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러니까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나의 언어 습관대로 편하게 얘기하자면,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언젠가  어떤 책을 읽는데,

'심리학자들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생겨난 사랑의 유통기한은 1~2년"라고 입을 모은다. 길게 잡아 2년이 되면 배우자의 외모보다는 정신세계가 더 중요해져서 외모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라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2년이상을 견디어 내면 되는건가 하는 마리앙토와네트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언젠가도 얘기했었지만, 나의 사랑의 선택하는 기준은 좀 독특하여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재력이나 신분도 아니었고,

아름다운 외모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 사람의 글씨체였으니,

글씨체야말로 그사람의 모든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구태여 따지자면, 외모와 정신세계 둘다라고 할 수 있겠다, ㅋ~.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언제였던가, 이명옥의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를 보면서도,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말에 공감을 할 수가 없어서 구시렁거리는 날 보고 사람들은 정말 사랑을 해보기나 한거냐면서 놀려댔었다.

난 그때, 사랑을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것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가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다가...맞이하게 되는 그런 것이어서,

본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고, 어쩌지 못하겠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이명옥은 이일호의 글과 그림 '화염경'을 빗대어서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는 의견에 살을 입히고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갔었다.

 

형체가 없는 영혼은 늘 자신의 몸을 그리워한다. 제몸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포개져야 한다. 사람은 영혼의 빈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영혼의 빈틈에는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살과 살 사이에서 두려움과 환희가 대립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과 살 사이의 빈틈을 없애려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하늘에서 백만 송이, 천만 송이, 억만 송이의 장엄한 꽃비를 내리게 한다. 내 몸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남녀간의 사랑은 영겁회귀를 노래하는 화엄세계의 춤인 것이다.(이일호의 '화염경' 부분, 183~4쪽)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웬 공부?'하면서 손사래부터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공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 인격을 완성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며 축복임을 절감하는데 사랑 만한 스승은 없을 테니까.(185쪽)

 

그때는 숟가락으로 떠넣어 주어도 몰랐던 걸 좀 알겠는건,

이 책 '사랑의 역사'가 제대로 된 학습서여서 인지,

아니면 그 사이 내가 사랑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ㅋ~.

 

사랑을 만나게 되거나, 빠지게 되는 건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옛날에는 '사건의 우연성'에 초점을 맞추었었고,

그래서 공부 따위로 어쩔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사랑을 하다'라는 행위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이 사랑을 몸소 경험했느냐는 물음에는...'모르겠다~(,.)'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지만,

한동안 참 많이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성이 풍부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마음 아플 일이 많았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은 항상 죽 끓듯 끓고 있으니 관심을 가졌었지만,

육신 또는 육체라고 표현되는 몸은 쥐죽은듯 고요하니, 나를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했었다.

햇빛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면서도 해가 떠있을땐 중요성을 잊고 지내듯이,

나의 거죽을 이루는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몸의 어느 특정 부위가 아파서,

그 부위가 도드라져서 나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이 들고나서야,

그제서야 날 이루고 있는 부분 중,

항상 이렇게 저렇게 들끓고 있는 마음만이 아닌, 잠잠한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돌아보게 되었고,

'그동안 날 잘 다독거리고 데리고 살아줘서 고맙다~'라며 무한 땡큐를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공부한다는 건 자신의 온몸으로 통과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아프다는 것과 닮았다.

주체가 자신이어야 하고,

비록 아프더라도 자신의 온몸으로 오롯이 통과하고 났을때,

한뼘쯤 성장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랑의 역사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그동안의 난,

이 나이에 창피한 얘기지만,

'남미영'의 <사랑의 역사> '프롤로그'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또한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엉덩이에 뿔난다는 생각에...사랑을 지레짐작하였고,

사랑은 위험한 것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거나 사랑에 베여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랑 없는 삶 속으로 숨어 들지는 않았었나 돌이켜 보다가는,

책속의,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고, 사랑인 것은 사랑이라고 믿은 결과지요. 사랑은 탐구할 가치가 아주 높은 학문이며, 배우고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ㆍㆍㆍㆍㆍㆍ

세상에는 사랑을 이야기한 수많은 소설이 있지만 사랑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탄이나 미화 혹은 한탄으로 균형감각을 잃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런 작품은 사랑을 보는 우리의 판단을 흐려놓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 하되, 비판과 질문과 탐구의 시선을 잃지 않은 작품을 골랐습니다.(6~7쪽) 

라는 구절을 보면서 '그랬었다'로 이런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한가지 더,

피 흘리지 않기 위해 사랑없는 삶으로 숨어들었던 그 선택 때문에,

난 언젠가 사랑이라는 그 위험한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깨달음과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소설들은 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주는데,

감히 내가 토를 달 수 있는 건 없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흔히 고전이라는 것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책이 담고 있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작품세계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하여도,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는 그게 무엇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을뿐더러,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서른네 개의 작품 중에는 내가 읽었던 책들도 제법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이 책에서 얘기하는 그런 의도로 읽었던것 같지는 않다.

작품이란 보는 시점이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관점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그저 편한 상대가 좋다.

서른네 개의 작품 중, 이런 나의 취향에 가장 부합한 책을 꼽으라면 '제인에어'다.

 그 후로 그는 미녀도 아니고 키도 작고 어린애처럼 왜소한 체격이지만 자기 앞에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 아는 게 많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문장 안에 담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가씨, 자신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가정교사 제인을 좋아하게 된다.

 

  난 당신을 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껴요. 내 왼쪽 늑골 밑의 어딘가에 실이 한 오라기 달려 있어서 그게 당신 작은 몸의 같은 곳에 똑같이 달려 있는 실과 풀리지 않게끔 단단히 묶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ㆍㆍㆍㆍㆍㆍ. 그래서 당신이 먼 곳으로 떠나버리면 그 실이 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체내에 큰 출혈이 일어날 것 같소.(148쪽)

 

또 한가지,

이 책에 언급된 서른네 개의 작품들과 관련하여,

사랑을 공부하거나 배우는 건 책이나 독서를 통하여서가 아니고,

우리가 몸으로 경험한 것만이 그렇더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배우는데 있어서, 머리가 아닌 몸의 법칙이 적용되는 몇 안되는 예이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그렇듯 너무 늦은 때란 없다, ㅋ~.

  

난 그동안 배움이랑 관련된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사랑을 배우는 것과 관련하여선 후각이나, 청각, 촉각, 내지는 공감각 등의 예민한 감각도 아니었고,

사랑을 하는 것과 관련된 몸이었다.

온몸 구석구석이었다.

난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사랑을 배웠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더라.

암튼 사람의 기억력은 머리와 연관된 것만은 아니라는걸 몸소 체험했다.

그러니, 사랑의 유통기한도 기억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싫증을 잘 느끼고,

평상시 언어 습관대로 얘기해서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깜박깜박한다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기억은 몰라도,

몸으로 하는 기억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일테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인지,

아니면 육체적 관계에만 탐닉하면 된다 인지~(,.)

 

근데, 정말 편안한 관계는...

힘들게 다다르게 되는 육체적 합일에서 느끼게 되는게 공감이나 소통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런 관계를 지나고 난 후에 느끼는 충만함 속의 텅빔, 가득참 속의 성김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허허로움이 아닐런지, ㅋ~.

 

같이 엮일 얘기는 아니어서 망설였는데,

알라딘 서재의 달인이기도 하신 '된장' 님이 책을 내셨나보다.

매번 책을 받기만 하고 게을러 리뷰를 올리지 못해, 마음의 빚이 크다.

부디 판에, 쇄를 더할 수 있도록 대박나시길 빈다, ㅋ~.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최종규 글.사진 / 숲속여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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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랑이 참 좋은 거 같아요.
그게 꼭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의 사랑일 수도록 있지만 정신적인 서로의 소통도 사랑일 수 도 있고 말이에요.
ㅎㅎㅎㅎ 뭐 제가 남녀 간의 사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은 배워야 한다는 것은 많이 공감하는 글이에요.
아무런 준비 없이 다가가면 놀라는 것이 사랑인 것 같아요.
하~ 사랑이라 ㅋ

양철나무꾼 2014-07-17 18:19   좋아요 0 | URL
여기서 '밑줄 쫙'쳐야할 부분은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예요.
교주님,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랍니다.
자기 자신도, 타인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