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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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박혜영 저 / 다산책방 출판

아름다운 미완의 사랑, 현대판 사랑손님과 어머니









오늘 가을치고는 많은 비가 내렸다비가 내려서 그런지 으스스하기까지 하다예년과는 달리 겨울이 무척 빨리 다가온 것 같다가을이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래서는 안되겠다가을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음먹고 출근 길에 사무실이 아닌 서대문역 근처에서 일부러 내렸다이곳에서 시청역까지 정동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진도 찍고감성을 느끼면서 가을을 찾아볼 요량으로.

 

평일 오전의 정동길은 고요했다노란빛 가을햇살 대신 거리를 채우고 있는 희미한 안개 때문에 한편으론 처량하게까지 느껴진다그나마 들어오는 햇빛마저도 간신히 생기를 유지하고 있는 단풍잎에 가려길은 차분하니 어둠과 빛을 공존시키고 있다덕분에 간만에 내 감성도 습기를 잔뜩 머금어 말랑말랑해졌다조용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마치 정원을 연상시킨다그리고 몇 일전 읽었던 소설 [비밀 정원]이 생각났다.





 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박혜영 작가의 첫 소설, [비밀 정원]. 이 소설을 내 식으로 요약하자면 현대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다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두 사람을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게 했던 장벽이 정절에 대한 시대적 관념’ 이었던 반면시간이 흐르고 정절에 대한 관념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 그러한 장벽의 역할을 삼촌과 엄마라는 보다 극단적인 요소로 바꾸고 있다그것도 너무 억지스러운 막장 드라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시대적 배경도 현재 시점이 아닌 70~90년대를 다루고 있다. ‘잃어버린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서’ 라던지, ‘비밀 정원에 숨겨둔 엄마와 율이 삼촌의 첫사랑이 애절하다라는 표지의 문구는 다소 자극적이게도 느껴진다하지만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가 그러한 금기시의 영역에 대한 서술도전이 아닐까 하기에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요라는 인물이다이 인물이 노관이라는 강원도의 한 유지가문에 방문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과거의 기억들을 언급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주변 인물들에 대한 설명들을 몇몇 장면들로 완곡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마치 작가가 그린 소설의 전체 구도를 직접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그렇게 이요 회상 속에서 그의 관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그의 유년시절 이야기부터 테레사 수녀인 이안의 편지들을 거쳐 마침내 어머니와 율이 삼촌과의 사랑 이야기가 언급된다그것도 수수께끼를 내듯 하나씩 하나씩천천히 천천히. (구체적인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생략하겠다)

 

일단 그림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체에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더라또 중간중간 인용되는 시들심지어 주인공 이요와 주요인물인 서교수’, ‘삼촌의 직업이 교수 및 작가라는 점만 보더라도 얼마나 예쁜 문체로 글이 서술이 되는지말랑말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다만 책의 말미에 여러 작가들의 평에서와 같이 아직 처녀작인만큼 불완전한 부분도 여실히 드러나는 건 사실이다이를테면 가장 핵심인물인 어머니와 율이 삼촌과 각각 긴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서술자)인 이요가 끝까지 서술자의 역할에만 충실한다는 점이다형식상 1인칭의 서술시점에서 그가 극에 관여하지 않고 서술에만 집중하다보니다소 방관자가 된 느낌이 들더라또 어머니에게서 모정의 측면보다는 한 여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는 것 같아서 조금 의외스럽기도 했고율이 삼촌이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서 교수에게 처음 털어놓는 부분도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책의 초반부에서 중반까지 이어지는 테레사의 편지도 너무 분량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문구와 문체는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계속해서 읽다보니 전체 줄거리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긴장감 역시 확연히 줄어들었다그럼에도 책을 모두 완독하고 나서는 그러한 장치들이 하나의 이야기 조직을 짜는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어서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꽤나 긴 시대의 흐름을 상대적으로 짧은 소설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다드라마 같은 것을 보다보면 (주로 마지막회에갑자기 몇 년 후라는 문구가 뜨면서 헤어스타일와 옷만 바뀐 모습의 배우들이 나와 연기하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이럴 때마다 나는 정말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곤 한다나는 그것이 긴 시간의 흐름을 짦은 몇몇 장면에 억지로 담으려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그런데 이 소설은 몇 십년의 흐름을 한 권의 소설에 담으면서도 그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으로 놀라울 수밖에나중에서야 작가가 몇 십년 전에 개략적인 소설을 써두었다가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긴 후에 다시 그 소설을 완성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소설 속의 인물만큼 이 소설 자체도그리고 작가도 함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런 자연스러움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이처럼 넓은 시대적 스펙트럼을 잘 다루고 있는 덕분에소설은 두 인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건들과 분위기그리고 시대정신까지도 잘 언급하고 있다그리고 인류와 국가와 사회의 진보를 위해 보장되어야 할 자유가 억압되던 시절그리고 그것에 저항할수록 비참해지던 현실에 대한 서술들은또다시 감정에 충실하여 자유롭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두 사람의 모습에 대조되면서 더욱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완전히 개방적이지는 못하지만 감정만은 숨길 수 없던그 순수함과 풋풋함이 담긴 미완의 사랑이 충분히 전해진다.

 

차분한 분위기만큼 더딘 발걸음으로 정동길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오늘같이 운치 있는 가을 날이 아쉬운 분이 있으시다면그리고 그런 낭만과 순수한 사랑을 떠올릴 여유를 가지고 계시다면오늘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 [비밀 정원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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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포터즈 미션을 통해 도서지원을 받아 작아된 서평입니다.

서평 내용은 오직 솔직하게 생각한 것만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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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학, 다산책방, 비밀정원,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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