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 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
한창호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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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영화와 그림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해줄게. 이 책은 아빠의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란다. 한창호라는 분이 쓴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라는 책이란다. 이미 책 제목에 영화와 그림이 모두 다 들어가 있네. 아빠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그림은 음...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겠구나. 간혹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마음에 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유명한 그림을 찾아보러 가거나 그림에 감동 받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전에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에셔의 그림과 그런 스타일의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이과생이 좋아할 만한 그림…^^

책 제목에 영화라는 제목이 있으니 조금은 책의 진입 장벽이 높지는 않겠지, 하며 책을 펼쳤단다. 지은이는 한창호라는 분인데, 이탈리아에서 영화 공부를 위해 유학을 7년동안 했다는구나. 유학을 마무리를 하면서 귀국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네 21이라는 잡지책에서 칼럼 투고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때 문득 생각한 것이 영화와 미술을 접목한 글이었대. 당시만 해도 영화와 미술에 함께 다룬 시도를 우리나라에서는 한 적이 없어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다고 하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05년이란다. 좀 오래되었지? 영화도 2005년 이전의 영화들이란다. 모두 너희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들^^

 

1.

이 책의 구성은 대충 이렇단다. 유명한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영상에 담긴 영화를 소개해주고, 그 그림과 영화의 한 장면을 비교 설명해 준단다. 그리고 그림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말이야. 예를 들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는 그림과 존 조스트의 영화 <뉴욕의 베르메르의 모든 것>의 한 장면. 베르메르의 <젊은 여인의 초상>이라는 그림은 아빠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 그림을 보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이 떠오르게 된단다. 맞아.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가 바로 베르메르란다. 그 그림과 함께 소개해준 영화 <뉴욕의 베르메르의 모든 것>은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영화란다. .. 지은이가 영화 전공자이다 보니, 참 많은 영화를 봤을 테고 그 중에 미술과 관련된 영화를 고르다 보면 아무래도 예술 영화로 부르는 영화를 많이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단다.

그러면 아빠가 본 영화는 별로 안 나오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갑자기 이 책의 진입장벽이 높겠군,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어. 그리고 책장을 책장을 펼쳐 읽어가는데, 정말 아빠는 본 영화가 안 나오는데, 본 영화는 둘째치고 제목이라도 들어본 영화가 안 나오는구나. 아빠도 나름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 책에서 소개해준 영화가 30편이 넘는데 아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는 팀 버튼의 <배트맨> 한 편 인 것 같구나. 보다가 중간에 관둔 영화가 두 편 정도 되는 것 같고대부분 안 본 영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영화로구나. 아빠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안되겠구나. 그런데 이 책에서도 소개된 영화 중에 보고 싶은 영화들도 몇 편 있는데, 이 오래된 영화들은 어디서 찾아봐야 하나.

아빠가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학창 시절 좋아하는 영화 OST가 있는데 그 영화도 이 책에서 소개가 되었단다. 영화 <바그바드 카페> 이 책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었는데, 한번 보고 싶더구나. 학창 시절 묘한 분위기의 이 영화의 OST “I’m calling you”만 좋아했지, 영화 <바그바드 카페>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 이 책에서 내용을 대충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고 싶구나. “I’m calling you”를 좋아하며 듣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유튜브에서 “I’m calling you”를 검색해서 들어보니, 옛 기억들도 같이 떠오르는구나. 이것이 음악의 힘인가. 영화와 그림에 관한 책을 이야기해주면서 아빠가 뜬금없이 음악을 칭찬하고 있구나. ㅎㅎ

이 책에서 소개한 영화들에 비해 그림과 화가들은 비교적 익숙한 그림과 화가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셀레, 르네 마그리트, 샤갈 등등 구스타프 클림트를 이야기해줄 때 빈에 사는 세 명의 유명한 구스타프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재미있더구나. 빈에서는 구스타프라는 이름이 유행했나 보구나.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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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19세기 말, 데카당스의 세련되고 퇴폐적인 기운이 가득한 도시, . 문학, 음악, 미술에서 세기 말 낭만주의의 정점에 있던 예술가 세 명이 바로 쇠락의 도시 빈에서 서로 이름을 떨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 구스타프 말러(1860~1911),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바로 그들이다. 슈니츨러와 클림트는 동갑이고, 말라는 이들보다 두 살 위다. 말러는, 레퀴엠보다 더 비극적인 <교향곡 5>에서 잘 보여줬듯, 지독한 비관주의자다. 그의 검은 음악은 우리를 죽음의 고요 속으로 이끈다. 반면, 클림트는 생명이 넘치는 황금빛 회화로 우리를 에로스의 환희로 초대한다. 이 두 예술가의 사이에, 곧 죽음과 에로스 사이에 슈니츨러의 문학 세계가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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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아빠가 이 책에 나온 영화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영화는 <배트맨>이 유일하다고 했잖아. <배트맨> 시리즈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아빠도 그 시리즈를 다 보지는 않았단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확실히 기억한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 배트맨 때문이 아니라 악당 조커 때문에그만큼 강렬한 캐릭터로 자리를 차지한 빌런, 조커. 아빠도 그 영화를 보면서 잭 니콜슨이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잭 니콜슨이 조커를 그렇게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서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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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07)

어떻게나 악당이 실감 나게 연기를 해대는지, 주인공 배트맨의 존재는 잘 기억나지도 않고 조커의 인상만 강렬하게 남은 영화가 <배트맨>이기도 하다. 만약 조커 일당이 무고한 사람들만 죽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릴 정도로 캐릭터들 사이의 중심은 조커에게로 쏠려 있다. 조커 일당이 배트맨과 싸우는 방법도 아주 인상적이다. 배트맨은 첨단과학과 거대자본이 있어야만 소유할 수 있는 무기들을 지고 하늘을 날고 땅 위를 쏜살같이 달린다. 반면에, 악당들은 재래식 소총을 들고 맨몸으로 배트맨과 싸운다. 어찌 보면 요즘 세상과 참 많이 닮은 전투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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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들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곤 한단다. 그런 원작 소설로 만든 영화 중에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라는 영화도 이 책에서 소개를 해주었단다. 토머스 하디의 원작 소설 <테스>는 우리 집에도 있는데, 아빠는 아직 읽지는 않았단다. 영화 <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구나. 먼저 <테스> 책부터 어디 있나, 찾아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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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연애소설 주에 토머스 하디의 <테스>만큼 인기가 높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겐 더하다. 여성이 과거를 고백하는 게 과연 잘한 것인가 아닌가같은 소재는 우리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에선 더욱 먹혀들었다. 테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그 과거를 고백한 대가로 인생을 망치는 순진한 처녀다. 이런 간단한 연애 이야기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문학적으로 승화된 언어 때문이지, 이야기의 독특함 때문은 아닌 듯하다. 특히 토머스 하디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자연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선배 워즈워스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며 자연에서 희망을 찾았다면, 하디는 이와 반대로 고독을 맛본다. 하디의 자연에는 절망이 있다. 쓸쓸한 고독 속에 방황하는 농촌 사람들의 무너진 인생이 하디 소설의 테마다. <테스>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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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책이 출간 당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나? 이 책이 주목을 맞고 인기를 끌었다면 후속작도 나올 법한데 검색해보니 없더구나. 하기야 아빠도 최근에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이니 아주 큰 인기를 끈 것 같지는 않구나. 당시에는 후속작이 없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2024년 한번 써봐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그 사이에 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그 영화들 속에서도 숨어 있는 미술 작품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

책 제목이 영화가 들어 있어서 가볍게 시작했지만, 알 수 없는 영화 소개로 크게 공감은 갖지 못했지만, 영화 속 숨어 있는 명화들을 알게 된 좋은 기회인 것 같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999년 여름 베로나에서의 일이다.

책의 끝 문장: 콘스터블, 토머스 하디 그리고 폴란스키를 연결하는 하나의 개념은 절망한 풍경이다.

 


모든 것이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집중됐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던 만발한 꽃이나 잘 익은 과일들이 이젠 기쁨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데 이용됐다. 만발한 꽃은 곧 시들 듯, 우리도 곧 죽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소재가 정물화 속의 해골, 모래시계, 그리고 촛불일 것이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면 또 촛불이 다 타고 나면, 그 다음은 말 그대로 ‘무(無)’만 남는 것 아닌가? 우리가 문리를 깨우치려고 붙잡고 씨름하던 ‘책’, 그리고 과학 관련 도구들도 바니타스의 단골 소재였다. 파우스트가 책 더미에 둘러싸여 진리를 깨우친 뒤, 결국 삶의 허무에 슬퍼했듯, 책과 과학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모두 허무하다고 화가들은 그린다. - P48

미술사가들에 따르면 로코코의 시작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죽음(1715)과 일치한다. 베르사유 공전의 장대하고 영웅적인 17세기의 바로크와 고전주의가 물러나고, 파리의 살롱을 중심으로 작고 예쁜 실내 장식 같은 예술들이 18세기 초엽부터 시작됐다. 절대 권력자의 독재에 질린 귀족들이 궁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자신들의 고향인 파리로 돌아간 뒤, 궁전 예술과는 아주 다른 ‘사적인 취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좋아했는데, 이를 예술사에선 로코코라고 부른다. - P80

마르크 샤갈(1887~1985)도 경계인이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지금의 벨로루시공화국의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자유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일종의 불법체류자처럼 숨어 살았다. 당시 유대인은 러시아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인도, 그렇다고 유대인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한 인물이다.
샤갈의 세상은 집시의 세상과 닮았다. 이성과 상식은 없고, 마법적인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결혼한 신랑 신부는 하늘을 날고, 동물의 머리를 한 신랑은 가냘픈 신부의 뺨에 입맞춘다. 집보다 닭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늘 지붕 위에 앉아 있다. 닭, 황소, 양들은 사람의 가장 절친한 이웃인 듯 빠짐없이 등장하고, 이들이 사는 마을은 늘 축제로 흥청망청이다. 샤갈의 세상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처럼 카오스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다.
- P160

1916년 스위스의 취리히. 모든 유럽이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을 때, 전쟁이 싫다는 이유로 몇몇의 삐딱한 젊은이들이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이 도시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의 학살 전쟁을 겪으며 이들은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긍정적인 가치들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예술 운동을 전재한다. 소위 ‘거부’의 미학운동이라 하는 아방가드르 ‘다다(Dada)’는 이렇게 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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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120-121)

다희의 눈썹. 다희가 얘기할 때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을 보면서, 사람에게 눈썹이라는 게 있었구나. 눈썹이라는 게 꼭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그리고 사실 그녀는 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게 껍질을 까서 하나하나 손바닥에 올려주던 마음이 고마워서 그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고, 결국엔 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도.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318)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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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0권 - 창씨개명에서 8.15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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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디어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 마지막 10권이구나. 10권을 쭉 읽었다면 더 몰입하고, 실제 그 시절을 사는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아빠가 이번에 읽은 것처럼 가끔씩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단다. 기억이 잊혀질 만할 때 다음 이야기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

10권의 부제는 <창씨개명에서 8.15해방까지>란다. 창씨개명은 일제 말기 1940년대에게 내선일체의 일환으로 내세운 정책이란다.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었단다. 그리고 여러 신문사들이 강제 폐간되었는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이때 폐간되었단다. 조선일보는 이때 폐간된 것을 두고, 후에 자신들은 친일 신문이 아니고 민족지라고 주장하였는데, 뻔뻔한 변명이 아닐 수 없구나. 보다 못한 한겨레 신문이 팩트 폭격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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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에 <한겨레> <조선일보>를 지목해 일제가 <조선일보>를 폐간한 주된 이유는 1938년 공포된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물자절약 및 조선어 말살 차원에 있었다. 이는 폐간사에서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夙夜奮勵)한 것은 사회 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라고 밝힌 데서도 <조선일보>가 무슨 항일을 해서 폐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폐간 보상금으로 <매일신보>와 총독부로부터 각각 20만원과 80만원을 받았다. 당시 일본군 전투기 한대가 10만원이었음을 보면 적지 않은 돈일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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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가 길어지면서, 독립운동도 침체기를 겪었단다.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충칭에 자리를 잡았어. 그 동안 문제가 되었던 독립운동의 좌우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좌우합작노력도 진행되었단다. 그래서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했어. 그래, 이념 싸움은 나중에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 하고, 일단 하나로 뭉쳐야지.

당시 한국광복군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단다. 군비가 부족하여 제대로 운영을 할 수가 없었어. 미주 동포들이 돈을 보내주었지만, 역부족이었어. 중국은 지원을 해주되 통수권을 요구해서 독립군을 화내게 했지만, 결국 군비 문제 때문에 한국광복군의 통수권을 중국에 넘겨주었단다. 하지만 중국도 광복군을 제대로 운영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임시정부는 다시 지휘권을 돌려달라고 했단다.


1.

일본은 그냥 땅만 점령한 것이 아닌, 온갖 만행을 저질렀단다. 그 중에 731부대의 생체 실험은 너무 잔인한 것이란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을 이용하여 이것저것 실험을 한 것이란다. 학창 시절 엄청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일본군이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무서우면서 놀랬던 기억이 있구나. 사람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들을 버젓이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생체 실험을 주도했던 이들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이것에는 미국도 큰 책임이 있단다. 미국은 생체실험 자료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그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대. 하기야, 미국이 늘 겉으로는 평화를 위하는 것 같지만, 늘 자국의 이익이 제1순위인 나라 아니던가. 그들 또한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만행들이 한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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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4)

영국 BBC 2002 3월 방송한 화제작으로 이 부대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생체실험을 겪은 중국 현지 피해자들의 소송준비과정 등을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경악할 만한 부분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가공할 전쟁범죄를 저지른 731부대 요인들이 나치와는 달리 아직도 일본 정계 및 보건 의료계에서 버젓이 핵심세력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고바야시 로쿠조(일본 국립 방역연구소 소장), 나카구로 히데토시(국방의학대학 총장), 나이토 료이치(녹십자 회장), 기타노 마사지(녹십자 대표이사), 가수가 추이치(트리오-켄우드 회장), 요시무라 히사토(교토 의학대학 총장), 야마나카 모토키(오사카대 의과대학 총장), 오카마토 코조(교토대 의과대학 학장), 다나카 히데오(오사카대 의과대학 학장) 등이 문제의 인물들이다. 특히 731부대의 책임자였던 이시이 시로는 일본이 미군에 항복하자 부대에 남아 있던 포로들을 학살하고 실험용 쥐를 풀어 증거를 인멸했다고 한다. 그는 부대원들에게 비밀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뒤 미국이 탐내던 실험 관련 데이터를 넘기는 조건을 면책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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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731부대뿐만 아니라 일본 감옥 안에서도 생체 실험이 이루어졌단다. 일본 감옥에서 자행된 생체 실험으로 돌아가신 분들 중에 윤동주 시인도 있단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그리고 많은 문인들이 친일파로 전향하는 와중에 가장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했단 시인 이육사 님도 끝내 감옥에서 돌아가시고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셨단다.

일본의 무모한 제국주의 욕심을 끝을 몰랐어.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유럽 열강들이 아시아 식민지에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은 아시아 여기저기를 점령했단다. 일본의 이런 확대에 미국의 신경이 거슬리게 되었고, 미국은 일본에 수출하던 석유에 제동을 걸었어. 그러자 일본은 미국을 기습 공격했단다. 1941 12 7일에 있었던 진주만 기습이었어. 일본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국은 약 2달간 열세를 보였고, 일본의 승전보는 이어졌단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서 승기를 미국이 잡아갔단다.

일본이 아시아 이곳 저곳에서 전쟁을 하고, 미국과도 전면전을 하다 보니, 군수 물품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어. 곡식과 각종 금속을 강제로 훔쳐갔고, 사람들도 강제로 잡아가 일을 시켰단다. 1939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약 730만명이 강제로 끌려가 노동과 전쟁에 참가를 했다는구나. 정말 가슴 아픈 역사로구나. 더욱이 일본을 위해 싸우는 학도병 모집에 국내 지식인들이 앞다투었다고 하니 더 화가 나는구나. 그 지식인들 중에는 글을 쓰던 문인들이 많았는데, 타고난 글솜씨로 우리 젊은이들을 현혹했을 생각을 하면, 그들에게 그냥 친일파 딱지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다 처벌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종군위안부가 있었단다. 이것은 731부대의 생체실험만큼 잔인한 짓이었단다.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전쟁터로 보낸 것이란다. 군인들을 위한 종군위안부로그때 끌려가신 분이 약 20만명이라고 하는구나. 이 문제는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음으로써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다. 각종 국제 단체 등에서 사과하라고 압력을 가하니 마지못해 일본 정부는 사과를 했는데, 희한하게도 피해 국가인 한국이나 중국이 아닌 미국에게 사과를 했다는구나. 별 그지 같은당시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일본 사람의 고백을 일본 정부는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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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68)

전쟁 당시 일본 야무구치현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을 지냈던 요시다 세이지는 나는 한국인 종군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던 그야말로 노예 사냥꾼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6,000명 정도를 직접 연행했다. 극비의 노무명령서에 따라, 마을에 도착하면 우선 여성 전원을 길로 끌어냈다. 도망치면 목검으로 때렸고 젊고 건강한 여성을 골라 트럭에 실었다. 안고 있던 아기를 잡아떼어 놓고 억지로 끌고 간 적도 있다. 비명을 지르는 젊은 어머니를 때려 쓰러뜨리고 2~3살의 어린이가 울면서 따라오면 애들을 내팽겨쳤다. 이렇게 모은 여성들을 화물열차와 관부연락선에 짐짝처럼 실어 시모노세키에 와 서부군 사령부에 인도하면 군용선박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각지로 보내졌다. 종군 위안부를 포함해 강제연행 관련 공식기록이나 관계문서는 패전 직후 내무차관 통첩으로 모두 소각처분했다. 황군병사라면 (이런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전후에 누구 하나 종군 위안부 얘기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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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이 벌인 많은 전쟁들.. 뱁새가 다리 찢어진 격이라고 할까. 일본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단다. 미국은 일본 본토 공격을 시작했단다. 오키나와 상륙 작전으로 일본 본토에 거점기지를 만들었어. 그런데 이때 일본 민간인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많은 민간인들이 미국이 점령하자, 가족들이 서로 죽이고 자살하는 일들이 벌어졌구나. 일본군이 다른 점령지에서 한 짓을 알고, 자신들도 그렇게 될까 봐 그랬던 것일까.

강대국들은 전쟁 이후의 일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단다.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들이 이어졌어. 얄타회담은 19452 8일부터 8일간 미국, 영국, 소련이 모여서 논의를 했는데, 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되, 신탁 통치를 해야 한다고 논의했다고 하는구나. 연합국이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가지고 오면서, 1945 4 28일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잡혀 처형 당했고, 1945 4 30일에는 숨어 있던 독일 히틀러가 자살을 했단다.

그렇게 유럽은 전쟁이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추축국 중에 이제 일본만 남았어. 일본이 무너지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미국, 영국, 소련은 1945 7 22일 포츠담 회담을 열어 다시 한번 한국의 독립을 보장해준다고 했단다. 일본의 마지막은 잔인한 한방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한 비밀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단다. 작년에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되면서 많은 사람이 알게 된 맨하튼 프로젝트로 만든 핵무기. 유럽이 이미 전쟁이 끝났고, 개발이 완료된 핵무기를 사용할 곳은 일본뿐이었단다. 1945 8 6일은 히로시마에, 8 9일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길고 길었던 전쟁도 끝났고, 그보다 더 길고 길었던 일제 강점기도 끝이 났단다.

그런데 이 핵폭탄에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아무런 죄 없이 끌려간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었단다. 그 수가 4~5만 명이라고 하니 적지 않구나. 예전에 다른 책에서 핵무기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나라가 일본이고, 두 번째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단다. 일본에 끌려가 죽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하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음이 또한 가슴 아프구나.

전쟁이 끝나고 일본에서는 전범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이를 주도했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재판을 대충 했단다. 그런데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조선인으로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포로 감시원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대. 일본의 적군이 보면 이들 또한 자신들의 적이잖아. 그래서 이들이 해방이 된 후 전범으로 낙인 찍혀 사형되었다고 하는구나.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가 일본 정부가 강제로 하라는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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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전후 연합군의 군사법정에서 포로학대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B, C급 전범 5,700여 명 가운데는 조선인 148명이 포함돼 있다. 그들 대부분(129)이 반강제적으로 동원된 포로감시원이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 5월 일본 육군은 말레이, 자바 등에서 펼친 남방작전에서 붙잡은 26만 명이 넘는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해 조선에서 3,000명의 포로감시원을 모집했다. 계약기간이 2년이라는 점과 징병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점이 주요 지원 이유였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조선인들 중 129명이 포로학대를 이유로 전범처리됐고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은 겨우 7명이었는데도 말이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군인도 아닌 군무원 신분이었지만, 전범자로 처리된 비율은 악명높았던 일본 헌병의 처리 비율(4.3퍼센트)과 맞먹을 정도였다. 게다가 가시 노부스케 전 상공대신, 아베 겐키 전 내무대신 등 A급 전범 용의자들은 1948년께 일찌감치 석방됐고, 천황의 전쟁 책임은 불문에 붙인 점을 감안하면 전후 전쟁범죄재판은 한편의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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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억울한 사연을 갖고 운명을 달리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넋들이 여전히 일본 땅 전역에 떠돌고 계실 것 같구나.

, 이렇게 10권의 이야기를 해보았어. 결국에는 해방이 되었지만, 그 해방이 되는 과정이 괴로움의 연속이었구나. 그리고 만주 땅에서 일본에 맞서 싸워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려고 했던 광복군에 의한 해방이 아닌, 미국의 힘에 의한 해방이라서, 또 다른 시련들이 앞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해방이 되자마자 일본이 분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국이자 독립을 보장해주기로 했던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겠는가. 당시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니 그런 결정을 한 것인데, 80년 가까이 그 분단이 이어지고 있으니, 당시의 결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도 또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지려나.

….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을 읽으면서 이 시절을 소설로 이야기한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과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가 생각났단다. 이 책들을 오래 전에 읽긴 했는데, 다시 한번 읽으면서 <한국 근대사 산책>을 소설로 복습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올해 독서계획으로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을 포함시켰단다. 그리고 주말마다 열심히 읽고 있는데, 이것도 곧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939 8 23일 소련 모스크바에서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밀약이 이루어졌다.

책의 끝 문장: 일제 36년의 유산이 잔재의 수준을 넘어선 현재를 재생산하는 실질적 원리로 기능하는 걸 재평가하고 성찰해보면서 사회의 운영 원리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1942년 작성된 임시정부의 내부보고서는 "미주 동포들이 보내주는 월 1,050달러의 지원금만으로는 300여 명으로 불어난 인원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간 줄곧 광복군에 대한 통수권을 요구해온 중국 측은 한편으로는 재정지원 등을 내걸고 다른 쪽에서는 병사모집을 하는 광복군 지휘관에게 통행증을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결국 1942년 4월 임시정부는 광복군 통수권을 중국 측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중국 측도 광복군을 제대로 유지할 형편이 못 되자, 1943년 2월 임시정부는 정식으로 군 지휘권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중국 측에 하기에 이르렀다. - P53

김구와 임시정부는 1943년 6월경 루스벨트 대통령이 장제스에게 미영중소 연합국 정상회담을 제의해온 것을 알고, 장제스에게 접근했다. 1943년 7월 26일 장제스는 김구의 요청에 응해 한국 요인 6명을 비밀리에 공관으로 초빙했다. 참석자는 김구, 조소앙, 김규식, 이청천, 김원봉, 그리고 통역으로 참석한 안원생(안중근의 조카) 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구는 종전 후 한국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고 국제공동관리의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중국 측의 지지와 지원을 요청했다. 장제스는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바로 이 약속이 카이로회담에서 이행된 것이다. - P149

역설이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국가를 위한 희생자에 대한 예우에 전력을 기울이지만, 단일인종 단일민족 국가인 한국은 정반대다. 그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이다. 이름이 높거나 세상의 관심을 끌 만한 계기가 있으면 모든 정성을 다 바치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누가 너더러 그렇게 하랬어?"라는 식이다. ‘한국인 징용자들의 비극’이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163

일본에 대해 너그럽고 싶은가? 한국의 반일감정을 경멸하고 싶은가? 역사를 알려고 들지 말아야 한다. 혹 오다가다 들은 게 있더라도 곧 잊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선 일본에 대해 너그러울 수가 없다. 물론 오늘의 일본인은 가족끼리 때려죽인 오키나와 집단자결 사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러나 직접적인 책임만 없는 것일 뿐, 일본 정부와 우익의 교과서 왜곡에 침묵한다면 스스로 간접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상적 삶에선 지구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선량한 일본인들의 적극적인 양심회복운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다. - P200

그러나 그 어느 쪽이건 한국이 미소 두 강대국이 그들 마음대로 갖고 노는 장난감과도 같은 비참한 운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작 분단되어야 할 나라는 전범국가인 일본이었건만, 미국의 대소련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이 분단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일부 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38도선에서의 미소 양국군의 한반도 분단 점령은 일본 분단 점령의 대용품이 되고 말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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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우리와 다른 외계인, 진정한 천재가 존재한다니. 전교생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두 살에 글을 깨쳤다고 했다.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여섯 살에 암산으로 여덟 자리 숫자 두 개를 나눗셈할 줄 알았으며, 한번은 여름방학 때 펜싱 교사 머리에 불을 붙인 벌로 아버지 서재에 감금되었다가 심심풀이로 미적분을 혼자 깨쳤고 급기야는 마흔다섯 권이나 되는 빌헬름 옹켄의 일반 역사서를 달달 외웠다. 모든 소문을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마침내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 내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적잖이 실망했다. 아직 통통하게 살이 찌기 전이었음에도 움직일 때 어쩐지 투실투실하고 굼뜬 느낌이 났다.


(111)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이에 관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떠한 심판이 내려지건 간에, 차마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내가 누구보다 먼저 보았음을.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153-154)

실험 직후 우리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서신이 돌기 시작했다. 일본을 상대로 폭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탄원서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 중 백오심 명 이상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은 끝난 후였다. 히틀러도 이미 총을 쏴 자결했으니, 우리가 실제 그랬던 것처럼 일본 민간인 이십만 명을 죽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일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기만 했다면, 일본 장군이 단 한 명이라도 폭탄 실험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탄원서는 트루먼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탄원서가 결과를 바꿨으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폭탄은 이미 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최상의 표적을 고르기 위해 위원회도 벌써 꾸린 터였다. 그런데 폭탄을 지면이 아니라 높은 공중에서 터뜨려야 한다고 군을 설득한 다름 아닌 폰 노이만이었다. 그래야 폭풍파의 피해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그는 최적의 높이가 600미터, 대략 2천 피트쯤이라는 계산도 직접 도출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높이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스러운 목재 가옥 지붕 위로, 우리가 만든 폭탄이 폭발했다.


(176)

정말 모든 상황마다 합리적인 행동 경로라는 게 있을까? 조니는 이를 의심할 여지 없이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으나 그건 오직 양측의 목적이 정반대로 다를 경우에 한정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추론에는 관찰안이 좋은 사람이면 단박에 발견해낼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이론 전체의 틀을 떠받치는 최대최소정리는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체를 상정한다. 그런 주체는 오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규칙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이전 움직임을 모조리 기억할 뿐 아니라, 게임이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자신과 상대방의 행동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를 오차 없이 파악하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확히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자는 조니 폰 노이만뿐이다.


(186)

에니악의 특징은 계산이 일어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내부로 걸어들어가면 비트값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구도 숫자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조니는 예외였다.

계산의 현장 한가운데 잠자코 서서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던 그를 기억한다.

기계가 또다른 기계 안에 들어가 생각하는 모습을.

그는 다음날 나를 고용했다. 고등연구소에서 더 다은 기계를 함께 만들자는 거였다.

나는 곧장 연구소로 가는 기차를 탔다.


(213)

기계가 못하는 일이 있다고들 한다. 기계가 못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내게 말한다면, 나는 언제든 그걸 해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 존 폰 노이만


(270)

클라리는 자기 남편이 그렇게나 컴퓨터를 좋아하더니 아예 컴퓨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연치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산했고, 그게 아니면 루프에 빠지거나 서서히 멈춰버리거나 오류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절대 미친 것이 아니었다. 대화할 때는 어느 때보다 명민했고, 사후 출간되어 읽은 그의 말년 연구는 생각할 거리가 풍부했으며, 수학적으로 아름다웠고, 기술적으로는 역시나 그의 연구답게 빈틈이 없었다. 그가 정말로 선을 넘어 이성이 굴레이자 제약이 되는 세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성을 옆으로 치워두어야만 하는 영역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면적으로 암시한 신호는 단 하나, 암이 그의 혈액뇌장벽을 넘어서기 직전 그의 조지타운 집에서 내가 목격한 참으로 혼란스러운 일화였다.


(294)

어떻게 기계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가? 튜링이 그의 기계를 구상한 것처럼 나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공식화할 수 있을 것 같네.” 연치는 죽기 몇 달 전 내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알레프제로(Aleph-zero)라고 명명한 일종의 자동기계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데, 만일 당신이 알레프제로에게 무엇에 관한 서술을 제시하면 그 정보를 흡수해 두 개의 사본을 생성한다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했다. 튜링이 컴퓨터의 탄생으로 이어진 사고실험을 고안했을 때, 또 괴델이 불완전성정리를 증명했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논리 방법, 자기 참조적이며 재귀적인 추론을 사용해, 단순히 1 0의 문자열이 아닌,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을 생성하는 이론적 기계를 설계해낸 것이다. 그는 일종의 임계점, 티핑 포인트가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기계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317)

미래를 감춰놓은 베일을 걷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과학이 다음에 어디로 진일보할지, 다가올 세기에 일어날 과학 발전의 비밀이 무언지 일별할 수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다비트 힐베르트


(323)

이세돌, 쎈돌, 바둑 9, 동시대 누구보다 창의적인 바둑 기사.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과 대전을 치러 패배를 안긴 유일한 인간, 그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목소리를 잃었다.

한반도 서쪽 끝자락의 작은 섬 비금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 오 년째, 프로 바둑 기사가 된 지는 육 개월째이던 1996, 폐에 알 수 없는 병증이 생겼다. 기관지가 상해 성대가 마비되었으니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으나 희한하게도 일부 단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시적이었던 실어증의 근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질병(심오한 내적 혼란의 징후가 아니라 정말 질병이었다면)의 여파로 결국 기관지 신경이 영구적으로 마비됐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장난감 인형에서 나올 법한 독특하고 새되고 밭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329-330)

그에게 바둑이란 호흡과 같아서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바둑을 생각한다. 머릿속에 바둑판이 하나 있어서 새 전술이 떠오르면 그 바둑판에 돌을 둔다. 술을 마시고 드라마를 보고 당구를 칠 때도 늘 그런다.” 지금껏 눈 뜨고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바둑에 바치느라 놓친 것들이 아쉽지는 않은지, 사실상 정규교육이란 걸 받지 않았고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앞두었는데 곧 닥쳐올 일에 맞설 준비는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바둑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대답했다. 바둑의 무한한 복잡성은 인간 정신의 내적 작동 방식을 거울처럼 비추며, 바둑의 전술과 수수께끼와 풀 수 없어 보이는 난해함이 바둑을 우리 우주의 아름다움, 혼란, 질서를 유일하게 비견할 인간의 창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바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돌의 위치와 관계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세에 숨겨진, 거의 감지할 수조차 없는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이세돌에게는 승패보다는 바둑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따라서 모든 수를 전부 이해하기 전까지는 절대 게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김지석은 말했다. “한번은 이세돌과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더니만 자기가 막 이기고 온 대국을 만취한 채로 복기하겠다며 흑돌과 백돌의 수 하나하나 다시 두기 시작했다. 이기기는 했으나 딱 한 수가-심지어 자신이 두었던 수인데!-완벽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347)

바둑판에서 가능한 자리의 수, 즉 두 사람이 대국할 때 발생하는 고유한 돌 배열의 가짓수는 너무 커서 2016녀네 이르러서야 제대로 규명되었다.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


(370)

사실은 알파고가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수를 본 순간에 생각이 달라졌어요. 알파고는 분명 창의적입니다. 그 수가 알파고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었어요. 바둑에서 창의성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단순히 좋은 수, 위대한 수, 강력한 수를 두는 능력이 아닙니다. 의미 있는 수를 두는 능력이죠.”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를 진행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그는 말했다. 이세돌은 평소였으면 포기했을 시점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을 어 기계와 싸웠다.


(401-102)

일종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죠.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어요.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바둑을 뒀습니다. 그때 바둑은 예의와 매너가 전부였어요. 게임보다 예술을 배우는 것에 가까웠죠. 크고 난 후에야 바둑을 두뇌 게임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배울 때는 예술이었어요. 바둑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예술작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달라졌어요. AI가 도래하면서 바둑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에요. 알파고는 나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로는 계속 바둑을 뒀지만, 은퇴는 진즉에 결심했어요. AI가 등장한 후로는 내가 최정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복귀해서 미친듯이 노력해 최고의 바둑기사가 되더라도, 최고일 수는 없어요. 세계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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