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건너편 작별의 건너편 1
시미즈 하루키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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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순간, 죽음. 우린 모두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알지 못한 채... 몇 년 전부터 웰다잉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천착하게 되었다. 자꾸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죽음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가 종국에는 ‘후회’라는 낱말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볼걸,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도식적인 답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책 <작별의 건너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이다. 가제본이라 세 편의 에피소드만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주인공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가족이었다. 작가 ‘시미즈 하루키’는 내가 했던 생각에서 일보다는 사람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쓴 듯하다. 주인공들도 내가 우려했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더라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했을텐데 말이다.

작별의 건너편에서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현세에 있는 존재와 한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2.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다.

3. 평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고, 다른 이와 대화도 할 수 있다.

4. 단,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는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존재’일 뿐이다.

5.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현세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작별의 건너편’으로 강제 소환된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만나고 싶어한 이는 가족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으므로 직접 대면할 순 없다. 그러면 사라져버리니까.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날 것인가?

그들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따라가 보았다.

세 편의 에피소드가 길지는 않다. 그들의 사연도 평범하다. 좋은 일을 했지만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아야코, 평생 부모를 오해했던 히로카즈, 그리고 사소한 다툼으로 집을 나왔다가 죽은 고타로(반전 있음)는 모두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상가능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연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에게 대입할 수밖에 없다. 만약 죽은 후 내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만나고 싶은 이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단박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럿의 얼굴이 스치기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주인공들과 비슷한 말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후회없이 사랑하며 살자는 다소 진부한 내용임에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기 때문이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고 있으나 유사성과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일을 쳐내면 내일 또다른 일이 눈 시퍼렇게 달려들고, 이제 인생의 과업 하나를 무사히 넘었나 싶으면 새로운 과제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죽어야만 끝날 터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으니 견뎌내는 게 아닐까. 그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잠들자. ‘잘 자’ 대신 ‘사랑해’라고 말해야겠다.

안내인 사연 상상해 보기


안내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반지를 찾아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작별의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현세에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애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가 자신의 절친과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고 저도 모르게 애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안내인을 쳐다봤고 안내인은 연기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했지만 안내인은 어쩐 일인지 작별의 건너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후회했고, 화가 났고, 제 친구와 그녀는 왜 그러고 있었는지 알아야했다. 그녀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그는 안내인이 되었다. 안내인은 단 맛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조지아 맥스 커피를 좋아했던 그녀를 떠올리며 마시다보니 점점 맥캔에 중독되어갔다. 그녀가 사는 동네를 안내하게 되길 기다렸지만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안내인을 한 지 7년이 넘었을 즈음 드디어 그녀가 살던 동네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안내인은 그녀가 그곳에 계속 살고 있길 빌었다.

6살 여자아이를 안내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엄마가 일하는 커피숍에 가겠다고 했다. 안내인은 아이에게 단단히 일렀다. 엄마 앞에 나서서는 안 되며 엄마를 불러서도 안 된다고. 그렇게 둘은 커피숍 앞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는 출근하는 엄마를 보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는 엄마 품으로 달려들었고 둘은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러나 1분도 채 되지 않아 아이는 사라졌다. 안내인은 두 눈을 세차게 비볐다. 아이의 엄마는 안내인의 그녀였고 여자아이는 자신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 딸을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안내인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녀와 딸이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동네에서 계속 안내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먼 발치에서 지켜볼 뿐이지만, 그는 오늘도 망자와 함께 그녀의 동네로 향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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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잠자리 - 2020 보스턴 글로브 혼북, 2020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s)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0
케이슨 캘린더 지음, 정회성 옮김 / 사계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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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서상 청소년 문학부문 수상작, <킹과 잠자리>의 사전 서평단으로 당첨되었다. 본책의 절반 분량으로 편집된 가제본이라 후반부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책의 주제는 앞부분에서 확인 가능했다.


왕과 잠자리라? 둘이 무슨 관련이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킹스턴인데 스스로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모두들 킹이라 부른다. 책의 시작은 킹의 형인 칼리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장례식장에서 킹은 잠자리를 발견하는데 형이 잠자리로 변했다고 믿는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소설은 흑인 청소년 킹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청소년기에 직면하는 정체성의 혼란,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를 그리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남부 루이지애나이고 주인공이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전면에 드러난다.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부분은 동성애다. 친구 샌디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킹은 친구들에게 까발린다. 킹은 아빠와 형으로부터 흑인임에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늘상 들어온 한편 동성애에 대한 혐오의 관점도 익히 들으며 살았다.


아빠는 킹에게 내면에 가진 큰 힘으로 세상을 네 뜻대로 굴복시킬 수 있다면서 그래서 이름을 킹이라고 지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나라는 너를 두려워한단다. 세상은 너를 두려워 해. 앞으로 죽 그럴 거야. 마찬가지로 세상 그러니까 그쪽 사람들은 맬컴을 두려워했어. 그래서 총을 쏴서 죽였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어. 그쪽 사람들은 너를 두려워할 거야. 그리고 두렵기 때문에 너를 해치려 할 거고. 너는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해."


조심해야 한다며 너까지 잃을 순 없다고 한 아빠의 말은 칼리드의 죽음을 유추 가능하게 한다. 인종주의자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는데 킹의 친구 샌디의 아빠가 보안관이고 KKK단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킹이 형을 그리워하며 집과 학교를 오가는 일상 사이사이에 킹과 형의 대화를 집어넣었다. 지난 날의 회상 같기도 하고 잠자리로 변한 형과 이야기하는 환상처럼 그려진다. 이 대화는 형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이며 흔들리는 킹의 심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안전 바의 역할을 한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라지만 그들의 모순이나 이중성을 눈치 채는 시기가 오면 혼란스러워진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나침반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한다. 킹에게 형이 그런 존재이다. 아마도 소설 후반부에 칼리드 죽음에 대해 자세히 드러나고 킹이 잠자리를 그냥 잠자리로 보아 넘길 수 있게 되리라 예상해 본다.


"우리는 하늘의 모든 별이자 하나하나의 별이야. 별들은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


형이 킹에게 해준 저 말은 인간은 소우주와 같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반짝이는 존재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형은 동성애자 샌디를 멀리 하라고 했지만 저 말 속에는 개별 존재 모두를 긍정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소설의 두 가지 소재, 인종차별과 동성애는 차별이라는 화두에서 항상 뜨겁게 다루어지는 것들이다. 작가는 흑인 주인공과 백인 성소수자를 친구로 내세워 청소년 독자들에게 말한다. 천부인권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각자를 소중하고 빛나게 가꾸어야 하며 타인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음을. 물론 성인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자칫 요란하고 선정적으로 흐를 수 있을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잔잔하게 그려냈다. 어쩌면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에게 고요히 생각할 여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후반부에서 격정적으로 휘몰아칠 사건이 나오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리뷰를 읽고 뒷 내용이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위 리뷰는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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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풀꽃 향기 - 나태주 시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나태주.나민애 지음 / &(앤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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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글을 좋아한다. 작년에 모자가 주고받은 서간문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를, 이번에는 부녀 사이의 편지글을 읽었다. <나만 아는 풀꽃 향기>는 시인 나태주와 문학평론가 나민애가 주고받은 편지다. 전자는 아들의 진로 문제를 주제로 전체가 편지글이었고, 이 부녀간의 편지는 나태주 시인의 개인사를 엿볼 수 있었다. 주고받은 편지는 부록으로 마지막에 수록했고 3장에 실린 나태주 시인과 나민애 평론가의 에세이는 부녀간의 애정을 과시했다. 분량은 3대1 정도로 나태주 시인의 에세이가 많았는데 딸을 향한 사랑이 담뿍 담겨있다. 시인과 문학평론가라는 수식을 떼고 보자면 여느 집 부녀와 별다를 것 없을 이야기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질투심이 솟았다. 어느 서평가의 남이 잘 쓴 글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는 고백과 같은 심정이면 좋으련만, 그건 아니다. 나는 그이의 발가락 때 만도 못한 수준으로, 그저 끄적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속 좁은 내 성정을 표현할 말조차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저렇게 부모자식 간에 편지를 주고 받은 걸 보니 그냥 부러워 죽겠는거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이 힘든 길을 가겠다는데 냉큼 그러라고 하겠는가. 어느 아버지가 딸을 귀히 여기고 아까워하지 않겠는가. 모든 부모는 다 그러할진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는 것이다.


마음은 굴뚝 같아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가 없다. 어느 정치인 때문에 항간에 유행어가 되어버린 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내게 똑 맞다. 올해 친정아버지 팔순을 맞아 재작년부터 생각해온 것은, 아버지의 삶을 글로 옮겨보자는 것이었다. 생각만 했지 어영부영 2021년을 보내고 작년 이맘 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거의 잊고 지냈다. 올해 초가 되어서야 정신이 들어, 아버지와 한 달에 한 두 번이라도 만나 아버지 인생 이야기를 들어드리려고 했다. 아버지와의 데이트! 꽤 효녀 코스프레 같다는 생각에 괜스레 낯뜨거워졌지만 이 역시도 생각만 했을 뿐... 반년이 다 되도록 아무 짓도 안 하고 있다. 변명의 여지없이 게을러터진 인간이다.


<나만 아는 풀꽃 향기>를 읽으며 공감과 감동보다는 자책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는 꼭 실천으로 옮겨야한다. 첫 딸인 나를 낳고 어떠셨는지, 어린 자식과 아내를 데리고 낯선 부산으로 왔을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셨는지, 집을 마련할 돈이 없어 천막을 치고 살았던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 들어보고 싶다. 이 책은 나태주 시인의 가난한 신혼 시절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유명세는 나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었다. 시인은 가난이란 단어와는 영 상관없을 거라는! 만석꾼 조부를 두지 않고서야 70~80년대 필부필부들의 살림이 넉넉할리 없었을텐데 말이다.


가난한 초등학교 선생이자 시인이었던 아버지 나태주는 딸의 성장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눈에 그린 듯 당시를 서술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태어나던 날의 상황과 학교 다니던 내내 모범생이었던 딸, 대학원 공부와 살림과 육아에 얼마나 힘이 들지, 한마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향한 사랑이 이 한 권에 담겨있다. 딸이라면 누구나 이 글들을 읽으며 자신과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태주 시인이 소환한 딸의 출생과 성장 전반을 자신에 대입해 볼 것이고, 사이사이 자신의 아버지가 등장하게 될 터이다. 아쉬움과 원망의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면 좋겠다. 독자에게 ‘나도 아버지께 편지 한 통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값어치를 한 것이다.


시인은 가난해서 집 한칸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으나 작은 것에 감동할 줄 아는 감성을 딸에게 심어주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던 감나무 안집에서 초여름 깊은 밤을 기억하는 시인의 심상은 그저 아름다웠다.


초록빛 머금은 바람이 감꽃 향내를 머금은 채 들어오면 자고 있는 식구들을 깨워 함께 맡아 보자고 말하고 싶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자욱한 안개가 되어 떼를 지어 밀려들어 왔지만 아내는 잠은 잘 온다고 말했다.



이 책에 실린 시 중에 나는 ‘행복’을 읽으며 영화 맘마미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도나가 결혼식 준비를 하는 딸의 방에 들어가 부르는 노래 ‘Slipping through my fingers’가 오버랩 되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떠뜨리게 했지만 이 노래가 나오는 씬에서 나는 울컥했다. 딸도 없으면서 왜? 아, 또 부러워서... 딸의 머리를 빗겨줄 기회를 못 가진 아쉬움, 친구처럼 아웅다웅 티격태격할 딸이 없어서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 그 ost의 가사와 메릴스트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복


1

딸아아의 머리를 빗겨 주는

뚱뚱한 아내를 바라볼 때

잠시 나는 행복하다

저의 엄마에게 긴 머리를 통째로 맡긴 채

반쯤 입을 벌리고

반쯤은 눈을 감고

꿈꾸는 듯 귀여운 작은 숙녀

딸아이를 바라볼 때

나는 잠시 더 행복하다


2

학교 가는 딸아이

배웅하러 손잡고 골목길 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면서

꼭 식모 아줌마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가는 것 같애

놀려주면서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딸아이 손을 바꿔 잡고 가는 나를

아내가 뒤따라 오면서

꼭 머슴 아저씨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가는 것 같애

놀림을 당하면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딸이 잘 자라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고 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 뿌듯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시인이 가난했던 시절 어린 딸을 바라보며 푹 빠져있던 감성을 읽으며 대리만족했다. 아들만 둘 키운 내가 가져보지 못한 감정들을 말이다.


이젠 아버지에게 약속을 지키러 가야한다. 물론 혼자 한 약속이지만... 아버지와 손을 잡고 걸으며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팔순잔치나 해외여행 같은 게 아닌 하나뿐인 딸과의 데이트를 선물하고 싶다. 아버지 입가에 지긋이 번질 미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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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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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는 2009년에 출간된 이래 아일랜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모두가 읽는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년에 <말없는 소녀>로 영화화 되어 이번 달에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지 15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받아 읽었다.

이 소설의 분량은 1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은 ‘노동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고 했다. 초고에서 얼마나 덜어내고 덜어내어 이만큼이 남았을까. 줄인만큼 적확하고 밀도 있는 언어의 조탁은 번역문을 읽는 독자에게도 매끄런 천을 어루만지는 듯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주인공 아이가 먼 친척집에 맡겨진 시간도 어느 해 여름 한철에 불과하다. 아이는 친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친절과 환대를 킨셀라 부부에게서 받는다. 인생을 통틀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때는 몇 번이나 있을까. 그 경험이 이후의 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결정적 사건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저런 결정적 사건을 겪은 아이라면 다가올 인생의 파고를 쉬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8~9세 정도 되는 여자 아이다. 부모와 킨셀라 부부의 말과 행동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투과되기에 단순 서술에 가깝다. 이는 독자에게 평가할 기회를 준다. 부모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며 킨셀라 부부의 다정함을 언급할 수도 있다. 나는 예전부터 부모도 배움이 있어야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부모의 학력에 가중치를 두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고학력보다 필요한 건 나이가 들어도 계속 공부하는 자세이며,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성정이 자녀에게 더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무심함(또는 무례함)은 말투에서도 보이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 데려다 주던 날 딸의 짐도 내려주지 않고 가버린 것만 봐도 평소 태도가 어떠했을지 알 수 있다. 킨셀라 부부는 가정의 안온함과 아빠와 엄마로서의 성역할 모델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헤어질 때가 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

자녀 많은 집 아이들이 울고 떼쓰면 제 것을 챙기게 된다는 생존 본능적 행동을 하게 마련인데 아이는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옷가게 점원이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잘해준다고 말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표현하는 대신 거리에 나오자 강렬한 햇빛에 눈이 멀 것 같다고 한다. 곧바로 마음 한구석으로 햇빛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구름이 껴서 제대로 좀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킨셀라 아주머니의 딸이라는 말이 눈이 부실만큼 좋지만 현실은 딸이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문장인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만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무슨 일’이 무엇인지는 독자도 잘 알고 있다. 몇 달 안 되는 시간동안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아저씨는 우편함까지 뛰어가서 우편물을 가져오는 달리기 연습을 시켰다. 그래서 집에 돌아올 때 쯤엔 처음보다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저를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의 자동차 소리를 듣고 아이는 뛰어나갔다. 울퉁불퉁한 자갈을 세차게 밟으며 진입로까지 달려 내려간다. 이윽고 만난 아저씨는 아이를 안아들었고 아주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어깨너머로 부둥켜안은 셋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빠가 보이자 아이는 아저씨의 품에서 말한다. 아빠라고. 그 아빠는 누구를 부르는 말이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이렇게 끝이 나지만 독자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것이다. 나는 여름방학마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찾아와 종알거리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봤다. 빨강머리 앤만큼 수다스럽진 않겠지만. 무채색이었던 아이가 저만의 색과 향기를 띠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영화에서 마지막을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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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 1 정치편 - EBS 최태성 선생님 생강 시리즈
최태성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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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1:정치편>은 큰별쌤 최태성의 생생한 강의를 만화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받고 후루룩 훑어보니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와 느낌이 비슷했다.

그렇다! 글자! 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 읽기 싫겠다?

아니다! 우리가 한국사를 만화책으로 읽는 이유를 꼽아보자.

1.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

2. 한국사 검정능력 시험 준비를 위한 예습으로!

3. 내신이나 수능에서 한국사 점수를 올리려고!

한국사 만화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위 세 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강 국사>는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

위 1번에 해당하는 독자는 초등학생이거나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적은 경우일 터이니 좀 쉬운 책으로 먼저 한국사를 만난 다음에 이 책을 시도해 보면 좋겠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한국 통사를 배운다. 물론 수업을 열심히 받고 다른 책들을 읽어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잡혀있는 초등학생이라면 <생각 국사>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2번과 3번에 해당한다면 이 책은 적합하다.

책의 앞 표지 문구를 보면 고등학생용이다.

“고1에서 심화까지 내신과 수능을 한 번에~”

그러나 한국사에 관심 많은 초중학생, 성인이 읽어도 무방하다.

나이 대와 상관없이,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이제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생강국사 1> 정치편은 3장으로 구분했다.



만화로는 강의를,



단원 정리 부분에서 핵심 내용 확인을,



기출문제에서 실력 테스트를 해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최태성 쌤의 유튜브 강의를 텍스트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책등에 찍힌 <최태성선생님 생강 국사>라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고른 독자들은 2차원 평면의 만화와 텍스트를 눈으로 보면서, 최태성 쌤의 음성이 서라운드로 자동지원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번도 강의 영상을 본 적이 없다면 이 만화를 먼저 읽고 영상을 보면 좋다. 유튜브 최태성1TV에는 강의가 많은데 고등학생이라면 수능대비 한국사를, 일반인이라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추천한다.

영상을 들은 후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읽으면 정말이지 술술 넘어갈 것이다.


이 때 한두 챕터만 읽은 후 강의 영상을 들어야지 절대 욕심 부리면 안된다.

여기까지 리뷰를 읽고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 있을 수 있다.


그냥 강의 영상을 보면 되지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


굳이? 읽어야 한다!

다 알지 않나?

소위 멀티태스킹이라면서 영상 틀어놓고 딴 짓한다는 거~

그렇게 귀를 스치듯 듣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게 있던가?

거의 없다!

학창 시절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외웠던 것들이 아직 기억난다. 그러니 라디오나 BGM처럼 틀어놓은 영상은 공부 용도로는 꽝이다.

공부를 위해 이 책을 선택한 아람들에게 권유한다.

- 이 책의 만화 부분을 읽은 후 주요 핵심을 스스로 정리 후 필기해보라.

- 그런 다음 책의 Point 단원정리 내용과 비교해보자.

- 놓친 부분을 찾아 다시 써넣고 기출문제를 풀어보면 틀릴 일이 없다.

👉 내가 이 책에서 도움 받은 몇 가지를 정리한다.

1. 이 책에서 명도전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2. 조선시대 사화와 환국에 대한 깔끔한 설명



& 조선의6조 직계제와 의정부 서사제


3. 예송 논쟁의 결과로 실권을 잡은 세력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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