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3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 아고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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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 불행하게 사는것 같다'라는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내게는 그 연장선 상이 될텐데,

내가 하는 일에, 즉 나의 직업에 회의를 느낄라치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밥말아 먹는 소리를 한다'고들 한다.

 

행복에 겨운줄 알라는 말일테고,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들 하지만,

어떤 때는 나만큼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것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런데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면 직업, 즉 자기가 하는 일에서 흥미를 발견하고 느껴가는 것도 못지않은 행복일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일은 바라보거나 생각하기에 따라 양면성을 지닌,

관점에 따라 천국이 되거나 동시에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일테고,

그러므로 이럴때 필요한건 양면 중 어느 한 쪽면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둘다를 취하거나 어느 쪽도 취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학은 원인치료가 아닌 대증치료를 원칙으로 한다.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약이나 주사를 처방하다보니까,

말 그대로,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인 증상이 발현되는 것을 차단하거나 늦추는 고로,

병을 간과하게 된다.

 

뇌졸중 기왕력이 있는 아주머니 한분이 멀리 인천에서부터  다니신지가,

내가 여기서 근무한 기간만큼이니 한 8~9년 되는 것 같다.

워낙 거리가 멀어 오시는데만 한나절이 걸리시는데도 오시는 성의가 괘씸하니까(?) 웬만해선 맞춰드리는데,

언제부턴가 점심시간을 코앞에 두고 오셔서 서둘러 약처방을 받으시거나 주사만 맞고 쏜살같이 내빼시길래,

새로 생긴 의료기 체험장이나 약장사한테 가지는 줄 알았지,

그걸로도 부족해서 이곳저곳 병원 쇼핑까지 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욜날 봤을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오늘 보니까 입이 돌아가고 혀가 굳어 말이 어눌하신 거다.

 

처음에는 이 지경이 되도록 발견을 못한 내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어쩌지 못하다가,

'맨날 이약 저약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먹는데 왜 이러는거냐?'고 하시는데,

이런 대증처방들이, 어떤 증상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걸 차단시켜 버렸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의료보험제도가 좋은것이기는 하지만,

병원을 이곳저곳, 의료 쇼핑을 하게 만드는 맹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약물의 오남용 내지는 과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라는 것은,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만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쓰여지고, 배경이 된 19세기에 대해,

당시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이가 어떠했는지를, 마차에 비유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굶주림이 마차의 마부였고, 마차를 끄는 속도는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결코 홀로 처지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가파른 모래투성이 길로 마차를 끌고 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마차 위에는 길이 아무리 가팔라져도 절대 마차에서 내려오지 않는 승객들이 가득했다. 이 꼭대기 자리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편안했다. 흙먼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윗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거나 힘들어하는 무리의 공로를 엄정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모두가 마차 자리를 하나 얻어 자손에게 물려주는 일을 생애 최고의 목표로 삼았으므로, 당연히 이런 자리는 수요가 매우 많앗고 경쟁도 치열했다. 이 마차의 규칙상 자리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물려주어도 됐지만, 좌석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사고도 아주 잦았다. 이 자리는 아주 안락햇지만 매우 불안정하기도 했다. 마차가 갑자기 덜컹댈 때면 자리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곧바로 밧줄을 쥐고 자기들이 이제까지 편안히 탔던 마차를 끄는 일에 동참해야 했다.

ㆍㆍㆍㆍㆍㆍ

승객들은 줄을 끄는 노동자들을 내려다보며 격려하는 말을 외쳤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설교했고, 이들의 힘든 운명이 아마 다른 세상에서 보상받으리라는 희망을 주었으며, 한편으로는 불구가 되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줄 고약과 연고를 사는 데 기부했다.(10~11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라는 점을 감안할때,

1888년에 쓰여진 책이 왜 우리나라에 이제서야 번역되어 들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책은 SF소설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science fiction이 아니라 ,

최내현의 그것처럼 social fantasy라고 풀이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왜냐하면, 2000년에 1887년을 뒤돌아본다는 설정으로 쓰여진 이책은,

2014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과학적인 것보다는 사회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설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이상향 추구'내지는 '이상 국가 건설'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향 추구 '내지는 '이상 국가 건설'은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형태를 띤게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10~11쪽의 마차 애기도 그렇고,

ㆍㆍㆍㆍㆍㆍ노동의 분배가 대단히 급진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으리라고 확고하게 믿었다.ㆍㆍㆍㆍㆍㆍ안타깝지만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고, 당시 철학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일에 동정심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ㆍㆍㆍㆍㆍㆍ

자기 같은 사람과 평범한 인간은 본질이 아예 다르다고 아주 확신했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결국 대다수가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 약해져 거리감 있고 철학적인 동정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내가 설명하는 이 시기에는 동시대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 뚜렷했고 나 또한 그런 특징을 보였는데, 이런 무관심은 그나마 이렇게밖에 변할 길이 없다(12쪽)

라는 주인공인 줄리언 웨스트를 통한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이건 어찌보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비슷한 것처럼 보여 씁쓸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에는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이나면 이 책이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리가 없었겠지.

2000년에 깨어난 줄리언 웨스트가 리트박사와 대화를 통하여 하나씩 교육을 받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

'미국식 사회주의'라고 불리우는 '공산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차린 식탁에서 밥을 먹을 권리는 그가 인간이라는 데 있으며, 그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 그의 건강이나 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그 규칙은 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 원칙이 적용된다는 겁니까?"

"그들은 사람 아닌가요?"
"그러면 가장 유능한 사람은 물론이고 불구나 맹인, 병자, 허약자가 모두 수입이 같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박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엄청난 자선이 있다고 하면." 내가 말했다. "제가 살던 시대에는 아무리 열정적인 박애주의자로 놀라 숨이 막혔을 것 같습니다."(120~121쪽)

위의 문단을 보면서 든 생각이, 바로 내가 고민하던 '대증치료'와 '원인치료'의 적절한 안배였다.

일단 증상이 빠른 시일 안에  '속전속결' 해소되지 않으면 환자들은 나았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양질의 치료를 하고 싶어도 환자를 병원으로 억지로 잡아들일 순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그들을 향하여,

한번 눈치보고 시간 내서 오기 힘든 그들을 향하여,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도 모르는 원인 치료만을 고수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통증의 크기와 강도를,

내가 숨막히고 심장이 타들어가는 듯 아파 보기전까지는,

헤아린다고 하면서도 미루어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랬을 때에나 그런 이들을 향하여 원칙을, '원인치료'의 타당성만을 고집할 수 있었다.

 

내가 아파보고 난 후,

하루하루 몸을 움직여야 벌어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용하면 악화되니까 쓰지말라는 말을 더 이상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이 그리 행복한거 같지 않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미국식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지도 않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그런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평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우리는 헌법에서 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차린 식탁에서 밥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여 모든 사람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차등이 적용되는 자유와 평등이다.

 

그렇게 봤을때,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과연 자유민주주의가 맞나?

헌법에만 그렇게 명시되어 있고,

실상은 절대 왕권 국가는 아니었던가?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 불행하게 사는것 같다'라는 말과 관련하여,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런 관계 맺음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전에 나의 이런 생각을 두고,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면서...

국가가 어쩌지 못하는 걸, 왜 니가 나서서 그러는데...?

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뒤에는 아줌의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 배우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

보고 배우고 느꼈으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관계 맺음 속에서,

마주하고 부딪치고 어긋나고 그러면서,

몸으로 경험을 한다.

그것만이 진짜고 값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식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다르게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불행하게 사는것이 됐든 어쨌든, 간에...

정부나 국가나 어떤 힘이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심하고 명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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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8-28 11:59   좋아요 0 | URL
몸으로 벌어 먹고 사는것 정말 중요한것같아요 몸의 소중함이 절로 저도 자꾸 목이 삐끗하면서. 머리까지 찌릿찌리싸고겨느랑이 임파선 이 통증이 을때가 있어서 병원에 가봐야겠다 합니다 나무꾼 언니 우리 같이 건강해요

양철나무꾼 2014-08-31 10:33   좋아요 0 | URL
몸의 소중함은 건강의 소중함으로 이어지죠.
여기서 다시 노동의 신성함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아요.

가봐야겠다...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가보세요~ㅅ^^
하늘바람 님이 건강하셔야 가족들도, 가정도 다 건강하답니다~^^
저도 물론이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