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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기억들
마리야 스테파노바 지음, 박은정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1월
평점 :
#엄마의북캉스 #러시아소설
고모 '미샤 갈카'의 죽음으로 고모의 집을 정리하면서 고모의 삶을 시작으로 윗세대의 가족들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가족의 논픽션형태를 지닌 소설이다. 가족구성원들을 소환하며 서사된 문장들에서 시대를 함께 읽을 수 있다.
다양한 기록물로서 가족들의 사진, 편지, 일기, 기사 등을 통해 과거에 남은 그들의 역사를 꺼낸다. 기록과 기억에 대한 의미와 본질에 대해서 사색하는 재미도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다.
유대인과 러시아 역사에 대한 조금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책!
기억모음집 같은 이 책은 기억이 기억을 찾아주고 기억이 기억을 숨기는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책의 제목을 너무 잘 선정한듯!
#기억의기억들
#마리야스테파노바
#복복서가
P.478 그녀는 재빨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전쟁이 시작되고 첫 몇 주 동안 모스크바는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였고, 그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따. 츠베타예바의 열여섯 살 난 아들 무르의 일기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희망과 절망의 그림자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세히 기록했다. 끝까지 살아남으리라는 희망, 잔해더미에 깔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도망칠 것에 대한 두려움, 남겨질 것에 대한 공포, 가능한 모든 상황을 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대화.
P.482 내 여행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내 가족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다는 것. 나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기록보관소에서 기록보관소로, 거리에서 거리과, 내 사람들이 이 땅에 남긴 발자취를 찾아 돌아다녔다. 나는 그네들과 시공을 일치하려고 노력하면서 무언가 그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길 바랐다.
P.505 모든 일화는 한 지점으로 압축된 일종의 소설이며 그중 어느 것이든 현실의 거대한 크기로 부풀리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의도한 의미가 너무 커서 형식에 맞추려는 시도 조차 할 수 없을 때는 그 반대의 경우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P.508 엄마 친구가 표현하고 싶었던 그 의미는 사실 새로운 시대의 언어에는 맞지 않았다. 아마도 '긍정적인 여결'은 구시대적인 미덕과 덕목을 갖춘 다른 세기의 사람, 살아 있는 시대착오를 의미했을 것이다.
P.517 이 모든 일은 이른바 대중적인 영역에서, 공연을 위해 준비된 이 국제적인 대도시의 공간에서 일어났고, 벌겋게 달아오른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도시는 갑자기 '내 사람들'과 '남의 사람들'로 나뉘기 시작했다.
P.536 나는 콜랴 할아버지가 조용한 피아노 앞에 앉아 몇시간이고 어머니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끝없는 대화의 조각조각들을 지금도 재현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특별히 귀를 기울여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똑같은 이야기가 수십 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P,542 그의 삶은 이야기의 조각조각, 중간에 툭 끊어졌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다양한 기록들, 취업 기록, 군인 신분증, 그리고 사진들을 모아 조립해야 한다.
P.555 온전한 한 권의 책은 대개 자기 교육에 좋은 훈련이다. 책을 구성하고 부지런히 보완한 사람은 자신을 영리하지만 재갈을 물리고, 조련하고, 행동하도록 밀어붙여야 하는 일종의 게으른 가축이라고 여겼다.
P.567 나중에는 마음을 바꿔 묘지는 여전히 싫지만 이곳에 있는 기념물은 모두 사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요."라고 아들은 말했다. "그러면 아무도 아무것도 잊지 않을 테니까요."
P.569 그녀는 책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미루고 또 미룬다. 왜냐하면 그런 책을 쓰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이 성장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P.577 기억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여정의 목표가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결과였다. 삶은 비밀처럼 기억을 만들었고, 기억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아무도 괴롭히지 않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졌다.
P.587 한시인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시인은 잊는다는 건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