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무에게 배운다 - 몸의 기억을 물리며 사람됨을 길러 온 장인들의 교육법, 그 어제와 오늘 나무에게 배운다 2
오가와 미쓰오 & 이카루카코샤의 제자들 구술, 시오노 요네마쓰 엮음, 정영희 옮김 / 상추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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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 관계의 기본은...

공감, 눈 높이를 맞추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뼈에 사무치도록 내뱉고 듣는 얘기이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 경우엔 아니더라~--;

 

며칠전 자칭 교양 있다는 아줌 두분이 내가 환자를 보고 있는 건너편 방에서 대화를 나누셨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교양'이라고 한단다.)

두분의 얘기는 대화를 넘어 고성방가에 가까웠고,

덕분에 두분이 장착하셨다는 '교양'이라는 것의 척도를,

목소리의 크기나 은행 잔고 내지는 보유 주식의 액면가로  가늠해야 하는 건가...헷갈려 하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볼륨통이 고장 난 라디오 마냥 주파수, 화제만 은근슬쩍 바꾸셨다.

그런데, 묘한 것이,

토막난 주식이며, 불경기, 국정파행, 민심불안, 심지어 남부지방의 호우나 폭우 등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천가지, 만가지 사건과 사고가,

즉 교양녀 두분의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관심사가 죄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충 합의보면 될 것을 가지고 질질 물고 늘어진 탓으로 수렴되는가 싶었는데,

그 과정이 여기 옮겨 적을수도 없는 육두문자와 욕설을 섞어 난분분이다가는,

'님하 잊지마소'하는 '용비어천가'도 아니면서,

때문에 대통령님께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로 정리가 되는가 싶더니,

그렇게 '그네 언니포에버'로 귀결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이바닥 생활을 한게 한두 해가 아니고, 지방 방송을 듣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지라, 

웬만하면 못들은척 하고 넘어가는데,

한쪽을 치켜세우기 위해 다른 한쪽을 깎아내리는것도 정도가 있다고,

치밀어오르는 그 무언가를 눌러 참는데,

어느 순간 숨을 쉴 수 없는 것이 피가 바짝비짝 마르고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이러다가 폭발하겠는거라,

치료비를 내주어 돌려보내 버렸고,

그로 인해서 할부지에게 '모자란 놈'이란 소릴 들었다.

 

서로 사마하는 사이라고 생각되는 이 몇몇에게 하소연 하였다.

나름 개성을 가진 독특한 이들이기에 다양한 반응을 예상하였었지만,

서로 사마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미련한 넘'이라는 반응만은 의외였다.

이 친구는 '무시할건 무시하고 살아야지,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발끈할건 뭐냐?'며,

심지어 미친개라고 생각하라길래, 내가 수의사냐고 툴툴거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맛다'라고 할 때 '사마하다'는 순우리말로 '사무치게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란다.

절실하고 사마하는 소통,

반드시 소통은 일방적인게 아니라 서로 간의 것이다.

 

내가 모자란 것인지, 또는 미련한 것인지, 는 모르겠으나,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건 친구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예를 들어 누군가 '수박은 초록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라고 했을때,

나와 상관이 없거나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안만을 놓고 중립을 지키거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게 아니다.

하지만, 그 수박을 잘라 빨갛고 잘 익은 속을 먹어봤고,

서로 사마하는 사이라면, 그걸 알려 주고 싶을 것이다.

이건 말이나 글로 아무리 자세하고 조곤조곤 설명한다고 한들,

수박을 칼로 뚝 하고 쪼개서 나눠 먹어 보는 것만큼 공감과 소통을 하긴,

즉, 설득력이 있긴 힘들 것이다.

 

이걸 환자에게 적용시켜보면,

허리가 아프다고 할때,

무조건 경락을 적용하여 방광경, 대장경, 삼초경에 처치하면 될텐데, 뭐 그리 복잡하냐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허리가 아프다고 허리에 처치를 하는 것은 대증 요법이다.

 

허리가 아픈 것은 허리 주변 근육의 자체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허리주변의 뼈나 신경 등의 문제 일 수도 있고,

흉ㆍ복부 내장기관의 문제일 수도,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또는 무게중심이 흔들려서 허리가 아플 수도 있으며,

턱관절이 안좋은 경우, 소위 부정교합이라고 불리우는 경우에도 허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며,

여자들의 경우 빈혈과 허혈로 인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환자와의 관계는 이렇게 사사롭고 내밀한 부분까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시할건 무시한다는건,

사사롭고 내밀한 부분은 떼어 두고,

허리고 다리고 어디가 아프든 간에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를 처방한다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뒤에 나오는 인터뷰어'시오노 요네마쓰'에 대한 아래 인터뷰 내용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이토이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인터뷰를 하기 어려울 겁니다. 상대방과 나를 완벽하게 분리한 채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가 도중에 끊어져 버리기도 하니까요.

시오노 씨의 원고는 당사자가 내보이길 꺼리는 건 싣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그것이 저하고도 잘 맞는것 같습니다.

ㆍㆍㆍㆍㆍㆍ

시오노 물론입니다. 사람한테 상처주려고 인터뷰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본인이 싫어하는 것을 싣지 않는 대신, 그 사람이 책을 읽고 하는 말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이차 정보 같은 건 전부 걷어 내 버립니다.

이토이  자기 것이 아닌 건 전부 지운다는 거군요.

시오노 그런 건 금방 눈에 띕니다. 본인은 일부러 공부까지 했는데 그 내용이 빠져 있으니 서운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만ㆍㆍㆍㆍㆍㆍ. 가령 대장장이라면, '매실장아찌 같은 색', '노을을 닮은 색', '귤 알맹이를 싸고 있는 얇은 껍질을 벗겨낸 듯한 색', 이런 식으로 불의 빛깔로 온도를 얼추 가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오면 "칠백팔십오 도쯤 되면 변태점에 도달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속으로는 책에서 본 지식 같은 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변태점에 어떻게 도달하면 됩니까?"라고 다시 물었을때, "딱딱했던 쇠가 부드러운 양초처럼 되지."라든가 "두드리면 형태가 잡혀."처럼, 자신의 말로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 게 듣고 싶은 이야기죠.

ㆍㆍㆍㆍㆍㆍ

시오노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ㆍㆍㆍㆍㆍㆍ"너희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나는 절대 못한다. 머릿 속에 지식이 가득 차 있어서 한마디만 듣고서도 이해하는 것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너희들은 한마디만 듣고서는 이해 못하는 것이 더 많다. 그만큼 자기 지식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돌아오는 대답도 솔직하다. 만약 너희가 만난 할아버지가 십 년 뒤에도 건강하다면 다시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분명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상대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

이토이  그렇죠. 진실이 거짓이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이기도 하니까요.(350쪽)

흔히 우리는 책을 읽었거나 글이나 말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으면 공부하고 배웠다고 하는데,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그리고 인터뷰어'시오노 요네마쓰'도 마찬가지로, 책에서 읽었다던가, 글이나 말로 기억하는 그것만으로는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으로 체득하는것, 다시말해, 몸에 행동이나 요령이 배는 것만을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ㆍㆍㆍㆍㆍㆍ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 몸에 기술이 배는 건 아니거든요. 말해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니까요.ㆍㆍㆍㆍㆍㆍ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모든 것을 말로 배웠고, 말로 기억해 왔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손과 몸으로 배워야만 하는 거니까요.

  예를 들자면, 갑자기 장님이 돼 버린 사람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모든 걸 눈에 의지해 왔는데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죠. 앞으로는 모든 걸 손끝의 감각으로 판단해야 해요. 그런 훈련입니다. 지금까지 몸에 밴 것을 죄다 없애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감각이란 것은 닦을 수 없지요.(157쪽)

이말은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 몸에 밴 행동이나 요령을  걷어내고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새롭고 정직한 감각을 갈고 닦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동안 자기가 눈으로 봐왔던 세계를 걷어낸다는 것은 자기의 눈을 스스로 감아 닫아걸지 않는 이상,

그동안의 자아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손끝으로 판단하는데, 눈이 개입하게 되면 다른 감각이 개입하게 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하고 자기합리화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여겨보지 않으면, 평생 보지 못한 채 모르는 채로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곁에서 매일 보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ㆍㆍㆍㆍㆍㆍ

니시오카 대목장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언가를 모를 때, 모르니까 무조건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질문할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가르쳐 주셨던 것이지요.ㆍㆍㆍㆍㆍㆍ배운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좋은 스승이 곁에 있고, 거기에서 스스로 배우는 겁니다.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것. 대목장의 말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63~65쪽)

호ㆍ불호가 분명한 사람일수록 보지 못한 채로 지나가 버리고 마는게 많다.

동전의 앞면만 보는 사람은 동전의 뒷면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기 쉽고,

밝은 곳에만 있는 사람은 어둠에 대비되는 빛의 고마움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빛의 고마움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어둠도 체감해봐야 하지 않을까?

말이나 글로, 또는 책을 통해서 아무리 자세하고 정확하게 어둠에 대해 묘사를 한다 한들,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감한 어둠에 비할 수 있을까?

"촉감, 감이다. 그걸 알 때까지 날을 갈아라."

"ㆍㆍㆍㆍㆍㆍ."

  말로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습니다. 사물의 원리라는 게 말로 전달되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다들 말이나 문자로 모든 걸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건 일부에 불과하죠. 냄새나 소리, 손의 감촉 같은 것이 문자로 전달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에게는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있습니다.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 목수입니다. 물론 계산을 한다거나 도면을 그린다거나 하는 머리로 하는 일도 있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은 손으로 합니다. 수작업이라는 말이지요. 손으로 연장을 갈고, 나무를 깎고, 얼마나 잘 됐나 손으로 확인합니다. 손끝에 닿는 감촉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눈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라는 것, 이것이 직감입니다. 결국 목수의 마지막은 이 직감을 키우는 것입니다.

학교나 훈련소에서 이런 감각을 키울 수 있을까요? 뭐든 학교에서 다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직감을 어떻게 배우냐고요? 스승한테서 그대로 베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모두 성격도 다르고 지니고 있는 재능도 달라요. 가르치는 쪽이 제자의 성격이나 재능, 습득하는 속도에 맞게 ‘여기까지 해낸다면 다음에는 저기까지 시켜 보자.’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르치고 그걸로 끝,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인간에게 개성이라는 것이 없다면 누구든지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겠지요. 하지만 사람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성질이 서로 다릅니다. 그걸 무시하면 망치게 됩니다. 각각 성질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그 성질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가르치는 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니시오카 대목장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천성이란 게 있다. 진정한 교육이란 그 타고난 기질을 살려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고생을 해야 합니다.ㆍㆍㆍㆍㆍㆍ제자가 되기 전까지, 제자와 스승은 완전한 남입니다. 그런 타인의 성질을 꿰뚫고 그 사람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제대로 된 장인으로 기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승과 항상 함께해야 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무엇을 느끼는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만 하지요.ㆍㆍㆍㆍㆍㆍ 나무 하나하나와 관계를 맺으면서 생겨나는 저마다의 '호흡'같은 것이지요. 전하려 해도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ㆍㆍㆍㆍㆍㆍ이러한 것들이 일과 일 사이를 채우게 되고, 이것이 목수의 '직감'을 만들어 갑니다.

  함께 있는 친구와 같은 것을 보고 동시에 웃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대화도 없고 신호를 주고받지도 않았지만 같은것을 느끼고 똑같이 반응할 때가 있지요. 이러한 것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생겨나지 않는다면 '직감'은 자라지 않습니다. 가르치려 해도 다 가르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100~102쪽)

이게 가능한 관계, 대화나 신호 없이도 공감과 소통이 가능한 서로 사마하는 관계라는건 어찌보면,

손끝의 감각이나 몸에 관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직감에 관한 얘기이고,

 

직감이란 건,

말이나 글을 넘어서는 어떤 것,

손끝이나 몸에 관한 얘기로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극도로 응축시켰을때 남는 어떤 것,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달이고 달이고 달였을때, 졸이고 졸이고 졸였을때' 남는 진액이나 농축물이 아닐까 싶다.

 

인간 개개인으로 따지면 습관이라기 보다는 타고난 천성이나 본성 같은 것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 설명해서는 이해시키거나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말이나 글에 관한 것으로나,

손이나 몸에 관한 것으로나,

어느 한쪽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나서 다다르는 어떤 경지쯤으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그런 의미에서, 하고싶은 얘기가,

교양이라는 것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많이 하거나 문화생활 전반에 관한 단순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악세서리처럼 장착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공감과 소통에서 비롯된다, 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설레임과 갈등 후에 도달하는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

그걸 극복하고 났을 때 진짜 편안한 인간 관계에 도달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만을 공감과 소통에서 비롯된 서로 사마하는 사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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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9-16 12:52   좋아요 1 | URL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고성방가하는 사람들 옆에서 환자를 보셨으니 많이 피곤하셨겠어요. 에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