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선어와 활어를 따질 것도 없이 회는 물론이고 찜이나 조림, 구이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내가 게걸스럽게 먹는 건 날치알밥 뿐이다.

소박하게 맑은 조갯국물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없다.

날치알밥을 갯것에 넣기는 좀 민망하지만, 뭐~--;

작은 뚝배기를 불에 올리고, 거기에 밥과 김치를 쫑쫑 썰어넣고 날치알을 올린 뒤,

계란은 1인용 뚝배기엔 좀 과하니까,

메추리알을 하나 깨뜨려넣으면 완성되는 간단한 메뉴 말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류의 이름도 세세히 모르는건 당연지사,

이 책 '인생이 허기질때 바다로 가라'도 사진 속 물고기의 모습이 너무 리얼하다는 이유로 한쪽으로 치워놨었다가,

할일없이 아무렇게나 넘기다가 만난 글들이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었어도 좋고 안 읽고 이 책만을 읽어도 좋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들 말이다.

나는 생선 손질을 할 때 지느러미를 잘라내지 않는다. 요리를 해놓으면 등과 꼬리 자느러미가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보기에도 좋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르다. 모두 잘라낸다. 그냥 두는 나를 보고 뭐라 한다. 짤라버려라, 싫소, 그것을 뭐하러 붙여놓냐, 그냥 두는 게 좋다니까요, 이렇게 투닥거린다.

한번은 전화가 와서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 내 것을 모두 잘라놓고서 모른 체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왜 잘랐어요? 아 글쎄, 먹지도 않을것을 왜 붙여놓냐고. 둘은 기가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합의를 본 게, 영자 것은 영자 맘대로, 순돌이 것은 순돌이 생각대로, 이다.. 그래서 냉동을 해놓아도 네 것, 내 것 구분이 쉽지만 지금도 탐탁지않게 여긴다.

지느러미를 잘라내버리면 단순한 고깃덩어리 같다. 제 모습을 유지해놓으면 생명체의 느낌이 든다. (시인들은 이때 이렇게 말한다. 한때 눈부신 생명이었던 것들이 어쩌고저쩌고). 그래야 구석구석 살조각까지 살뜰히 먹어진다. 나는 이게 예의라고 생각한다.(108~109쪽)

이런 감각적인 글들도 좋지만,

내 시선을 끈건 내가 먹는 '알밥'의 생략된 앞 두글자에 들어가는 '날치',

알들의 엄마ㆍ아빠인  '날치'였다.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면 리얼한 것이 바다를 품은 듯도 하고, 하늘을 품은 듯도 하고 생각이 달라지지만,

이 그림으로만 봐선 귀엽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날치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책 손택수가 지은 책'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들춰보게 되었다.

귀여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림체가 다른지라 그림이 한층 자세하다.

 

한창훈과 손택수, 둘다 글이 빠다를 발라놓은 듯 맨도로롬하고 고소하지만,

각자 개성 차이가 확실한지라 다르게 읽힌다.

 

날치 부분에서 손택수가 재미있었던건,

날치를 『산해경』을 인용해가며 '나는 물고기'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날으는 원더우먼'과 관련 '날으는'이라고 하지 않고 '나는 물고기'라고 한 것도 좋았다.)

 

『장자』라는 책을 인용하며 '곤'이 날치일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장자』에도 "북녘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의 등 넓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곤은 바다를 상징하는 물고기이고, 붕은 하늘을 상징하는 새다. 이들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은 새가 날아다닐 때, 물고기는 새의 몸을 빌려 입은 것이 된다. 그 새가 죽어 먼지가 된다면 물고기들은 또 그 유기물을 섭취하며 헤엄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물고기는 새가 빌려 입은 몸이 아닌가. 이 신화를 통해 동양 고대의 상상력이 얼마나 유기적인지를 알 수 있다.(92쪽)

 

내가 장자에도 인용되는 '곤'일지도 모르는 '날치'의 알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뭔가 영겁의 시간을 넘나들며 일어나는 우주의 계획과 질서에 간여하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니까 말이다.

 

한창훈의 책 뒷표지를 보면, 허영만은 한창훈의 글을 통해서 '한창훈의 자유로운 삶을 통해 대리만족한다'고 되어 있는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대리만족하고 싶기도 한데,

막상 자유로운 삶이 주어지면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았다며 어떠지 못해 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자유로운 삶이란 자신이 헤쳐나가기 나름이지 싶다가도,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관조하는 '도깨비'의 명 대사처럼 사람으로선 어쩌지 못하는 신의 영역이 아닐까 싶어 체념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실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땅이나 산은 가다가 협곡을 만나거나 바다를 만나면 끊기지만, 모든 바다는 하나로 통한다는 거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연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귀속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내일 모레면 3년인데, 아무것도 해결된게 없다.

북한에서는 어딘가 바다를 향하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모양이다.

 

봄이 한창이다.

어느 드라마속에선 '도깨비'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하는데,

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슬프고 눈물겹다.

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4-14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4 21:3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생선을 다 좋아해요. 그런데 유독 먹지 못하는 생선 부위가 있어요. 그게 생선의 눈알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4-20 15:50   좋아요 1 | URL
한창훈의 책엘 보면 말이죠.
한창훈의 아는 형님이, 생선 눈알을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
생선 눈알을 모은다는 얘기가 나와요.

저와 생선을 안 먹으니까 해당사항이 없고,
생선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완전 좋아하던데,
의외네요~^^

2017-04-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