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트라이앵글 1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지음, 유달승 옮김 / 이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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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나라인가에 대한 이 시대 대표적인 사회참여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의 고발서다. 그는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면서 이스라엘이 자행한, 그리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매우 시니컬하게 기술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1단계(분노):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짓을?
2단계(반성):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좋은 나라라고 속아오다니!
3단계(허탈): 이들은 인간이 아니구나...
4단계(무감각)

4단계가 되면 웬만한 폭력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는데, 이성을 유지하면서 이 책을 읽으려면 그래서 쉬엄쉬엄 읽는 게 좋다. 내가 무려 1년에 걸쳐 이 책을 읽은 건, 책의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나도 이 책을 읽다보니 '마징가 제트를 보내서 팔레스타인 애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스라엘의 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리스트가 안되면 이상한 게 아닐까?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분명 비극이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스스로 피해자를 자처하지만, 그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국가테러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스라엘이 마음껏 학살을 저지르는 배후에는 군사.경제적으로 엄청난 지원을 해대는 미국이 있다. 이스라엘처럼 야만스러운 나라를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라고 칭송해온 건, 우리 언론들이 얼마나 미국의 시각에 편향되어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없듯이, 아라파트 역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애쓰는 운동가다. 싸우면 다 똑같다고 싸잡아 욕하기보다는, 그들이 왜 테러를 저지르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권이란 게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 PLO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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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집 - 국내 미발표작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강주헌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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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에 우뚝 솟은 거장의 미발표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불러일으킨 <톨스토이 단편선집>은 매우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젊은 황제'를 비롯해, 젊을 때의 잘못으로 결국 파국을 맞는 '악마' 등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어릴 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법과 원칙을 지킬수록 손해라는 가치관이 정립된 터라 이 책의 메시지들에 시큰둥하게 된다. 바르게 사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잘사는 것'이 어버린 정글 속에서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예컨대, 순진하게 군대를 다녀왔더니 나보다 더 건강한 군면제자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릴 적, TV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부조리로 가득찬 사회를 봤을 때 그가 느낄 배신감은 얼마나 클까? 그렇게 본다면 어린이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공자님 말씀을 가르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도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지만, 내용도 별 재미가 없다. 어릴 적에 다들 한번씩 들어봤음직한 평이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이 책이 최근의 톨스토이 붐에 힘입어, '미발표작'이란 타이틀을 달고 우리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유감이다.

한가지 더. '악마'라는 단편에서 톨스토이는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은 유부녀를 악마로 그리는데, 여기서 그의 반여성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엄연히 부인이 있으면서 다른 유부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놈이 더 나쁜 거 아닌가? 남의 부인-밧세바-을 빼앗고 권력을 이용해 남편을 죽게만든 다윗에겐 면죄부를 주고, 할 수 없이 왕과 결혼한 밧세바를 당시 사람들이 '다윗을 유혹한 음탕한 여자'로 몰아간 것처럼,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는 수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부장 사회인 우리나라도 그런 '피해자 탓하기'가 만연하고 있는데, 그런 전통은 이제 좀 그만둬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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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신문 1 - 문명의 여명에서 십자군전쟁까지 세계사 신문 1
세계사신문편찬위원회 엮음 / 사계절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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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꼬의 <바우돌리노>를 읽으면서,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 뭔지, 동로마는 뭐고 게르만 민족은 왜 이동했는지 통 모르겠는 거다. 생각해 보니 내가 세계사를 공부한 건 중2때 1년에 불과한데, 그런 얄팍한 지식으로 평생을 우려먹자니 내가 너무 뻔뻔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맘 먹고 세계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안그래도 지겨운 공부를 또 한다는 게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게 바로 <세계사신문>이었다. <역사신문>으로 선풍을 일으킨 '사계절' 출판사의 작품인데, 딱딱한 역사를 신문으로 만들어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는 건 정말이지 빛나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읽는 내내 내가 그간 너무나 무식했구나, 하는 걸 자각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내용이 워낙 풍부해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세권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순간, 굉장히 뿌듯한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일전에 아무 생각없이 밥을 먹었던 중국집 '만강홍'이 실은 송의 명장 악비가 쓴 시의 제목이라는 것, 돈 주앙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시인 바이런이 쓴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것과, 통념과는 달리 이슬람은 타 종교에 너그러운 반면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을 포함해서 이슬람에게 온갖 잔인한 짓거리를 했다는 것, 사하라 사막이 중동이 아닌,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제국이란 게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혁명가가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전 왕조를 무너뜨리지만, 이내 부패와 향락에 빠져 민중을 외면하게 되고, 민중들, 혹은 다른 세력에 의해 타도되는 전철을 밟는다는 것. 천년을 버틴 로마는 예외로 치고 대충 평균을 내보니, 제국의 수명은 500년이 못된다. 그렇게 따져 본다면 영원히 세계의 패자로 남을 것같은 미국도 벌써 절반을 지난 셈이다. 200년만 더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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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관 약전(略傳)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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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마누라2'가 나쁜 영화인 이유가 뭘까. 코메디 영화를 표방해 놓고선 관객을 전혀 웃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이터를 켜라', '신라의 달밤'의 성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내러티브야 어떻든 웃겨만 주면 된다는 관객은 의외로 많다. 성석제의 소설을 집어들 때마다 난 맘껏 웃을 준비를 한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유머작가이며, 지금까지 매번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줬으니까. 그의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기에, 난 늘 그에게 고마움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런 점에서 실망스럽다. 전혀 웃기지 않을뿐더러, 쉼표를 빈번히 사용하는 특유의 문체도 없다. 책날개에 실린 사진이 아니었다면 난 동명이인이 쓴 책인 줄 알았을 거다. 동인문학상을 받았던 소설집 <황만근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석제의 단편들은 언제나 끝이 허무하다. 그게 용서되는 건 내용이 워낙 웃기기 때문인데, 이번 소설들은 끝이 허무한 건 예전과 똑같지만 도무지 재미있질 않으니, 영 속은 기분이다.

'경두'나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보면 그의 소설관이 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상에 선 작가가 변신의 노력을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대를 충족 못시켜 실망하는 독자도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이 소설집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번쯤 읽어볼 소설이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으려면 유머에 대한 기대는 미리 접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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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 -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성찰의 거울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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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홍세화님이 한겨레에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칼럼의 생명은 시의성, 읽었던 기억이 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책으로 엮어진 칼럼들을 읽는 건 묵은 신문을 보는 것처럼 긴장도가 떨어진다. 더군다나 칼럼을 쓴 날짜도 적혀 있지 않고, 주제별로 편집한 것도 아닌지라 다소 성의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메시지가 여전히 마음에 와닿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존재에 걸맞는 의식을 가지라는 명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스스로 노동자임을 부인하며, '중산층'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다. '노조를 만들려면 공장에나 가라'는 송복의 궤변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권을 건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의식을 갖지 못하며, 수구언론이 설파하는대로 파업 노동자들을 욕하기 바쁘다. 현대차 연봉에 관한 수구언론의 뻥튀기에 속아 '현대차 불매운동'같은 한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반공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우리의 제도교육 탓도 있지만, 수구 신문에 의해 끊임없이 받는 세뇌도 커다란 이유가 된다.

친일과 독재정권에 부역한 과거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공익보다는 사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수구언론들의 행태는 충분히 부도덕하다. 하지만 그들의 세뇌는 워낙 집요해, 그들이 뿜어내는 악취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해 '독자가 바보냐'며 신경질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운동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안될까.

사소한 예에 불과하지만, 월드컵 석달전 히딩크를 '말바꾸기의 명수'라며 비난하던 조선일보는 월드컵 16강에 오르자마자 그를 극찬했다. 98년 월드컵서 자케 감독을 비난하다가 프랑스가 우승한 뒤 큼지막한 사과기사를 낸 프랑스 신문과 대조적인데, 한국 언론이 말 바꾸기나 오보에 늠름, 뻔뻔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지와 망각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며, 수구세력은 그런 무지와 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란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공부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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