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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아빠 살림어린이 그림책 20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노경실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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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미국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를 닮은 존의아빠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의 외모를 가진 인물.  '내가 나이보다 좀 젊어보이는 편이구나'하고 그냥 겸손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이 아빠는 동안의 외모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즐기는 인물이다. 젊은 사람들이 입는 옷을 즐겨입고, 머리 모양도 자주 바꾸고,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커다란 방에 자기 장난감을 가득 채워놓을 정도인데다가 더 젊게 보이고 싶어서 자전거 운동을 하고, 거울 앞에서 멋 부려대며 애를 쓴다.  

 

 

 

 

 

 

 

 

 

그 쯤이라면 나름의 개성이라고도 취향이라고도 봐 줄 수 있고, 험한 세상에서 삶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자기 부인에게 "여보, 당신도 조금 더 젊게 꾸며보는 게 어때?"하며 잘난 척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아프면 이불 뒤집어 쓰고 엄살을 떠는 건 심하게 짜증이 날 것도 같다. 젊어보이는 외모를 젊게 유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빠는 어느 날 저녁 '젊음을 돌려드립니다'라고 쓰인 음료수 한 병을 다 마셔버리고는 다음 날 아침 아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젊어지고 싶어 하더니, 진짜로 소원을 이루었네." 존의 엄마는 아기가 된 아빠를 바라보며 쓸쓸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어쩐지 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버버버'거리는 옹알이를 하고 음식을 흘리는 남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바람을 쐬어주는 기분은 어떨까.  이 참에 머리에 알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너무나 젊어지고 싶어하던 아빠가 아주 아기가 되어버려서는 존이 기저귀를 가져다 줘야 하고, 놀아줘야 하는 아빠,  변기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아빠가 존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좀 얄밉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아빠는 몇 시간 단잠을 자고나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니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하고 머리카락 한 가닥이 하얗게 변한 채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잘 읽으려면 글 뿐 아니라 그림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글의 내용은 아기가 되어버린 철없는 아빠를 존이 바라본 이야기지만 그림은 따로 살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첫 부분 오른 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자신만만 좀 시건방지다 싶은 썩소를 짓고 있는 아빠의 표정은 10대 청소년, 그 중에서도 좀 튀어보이고 싶어 기를 쓰는 아이같은 옷차림이나 유별난 헤어스타일과 연관지어 보지 않아도 좀 비호감인데다가 '어른다움'(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연륜이랄까 후덕함이랄까 하는 것들이 어른다운 거라면) 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존의 아빠 속에 내재된 유아적 성향은 아기로 변하기 전인 아빠를 묘사한 그림 속에서도 암시된다.   

거꾸로 가는 시계, 벽에 걸려 있는 가수의 그림에서 기타의 끝 부분이 젖병꼭지로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아빠의 장난감이 진열되어있는 방에서도 암시의 그림은 계속 발견된다. TV 속의 피터 팬, 트로피 속의 젖병, 파이프 담배에 꽂혀있는 젖병꼭지, 당구대 위에 있는 공 중에 하나는 장난감 공인 것 같고, 하다못해 술병입구, 붕어 입, 현관문 손잡이, 침대기둥에서도 졎병꼭지를 찾아볼 수 있다.  아빠가 싸이클을 타고 있는 장면 바닥에는 딸랑이로 보이는 장난감이 놓여있으니 아기가 변해버리기 전부터 아빠는 속으로는 이미 유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기가 된 다음엔 이불 무늬까지 바뀌어버리지만.

아이들에게 아빠가 '다 큰 아기'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요즘은 친구같은 아빠들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아빠는 엄마보다는 어렵고 까다롭고 위압적인 존재일 텐데, 그런 아빠를 아들보다도 철없고 아기 같은 모습으로 그려놓은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눈치챌까? 어른들도 때론 어리광부리고 마음껏 울고 엄살을 떨어도 괜찮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  난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안에 남아있을 유아기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존의 아빠처럼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쩔 수 없는 법.  흰머리는 점점 더 많아지고, 피부는 푸석하고 칙칙해져가고, 갈수록 어른 노릇이 점점 버거워져간다.  존의 아빠도 나이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점점 더 저항하기가 힘겨워질 테니, 어쩐지 하얀 머리카락 한 가닥에 난감해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다시 어른으로 돌아온 아빠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액자 속 그림..  아기로 변한 아빠가 하얗게 널부러져 누워있는 여자의 배 위에 올라 앉아 있고, 침대 옆 탁자에는 젖병이 놓여 있다. 뒤의 커튼 사이로 상상의 동물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아기 같은 아빠에게 지쳐버린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 그것도마음이 짠하다. 이 그림책 속에는 액자 속 그림이 여러 개 등장하는데, 무척 궁금증을 자아낸다. 앞에서 말했던 그림 속 록음악 가수는 누구일지, 곳곳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그 출처가 어디일지, 분명 어딘가에서 원작을 찾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즘 이것저것 손댄 일들이 많은 탓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은 간혹 글의 내용보다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꼼꼼히 살피고 읽어야 하는 그림에서 더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  이 책도 그런 즐거움을 안겨 준 책인데,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그림책들과 비교해보면 글쎄 그렇게 잘 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들 <동물원>, <헨젤과 그레텔>, <돼지책>, <고릴라> 등에 등장하는 아빠들과 비교해보면 새롭고 참신한 아빠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 같아서(여전히 대책없이 한심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어보이지만 조금 더 발랄하고 가볍다는 점에서) 그 점은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보기엔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모습의 아빠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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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6-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아빠가 좀 오버했네요. 아빠가 애기라니 아 싫다 싫어.... ㅎㅎ
하긴 가끔은 옆지기를 애 하나 더 키운다는 심정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섬사이 2011-06-15 15: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옆지기가 큰아들 같을 때가 종종 자주 왕왕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고집이 센 아들이죠. ^^;;

아영엄마 2011-06-1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리뷰 잘 봤어요. 글을 참 잘 쓰셔서 님 리뷰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네요.
참, 리뷰에 그림 속의 기타리스트를 궁금해 하시길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 중에 "지미 헨드릭스"라는, 젊은 시절에 요절한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있거든요.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검색해 보니 [ Woodstock ]이라는 앨범 제킷 사진의 모습이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공연 때 화려한 의상도 즐겨 입었다고 하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70786

섬사이 2011-06-27 15:3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영엄마님.
지미 헨드릭스라,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예요.
알려주신 주소대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