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쇼핑을 멈추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뭐라도 사라고, 기분이 좋으면 그에 맞게 쇼핑을 하라고, 그게 네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이유라고 온 세상이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요란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왜 시민들 개개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라면을 먹으려 해도 비닐봉지를 최소한 세 장은 버려야 하는데, 커다란 매대를 온갖 종류의 라면으로 채운 대형마트에서는 오히려 소비자를 향해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고 외친다. 개인과 가정에서보다 기업에서 배출하는 비닐쓰레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걱정도 됐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옷을 사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36)

패스트패션의 오염 규모를 가늠하는 데 참고할 만한 큰 숫자는 또 있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퍼센트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려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1년간 마실 수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피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700피터가 필요하다.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는 각각 한 사람이 9년간, 3년간 마실 물을 집어삼키는 셈이다.


(37)

개인이 체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오염을 일상으로 자리 잡게 한 패스트패션’.  이 단어는 1989 <뉴욕 타임스>가 스페인의 자라를 소개할 때 처음 등장했다. “패션쇼 런웨이에 오른 제품을 무려 15일 안에 대량고급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패션업체에서 새 옷을 기획하고 디자인해 제조 유통 출시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지만, 자라는 이 모든 일을 2주 안에 해내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폭발적인 자원 낭비와 오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51)

버려지거나 세탁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옷은 제조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5킬로그램을 세탁하면, 옷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플라스틱 600만 개가 세탁수를 통해 유출된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세탁기의 규격이 주로 10킬로그램을 감안하면, 한 번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1000만 개씩 나오는 셈이다. 옆집, 우리 동, 아파트 전체, 단지, 그리고 전국의 세대 수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금방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엄지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 화면을 끌어내리며 업데이트된 신상품을 손쉽게 훑어보면서도 금세 싫증을 느끼는 우리의 인스턴트식 패션 취향의 대가는 머나먼 바다 건너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68-69)

인도 농부들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구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런데 농부들은 머잖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판매하는 회사가 자신에게 Bt면화를 팔던 바로 그 몬산토였기 때문이다. Bt면화는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씨앗을 받을 수 없고 혹 씨앗을 받았다 해도 발아하지 않는 터미네이터 종자였기에 인도 농민들은 종자와 살충제를 해마다 구입해야 했고, 점점 늘어나는 부채로 신음했다.


(135)

모 패션 플랫폼 담당자 D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쿠폰을 발급하고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옷을 중개해 잘 팔수록 플랫폼에게는 손해가 되는 것이다. 플랫폼은 이미 옷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다. 대신 셀러들에게 좋은 구좌를 비싼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 비싸고 잘 보이는 자리에 걸린 옷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또다시 소비하는 굴레에 빠진다. 소비자를 모아 판매자를 모으고, 판매자를 모아 소비하게 하는 플랫폼. 그 안에서 수요와 공급은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원히 순환한다. 또다시 물건이 존재해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해야 물건이 존재하는 구조가 갖춰지는 것이다.


(149)

. 패션기업은 임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

. 많은 옷을 싸세 제작하기 위해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이 투입된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성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다.)

. 경비 절감의 이유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공장에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사망한다.

. 공장주나 기업 관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 기업은 규제가 약하거나 임금이 저렴한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166)

그 후로 하나의 공식이 굳어졌다. 테러나 전염병 등으로 국가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소비였다. 자본주의에서 멈춤은 곧 재앙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났다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관성의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최소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과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소비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2006년 경기 침체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결국 부시 대통령은 자국민들을 향해 소비하라라고 직접 요청했다.


(184-185)

아시아는 타 대륙보다 명품을 압도적으로 많이 소비한다. 현재 세계 명품시장은 약 8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그중 37퍼센트가 아시아에서 팔린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같은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는 전체 매출의 50~60퍼센트를 아시아 소비자에게서 거둬들인다. 프라다, 샤넬, 버버리,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 최고 브랜드 대부분의 매출 10퍼센트 이상은 한국인이 차지한다. 아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명품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86)

실제로 2021년 이후 여덟 개 이상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한국 내 브랜딩과 유통을 담당하던 파트너와 계약을 종료한 뒤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우리 돈 약 40 4000원으로, 미국 34 8000, 중국 6 8000원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2022년 한국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24퍼센트 성장해 세계 6~7위 수준인 168억 달러( 20 9000억 원)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도 명품가방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206)

사람들은 유행에 쉽게 휩쓸렸다가 유행이 지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유행을 찾아 떠난다. 그사이 패스트패션 회사 CEO는 세계 5위까지 부호의 자리를 지키며 배를 불리고,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섬유폐기물은 지구를 덮치고 있다.


(219)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옷장에 잠들어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도 오래오래 입을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패션이지, 페페트병으로 티셔츠나 청바지를 만들기 위한 물절약 공정 과정이 아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소비자도, 섬유폐기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지구도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조와 판매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패스트패션 기업에게나 필요할 뿐이다. 페트병 티셔츠는 지구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매출을 늘리기 위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260)

우리가 입는 옷은 세 번 이상 세탁한 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프란스 티메르만스가 패스트패션 제품의 형편없는 품질을 꼬집으며 남긴 말이다. 2030년까지 유럽연합 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섬유 제품은 내구성, 수선 및 재활용 가능성 보장, 재활용 섬유 사용 확대, 유해물질 제거, 사회적 권리를 존중에 제조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의류 제조 과정에서부터 수선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했다. 한 옷을 오래 입게 하려는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으로, 사실상 많이 싸게 파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었던 패스트패션을 퇴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옷을 일회용품 팔 듯 해치우며 돈을 벌던 패션산업은 이제 수선, 회수,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에 한층 까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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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0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0권을 이야기해줄게. 이제 10, 11, 12권 세 권 남았구나. 이 세 권은 제4부로 동트는 광야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동튼다는 의미는 해방이 찾아온다는 뜻이겠구나. 길고 긴 일제암흑기의 끝이 보이는구나.

, 그럼 바로 10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 윤철훈은 비밀 임무를 위해 국내 잠입하여 원산에서 다른 공산주의자 최현옥과 임무를 수행했단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위장 연인인 척 했단다. 그런데 윤철훈과 최현옥은 서로 호감을 가졌어. 하지만 그들은 공적인 만남이었고,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서로 속마음을 꺼내지 못했단다. 좋은 시절에 만났다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을 텐데, 결국 그들은 임무 수행을 하고 서로 헤어지고 말았단다. 이 시기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농민들과 연계하면서 8시간 노동제 실현, 차별대우 철폐, 복지제도 개선, 소작료 인하 등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일본 경찰의 폭정과 밀정들 때문에 제대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조직이 많이 와해되었단다.

….

만주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조선혁명당 사령관 양세봉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더 잔인한 것은 일본군이 양세봉의 시신을 조선의 농민들에게 작두로 자르라는 잔인한 짓을 시켰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을 거절한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이야. 뿐만 아니라 일제는 친일파로 하여금 민생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만주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썼어.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에 일본의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을 만들고, 그로 인해 중국공산당에서 일제 스파이로 의심되는 조선 사람들을 죽였는데, 죄가 없는 사람도 누명을 쓰고 많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주위에 죄도 없이 누명을 쓰고 죽는 동료를 보니,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일부 조선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을 탈출하여 일본군으로 넘어가버린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 파 놓은 함정에 중국공산당이 보기 좋게 빠져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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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도대체 민생단투쟁이란 게 뭔가?”

학습이 끝나고 노병갑은 홍완섭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 자네도 지휘간부로서 알아둬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말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국이 세워지기 직전인 32 2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건너온 친일파 김성화가 왜놈들의 사주를 받아 <경성매일신보> 부사장 박선윤, 광명회의 정사빈 등과 연합해서 민생단이란 것을 조직했네. 그 단체는 겉으로는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거지. 그런데 속에 감춰진 목적은 북간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고 파괴하자는 것이었지. 다시 말하면 민생단은 대규모 밀정 스파이단체였던 거네. 민생단원들은 백색구역(일제 통치지역)의 친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적색구역(유격근거지)에까지 자원유격대원으로 가장해 잠입 침투해서 간도 자치며 생활 보장, 조선인 우대 등을 교사하며 내부분열 공작을 획책한 거네. 그러기를 5개월쯤 하다가 민생단은 해산됐지.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의 암약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유격근거지에서 조선사람이면 일단 민생단분자로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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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수익은 결국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5년형을 받았단다. 송수익이 감옥에 있다는 소식은 가족에게도 전해졌어. 송수익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세호는 서울에 가서, 송수익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송중원과 송수익의 차남 송가원을 만나 이 일을 의논했단다. 그들은 면회 준비를 하였고,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하겠다고 했어. 중원은 장남인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중원은 아직 투옥의 후유증으로 아직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가원이 하는 것으로 했단다. 가원은 이 기회를 허영 덩어리 아내 미애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서 아버지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아내 미애에게 통보를 했고, 미애는 큰소리로 화를 냈지만, 가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주로 향했단다.

미애의 사기에 가까운 수법으로 가원이 미애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고 나서, 옥비는 소리에 전념하여 경성에서 유명한 소리꾼이 되었단다. 공허 스님으로부터 송수익 소식과 송가원이 만주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전달해달라고 공허 스님께 부탁을 했단다. 옥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가원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봐. 자신도 가원을 따라 만주를 가고 싶지만, 내색은 못했어.

….

이경욱은 아버지 이동만이 죽고 나서도 고등고시를 계속 봤지만 계속해서 떨어지고 말았어. 이경욱은 옛스승 고서완을 찾아갔어. 고서완은 이경욱을 반기면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고서완은 그냥 농사가 아니고, 자신만의 사회주의 방식으로 농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거야. 그로 인해 조선의 농부도 보호하고, 자신의 이상도 실천하고그걸 혼자 하기 어려우니 이경욱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이경욱은 고등고시 합격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참하기로 했단다. 고서완이 꿈꾸는 사회주의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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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들어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왜놈들은 만주사변 이후로 조선땅에 군대를 강화하고 경찰들을 증원했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건 왜 그렇겠나? 두 가지 목적 때문이지. 첫째는 조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적을 완전히 말살시키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으로 농민층과 노동자층이 끝없이 쟁의를 일으키면서 조선땅이 동요하는 것은 제놈들의 만주 장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야. 조선의 안정이 만주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네. 그래서 왜놈들은 준전시체라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사회주의 세력의 말살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일세. 그놈들의 총력전은 효과를 거두고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그동안 만 6천여 명이나 검거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네. 참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머지않아 거의 검거되거나 운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네. 나는 감옥에서 나와 감금상태에 있으면서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지. 또 잡혀서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하고 그전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방법밖에 없느냐 하면, 감금상태는 바로 운동의 중지상태니까.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다가 잡히게 되면 재범이고, 재범은 중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지 않은가. 그것 또한 운동의 중지상태야. 이 대목에서 내 고민은 심해졌지.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의 횡포는 계속되는데 과연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주의 운동을 밀어붙이다가 부지하세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 그 방법은 치열하긴 하지만 자폭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왜놈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네. 그런 측면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네. 왜놈들의 식민지 횡포가 계속되는 속에서 어떤 형태든 행동의 중지보다는 적극성이 떨어지더라도 행동의 지속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구상한 것이 개인적 사회주의화야. 다시 말해서 우리 집안의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야. 단 사회주의라는 냄새는 일체 풍기지 않고 속으로 감추었으니까 경찰에서 볼 때는 평범한 지주에 불과하지. 허나 실제로는 소작제가 아니라 공동경영이고, 잉여재산으로는 딴 지주의, 특히 왜놈들 농장의 빚을 써서 논이 넘어가게 된 농부들의 빚을 갚아주고 흡수해 들이는 거네. 그럼 그 농부도 보호하고, 왜놈농장들이 토지를 장악해 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발휘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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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완 같은 사람에 의해 보호를 받는 농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본 지주와 친일파 지주의 악덕으로 등골이 휘었단다. <아리랑> 초반부에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일제에 땅을 빼앗기고 소작을 하는 이들이 많았잖아. 그 중에 염서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염서방의 아들이 일본인 지주 아들의 놀림에 분을 참지 못하고 때린 일이 있어. 그러자 그 일본인 지주는 염서방을 끌고 와서 모진 매를 때리고 소작까지 빼앗아 버렸단다. 매까지는 참아도 소작을 떼이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간절히 부탁했지만, 결국은 소작까지 떼이고 말았단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염서방은 그 일본인 지주들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참 먹먹한 사건이로구나.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제 시대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많았을 거야.

 

2.

신세호, 송중원, 송가원이 송수익을 면회를 했어. 생각보다 송수익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단다. 간수에게 뒷돈을 아무리 주어도 병보석은 해주지 않고, 치료도 안 된다고 했어. 면회도 짧은 시간 간신히 할 수 있었어. 전향서를 쓰면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송수익은 완강히 거절했단다. 신세호와 송중원은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병원에 취직을 하고 아버지 옥바라지도 했단다. 송수익과 필녀도 송수익의 소식을 듣고 감옥이 있는 봉천으로 이사를 왔단다. 하지만 면회를 허락되지 않았어.

한편, 옥비는 송가원이 아내와 헤어져 혼자 만주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만주로 향했단다. 송가원은 뜻밖에 찾아온 옥비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고, 그들은 몇 년 동안 참았던 사랑을 드디어 하게 되었어. 송수익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어. 평생 송수익을 짝사랑했던 필녀의 간절함송수익이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송가원은 간수에게 큰 돈을 주고 필녀는 송수익을 면회할 수 있었어. 하지만 송수익은 결국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신채호처럼 평생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을 만나지 못하고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신 분들이 어디 한둘이겠니. 정말 슬픈 역사로구나.

송수익이 죽고 나서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독립군에 참가하겠다고 했어. 군의관이 되어 부상자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단다. 옥비도 자신도 독립군이 되겠다고 했어. 송가원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자신은 노래라도 불러서 군 사기를 높이겠다고 했어. 그렇게 그들은 모두 독립군이 되었단다.

….

연해주의 소식을 좀 들려줄게. 윤선숙과 조강섭 부부는 이상한 소식을 들었어.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되어 연해주 지역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었어. 그렇게 되자, 소련은 조선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단다. 그리고 강제로 조선 독립군 해체를 지시했어.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켰어.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단다. 주변 사람들이 억울하게 일본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체포되기도 했어. 윤선숙의 사촌 오빠인 윤철훈도 도착했지만, 그들은 이 사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 연해주에서도 점점 살아가기 쉽지 않았단다. 소련의 조선인 통제가 심해지던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어. 조선인 2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명령이 내려왔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2일 후 곧바로 떠나야 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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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278)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는 1937 8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강제이주 결정사항 제1428-326cc호에 기록된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그리고 강제이주를 직접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하바로프스크, 당지구위. 조선인들 이주 문제 – – 시기적으로 성숙했음.

이주 시기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강구하기 바람.

                              당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

                              1937 9 11 17 40

 

이것은 스탈린이 보낸 암호전보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연해주 일대의 조선사람 20여만 명은 9월 중순에서부터 11월 말까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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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대우를 해주면서 이주시키면 모를까. 화물 기차칸 하나에 40명씩 몰아넣었단다.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길이 먼데 화물 기차칸에 화장실도 없이 40명씩 넣다니거기에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와 싸워야 했어. 윤선숙의 식구들도 모두 끌려갔단다. 기차가 중간 역에 잠시 멈췄을 때 윤선숙의 남편 조강섭은 기차에 타고 있는 당원들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문의하러 소련군을 찾아갔어.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단다. 비밀 경찰이 그들을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만 하고 기차는 그냥 출발했어. 그렇게 윤선숙은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비밀경찰에 끌려간 이들은 소련군에 의해 모두 죽고 말았단다. 윤선숙은 아이들과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을 찾아 나설 수 없었어. 계속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갔단다. 윤선숙의 시어머니도 기차 안에서 돌아가셨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고 타슈켄트라는 낯선 곳에 도착했단다. 허허벌판이었어.

 

3.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볼게. 일본 순사로 일하던 장칠문은 순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가게와 회사를 물려 받았단다. 이젠 사장으로 불렸어. 장칠문은 상공회의소 회원 가입도 했어. 아버지에 이어 대를 잇는 친일파가 되었구나. 그런데 최근 친일파들이 피습 당해 죽는 일들이 발생했대. 혈청단이라는 조직이 벌인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 혈청단의 단장이 다름 아닌 보름이의 장남인 오삼봉이었단다. 하지만 혈청단의 조직은 금방 들통이 났단다. 조직원이 잡히고 말았어. 삼봉이는 도망가야 했어. 엄마인 보름이와 동생 금예도 피해를 볼 것 같아 같이 도망을 갔단다. 공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어.

공허 스님은 보름과 금예를 홍씨에게 맡기고, 삼봉이와 함께 만주로 향했단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그만 일본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났고, 공허 스님은 일본 경찰에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고, 삼봉이만 간신히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공허 스님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공허 스님의 죽음 또한 안타깝구나. 오삼봉은 만주에 도착해서 외삼촌인 방대근과 이모 수국을 만나게 되었어. 한 핏줄이지만 그들은 첫 만남이었단다. 오삼봉은 외삼촌 방대근이 있는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박건식의 장남 동화는 감옥에 다녀온 이후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친일로 변절했단다. 그의 머릿속에는 잘 살겠다는 것만 생각했어. 감옥에 다녀온 이후 학교 퇴학 조치로 인해 취직하는데 제한이 생겨 공산주의를 더 경멸하게 되었단다. 친일로 변절하는 것은 박동화뿐만 아니었어. 이 즈음 많은 사람들이 친일로 변절했단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하면 많은 문인들이 친일로 변절했어. 잡지사에서 일하던 송중원도 그런 친일파들을 보며 씁쓸해했어. 송중원이 일하는 잡지사도 사회 이슈보다 연애 소설의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것을 보고 송중원은 곧 잡지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

만주의 조선혁명당을 이끌던 양세봉이 죽고, 조선혁명당은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동북항일연군은 한국과 중국 연합 군대였어. 방대근도 동북항일연군 사령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밀정을 찾아내는 별동대를 지휘하고 있었어.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김일성은 국경 넘어 함경남도 보천보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했단다. 이 소식은 국내에 전해지면서 기쁨을 주었어. 이런 김일성이 나중에 북한에서 그런 악랄한 독재자가 될지 누가 알았겠니.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있는 조선인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칠게. 방영근이 하와이에 온지 어느덧 33년이 되었단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니, 조국을 보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생겨났어. 방영근이 형님으로 모시는 구상배라는 사람도 폐암에 걸려 그만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했단다. 죽어서 끝이 아니라 영혼이 있다면 좋겠구나. 영혼이라도 조국땅에 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끝내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

여기까지가 <아리랑> 10권의 이야기란다. 여전히 한반도는 암흑시대로구나.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은 더욱 악랄해진단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친일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구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과연 그런 발언들을 할 수 있을지..그래서 역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란다. 우리 함께 역사를 읽고 공부해 보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모래밭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연모하는 사람을 찾아 만주까지 와서 뜻을 이룬 것도 그렇고, 목숨 내걸고 싸움터로 뛰어든 것도 그랬다


일본스파이 문제가 연해주의 조선사람들 사회에서 떠돌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다음부터였다. 조선사람들이 일본스파이가 되어 소련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해주의 조선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나보나 하며 별 관심 없이 들어넘겼다. 스파이라는 특이함도 특이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관심 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혁명사회 건설이라고 하여 사회 전반의 제도와 바뀌고 있었고, 특히 농촌에서는 지주라는 것이 전부 없어지고 집단농장이 조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조선사람들도 만주의 조선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해주에서도 어김없이 논을 일구었지만 그 땅이 러시아지주들의 것인 점도 만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소작인 생활을 겪어온 그들에게 지주 없는 집단농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경이었고, 새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은 그런 사회 건설을 그야말로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 P126

그러나 양세봉 장군을 잃어버린 조선혁명당군들의 사기는 전만 같지 못했다. 그런데다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되어 갔다. 반면에 일본군과 만주군들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승리하는 전투가 없어지면서 자꾸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총사령 김호석이 만주꾼에 체포되고 말았다. 조선혁명단군이 분산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 위기 앞에서 손을 뻗친 것이 동북항일연군이었다.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연합군대인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자는 것이었다. 조선혁명당군들은 만주에 새롭게 등장한 항일세력인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혁명당군들은 동북항일연군 대원들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힘이 약한 군대가 힘이 강한 군대에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건 조국해방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서로 연합하고 협동한 것이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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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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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부터 불로그나 유튜브에서 추천을 많이 추천한 책 <맡겨진 소녀>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라는 사람이야. 이 책의 표지 스타일과 제목만 봤을 때 아빠는 이 책이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단다. 먼저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추리 소설은 아닌 것 같더구나. 슬프면서 아름답고 이런 평들이 많았어.

평이 좋다 보니 귀가 얇은 아빠도 읽어봐야겠다고 주문을 했단다. 집에 도착하고 난 책을 보고 약간 놀랬단다. 책이 엄청 얇았거든. 전체 페이지가 104페이지이고, 실제 이야기부분은 100페이지도 안되었단다. 이 얇은 책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할까. 책을 폈단다.

 

1.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어느 일요일 아침 소녀의 아버지는 주인공을 데리고, 엄마의 고향으로 향했어. 그리고 엄마의 먼 친척 집에 소녀를 방학 동안 맡겼단다. 10살 남짓의 나이였어.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주인공 이름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단다. 아빠가 캐치하지 못했을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그 주인공을 소녀라고 하고 이야기를 진행할게.

소녀가 친척집에 맡겨진 이유는 소녀의 집에 아이들이 많고 엄마가 또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야. 소녀는 다섯째 중에 셋째였단다. 그렇게 소녀는 에드나 킨셀라 아줌마와 존 킨셀라 아저씨의 집에 도착했단다. 이 부분에서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는데, 그 부분 말고도 중간중간 아빠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단다. 그런데 Jiny는 이 책의 겉표지를 보고는 이 책이 <빨간 머리 앤>이냐고 물어봤지? 아빠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겉표지의 소녀의 머리 색깔이 빨갛긴 하구나. 그렇다면 이 소설은 지은이가 <빨간 머리 앤>을 오마주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아무튼 다시 책 이야기로 와서, 소녀는 존 아저씨와 에드나 아줌마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함께 시골 생활을 했단다. 두 분은 소녀에게 무척 잘 대해주었단다. 집에서 느낄 수 없던 사랑을 느꼈단다. 특히 에드나 아주마는 소녀를 딸처럼 잘 대해 주었고, 배려심도 깊었어. 소녀가 낯선 생활에 긴장을 했는지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는데, 모른 척 하시고 이불이 원래 축축했었다면서 모른 척 이불을 말려주시곤 했어. 존 아저씨도 처음에는 좀 무뚝뚝했지만 나중에는 잘 대해주셨어.

어느날은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이웃 집에 초상이 나서 가야 했어. 그곳에 또래 아이들이 없을까 봐 아줌마는 소녀를 이웃의 밀드러 아줌마한테 맡겼단다. 밀드러 아줌마도 아주 반기면서 소녀를 맡아주었는데, 밀드러 아줌마의 단점은 너무 말이 많다는 것이었어. 남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하고소녀에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의 옛 이야기를 해주었어. 사고로 죽은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까지남의 아픈,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왜 할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는 그런 아픔을 가슴에 품고 계셨구나. 하나밖에 아들을 보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런 와중에 사랑스러운 소녀가 왔으니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 아이는 꼭 지켜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소녀도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아줌마와 아저씨의 다정함과 사랑에 한 단계 따뜻한 성장을 하게 되었지.

….

시간은 흘러 방학이 끝날 즈음이 되어 엄마의 편지가 도착을 했단다. 소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이야. 소녀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에둘러 말하지만, 어른들이 결정하는 것을 바꿀 수 없던 것이야. 이제 다시 북적북적하고 답답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어. 에드나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뜨개질을 하셨어. 떠나기 전날 소녀는 에드나 아주머니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혼자 우물에 물을 뜨러 갔다가 그만 우물에 빠지고 말았단다. 아빠는 소설이 갑자기 스릴러로 변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소녀는 잘 구출되었어. 단지 감기가 걸려서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미뤄졌단다.

에드나 아주머니와 존 아저씨가 얼마나 놀랬을까. 자기 집에서 아이도 또 죽었다면 이번에는 더 큰 슬픔에 빠져서 회복하지 못 하셨을 거야.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단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를 돌봐준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소녀가 감기 걸린 것을 두 분 탓으로 돌렸단다. 소녀의 아버지가 좀 상식이 모자란 분이구나. 하지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는 그것에 반박하지 않으시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시게 된단다. 소녀는 돌아가시는 그 두 분을 향해 달려가 깊은 포옹을 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은 아주 짧은 소설로, 소녀와 에드나 아주머니, 존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과 그들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라고 아빠는 짧게 평하고 싶구나. 다른 이들이 많이 추천을 했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아빠는 추천할 정도는 아닌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인기에 힘 입은 건지 지은이 클레어 키건의 또 다른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번역 출간되었단다. 이 작품은 어떨려나.

….

아참, 검색을 하다 보니 소설 <맡겨진 소녀>는 영화 <말없는 소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구나. 제목은 왜 다르게 했을까, 홍보하기에는 제목을 똑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영화 <말없는 소녀>도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다고 하던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영화로구나. 시간은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행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책의 끝 문장: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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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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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의 책은 요한 하리의 <도죽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이후로, 여러 매체를 통해서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이란다. 책 관련 SNS에서도 많이 보여서 익히 알고 있던 책이야. 그런데 아빠의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주었단다. 그래서 아빠도 읽어보기로 했단다.

지은이는 요한 하리라는 저널리스트인데,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자기 자신의 문제점 때문이라고 했어. 지은이 자신이 최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즐겨 있던 소설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거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었으나,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영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대. 사실 아빠도 무척 공감이 갔단다. 아빠도 최근에 책을 읽다 보면, 특히 조금 어려운 책을 읽다 보면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거든. 그래서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었단다.

지은이는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경험들을 글로 쓴 것이 이 책이란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단다. 그 예로 지은이는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감상법이 바뀐 예를 들어주는데, 읽다 보니 작년에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더구나. 모나리자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를 본 나를 인증한 것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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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한번은 파리에서 <모나리자>를 보러 갔다. 이제 모나리자는 전세계에서 온 사람이 럭비 경기처럼 몸싸움을 벌이는 뒤편에 영원히 가려져 있는데, 모두가 앞쪽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가자마자 모나리자에게 등을 돌리고 셀카를 찍은 다음 다시 힘겹게 빠져나온다. 그날 나는 옆쪽에서 한 시간 넘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몇 초 이상 <모나리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더 이상 수수께끼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마치 16세기 이탈리아의 자기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왜 옛날처럼 나를 그저 바라보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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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은이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첫 번째로 한 것은 바로 디지털 디톡스 생활을 하는 것이었어. 프로빈스타운이라는 시골에 가서 인터넷 안 되는 PC와 전화만 되는 휴대폰을 가지고 세 달 동안 살아보는 것이야. 고전 <전쟁과 평화> 등 읽을 책들을 들고 가서 말이야. 한 달도 아니고 세 달이라니아빠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

사람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전 세대부터 집중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대. 텔레비전이 생기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고 가속화되면서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집중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구나. 점점 많아진 정보와 디지털 기기로 인해 오늘날 우리 뇌는 멀티태스킹에 길들어져 있어. 책을 보다가도 스마트폰 알림이 오면 그걸 봤다가 다시 책을 읽고 말이지. 뇌가 자꾸 왔다 갔다 하게 되는 전환(스위칭)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저하시키고, 삶의 질까지 저하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인다고 하는구나.…

지은이는 과연 디지털 디톡스 프로젝트를 잘 할 수 있을까. 지은이 또한 처음에는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힘들어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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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나 또한 핸드폰이 사라지자 세상의 큰 부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내 핸드폰을 되찾고 싶었다. 이메일을 되찾고 싶었다. 그 둘을 동시에 하고 싶었다. 해변에 있는 집에서 나올 때마다 본능적으로 핸드폰이 잘 있나 주머니를 만져보았고, 핸드폰이 없음을 깨달을 때면 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10대와 20대 때는 며칠이고 침대에 누워 쭉 책만 읽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때와 달리 프로빈스타운에서는 지나치게 들뜬 상태로 허겁지검 책을 읽고 있었다. 블로그를 훑으며 핵심 정보를 찾듯이 찰스 디킨스를 훑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독서는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추출했다. 그래, 이해했어. 이 아이는 외톨이구나. 그래서 요점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요가는 내 몸의 속도를 늦추었지만 정신의 속도는 늦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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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기기를 없앴다고 집중력이 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지은이는 소설을 쓰기를 했다는구나. 셋째 주가 되어서야 디지털 디톡스 생활에 적응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오래 쓰지 못했다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쓰는 시간도 늘려가면서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책읽기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구나.

인류는 지난 100년간 수면 시간이 20%나 줄어들었다고 하는구나. 조명의 발명이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렇게 부족해진 수면 시간도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라고 했어. 잠들기 두 시간 전부터 블루라이트는 보지 말고 침실의 인공 조명을 없애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어려운 일이로구나. 잠들기 직전까지 핸드폰 확인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니.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소설의 수난시대가 되었단다. 소설을 읽으면 공감력이 늘어나고 집중력에도 도움이 되는데, 디지털 기기로부터 책 읽는 시간이 줄고 집중력이 저하되고 있다는구나. 영국에서는 8년 사이에 소설 시장은 40퍼센트 줄었다고 하니 심각한 문제로구나. 소설을 좋아하는 아빠로서도 걱정이 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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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5)

오늘날 재미로 책을 읽는 미국인의 수는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인 2 6000명으로 구성된 표본을 연구하는 미국 시간 사용 조사는 2004년에서 2017년 사이에 재미로 독서를 하는 비율이 남성은 40퍼센트, 여성은 29퍼센트 줄었음을 발견했다. 여론조사 기업인 갤럽은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미국인 비율이 1978년과 2014년 사이에 세 배로 뛰었음을 확인했다. 현재 미국인의 약 57퍼센트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커져 2017년에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7,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 시간은 5.4시간이 되었다. 복잡한 소설은 특히 수난을 겪고 있다.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오로지 재미로 문학을 읽는 사람 수가 미국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만큼 철저히 연구되지 않았지만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도 비슷한 추세로 보인다. 2008년과 2016년 사이에 영국 소설 시장 규모가 40퍼센트 줄었다. 단 한 해 동안(2011) 페이퍼 소설 판매량이 26퍼센트나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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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종이책의 장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전문가가 이야기를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공감이 가면서 잘 설명이 된 것 같구나. 너희들에게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할 것이 아니고, 이런 이런 장점이 있으니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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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36)

레이먼드에게 물었다. 이유가 뭐죠? 그는 독서가 독특한 의식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관심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내면을 향해 엄청난 주의를 쏟습니다.” 눈을 감고 아무거나 상상하려고 애쓰는 행동과는 다르다. “그때 사람들의 관심은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이 위에 단어를 향해 바깥으로 기울었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향해 내면으로 기우는 것을 오가는 매우 독특한 상태에 있지요.”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 레이먼드는 그때 우리가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동기, 목표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런 다양한 요소를 따라가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연습입니다. 그때 아마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제 인물을 이해하려 할 때와 똑 같은 인지 과정을 사용할 겁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다른 인물을 어찌나 잘 가장하는지, 현재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기기보다 소설이 훨씬 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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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프로빈스타운에서 세 달을 디지털 디톡스 생활을 하면서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상에 복귀했단다. 일상에 복귀했다는 이야기는 다시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세상에 돌아온 것이지.. 지은이는 안타깝게도 일상 복귀 네 달 만에 다시 원상 복귀 되었다고 하는구나. 디지털 디톡스만이 답이 아니라고 깨달았어.

 

2.

우리는 왜 디지털 기기에, SNS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가. 나약한 인간을 디지털 기기에 끌어들이게 SNS 앱들이 만들기 때문이란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접속하게 할까를 연구하고 있단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알림음, 무한 스크롤 등이 개발된 것이란다. 아빠 주위에도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의 쇼츠를 잠깐 보려고 했지만, 어느덧 시간이 엄청 지나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의 쇼츠도 다 사람들을 오래 잡으려고 만든 것들인 거지. 그렇게 우리들은 우리도 모르게 디지털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어.

구글에서 개발 근무를 하던 트리스탄이란 사람은 자신이 수십억 인구를 산만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윤리적 갈등을 느끼고 메일 알림을 하루에 한번 하자는 제안을 구글에 했다는구나. 이건 구글의 수익과 반대되는 정책이었지. 몇몇 동료들이 그를 동조했지만, 결국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결국 트리스탄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단다. 그렇게 한 명이 그만둔다고 바뀌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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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구글플렉스의 한복판에서 몇 년을 보낸 트리스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지막 의사 표시로서 슬라이드쇼를 준비해 동료들에게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첫 번째 슬라이드에는 이렇게만 쓰여 있었다. “저는 우리가 세상을 더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산만함은 제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삶에서 전부니까요그런데 이곳에서는 수많은 시간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집니다.” 그는 지메일의 수신함 사진을 보여주었다. “피드도 막대한 양의 시간을 삼켜버립니다.” 그는 페이스북 피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국의 13세 이상 17세 이하 어린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 문자 메시지를 평균 6분에 한 개씩 보낸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구글(을 비롯한 다른 기업)이 의도치 않게 우리 아이들의 집중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트레드밀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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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앱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사람들이 최대한 자신의 앱에서 오래 머물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노력을 한단다. 사람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건, 산만해지건 상관없어. 사람들이 더 많이 자신의 앱에 머물게 하려면 좋은 뉴스가 좋을까? 나쁜 뉴스가 좋을까? 사람들은 나쁜 뉴스와 자극적인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구나. 그래서 그 앱들의 알고리즘은 나쁜 뉴스와 소식을 더 많이 노출시킨다고 하는구나. 그런 나쁜 뉴스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은 세상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추천 알고리즘으로 내 관심 있는 분야를 알려주어 고맙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알고리즘의 저의는 그 앱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 목적뿐이란다. 가장 대표적인 SNS인 페이스북 또한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경제 성장 원리가 우선인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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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57)

이 과학자들은 페이스북이 대중에서 공개하지 않는 숨은 자료를 전부 연구한 뒤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우리의 알고리즘은 분열에 이끌리는 인간 두뇌의 특성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놔둔다면페이스북은 사용자의 관심을 끌고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자 점점 더 분열적인 콘텐츠를 쏟아내게 되리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내부의 또 다른 팀(이들의 작업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유출되었다)도 독립적으로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팀은 극단주의 집단에 합류하는 사람의 64퍼센트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직접적으로 그 집단을 추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페이스북 피드에서 회원님을 위한 추천 그룹이라는 말과 함께 인종차별 집단, 파시스트 집단, 심지어 나치 집단을 발견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들은 독일의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모든 정치집단의 3분의 1이 극단주의라고 경고했다. 페이스북의 자체 팀은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의 추천 시스템이 문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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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알고리즘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단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알림을 끄는 거란다. 아빠도 스마트폰 사용 초창기 때부터 익숙히 않던 알림 소리에 너무 많이 와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있어서 중요한 앱을 빼고는 알림을 거의 꺼 놓는단다.

 

3.

이런 디지털 기기들만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니란다. 오늘날 변화된 먹거리도 집중력 저하에 한 몫을 한다고 하는구나. 인스턴트 식품들은 혈당을 급강하 시키거나 급상승 시킨다고 하는구나. 이것이 집중력에 영향을 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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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313)

우리가 끼니마다 그런 값싸고 형편없는 탄수화물 식품을 먹는다면 계속해서 그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데일은 그런 음식을 카페인과 함께 섭취한다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진다고 덧붙였다. “크루아상을 먹으면 분명 혈당이 급상승합니다. 하지만 크루아상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 혈당이 더더욱 치솟고, 그만큼 급강하가 따라옵니다.” 이러한 혈당의 급상승과 급강하는 온종일 발생하고, 그 결과 우리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서 오랜 시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데일은 (비유를 살짝 바꿔서) 이 모든 것인 “BMW 미니에 로켓 연료를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니는 순식간에 고장 나버릴 겁니다. 로켓 연료를 감당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미니에 알맞은 휘발유를 넣으면 부드럽게 달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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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기 오염과 환경 오염도 집중력과 IQ 저하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구나. 특히 납 중독이 IQ 저하에 많은 영향을 준대. 지난 세가 납의 유해성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납에 노출이 되었다고 하는데, 요즘도 우리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유해성의 물질이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는구나. 요즘 너희들과 너희들 또래를 보면 밖에서 활동하는 것부터 대부분 실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잖니.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지은이는 영국이나 미국도 최근 아이들의 활동 변화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구나. 아이들은 야외활동을 하면서 창의력을 올라가고 뇌가 발달하게 되는데, 요즘 실내에서 틀에 잡힌 생활을 해서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말이야. 핀란드 아이들의 예를 들면서 아이들의 야외 활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이 부분을 모두 필독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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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핀란드의 아이들은 7세가 되기 전까지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냥 논다. 7세에서 16세 사이의 아이들은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하고 오후 2시에 하교한다. 숙제는 거의 없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험도 거의 없다. 핀란드 아이들 삶의 고동치는 심장에 자유로운 놀이가 있다. 법적으로 핀란드의 교사들은 45분 지도할 때마다 15분의 자유 놀이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결과는? 핀란드 어린이의 겨우 0.1퍼센트만이 집중력 문제를 진단받으며, 핀란드인은 세계에서 읽고 쓰는 능력과 산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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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집중력이 떨어지는 여려 요인들을 이야기해봤는데, 결국 우리의 집중력 저하는 우리의 잘못보다 바뀐 시스템이 문제라는 거야. 사회는 우리를 그런 시스템에 살게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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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오늘날 성인은 어린이와 10대들이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종종 지긋지긋함과 짜증이 깃든 우월감을 느끼며 말을 얹는다. 그 말들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이 열등해진 세대를 봐! 우리가 얘네보다 낫지? 쟤네는 왜 우리처럼 못할까?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른인 우리의 일이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대체로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지 못하게 하고, 전자기기 화면으로 소통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는 집 안에 아이들을 가두며, 우리의 학교 제도는 대개 아이들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은 에너지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약물처럼 아이들을 들뜨게 할 수 있는 첨가제가 들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는 없다. 우리는 뇌를 망가뜨리는 대기 속 화학물질에 아이들을 노출시킨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이 세상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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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다면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완전한 해결책은 없지만 지은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했단다. 첫 번째, 지나친 뇌의 전환을 멈춘다. 일시적으로도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는 시간을 갖자. 두 번째. 일부러라도 어떤 것에 몰입을 해보자. 세 번째, 일년 중 6개월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쉽지 않겠구나. 6개월을 연속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려울 테니, 일주일 단위로 시도해보자고 하는구나. 아빠는 주중에는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성공하는 날이 더 많긴 하구나. 네 번째, 하루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면서 딴 생각을 한다. 산책을 하면서 음악이나 다른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딴 생각을 하면서 산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구나. .. 아빠는 걱정만 떠오를 것 같은데다섯 번째, 여덟 시간 수면을 한다. 여섯 번째, 자녀들의 삶에 관여를 한다.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밖에서 자유롭게 놀게 하라는 것이야. 이렇게 지은이는 집중력을 높이는 제안을 했는데, 우리도 조금씩 실천해 보자꾸나.

아빠도 도둑맞은 집중력에 공감을 해서, 메모를 하면서 읽긴 했는데도 읽은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구나. 메모를 한 부분도 이건 왜 메모를 했지? 하면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안 한 부분도 있구나. 나중에 너희들이 읽어보는 것으로 하자.

아빠만의 집중력 회복 방법을 하나 소개할게. 아빠는 책 읽을 때 시간을 재면서 읽곤 한단다. 10분씩 타이머를 하고 읽거나, 10페이지씩 읽는 시간을 체크하면서 읽어. 그러면 그 동안은 그나마 책을 집중해서 읽게 되더구나. 아빠만의 집중력 회복법이라고 할까. 이 책에서도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했는데, 우선 스마트폰의 앱 알림을 좀더 줄어봐야겠구나. 진짜 꼭 필요한 것만 알림으로 해놓아야겠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이 책을 읽으면서 구성 상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어. 큰 따옴표를 무지막지하게 달아놓았더구나. 큰 따옴표라는 것이 보통 대화를 나타내거나 강조를 나타낼 때 쓰이곤 하는데, 이 책에는 정말 뜬금 없는 곳에 큰 따옴표들이 있더구나. 영어 원문에 그 곳에 따옴표들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고 싶더구나. 그래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좀 더 자연스럽게 큰 따옴표를 사용해도 되었을 텐데 아래 부분은 다고사이에 큰 따옴표는 너무 뜬금 없지 않니? ‘있다사이라면 몰라도이런 부분이 책 전반에 걸쳐 있었어.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가? 아빠는 읽으면서 자꾸 신경이 쓰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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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은 우리가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주의로 좁혀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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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구나.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나의 대자(godson)는 아홉 살 때 잠깐이었지만 기이할 만큼 강렬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빠져들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오늘날 우리가 함께 집중하지 않으면 이 산불에 홀로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는 이러한 끊임없는 전환이 세가지 방식을 통해 집중력을 저하한다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 방식은 전환 비용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방대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 자신이 소득 신도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와서 그 문자를 확인하고(5초간 힐끗 보는 것뿐이다) 다시 소득 신고로 되돌아간다고 상상해보자. 얼은 그 순간 "뇌가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면서 재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야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 증거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사람들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고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전환의 결과입니다." - P60

그러므로 몰입 상태가 되려면 단일한 목표를 택해야 하고, 그 목표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의미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해서 몰입에 빠져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몰입은 특별한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몰입한 사람은 자신이 오로지 현재에 머무는 기분을 느낀다. 자의식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한다. 자아가 소멸해 목표와 내가 하나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기어오르는 암벽이 곧 내가 되는 것이다. - P88

궁금했다. 종이책이라는 매체에 담긴 메시지는 뭐지? 글자가 구체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전부터 책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먼저, 삶은 복잡하다.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깊이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야 하며, 속도 또한 늦춰야 한다. 둘째, 다른 걱정을 제쳐두고 한 가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한 문장, 한 문장, 한 쪽 한 쪽을 따라가는 경험은 가치 있는 일이다. 셋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은 깊이 사고해볼 만하다. 다른 이들에게도 우리처럼 복잡한 내면의 삶이 있다. - P132

두 과학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딴생각(내가 프로빈스타운에서 너무나도 많이, 즐겁게 했던 것)이 주의 집중의 정반대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유로 딴 생각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실제로 딴생각은 다른 형태이자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네이선은 우리가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주의로 좁혀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저 다른 사고방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할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의력이 꼭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중요한 형태의 사고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다. - P149

"이 기술이 우리 아이들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 페이스북의 성장 담당 부사장이었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한 연설에서 페이스북이 너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기 자녀에게는 "그 쓰레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공동 개발한 토니 파델은 이렇게 말했다. "종종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뭘 내보낸 거지?"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뇌를 날려버리고 재설정"할 수 있는 "핵폭탄" 생산에 일조한 것은 아닐지 우려했다. - P189

첫 번째 요소는 가장 명백하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달릴 때(어떤 형태든 운동에 참여할 떼) 집중력이 개선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대한 증거를 발견해왔다. 예를 들어 이 현상을 조사한 한 연구는 운동이 어린이의 집중력에 "이례적인 추진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포틀랜드에서 인터뷰한 조엘 닉 교수는 이 증거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요약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경우 유산소 운동이 뇌 연결망과 전두엽, 자기 통제와 집행 기능을 돕는 뇌 화학물질의 생성을 돕니다. 운동은 "뇌를 더 크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보여주는 증거가 너무 방대해서 조엘은 이 결과를 "확실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증거는 이보다 더 명백할 수 없다. 뛰어다니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아이들을 막는다면, 아이들의 집중력과 전반적인 뇌 건강은 악화될 것이다. - P378

현재 우리는 녹초가 될 만큼 일해서 물건을 살 수 있으면(대부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번영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이슨은 우리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자연에 머물거나, 충분히 자거나, 꿈꾸거나,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번영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는 빠른 삶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원한다. 죽기 직전에 자신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형 상태 경제에서는 우리의 집중력을 공격하지 않고 지구 자원을 공격하지 않는 목표를 선택할 수 있다. - P429

기후위기는 해결 가능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깨끗한 녹색 에너지원으로 사회에 동력을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분별력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3분마다 작업을 전환하고 알고리즘이 붙어넣은 분노 때문에 늘 서로에게 고함을 치는 정신없는 인구 집단은 이 해결책을 실행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 위기를 해결할 때에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고심하다가 제임스 윌리엄스가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어쩌면 인간 집중력의 해방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도덕적, 정치적 투쟁일지 모른다. 이 투쟁의 성공이 선행되어야만 사실상 다른 모든 투쟁이 성공할 수 있다.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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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삭발한 수도원 교사는 창백하고 신경질적이며 야심에 넘치는 변호사 로베스피에르와 각별히 친해진다. 더군다나 이 둘의 관계는 처남 매부 간으로 발전해 나가려는 참이다. 막시밀리앙의 누이인 샤를로트 로베스피에르는 오라투아르 교단의 교사를 수도승 신분에서 해방시키고자 한다. 곳곳에서 둘이 약혼했다는 소문이 돈다. 왜 이 혼사가 결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여기에 두 남자가 서로 증오하게 된 이유가 숨겨져 있는 듯이다. 예전에 친구였던 두 남자는 후일 목숨을 걸고 세계사에 남을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에게는 자코뱅도 증오도 낯선 단어이다. 증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삼부회 의원 자격으로 프랑스의 새 헌법을 장만하도록 빈털터리 변호사에게 금화를 빌려준 것도 다름 아닌 삭발승 조제프 푸셰이다. 이 일화는 그가 나중에 자주 맡게 될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다른 사람에게 세계 역사에 남을 경력을 쌓도록 발판을 받쳐 주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옛 친구를 배반하고 등을 밀쳐 쓰러뜨릴 것이다.

 

(32-33)

이처럼 조제프 푸셰는 평생 막후의 인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 막후의 인물은 결코 눈에 보이게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며 모든 끝을 손에 쥐고서 조종하지만 결코 책임자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노련한 모사가인 푸셰는 공화국과 왕정과 황제의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숱한 에피소드에서 스무 번이나 의상을 바꿔 가며 한결 같은 명배우의 솜씨로 이 역할을 연기한다.

 

(40-41)

바로 이 순간 조제프 푸셰의 성격 중 또 다른 특징이 처음으로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철면피이다. 그가 어떤 정파를 배반하고 떠날 경우 그는 결코 서서히 그리고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은밀히 조심조심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훤한 대낮에 냉랭히 미소 지으며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이제껏 적수였던 자에게 직진해서는 적수의 말과 주장을 몽땅 그대로 떠안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아연실색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한때의 동지들이 자신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중과 여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해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항상 승자 편에 있는 결코 패자 편에 있지 않는 것만이 그에게는 중요할 따름이다.ㅏ 그는 번개처럼 빠르게 돌아서서 지독히 상대를 경멸하는 태도로 돌변할 수 있을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철면피여서 보는 사람이 어느새 넋을 잃고 감탄까지 하는 지경이다. 푸셰가 자신이 신봉하던 깃발을 내던지고 다른 깃발을 열광적으로 펼쳐 드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하다. 어떨 때에는 단 한 시간, 아니 단 일분이면 충분하다. 그는 이념을 따라가지 않고 시간을 따라간다. 시간이 조급히 질주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속력을 내어 뒤쫓아 갈 것이다.

 

(68-69)

세계의 역사는 대개는 용감한 자들의 역사로 서술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다. 세계의 역사는 비겁한 자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정치란 공동체의 의견을 선도하는 것이라고 믿으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지도자는 공동체의 의견이라는 법정을 만들고 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바로 이 법적 앞에서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전쟁도 항상 이러다가 일어난다. 위험한 말로 불장난을 하고 민족 감정을 자극하다가 정치가는 범죄를 범하게 된다. 이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악덕과 잔인성도 인간의 비겁함만큼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조제프 푸셰가 리옹에서 대중을 학살한 것은 공화주의자의 열정 때문이 아니다.(그는 열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자신이 온건주의자로 밉보일까 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설마 그가 수천 번 리옹의 도살자라는 호칭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이 호칭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히게 된다. 그가 나중에 공작의 망토를 두른다 해도 손에 묻은 핏자국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106-107)

로베스피에르에 맞선 반란에서 푸셰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위태로운 역할을 맡아 막후에서 비밀리에 활약했지만 대부분의 역사서는 이런 그의 역할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지 않다. 몇몇 얄팍한 역사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서술한다. 그렇기에 역사가들은 당시의 박진감 넘치는 마지막 날들을 다룰 때 대개 탈리앵과 바라스와 부르동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탈리앵은 연극배우 마냥 열정적으로 연단에서 단도를 휘두르며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 했고, 바라사는 험악한 기운을 발산하며 군대를 소집했으며, 부르동은 탄핵 연설을 했다고 서술한다. 한마디로 역사가들은 테르미도르 9일에 펼쳐진 대서사극의 주연 배우들을 묘사하지만 푸셰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사실 그는 그 운명의 날에 국민공회라는 무대에 서서 함께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 뒤에서 이 무모하고 위험한 연극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한층 더 어려운 일을 맡는다. 그는 장면들을 구성했고, 배우들을 연습시켰고 눈에 띄지 않게 어두운 데서 리허설을 했고 시작 신호를 보냈다. 어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진정한 영역이다. 후세의 역사들은 그가 맡은 역할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쳤지만 한 동시대인은 이미 그의 활약을 감지했다. 바로 로베스피에르이다. 그는 공공연히 푸셰를 음모의 괴수라는 딱 맞는 호칭을 불렀다.

 

(131)

특히 천재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한동안 고독을 견뎌 내야 한다. 멀리 추방되어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야만 참된 과업의 폭과 높이를 측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복음은 모두 유배를 거쳐서 생겨났다.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붓다, 모두 중대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앞서 침묵의 광야로 가야 했고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내야 했다. 밀튼은 실명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을 갔고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갇혔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 숨어 지냈으며 단톄는 망명을 했고 니체는 살이 에이는 듯 추운 앵가딘 지역을 거주지로 택했다. 물론 이들은 맨 정신으로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이들의 수호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끔 은밀이 조율했다.

 

(152)

인간이란 돈과 사치를 좋아하며 사소한 일탈과 은밀한 쾌락을 즐긴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런 건 상관없다. 그저 조용히 처신하기만 하면 된다. 공화국 치하에서 온갖 험한 일을 겪던 거물급 은행가들은 이제는 태연히 부정 거래를 하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푸셰는 그들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그들은 그 대가로 그에게 이익의 지분을 넘겨준다. 마라와 데물랭이 이끌던 언론은 피에 굶주린 개마냥 물어뜯었건만 이제 언론은 고분고분 꼬리치며 푸셰의 다리에 감긴다. 언론 역시 채찍에 맞기보다는 비스킷을 얻어먹고 싶어 한다. 한동안 애국지사들이 야단법석을 피웠지만 이내 조용해졌고 쩝쩝대며 먹는 소리만이 들린다. 푸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뼈다귀를 던져 주거나 몇 차례 세게 때려서 애국지사들을 구석으로 몰아낸다. 이미 그의 동료들과 모든 정파들은 푸셰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유쾌하고 유익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를 화나게 해서 부드러운 앞발에 숨긴 갈퀴 발톱을 내밀게 만들면 좋지 않다는 것도 깨닫는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독히 멸시를 당하던 이 남자는 갑자기 수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 그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덕에 그에게 발목이 잡힌 사람들이다. 론강가에 놓인 파괴된 도시 리옹은 아직도 재건되지 못했지만 리옹의 산탄 학살 사건은 벌써 잊히고 푸셰는 인기를 모은다.

 

(173)

며칠 수 제1통령 보나파르트는 출정했을 때보다 백배는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그러고는 모든 장관과 친구들이 그가 패배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즉시 누군가로부터 들은 게 분명하다. 첫 번째 희생자는 너무 많이 앞서 나갔던 카르노이다. 그는 장관직을 잃고, 푸셰를 포함한 다른 장관들은 직책을 유지한다. 푸셰는 워낙 조심스러워서 충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충성했다는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한심한 꼴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의 변함없는 모습을 또 한 차례 확인시킨 셈이다. 만사가 잘 될 때는 믿을 만한 인물이지만 만사가 꼬일 때는 믿지 못할 인물이 바로 푸셰이다. 보나파르트는 그를 해고하지 않는다. 나무라지도, 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날부터 그는 푸셰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199)

푸셰가 나폴레옹에게 이런 힘을 행사한다는 사실이 동시대인들에게는 수수께끼였지만 그 힘은 마법이나 최면술을 써서 얻은 게 아니라 노력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숙련된 솜씨로 부지런히 일하고 체계적으로 관찰을 한 덕에 얻은 힘이다. 푸셰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황제가 알려 준 것 뿐 아니라 황제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까지 온갖 비밀을 알고 있다. 마술사처럼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온 국민 뿐 아니라 주군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푸셰는 황제의 부인 조제핀을 통해서 부부 생활의 가장 내밀한 세부 사항까지 알고 있고 바라스를 통해서 나폴레옹이 굽이굽이 출세의 계단을 오르면서 했던 일들 모두를 알고 있다. 또 재계 인사들과의 친분 덕에 황제의 사유재산의 제반 상황을 감시한다. 보나파르트 일가는 숱한 지저분한 일들을 저지르는데 이 역시 그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형제들이 도박을 하다가 사고를 치든 누이 폴린이 방탕한 성생활을 즐기든 그는 놓치지 않는다.

 

(271-272)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공화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들 중 하나를 내각에 들여 놓으면 된다. 진짜 공화주의자 하나만 있으면 부르봉의 백합기를 빨갛게 치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귀족들은 고심하다가 갑자기 조제프 푸셰라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사람은 2, 3주 전에 모든 접견실을 돌아다니며 고관들을 예방했고 왕과 장관들의 책상을 수많은 건의서로 뒤덮었다. ‘그래, 이 사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빨리 이 사람을 은거 생활에서 끌어내자!’ 어떤 정부가 난관에 처하거나 유능한 중개자나 협상가, 질서를 창출할 사람을 필요로 할 때면 그 정부는 늘-총재정부든, 통령정부든, 황체치하든, 왕국이든 상관없이-깃발을 들고 행렬을 이끌 줄 아는 남자 조제프 푸셰에게 눈을 돌린다. 결코 믿은이 가지 않는 성격을 지녔지만 외교적 수완을 갖춘 믿음직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273)

그는 이런 말로 왕의 동생을 진정시킨다. “너무 늦었습니다. 왕께서는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벌이는 모험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황제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저 저를 믿어 주십시오.” 이렇게 그는 왕정의 호감을 얻는다. 만일 부르봉 가문이 승리를 거두면 자신이 그들의 조력자라고 생색을 낼 수 있다. 만일 나폴레옹이 승리하면 부르봉 가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양다리를 걸쳐서 일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법을 성공적으로 구사해 왔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된다. 그는 이제 황제와 국왕, 두 군주를 동시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신하가 되려고 한다.

 

(287)

후일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패배자 나폴레옹은 푸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게 진실을 들려준 건 배신자들뿐이었다.” 사무친 원한을 토로하는 대목에서조차도 메피스토펠레스만큼이나 비상한 능력을 갖춘 푸셰를 경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천재가 가장 못 견뎌 하는 것이 범속함이기 때문이리라. 푸셰가 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폴레옹은 어쨌든 푸셰는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에 독이 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 물을 향해 손을 뻗치는 법이다. 나폴레옹은 충실하고 무능한 사람보다는 믿을 수 없지만 영리한 사람을 신하로 삼는 길을 택한다. 10년을 치열하게 대립했던 사람들이 어중간한 우정을 나눈 사람들보다 서로 더 긴밀한 사이가 되는 경우는 놀랍게도 종종 있다.

 

(319-320)

푸셰 주변의 걸출한 인물들은 모조리 나락으로 추락했다. 미라보는 사망했고 마라는 살해되었으며 로베스피에르와 데물랭과 당통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푸셰와 함께 파견의원으로 활약했던 콜로는 열애에 있는 기아나 섬으로 추방당했으며 라파예트는 정치생명을 잃었다. 혁명을 함께했던 동지들은 모두 멀리 떠났고 자취를 감췄다. 이제 푸셰가 모든 정당의 신뢰를 받고 선출되어서 프랑스의 운명을 결정하는 동안 세계의 지배자였던 나폴레옹은 남루한 옷으로 변장을 하고 일개 장군의 비서 행세를 하며 가짜 여권을 가지고 해안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뮈라와 네가 총살될 날을 기다리고 있고 나폴레옹 덕에 왕 행세를 하던 보나파르트 일가는 다스릴 나라 하나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서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신세이다. 다시없을 세계의 전환기를 이끈 세대는 한때는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모조리 몰락했고 오직 푸셰만이 출세 가도를 달려왔다. 암암리에 계획을 세우고 물밑 작업을 끈기 있고 집요하게 이어 온 덕분이다. 지금 내각과 원로원과 국회는 그의 노련한 손 안에서 말랑말랑한 밀랍처럼 맥을 못 추고 평소에는 교만하던 장군들도 연금을 잃을까 떨면서 어린 양처럼 새 의장을 떠받는다. 프랑스 시민과 민중은 그가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루이 18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고 탈레랑도 안부를 전한다. 워털루의 승리자 웰링턴은 친밀히 소식을 전한다. 세계의 운명을 조종하는 실이 공개적으로 푸셰의 손을 거쳐 가는 건 처음이다.

 

(331-332)

백일천하라는 나폴레옹 주연의 막간극이 끝난 후 1815 7 28일 국왕 루이 18세는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시 파리로 입성한다. 푸셰가 열심히 준비한 덕에 국왕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환영 인파가 마차를 에워싸고 집집마다 걸린 부르봉 왕가의 흰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미처 깃발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수건이나 식탁보를 지팡이에 달아서 창문가에 걸쳐 놓는다. 저녁에는 수많은 불빛이 도시를 환히 밝히고 기쁨에 겨운 사람들은 영국과 프로이센 점령군의 장교들과 춤추기까지 한다. 성난 고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서 사전 예방책으로 배치된 헌병들은 할 일이 없다. 정말이지 그리스도의 뜻을 가장 잘 따르는 국왕의 새 경찰장관은 새 주군을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튈르리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를 공손히 모셨던 충실한 신하 오트란토 공작은 이제 같은 장소에서 루이 18세를 기다리고 있다. 22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그는 루이 18세의 형인 폭군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던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성왕 루이의 후손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서류에는 폐하를 진심으로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서명한다. (친필로 쓰인 10개 이상의 보고서에는 이런 글귀가 한 자 한 자 적혀 있다.) 그가 벌인 미치광이 공예 중에서 가장 아찔한 재주를 부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 재주를 마지막으로 줄타기와 같던 그의 정치 역정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346-347)

세계 역사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을 잃으면 전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그는 러시아 조정에 여러 차례 변죽을 울렸지만 초청장은 오지 않고 웰링턴도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벨기에는 국내에 이미 왕년의 자코뱅파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이에른 왕국은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고 오랜 친구 메테르니히 공작은 이유 없이 쌀쌀하게 군다. “, 그러십니까! 오트란토 공작께서 그러고 싶으시다면 오스트리아 영토로 들어와도 됩니다. 오스트리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공작의 체류를 묵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빈으로 와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당신이 빈에 머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탈리아로 가서도 절대 안 됩니다. 빈에서 멀지 않은 동북부 주를 제외한 다른 지방의 소도시를 택하신다면 조용히 처신하겠다는 조건하에 공작의 체류를 허가하겠습니다.”

 

(349)

15년 동안 운명이 위협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날렵하게 운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마침내 그가 꼼짝도 못하게 되자 운명은 이 패배자를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정치인으로서 굴욕을 겪은 것도 모자랐는지 조제프 푸셰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사생활에서도 뼈아픈 굴욕을 겪게 된다. 1817년 프라하에서 일어났던 작은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가가 지어내기라도 한 듯이 너무도 재치 있게 푸셰가 어떤 내적 굴욕을 겪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을 겪은 푸셰에게 이제 불행은 섬뜩한 캐리커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정치인 푸셰에 이어서 이제는 남편 푸셰가 굴욕을 당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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