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순간, 죽음. 우린 모두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남아있는 삶의 시간을 알지 못한 채... 몇 년 전부터 웰다잉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천착하게 되었다. 자꾸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죽음 이후는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가 종국에는 ‘후회’라는 낱말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볼걸,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도식적인 답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책 <작별의 건너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신비한 공간이다. 가제본이라 세 편의 에피소드만 소개하고 있는데 각각의 주인공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가족이었다. 작가 ‘시미즈 하루키’는 내가 했던 생각에서 일보다는 사람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쓴 듯하다. 주인공들도 내가 우려했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더라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했을텐데 말이다.
작별의 건너편에서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현세에 있는 존재와 한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2.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다.
3. 평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고, 다른 이와 대화도 할 수 있다.
4. 단,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는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존재’일 뿐이다.
5. 당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현세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작별의 건너편’으로 강제 소환된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만나고 싶어한 이는 가족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으므로 직접 대면할 순 없다. 그러면 사라져버리니까.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날 것인가?
그들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을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주인공들의 행동을 따라가 보았다.
세 편의 에피소드가 길지는 않다. 그들의 사연도 평범하다. 좋은 일을 했지만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아야코, 평생 부모를 오해했던 히로카즈, 그리고 사소한 다툼으로 집을 나왔다가 죽은 고타로(반전 있음)는 모두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상가능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연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에게 대입할 수밖에 없다. 만약 죽은 후 내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장 만나고 싶은 이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단박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럿의 얼굴이 스치기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주인공들과 비슷한 말을 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후회없이 사랑하며 살자는 다소 진부한 내용임에도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기 때문이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고 있으나 유사성과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전쟁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일을 쳐내면 내일 또다른 일이 눈 시퍼렇게 달려들고, 이제 인생의 과업 하나를 무사히 넘었나 싶으면 새로운 과제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다. 죽어야만 끝날 터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으니 견뎌내는 게 아닐까. 그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잠들자. ‘잘 자’ 대신 ‘사랑해’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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