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 역사를 움직인 10번의 결정적 순간
박원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시대를 상징하는 10개의 재판

 최근 취미는 출판사 이벤트 헌팅. 이런 걸 읽으라고 하지 마.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지만 꽤 괜찮은 책이 걸릴 때도 있다. 진짜다. 아부성 발언 아니다. 할 이유가 없잖아. 출판사 이벤트 떨어졌는데 정말 읽고 싶은 책이면 회사 자료실을 귀찮게 하든지 세종시를 귀찮게 하든지. 국가를 귀찮게 하면 된다.
 여기서 웃음 포인트는 내 지갑과 남편 지갑을 귀찮게 할 생각은 딱히 없다는 것. 그래도 이번 달에 벌써 두 권을 질렀다. 안 읽어서 문제지. 쌓인 책 볼 때마다 속이 살짝 끓고 있다. 문제는 이 소리가 어째 매번 반복된다는 것.

한 달에 한 번 법 관련 서적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명히 시험 떨어졌을 때만 해도. 법 따위 개나 줘. 내가 두 번 다시 법과 관련된 인생 살면 내가 사람도 아니다. 그랬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럭저럭 괜찮아지는 것 같다. 인생 딱히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뻔뻔해진다. 그리고 법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잖아. 처음부터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웠다.
 하여튼 그리하여 ‘세기의 재판’. 법 관련 서적 찾겠다고 도서관 헤맨 건 아니고. 반납대를 기웃거리는데 얌전히 앉아 있더라.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고 한겨례 출판사를 좀 많이 원망했다.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원제 그대로였다면 아마 절대 이 책 쥐지 않았을 거다. 쳇쳇. 책이 나쁜 건 아니고. 저자가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시대를 대변하는 총 10개의 재판이 나온다. 알고 있던 사건도 있고 모르던 사건도 있고. 알고 있었지만 색다른 기분으로 읽은 사건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다른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구경하는 게 취미다.
 소크라테스의 재판. 잔다르크의 재판. 마녀 사냥.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은 워낙에 유명하니 다들 알 것 같고. 소크라테스의 재판 받는 장면은 플라톤의 ’변론‘에 나오는데. 왜 피고인에게 변호사를 의무적으로 붙여 주어야 하는지 절절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진짜다. 소크라테스 재판받는 것 보다 보면, 재판장 뛰어들어가 소크라테스 멱살 잡고 나오고 싶어진다.
 이건 누가 봐도 재판을 받겠다는 게 아니다. 어차피 결론은 뻔하니 하고 싶은 말 다 하겠다는 거지. ’보도지침‘에 나오는 재판 기록이 떠올랐다. 당당한 3명의 피고인들. 하지만 그 당당함은 끝을 각오한 사람의 당당함으로만 보여 못내 씁쓸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가장 끌었던 건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관련된 재판.
 
"난 또 뭐라고. 겨우 그런 말인가요? 그건 우리가 매일 하는 것 아닙니까?"

읽지도 않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대한 재판“에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외설이 금지되어야 하는 모든 이유를 고민했을 뿐.
 
 청소년 보호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인은 대체 왜 보호하겠다는 건가. 정상적인 성의식? 그 정상은 대체 누가 정하는가. 보편적인 사람의 보편적인 성의식? 그 보편적인 사람 자체가 허상 아닌가.
 결국 국가는 단순히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의 성의 자유를 억압해버린 뒤, 이것 동의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의식이 없는 것. 낙인찍어 버린 것 아닌가. 그런다고 해서 국민이 순순히 보호를 당해주나.
 법을 어기는 게 당연해져 버리고. 국가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고. 뭐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성에 대한 이중성을 깨뜨리려는 노작"

 즐거운 사라가 정말 그런 작품인지 모른다. 그 뒤에 나온 마광수 작품은 자기 검열과 자기 연민이 뒤범벅이 된, 야하지만 야하지 않은 책이었던 터라. 다만. 내게 한국의 10대 재판 꼽으라고 하면, 무조건 이것만큼은 들 생각이다.

 저자는 잠시 놓아둔다면, 이것저것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책이다. 법정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법이라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옳고 그른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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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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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괴짜 할아버지

 ‘츠바키 문구점’의 남작. 제멋대로고 오만하고. 하지만 싫지 않다. 사실 속정 깊은 따뜻한 사람이니까. 단순히 표현이 서툴 뿐이니까. 주인공에게 장어덮밥 사주며 츤츤거리는 모습. 실례지만 귀여웠다.
 내 눈 앞에 있다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화를 냈을 텐데. 소설 등장인물이 이러면 매력적이다. 이런 캐릭터가 계속 소설에 등장하는 건, 나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려나.

 극단적인 원리원칙주의자. 말은 통하지 않고 고집은 세고. 무뚝뚝하고. 하지만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진국인 매력적인 캐릭터. 오베.
 한눈에 반해버린 아내를 잃은 뒤, 혼자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을 결심한 오베의 옆집에, 4인 가족이 이사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좌충우돌 일상극.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들을 보며 웃어대는 재미도 있다. 작가의 필체가 경쾌하고, 일어나는 사건들도 고만고만하기에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눈먼 암살자’를 읽고 무거운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았다. 전자책 기준 500페이지가 넘었으니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책 자체가 가볍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절대 ‘눈먼 암살자’를 읽은 뒤여서, 여간한 건 전부 참아줄 수 있는 정신상태가 된 것 아니다. 나는 결백하다.

분명 가벼운 책이지만, 읽다 3번 정도 울었다. 엄격한 원리원칙주의자의 사랑이 너무 지고지순해서.
 네이버 웹툰 ‘개를 낳았다’는, 주인공과 동명이가 만날 때까지는 무채색으로 진행된다. 동명이와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기 위한 기법으로서.
 이 책에서, 오베의 아내는 몇 번이고 오베의 유일한 ‘색’으로 묘사된다. 무채색 오베를 대신한 눈부신 색. 그 아내가 죽은 뒤, 오베의 주변은 다시 무채색으로 물들어버린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 소설에는, 오베와 아내의 첫 만남부터 아내의 죽음까지 틈틈이 묘사된다. 무뚝뚝한 남자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미래의 아이를 잃고 무너진 모습도. 장애인이 된 아내를 위해 집을 개조하고 경사로를 만드는 모습도.
 처음에는 까칠하고 괴팍한 할아버지였는데. 이쯤 되면 그 괴팍함과 까칠함이 이해가 된다.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도가 마땅하지 않았겠지. 그렇다고 해도, 현실에서 만나는 건 역시 사양하고 싶다.

마음에 든 장면이 여럿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동성애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오베의 태도. 그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주고, 아웃팅 때문에 곤란해진 그를 집에 아무 말 없이 들여 준다.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을 잘 묘사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스웨덴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글을 엮은 소설이라고. 일본 소설 아니면 영미 소설 위주로 봤는데. 스웨덴에도 멋진 작가가 있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찾아볼 작가가 또 늘었다.
 뻔한 내용인 건 맞다. 그래도 뻔하더라도. 가볍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소설이 읽고 싶다면 어떨까. 종이책으로 읽든, 전자책으로 읽든, 분명 즐거운 시간이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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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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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책과 음식 위주 가끔은 풍경. 인스타그램을 책으로 도배한 사람들 의외로 많더라.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국, 독일. 그 외에도 더 있는데, 언어를 몰라 포기했다. 중국어 다음에는 러시아어를 할까.
 주로 광고하시는 분들이 좋아요 찍어주고 가시지만, 가끔 출판사에서 찍어줄 때도 있다. 북로드에서 ’죽음을 선택한 남자‘ 마케팅 삼아서 찍어주고 갔더라. 그때, 네이버 포스트 열어보면 안 되었는데. 쳇.

 영미 소설은 50% 정도 확률이다. 이것 괜찮네. 감탄할 확률 절반. 뭐 이딴 게 다 있어! 집어던질 확률이 반. 고를 때마다 진짜 심사숙고하는데. 마케팅하시는 분, 소개를 참 재미있게 하시는 거다.
 처음에는 괜찮을까. 다음에는 괜찮겠지. 마지막에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협찬 세종시.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남자가, 눈앞에서 기묘한 살인 사건을 본다. 범인과 피해자는 분명하다. 하지만 동기는 알 수 없다. 그 상황에서 너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 손을 떼라는 다른 기관의 지시까지 떨어진다.
 재미있었다. 책이 두껍다 보니, 가끔 루즈해지는 경향도 없지 않았지만. 이야기 규모가 크고, 계속해서 숨은 사실이 드러나다 보니, 이 일은 또 어떻게 결론이 날까. 두근거리며 지켜보는 재미가 있더라.
 종종 주인공 목숨이 위험해지는 사태도 발생하는데. 이런 장르는 여간해서는 주인공 목숨은 해치지 않는 터라 안심하고 봤다. 이 책이 연재물이라면, 어째, 어째, 걱정하며 봤겠지만. 연재물이면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말이 매우 짜증 났을 것 같다. 계속되는 반전. 계속되는 위기. 어째 소설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상황. 어쩌면 이 책, 잡지 등에 우선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엮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소설에 대해 좀 더 늘어놓고 싶지만, 이 이상 말하면 전부 스포일러여서. 그래도 아주 조금만 말해본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름다운 흉기‘가 슬쩍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글펐던 소설. 이용만 당한 여주인공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남자들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뒷맛은 참 썼었는데. 다행히 이 책은 뒷맛이 매우 깔끔하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서 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 고객이 자신의 상품을 신뢰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고객을 설득할 수 있다고.
 네이버 포스트도 네이버 포스트지만, 댓글에 달린 답글에도 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서. 그렇다면 속는 척 넘어가 줘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넘어가길 잘했다.

이 책, 시리즈물로, 2권의 책이 이미 출판되었다고 한다.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이 독특한 주인공에 대해 좀 더 알아 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영미 소설, 그 중에서도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듯. 북로드 마케터가 장담하는 것처럼, 실망하진 않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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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합리적 이기주의가 좋다 - 복잡하고 치사하고 엉터리 천지인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미멍 지음, 원녕경 옮김 / 다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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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센 중국 언니의 통쾌한 조언

 다연 출판에서 진행한 책 설명만 보고 받고 싶은 책을 고르라는 매우 독특한 이벤트. 경쟁률 높더라. 심지어 다들 얼마나 정성스럽게 댓글을 다는지.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의외로 당첨되었다.
 나 은근 당첨운 좋은지도. 데헷.

 전주에 가면 주로 먹는다. 먹고 먹고 또 먹는다. 세종에서 열심히 덜 먹은 것 전주 가서 채우고 온다. 이러다 밀면 툭 굴러갈지도. 이 책은 카페 갈 때 들고 가서 읽었다. 그냥 그러고 싶더라고.

 제목과 내용의 상관관계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합리적 이기주의자 대체 어디 나오지? 열심히 고민하다 포기했다. 세상에는 포기하면 편한 일이 많다. 제목과 내용의 연관성이 크지 않을 때, 연관성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것 역시 거기에 해당한다.
 사실 장르도 잘 모르겠다. 자기계발에 대한 조언은 많이 나온다. 인간관계. 외모 등. 하지만 자기계발서로 분류하는 건 내키지 않는데. 저자 미밍의 개인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터라.
 그래서 수필로 분류하기로 했다. 중수필의 경우 설득 논조를 띠기도 한다. 사실 잘 모를 때는 수필로 분류하는 게 최고다. 모든 글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거잖아. 컴퓨터로 쓰지 않았을까, 사소한 문제는 넘어갔으면 좋겠다. 데헷.

 다양한 부분. 외모. 인간관계. 가족관계. 부부관계 등에 대해 거침없이 글을 써 내려간다. 신문기자 경험과 다양한 독서 경험 덕일까. 틈틈이 터지는 위트.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문체.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곁들였기 때문에 설득력도 높다.
 부럽다. 나도 저런 글 써보고 싶다!
 질투 때문에 아예 책 자체를 피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질투를 살짝 접어두기로 했다.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할 텐데 나 혼자 열 받아 있는 것 우습기도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쓰는지 보는 건, 내게도 도움이 된다. 저자처럼 질투를 원동력 삼아 열심히 살 생각까지는 없지만. 귀찮다.

 말하기 전에 몇 번이고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다.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가 아니다. 다르다는 틀리다가 되어, 배척받는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팬에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 글에는 더 수위 높은 악플이 줄줄이 달린다. 감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이유. 가수는 다치면 안 되지만, 그 사람은 다쳐도 되는 이유,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쓸데없이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 외면해버리는 수밖에.
 그래서 이 책 좋았다.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하고 싶은 말 툭툭 내뱉는 것 같아서. 다들 아는 이야기다. 단지 말로 하는 게 꺼림칙해 입 안에 넣고 있을 뿐. 그래도 활자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다. 아아. 그래.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공감하고. 힘을 얻고.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쌓였는데 차마 말할 수는 없을 때, 나 대신 말해주는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한국, 일본, 미국도 모자라서 중국 책에서까지 위안을 찾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슬쩍 스쳐 지나가기는 하지만.
 에세이 류는 거의 안 읽었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타인의 생각에도 공감 가능한 이 장르도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요즘은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나간다는데, 확실히 이유는 있구나,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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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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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진 파국을 향한 스산한 여행.

 

 시녀 이야기. 유명한 소설이라 읽어본 사람 많을 듯하다. 난 안 읽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줄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우울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줄거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 이야기의 저자인지 알았으면, 절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 책 근처도 안 갔을 텐데. 우울하고 씁쓸하고 결론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도 끔찍한데, 책에서까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2000년에 나온 소설이고, 한국에서도 몇 번 발간되었으니, 이제 와서 줄거리를 말한들 특별히 스포일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반전이라고 할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작가가 대놓고 단서를 흩뿌리는데.

문제는 우울하단 말이다.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 스산한 심정이. 사실은 그런 소극적인 방법 쓰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던 그때 시대 상황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제대로 된 복수는 하지도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마저 빼앗긴 채, 쓸쓸이 늙어가 버리는 주인공도 전부. 다 말한 기분이 들지만 상관없나.

아무 것도 몰랐다. 소중한 사람이 망가져 가는데, 자신은 가만히 있었다. 상황이,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죽인 건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 들지 않을까.
 그래서 눈먼 암살자가 아닐까.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녀.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죽음을 흩뿌리고 있으니. 원한 건 아니더라도. 바라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그렇게 몰아넣었다고 자책해서.

1920년~1940년. 대공황. 사회주의. 제2차 세계 대전. 이 시대 배경을 알고 읽으면, 느끼는 게 많을 듯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떠했으며, 왜 이렇게밖에 상황이 되지 않았는지.
 개인과 사회의 갈등. 그 사이의 내적 갈등을 잘 드러낸 작품. 작가 필력도 괜찮고 생각해 볼 여지도 여럿 있으니 이런 소설 좋아한다면 분명 나쁜 시간은 아닐 터다.
 여성주의 작가로도 유명하니, 여성주의에 흥미 있어도 한 번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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