴 시간의 흐름을 짦은 몇몇 장면에 억지로 담으려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그런데 이 소설은 몇 십년의 흐름을 한 권의 소설에 담으면서도 그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놀라울 수밖에나중에서야 작가가 몇 십년 전에 개략적인 소설을 써두었다가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긴 후에 다시 그 소설을 완성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소설 속의 인물만큼 이 소설 자체도그리고 작가도 함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런 자연스러움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이처럼 넓은 시대적 스펙트럼을 잘 다루고 있는 덕분에소설은 두 인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건들과 분위기그리고 시대정신까지도 잘 언급하고 있다그리고 인류와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위해 보장되어야 할 자유가 억압되던 시절그리고 그것에 저항할수록 비참해지던 현실에 대한 서술들은또다시 감정에 충실하여 자유롭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두 사람의 모습에 대조되면서 더욱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완전히 개방적이지는 못하지만 감정만은 숨길 수 없던그 순수함과 풋풋함이 담긴 미완의 사랑이 충분히 전해진다.

 

차분한 분위기만큼 더딘 발걸음으로 정동길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오늘같이 운치 있는 가을 날이 아쉬운 분이 있으시다면그리고 그런 낭만과 순수한 사랑을 떠올릴 여유를 가지고 계시다면오늘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 [비밀 정원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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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학, 다산책방, 비밀정원,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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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 팀 보울러 저 / 놀(다산책방) 출판

모두, 그렇게 성장한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간만에 쓰는 책 리뷰. 여행을 다녀와서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좋은 일들은 빨리 습관화해야 편해지는데 가끔 이런 일탈 아닌 일탈을 겪고나면 피로를 빙자하고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아 큰일이다. 뭐, 푸념은 이쯤하고 다시 리뷰를 써볼까.

 

 

나는 아주 유명한 책이 아니라면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대강의 이미지를 추측하거나 생각한다. 여기서 '대강의 이미지'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해내는 이미지들이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추측이 아니라 그냥 그 순간 떠오르는 어떤 것이나 '끌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라는 책도 처음 접하면서 어떤 상황들이 문득 떠올랐다.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쫒기는 악몽을 꾸다가 다리에 쥐가나서 일어나는 상황. 보통 이런 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아침 상을 차려주시며 "너 키 크려나보다" 라는 말씀을 해주시곤 했는데... 두 번째로 떠오르는 것들은 작가의 가장 유명한 전작인 [리버보이]와 최근 성공했던 성장소설 [완득이]. 이 두 가지 이미지와 상황들을 두고 보면 공통점이 있다. 청소년기의 성장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점.

 

거의 정답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 책은 팀 보울러의 분명한 색깔에서 벗어나지 않는 '성장소설'에 속한다. 하지만 이 책을 '성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마무리하고 넘어가기에는 어쩌면 절반의 의미만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흔히 우리가 '성장'이라는 단어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여러 의미로 병용하며 살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성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세포분열 등으로) 자라서 커지는 것이다. 즉, 육체(양)적 성장의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동식물의 경우는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인간만큼은 완전한 성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육체(양)적 성장뿐만이 아니라 지적/정신적 성숙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 단순히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절반의 의미밖에 담지 못한다고 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알게되어 익힐 때, 즉 새로운 지식이 생길 때 '성장'하지만, 때로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을 어느 순간 새롭지 인지하고 어떠한 깨달음을 얻을 때 더욱 성장하는 것 같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때야말로 성장이 완성되는 것 같다. 조금 더 쉽게 구분해보자면 전자의 성장이 '생장'이라는 육체적이고 양적인 확대를 의미한다면 후자의 '깨달음'과 '극복'을 통한 성장의 경우에는 내면의 '성숙'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서 진정한 성장이란 '생장'과 '성숙'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라는 소설은 성장의 의미 중 소년의 '성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가장 성숙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를 가장 성숙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성숙의 시점에 관해서는 비교적 말하기가 쉬울 것 같다. 무지의 영역이 지식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게 성숙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삶이 거듭될수록 배움을 통해 알게 되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의 시점과, 그것이 삶의 일부분으로 녹아드는 깨달음의 시점이 반드시 동일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의 시점을 어느 때로 생각해야할까? 배움을 통한 지식의 양적 증대? 아니면 깨달음의 순간? 지금의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성숙의 순간보다 더 어려운 질문은, 과연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 지식을 습득하고 깨닫게 되는 주체는 본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본인을 성숙하게 하는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 지식을 전한다는 측면에서 수많은 책들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을 받을테니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본인의 특정 사회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성숙의 매체는 바로 부모님이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일까 '부모'라는 단어는 참 무겁다. 그만큼 우리는 부모와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모두는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알게 모르게 역할교육을 받았으며, 보육을 받았고,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가 성숙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벗어날 때'가 된다. 그들의 품 안에서 너무나도 닮은 존재로 자라 독립성을 가지지 못했던 종속적 자아가, 물리적/경제적/내면적 독립을 함으로 해서 진정한 자아를 가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들이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인물도, 가장 넘어서야할 큰 벽도 아버지다.

 

부모로부터의 독립도 몇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독립의 자발성 여부를 두고도 구분할 수 있고, 혹은 위에서 나눈 것처럼 어떤 계기를 통해서 물리적/경제적/내면적인 독립으로도 나눌 수 있다. 어느 것이 되었건 중요한 것은 독립의 성격이다. 독립은 곧 부모(혹은 부모의 역할)의 '부재'를 의미한다. 부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충분한 성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넘어서는 일종의 성장기. 이쯤되면 떠오르는 내용들이 있지 않은가? 알을 깨고 진정한 나의 세계로 거듭나는 [데미안].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보다는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더 가까울 것 같다. 팀보울러의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를 읽으면서 나는 시종일관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친구의 이름이 '스핑크'인 것을 보고는 웃음까지 나왔다. 이름의 뉘앙스 뿐만 아니라 난관을 제공하지만 그 시련을 극복함으로해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애증의 인물이 된다는 점이, 알듯 모를듯한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불안정한 상황들과 가정이 만들어진 책임을 시종일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에게 부여하고 있는 경향이 강한데, (물론 어머니에게도 아주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것 역시 주인공이 넘어서야할 대상으로 아버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면에서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의 여정과 확실히 닮았다. 부모와 자식, 가정과 그 속에서의 성장의 문제는 인류의 존속과 동시에 계속해서 반복되어 제기되었던, 그리고 해결되었던 문제인만큼 지금의 시점에서도 누군가를 위한 훌륭한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아쉬웠던 면도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 상의 이야기겠지만, 나는 소설의 말미까지 의심하게 했던 봉투 속의 의문의 덩어리가 차라리 실체가 없는 일종의 상징적인 무언가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독자에 따라서 '자아'가 될 수도 있었을테고, '행복한 가정'이 될수도 있을 것이며,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아졌을텐데. 다만, 그 속의 물건이 위폐라는 사실에서 1)(전 시대의 행동들을)단순히 반복하고 따라만 해서는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 2)그리고 물질만능주의의 현실을 꼬집었다는 등의 의미를 억지로 찾아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나의 경우에는 이 이야기를 어떤 '성장기'로 해석을 했지만, 소설의 내용에서 어떤 의미를 찾지 않아도 '스릴감'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즐기기에도 좋은 내용이므로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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