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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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해 1도 모르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이제 문학이 아니라 문화상품 같다. 꼭 스즈키 고지의 <링> 시리즈 읽는 기분이다. 한번 책을 집어들면 밤을 새워 읽게 되지만, 두 번 읽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Q84> 때부터 약간 오버 인테리어 아닌가 싶었는데, 우라사와 나오키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처럼 초반에 설정 떡밥을 마구 뿌려났다가 후반에 그냥 말을 먹어버리는 전략. <태엽감는 새>까지는 그런대로 괜찬지만 응?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기보(?)가 보인다고 할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고 나서 짜증을 낼 것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손빨래를 할까? 커피를 내리고 파스타를 삶는 것은 그래도 '차밍'(<댄스댄스댄스>의 고혼다처럼)하게 묘사될 수 있다. 하지만,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빨간 '다라이'에 세탁비누의 거품을 묘사하는 것은 어떨까? 하루키는 아마 건조하고 단순하게 묘사하겠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모텔에서 손빨래하는 장면처럼. 내가 지금 하루키가 '언리얼'하다고 말하고 있나?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는 아마 평생을 나보다 수십배는 더 현실에 육박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빚을 갚는 일로 이십 대를 지세웠습니다.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지간히 일도 많이 했다,라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필시 보통 사람의 이십대는 좀 더 즐거웠을 거라고 상상이 되는데,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청춘의 나날을 즐길'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나는 곧 서른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청년 시대라고 해야 할 시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구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술술 지나가는 것이구나‘ 하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어쩌면 너무 현실에 육박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환상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어쨌든 청춘 3부작은 나에게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것이다. 책을 펼칠 때마다 지금은 깊이 어딘가에 묻혀있는 감정들의 잔재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하루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섞인 너스레가 쿨하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말이 많네,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이 먼저이긴 하지만.  





PS. <1Q84>는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유유정 옮김)  확장판임. 그냥 내 뇌피셜.


기사단장은 실눈을 뜨고 마리에를 보았다. "귀를 잘 기울이고,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날카롭게 버려두는 걸세. 그것밖에 길이 없어. 그리고 때가 오면 제군도 알 것이야. 오, 지금이 바로 그때구나 라고. 제군은 용감하고 총명한 아이야, 주의를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알 수 있어." -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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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명 2024-01-01 17:39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나는 곧 서른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청년 시대라고 해야 할 시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구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술술 지나가는 것이구나‘ 하고.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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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은 실눈을 뜨고 마리에를 보았다. "귀를 잘 기울이고,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날카롭게 버려두는 걸세. 그것밖에 길이 없어. 그리고 때가 오면 제군도 알 것이야. 오, 지금이 바로 그때구나 라고. 제군은 용감하고 총명한 아이야, 주의를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알 수 있어." -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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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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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나는 항상 거기서 올바른 리듬을 추구하고 적합한 여운과 음색을 찾습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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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 17인의 농민이 말하는 기후 위기 시대의 농사
녹색연합 외 지음 / 목수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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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거대한 인공구조물이다. 자전거 바퀴를 계속 굴려야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는 끊임없이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원료와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 도시의 마천루, 휘황한 야경 뿐만 아니라 깜빡이는 신호등처럼 사소한 움직임까지, 공짜나 당연하게 보이는 사소한 것들도 누군의 희생이나 노동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보통 사회적인 위계가 낮은 계층에서 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사노동을 지칭하는 그림자노동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농촌 역시 도시라는 구조물을 끊임없이 가동시키기 위한 원료를 공급하는 일을 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사회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다.  여러 농민의 인터뷰집이다. 호흡이 너무 짧다는 문제가 있지만, 농촌을 기후위기시대 미래생존전략의 당사자로 호명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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