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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평점 :
정해진 파국을 향한 스산한 여행.

시녀 이야기. 유명한 소설이라 읽어본 사람 많을 듯하다. 난 안 읽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줄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우울한 느낌이 너무 싫어서, 줄거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 이야기의 저자인지 알았으면, 절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 책 근처도 안 갔을 텐데. 우울하고 씁쓸하고 결론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도 끔찍한데, 책에서까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2000년에 나온 소설이고, 한국에서도 몇 번 발간되었으니, 이제 와서 줄거리를 말한들 특별히 스포일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반전이라고 할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작가가 대놓고 단서를 흩뿌리는데.
문제는 우울하단 말이다.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 스산한 심정이. 사실은 그런 소극적인 방법 쓰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것밖에 허락되지 않았던 그때 시대 상황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제대로 된 복수는 하지도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마저 빼앗긴 채, 쓸쓸이 늙어가 버리는 주인공도 전부. 다 말한 기분이 들지만 상관없나.
아무 것도 몰랐다. 소중한 사람이 망가져 가는데, 자신은 가만히 있었다. 상황이,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죽인 건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 들지 않을까.
그래서 눈먼 암살자가 아닐까.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녀.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죽음을 흩뿌리고 있으니. 원한 건 아니더라도. 바라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그렇게 몰아넣었다고 자책해서.
1920년~1940년. 대공황. 사회주의. 제2차 세계 대전. 이 시대 배경을 알고 읽으면, 느끼는 게 많을 듯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떠했으며, 왜 이렇게밖에 상황이 되지 않았는지.
개인과 사회의 갈등. 그 사이의 내적 갈등을 잘 드러낸 작품. 작가 필력도 괜찮고 생각해 볼 여지도 여럿 있으니 이런 소설 좋아한다면 분명 나쁜 시간은 아닐 터다.
여성주의 작가로도 유명하니, 여성주의에 흥미 있어도 한 번 읽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