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 103 | 10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락 첫 번째 대화 “두려움과 떨림”

  아밀리 노통은천황을 배알할때 사무라이들이 갖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단어로 일본문화를 설명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말이 일본문화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오랜 동안 막부가 존재하였고, 그 막부가 통치하는 봉건시대가 지속되었던 일본! 그러면서도 막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천황을 없애지 않고 일본을 통치했다. 사무라이들의 절대 복종! 명예를 중시여기는 그들의 문화가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치달으면서도 천황 한명을 살리려 일본의 군부는 항복시기를 늦추며 연합국과의 협상을 했다. 전선에서는 마지막 한사람까지 천황을 위해서 죽겠다면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본토의 수많은 양민들도 천황한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천황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천황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항복했다”고 일본의 국민들에게 말을 한다. 천황은 아직 살아있으며 그리고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천황은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그리고 아밀리 노통은 그의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간단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유미모토사에 1년 계약으로 취직을 하고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업무를 강요당한다. 훨씬 창의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단순한 숫자 처리,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상관에게 복종해야하는 회사의 문화 속에서 순응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 자신은 이 사실을 소설로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작가가 일본 사회를 상대할 수 있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었으리라....




우리 '다락'이라는 동아리의 토론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화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귀에서 시작되었다. 후부키라는 여성과 아멜리라는 여성의 대립구도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트랜디 드라마와 비슷해 보이지만 후부키는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명하복의 문화를 대표하는 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밀리라는 주인공이 후부키를 추월하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것이 여성들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우린 생각했다. 서열적이고 위계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모습이 아니며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짙게 잔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직되고 지극히 비효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어떻게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그러나 관료제적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선입관 부터 벗어던져야 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조직은 관료제화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료제 속에서 창의적으로 모든 사람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수의 엘리트가 창의 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면된다. 사실 아멜리와 같은 창의적인 사람은 단순한 일에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을 위해서는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어쩌면 학력 인플래이션에 의해서 너무 고학력의 사람들을 생산하고 뽑은 결과가 아멜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발전한 이유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장인정신을 들수 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의 장인정신 말이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구조가 경쟁사회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상사’는 바로 사무라이가 모시는 ‘다이묘’이고, 자신은 다이묘의 말에 복종하며 다이묘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이다. 그래서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일본 경제 발전의 한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식회사 제팬이다. 외국제품을 사라고 일본의 수상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호소할 정도로 자국의 물품을 애용하는 일본인. 외국인의 눈에는 그들이 이해될 리 없다. 싼 물건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싼 물건을 사야하지만 비싸지만 자국의 상품을 사는 일본인을 서양의 인물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 화두는 문화상대주의 였다. 일반사회 선생님인 노의환 쌤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미모토사에 온 아멜리가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문화, 그 일본의 문화를 비판하는 벨기에 여성의 글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쁠 수 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서양의 문화를 비판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상당히 탁월한 지적이었다. 밖에서 안을 볼 필요도 있지만 안에서 밖을 볼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뇌리 속에 맴도는 것은 과연 문화상대주의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화제국주의, 자문화 중심주의,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타 문화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를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를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성에 대한 할레, 중국의 전족, 인도의 수티(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같이 죽이는 풍습) 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노의환 쌤과 차안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를 볼 때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해치는 문화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노의환쌤도 약간 긍정적인 생각을 제시했다. 우리의 집단주의가 개인을 억압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편,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해서 노의환 쌤이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집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속에서 나타나는 인식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두발규제 복장규제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발자유, 복장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촛불시위까지 하고, 학교에서 집단행동까지 하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두발, 복장의 규제는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마땅히 개인의 자유는 확대 되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확대가 긍정적인 면만을 보이는 것은 또한 아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주제들만 가지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흥미로운 이야기도 했다. 후부키와 아멜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며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요즘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여성들은 쎄련된 외모에 깔끔한 일처리를 한다. 이를 보고 살아  남기 위해서 전사가 되어 높은 직책에 오른 미혼여성은 신세대 여성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갖게 된다. 마치 여자 교장이 여선생님들에게 더 무섭듯이, 여자 상관이 여성에게는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미혼 여성분들이 자신들이 사회문제이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여쌤들에게 속으로 한마디 했다. '쌤들은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묵사마 어록 제1장-'
이어서 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 성리학적 의식에 순응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어느덧 '다락'모임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 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 시간에는 유봉학 교수의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이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무거운 주제로 보이지만, 상당히 쉬운 글로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이 씌여졌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읽을 꺼리가 있어 더욱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조국의 노래
조문기 지음 / 민족문제연구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나 열정적인 한 인간의 고뇌

-'슬픈 조국의 노래'를 읽고-

  슬픈 조국의 노래라는 제목은 보통의 역사책에 비해 상당히 문학적인 제목이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순을 상당히 잘 지적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책의 첫장을 펴든 순간! 난 지금 행복해 보이는 우리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슬픈지를.. 그리고 왜? 이리 슬플 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서문에서 독립운동가 조문기선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 엄밀히 말하면 8.15는 민족이 해방된 날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날이다. 일제를 주인으로 떠받들던 친일파 주구들이 제 주인을 벗어나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선 날이다."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 독립을 쟁취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오히려 친일파가 해방된 날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날은 펄럭이는 태극기를 안보려고, 경축의 냄새가 나지 않은 곳을 찾아 피신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유별나 보이지만 유별나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의 서문은 그가 겪어 왔던 한국 현대사의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조문기선생의 가정은 부유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기울어져 갔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독립'과 '민족'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속으로 깊게 뿌리박게 만든 사람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일제에 친일을 하는 송병준 일가는 그에게 반면교사였으며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참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할아버지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바로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려주었다. 이 두사람이 조문기 선생을 숙명적으로 독립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아주 특별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은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들도 갖고 있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조문기 선생은 경성 사범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들 조차도 그가 당연히 합격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가 일본인이 아니기에 합격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유해질 수 없는 세상!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하는 세상! 능력이 있다해도 일본인이 아니기에 차별받아야하는 세상! 일본인에게 멸시와 수탈을 받으며 고통받아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 속에서 조선의 민초들이 어찌 독립운동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친일파가 되어서 일제에 협력하면서 성공하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참으로 어이없는 말에 대해서 그 시대를 겪은 조문기 선생이 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집안이 잘사는 집안의 사람이었던가? 일제는 아무나 친일파로 포섭하지 않았다. 이용의 가치가 있는자를 친일파로 적극 포섭했다. 이광수와 같은 지식인이나, 자본가 지주와 같은 재력가들이다. 과연 그는 그들과 같이 일본으로 부터 간택(?) 받았겠는가? 아니면 민족의 차별속에서 수탈받았겠는가? 설령 그가, 친일파가 되어서 민족의 피를 빨아먹으며 잘산다고 과연 행복할까? 물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세상, 그러한 물질만능의 사고가 시대를 어떻게하면 올바르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본원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흐리게하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퇴’라 했다. 조문기는 우리민족을 억압하는 일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강관회사에 취직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를 만난다.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 그도 일제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독립운동의 꿈을 꾸었다. 그의 첫번째 독립운동은 일본 강관파업사건이다. 너무 어리기에, 너무 열정이 넘치기에 행동이 앞서는 조문기에 비해서 유만수는 침착하게 강관파업을 주도했다. 그리고는 더 많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강관회사를 빠져나온다. 같은 방에 있던 강윤국 동지 또한 후에 ‘대한 애국 청년당’의 주역이니 그들의 인연은 일본의 강관회사에서 맺어진 것이다.

   조문기선생의 자서전에는 이해못할 사람이 나온다. 조문기선생 자신의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했는지 조문기 자신도 모르다. 또한 일본에서 그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지도해 주었던 서상한이라는 사람 또한 이해못할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위험을 무릎서고 조문기선생을 도왔던 서상한! 그러나 그는 좌익계의 자료에는 독립운동가를 전향시킨 민족 반역자로 기록되어있다.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부터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보험을 들어 놓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제시대 일본에 협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내 놓는 기행을 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독립운동가의 제거 대상 명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상한! 그도 그러한 보험을 들어 놓은 이중간첩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평생의 독립운동 동지를 만나게 했고, 민족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박춘금이라는 친일파를 제거의 대상으로 지목하게된 시기였다. 바로 그것이 그 유명한 '부민관 폭파사건'이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리마와 TV다큐멘터리에서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진 의거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문기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대한 애국청년단을 만든 조문기선생과 유만수 동지는 폭파 작업장에서 다이나마이트를 빼내어 시한폭탄을 만들었다. 그것도 갖가지 실험을 거쳐 '아시아격분대회'에 아슬아슬에게 맞추어 갔다. 폭탄을 어디에 설치해야 될지도 일본 헌병들 앞에서 동지들과 실랑이하며 간신히 결정했다. 정말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독립운동은 성공한 것보다 상당수의 거사가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거나 실행했어도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서 조문기 선생의 '부민관 폭파사건'은 젊은이들의 의기와 하늘이 도운와 성공한 의거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랑은 과장해서 말하지만 조문기 선생은 진솔하게 자신의 독립운동을 서술했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이 나와는 멀기만한 사람이기보다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앞서서 실수도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면서 자신의 양심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동할 수있는 당당한 독립투사 조문기! 그의 웃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더 많은 의거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조국은 그의 생각보다 빨리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린 독립운동가 조문기는 열정은 하늘을 찔렀을지라도 세상은 그러한 열정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야속해졌다. 강대국이 자신의 입맞데로 우리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이에 편승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민족을 두동강이내는 민족의 반역자들과 친일파들... 이에 대항해서 민족이 두동강이 나는 것만은 막으려는 조문기의 의거... 그러나 동지의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된다.

  이제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그의 머리 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밑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시대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에서 그는 북조선노동당 농림성 간부가 된다. 그는 ‘좌’냐 ‘우’냐하는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이었다. 민족을 떠나서는 좌도 우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은 친일파와 우익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문기는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 경찰 출신의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좌도 경험했지만 그의 길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좌익은 그를 포섭하려했으나 그는 이를 뿌리쳤다. 그에게 민족 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념이라는 허울의 노예가 되어 우리민족을 두동강이 내는 것도 모자라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쪽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그의 길이 아니었다. 이러한 조문기 선생의 고통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만약 나라면 어느 길을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마도 조문기 선생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좌와 우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인! 이념보다는 민족을 사랑하지만 순수한 민족주의자가 설자리가 없는 극단의 시대에서 갈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그는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지배해온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10년여의 배우생활을 한것도 바로 그러한 의도에서였으리라.. 그러나 조국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배우생활을 청산한 그를 냉엄한 조국은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음모사건으로 현실에 내동댕이쳤다. 어제의 독립동지들을 해방된 조국의 유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입신출세에 눈이먼 경찰들에게 고문을 당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허위자백을 하지 않았다. 친일경찰이 우리 경찰계를 장악하면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기술이 그대로 민주투사들을 고문하는데 이어졌다. 조문기선생은 일제시대 일본헌병에게 고문당하고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친일파 출신 경찰들에 의해서 혹독한 고문을 여러차례 당한다.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파에게 독립운동가가 고문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어찌 조문기선생에게는 조국이 슬퍼보이지 않았겠는가! 친일파의 나라가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에게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유만수 동지 덕택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아내와 결혼한다. 서로의 지향점이 같았기에 결혼을 할 수 있었으나 조문기선생의 아내는 집안 일에는 관심없는 남편 덕택에 모진 고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딸 정화 또한 친척집에서 자라며 설움을 당해야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특징! 자신의 가정보다는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조문기선생에게서도 그대로 보였다.

  조문기 선생의 평생동지 유만수의 죽음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유만수 동지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을 두세장 넘겼다. 조문기 선생은 ‘유-만-수-동-지-는-굶-어-죽-었-다.’라고 써 놓았다. 순간 머릿속이 멍했다. 어찌 독립운동가가 굶어 죽을 수 있는가! 그것도 독립이된 조국에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을 읽어 내려갔다. 유만수 동지는 과거 사설군단 조직등의 사건에 연루된 경력으로 인해서 제데로된 직업을 갖을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변변치 않은 직업이지만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결핵을 앓게된다. 유만수 동지를 살리기 위해서 조문기 선생은 혼신의 노력을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병이 나아갈 즈음 다시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했고 유만수 동지는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게된다. 조문기 선생이 굶어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독립운동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은 너무도 슬펐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세간의 씁쓸한 말들이 빈말이 아닌, 바로 우리의 슬픈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슬픈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과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조문기! 그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광복회에서 느꼈던 실망을 민족문제 연구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그는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방관자는 방조자와 같다. 방조자는 바로 공범자와 다르지 않다.'라는 조문기 선생의 글귀가 나의 가슴을 찔렀다. 친일파가 영웅으로 대접받는 세상! 독립운동가가 설움을 당해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친일 청산에 임하고 있다. 과연 역사교사인 나는 시대적 과제인 친일 청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나 자신을 다시한번 반성해본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의 자서전 '슬픈 조국의 노래'는 우리 근현대사의 모순을 아주 솔찍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가 겪어야했던 이시대의 모순들! 친일파는 죽었는데 친일 청산은 해서 뭣하느냐는 사람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에게 과연 이시대 우리 조선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확인하라며 이책을 드리밀고 싶다. '식민지 수탈론'이니 '식민지 근대화론'이니하는 거대 담론을 말하기 보다는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책을 통해서 잔잔하게 보여 준다면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그들은 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 103 | 10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