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세계문학의 숲 40
카슨 매컬러스 지음, 서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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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하는 처치나 처방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고,

당신들이 요구하는 것만 잔뜩 늘어놓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내 처신의 문제인줄 알았다.

이런 현상은 어르신이라고 불리우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그 중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일수록 더 심해지는데,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무조건 쏟아 놓으신다.

내가 당신들의 얘길 잘 따라가고 알아먹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으시다.

당신들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고 허리가 아픈지,

어깨를 둥글게 접어 숙인걸 보고 속이 아픈지,

잡아내어 파고 들지 않으면 치료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고사하고 배가 산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한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디가 아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줄 귀가 필요해서 오는 것은 아닐까,

난 그들이 얘기하는 중간에 '네, 그렇군요, 그래서요' 따위의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주면 되는 고수나 관객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흑인이나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 장애인, 떠돌이, 나이 어린 여자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만,

그것까지 얘기하면 너무 복잡해져 버리니, 난 그걸 걷어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

 

"당신은 여기서 내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사람이야."블런트는 말했다. "이틀동안 나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어. 내 말뜻을 당신이 이해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35쪽)

 

그는 정말 수수께끼였다. 싱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사람들은 그를 쳐다봤다. 싱어의 눈을 보면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짐작하지 못하는 일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37쪽)

싱어를 찾아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싱어와 대화를 나누는게 아니다.

신을 찾는 사람들이 신께 답을 구하는게 아니라,

얘기하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듯,

그런 방법으로 싱어를 신격화한다.

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숲을 찾듯 한다.

자신들의 은밀한 내면을 싱어에게 털어놓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걸 원치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벙어리 싱어는 그들이 원하는 안전장치를 갖춘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싱어는 신도 아니고 대숲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얘길 듣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무 얘기든 자신의 얘길 하고 싶다.

자신의 의사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 소리도, 대화도 없었다. 사람마다 혼자인 듯했다. 방금 일어난 사람들과 긴 밤을 끝내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불신이 모든 이들에게 소외를 느끼게 했다.(43쪽)

나도 늘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외롭다고 했었고,

누가 날 일부러 '따'시킨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따'시키려 들었었다.

그러다가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었고, 나를 마구 드러내려고 했었다.

내가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또는 그녀)에게 나를 마구 드러내는 행위들이 그(또는 그녀)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우려가 없다는 확신 때문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보이는 것만 보려들고 보여주는 것만 봐서는 안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는 걸로 미루어 들리지 않는 것까지 상상하려 들며,

행간을 이해한다는 말로 이리저리 마음대로 유추하려 드는 건 아닐까 싶었었다.

그걸 이 책에선, 믹과 포셔의 대화를 빌어 이렇게 얘기한다.

"얼굴이나 표정에 나타난다는 게 아냐. 네 영혼의 모습과 색깔에 대해 말하는 거야."(66쪽)

 

싱어에게는 그들이 함께 지낸 이후 몇 년이 흐른 것 같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숨 가쁘게 두 손을 움직였지만 할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그의 연두색 두 눈은 불탔고 이마에는 땀이 번득였다. 명랑하고 행복했던 옛날의 감정들이 빠르게 되살아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안토나풀로스는 번들거리는 검은 눈을 친구에게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은 바지춤을 심드렁하게 만지작거렸다. 싱어는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방문자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이 자기의 외로움을 잊게 해준다고 했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며 쉬지 않고 말을 하지만, 그들이 자기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싱어는 제이크 블런트와 믹과 코플랜드 박사의 모습을 재빨리 스케치했다. 그러나 친구가 관심 없다는 것을 안 순간 종이를 구겨버리고 그들을 잊었다.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끝내지 못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싱어는 매우 피곤하고 행복해져서 방실을 나섰다.(119쪽)

싱어는 수화를 사용하여 자신의 말을 할 수도, 소통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자신의 얘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 (공통의 관심사를 위하여) 종이를 구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싱어의 입장에서는 듣기만 하고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비극적이었을텐데,

싱어를 찾아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입장에선 그런 싱어가 우월하게 보였다니 아이러니컬 하다.

싱어를 찾았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두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기만 하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싱어를 부러워했다.

그들은 말했고, 그들을 지켜보는 벙어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이유가 두 사람에게 있을까 아니면 싱어에게 있을까? 싱어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을 하지 않으므로 더욱 우월하게 보였다.(167쪽)

 

그런데 싱어를 찾던 사람들은, 흑인 의사를 비롯하여 하나 같이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인데,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소통을 꿈꾸는 상대방의 마음 한자락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니 삶이 부질없게만 여겨진다.

그에게는 두 손이 고통이었다.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이 들어도 꿈틀거렸고 깨어보면 꿈속의 말들을 자기 얼굴 앞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을 바라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갈색 두 손은 날렵하고 튼튼했다. 몇 년 전에는 손을 정성껏 관리했다. 겨울이면 손이 트지 않게 기름을 발랐고, 손톱 각피를 밀어냈다. 손톰은 손끝 모양에 맞게 손질했다. 그는 손을 씻고 다듬는 게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두번 솔로 대강 닦고 주머니에 넣었다.

  싱어는 혼자 방에서 서성거릴 때면 손마디를 꺾고 아플 때까지 당겼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기도 했다. 친구를 혼자 생각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혼자 크게 말하다가 들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면,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수치와 슬픔이 뒤섞여 두 손을 포개 뒤로 감추었다. 그러나 손들은 그를 편히 놔두지 않았다.(255쪽)

 

이 책을 끝까지 읽었고,

예상했던대로의 결말이었지만,

내 예상대로 들어맞은 이 책이 달갑지는 않다.

 

참 좋은 책인 것은 알겠는데,

너무 침울하고 우울한데다가 섬세하여,

그 분위기가 전염될까봐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침울하고 암울한 일로 한가득이니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의 시가 있다.

난 시의 한 글자를 교묘하게 바꾸어 시를 오독하는 걸 즐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살고 싶다.'

'가고싶다'는 왠지 가닿는다는 것에 중점을 둔 말처럼 들린다.

난 섬에 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섬에서 사는 걸 꿈꿔보게 된다.

보대끼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다보면,

먼 우주가 그렇게 열렸듯이,

빅뱅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화학적 케미를 이룰지 누가 알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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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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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17: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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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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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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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2 17:51   좋아요 1 | URL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이 ‘온라인 공간’입니다. 거기에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피상적인 관계로 유지됩니다. 한 번 맺은 관계가 오래 가는 경우가 드물어요.

양철나무꾼 2017-02-23 17:24   좋아요 2 | URL
cyrus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피상적인 관계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머리로는 쿨한 척 그게 되는데,
실상에선 안되니까 문제죠.

내 스스로에게 내가 상처를 주고는,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말이죠~ㅠ.ㅠ

2017-02-22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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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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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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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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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0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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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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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2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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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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