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논쟁 -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김대식.김두식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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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속독이라는 게 유행했었다.

한창 어린 우리들은 속독선생이 가르쳐주는대로 눈을 부릅뜬 채

쾌걸조로의 z자 모양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십분에 4000글자를 보는 친구도 있었고, 더 잘하는 이는 1만자까지 본다고 했다.

난 속독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눈이 작아서 해봤자 안될 거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내가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속독을 배운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열배, 스무배 빠른 속도로 책을 읽을 테고,

내가 범접하지 못할만큼 공부를 잘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속독열풍은 신기하리만큼 빨리 사그라들었고,

우리에게 속독을 배우라던 담임 선생님은 더 이상 속독 얘기를 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뜬 채 책을 읽던 아이들도 평상시의 온순한 표정으로 되돌아왔고 말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책을 천천히 읽는다.

한권을 가지고 평균 열시간 가까이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양철북> 같은 책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움베르뜨 에꼬의 <장미의 이름>은 거의 한달 가까이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눈도 작은데다 이해력도 딸려서, 이해가 될 때까지 같은 대목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대식. 김두식 형제의 이야기를 묶은 <공부논쟁>은

대담집인만큼 좀 빨리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자기 집을 지어야 한다는 김대식 교수의 말들이 묵직하게 가슴을 때리는지라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정확히 측정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다 읽은 것은 대략 열시간 가까이 시간을 투자한 다음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고수가 참 많았다.

10시간 걸려 읽은 이 책을 서점에서 1시간만에 독파한 사람이 셋이나 된다니.

저 분들은 정말 책읽기의 고수일 듯하다.

초등학교 속독을 하던 친구들한테 느꼈던 위화감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읽어야 할 책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읽을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

저분들이 그랬듯 <공부논쟁>을 한시간 정도에 후다닥 읽을 수 있다면,

언제 읽힐지 차례를 기다리며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도 금방 다 해치울 수 있을 텐데.

효과가 있든 없든, 눈이 작든 크든, 어릴 적에 속독을 좀 배울 것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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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이나 철학 분야 서적을 빼고는 대부분 발췌독'을 하는데요.
속독을 못해서 저는 자연 과학 예술 서적은 문장 전체를 읽지 않고 명사만 읽습니다.
그럼 속도가 확 줄어드는데. 경험상 명사만 골라 읽어도 오독의 위험성은 그닥 높진 않습니다.
이런 책들은 문학과 달라서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맛이라기보다는 사실 전달에 목적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전 낱말만 읽습니다. 이거 숙달하면 속도가 확 줄어듭니다.

마태우스 2014-06-03 13:58   좋아요 0 | URL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발췌독..... 명사만 읽는 방법도 있군요. 역시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하늘바람 2014-06-0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독을 아무리 잘 한들 마음이 없음 소용 없잖아요 님 님은 충분히 빨리 읽으시는거예요

마태우스 2014-06-03 13:59   좋아요 0 | URL
잉...제가 마음이 있는 거 어떻게 아셨나요??? 암튼 고맙습다

페크pek0501 2014-06-0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속독보다 정독이 좋아요.
예전엔 다독에 욕심이 많았는데 이젠 반복해 읽을 만큼 좋은 책만을 골라 읽고 싶어요.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찾아 내고 밑줄 긋고 씹어 먹는 거죠.^^

마태우스 2014-06-05 20:39   좋아요 0 | URL
저도 정독이 좋습니다. 근데 전 반복해서 읽는 건 못해요. 읽지 못한 책이 널렸는데 읽은 걸 또 읽기엔 제게 시간이 너무 없어서용...ㅠ 근데 내공을 기르려면 두번 세번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긴 합니다. 씹어먹는다, 이 표현 멋지네요

하얀찐빵 2014-06-0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천히 읽고 싶은데..쫒아오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시험전에 초치기 하는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휘리릭 건성건성 읽게 되어서 좀 고민이예요..ㅎㅎ 그래서 꾹꾹 눌러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책 하루종일 걸린거 같아요..^^ 대담집이라고 쉬울줄 알았는데..김대식 두식 교수님께 배신당한 기분이었어요..책표지도 만화같더만..

마태우스 2014-06-09 22:4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대담집이라고 해서 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빨간펜으로 줄을 박박 그으면서 읽었더랬죠. 전 배신은 아니고, 읽고 생각할거리가 많아서 좋았답니다

낭랑 2014-08-2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포스팅을 읽고
아~ 이책을 사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맞는데

저자 어머니는 우찌 똑똑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을꼬..
저자 어머니를 수소문해서 속고쟁이나 하나 받아 입고 싶네~

이러고 앉았음돠..
학생때나 지금이나 항상 정신줄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네요..

마태우스 2014-09-14 14:2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죠. 둘째도 그렇게 멋진데 첫째 형님도 저리 멋진 분을 낳으시다니, 복받으신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