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

그런데, 여담이지만,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정의를 내린 시인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으로, 브렌덴 케널리라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이 시인이 쓴 시에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그냥 당셩언 것으로 여긴다든지, 환한 햇살 속에 익어가는 옥수수밭을 보면서도 경이의 감정이 솟아오르지 않는 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인은 그런 경이의 감정이 사라진 상태, 지옥이란 다른 말로 하면 권력욕망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움이 죽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인간이 세상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저 시인에 따르면, 인간이 권력을 탐하고 남을 지배하려거나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은 그의 정신과 영혼이 병들었거나 메말라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사람 간의 관계(우정)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혹은 햇빛과 바람과 구름의 은혜로 익어가는 곡식을 보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의 운행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는 지옥에서 산다는 것이죠. 참으로 탁월한 성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

급박하다는 것은 오늘의 정치상황 때문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류 생존의 토대 자체가 붕괴한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는데도, 세계의 정치는 마냥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기본적 교양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부동산 부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렇게 대중들의 인기를 끈느 것을 보고 소위 엘리트 지식인들은 포퓰리즘의 대두를 걱정하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게 옳습니다. 그동안 지배층이 정당정치니 민주주의니 하는 가면을 쓰고 정치랍시고 해온 게 실은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게 전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대중들의 분노가 표출됐다고 봐야죠. 소위 엘리트들에 대한 민중의 반란이라고 봐야죠.

 

(47)

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활성단층은 지구의 40억 년 역사 중 180만 년전에 시작된 제4기에 형성된 단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단층은 최근 ‘180만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을 의미한다. 활동성단증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 또는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정의된다. 언뜻 보면 두 가지 정의가 또는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만족해도 활동성단층이 되므로 더 보수적인 기준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꼼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50만 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개념이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미 움직인 단층에서 또 한번의 움직임이 있을 경우 단층면이 바스러지기 때문에 그 단층이 한 번 움직인 것인지 두 번 이상 움직인 것인 확인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활동성단층의 정의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은 ‘3 5천 년 이내에 한 번 이상 움직인 단층이라는 정의뿐이다. 다시 말해서 핵산업계는 (180만 년 내에 움직인) 활성단층이 아니라 (3 5천 년 내에 움직인) 활동성단층에서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53)

9 12일 경주지진 이후 440회가 넘는 여진이 2주째 지속되고 있다. 많은 경주시민들은 반복되는 지진에 지쳐 있다. 친척 집에 피신을 한 사람도 많다. 여기에 원전사고의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진도 6.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이라지만 설계대로 시공되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과연 그 성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 5.8의 지진이 월성원전이 있는 경주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관련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원자력계는 벌써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양산단층이 아닐 가능성과 활동성단층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나는 이 정도의 사실들 앞에서 우리 국민이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하여 충분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63)

그럼에도 남북한 사이의 우발적 상황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존재한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호전적 언행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고 있는 마찬가지의 강경한 언사가 그런 우려를 키운다.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도 박근혜의 발언이 북한의 체제 붕괴라는 소망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김정은 뿐만 아니라 박근혜 역시 불안한 존재로 여긴다. 킬리포니아 몬테레이의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연구원은 북한의 9월 핵실험 직후 인터뷰에서, 한국의 일부 관리들이 북한 지도부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우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이 김정은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74)

끝으로 10년 가까이 이어진 한국 보수정권의 역할을 짚고 싶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조그만 더 밀면 쓰러진다는 이른바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한국정부가 미 의회와 싱크탱크에 쓰는 돈 등을 통해 북한문제와 관련해 워싱톤에서 행사는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와 노무현 정권이 종종 이견을 빚는 것을 본 뒤에 한국이 반대하는 정책은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 테두리 내에서 대북정책을 폈다. 오바마 재임 중 북한과 딱 한 번 시도한 2.29 합의 때에도 남북한이 먼저 만나는 모양새를 취하게 해줌으로써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정부의 입장에 반하면 연구지원금이 행사 협찬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전문가들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비난을 자제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통일대박론을 펴고 그런 연구에 활발한 지원을 하면서 어떻게 통일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춘 수백만 달러짜리 연구 보고서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95)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절로 나온다. 이건 뭐 합리적이지도 않고 최소한의 지켜야할 예의도 보이지 않는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늘 그러하듯이 기업인들의 비리는 사면되고 정치인들의 부패도 은폐된다. 권력의 심각한 부패만큼 걱정스러운 건 시민들의 둔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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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당연히 최도사는 거절할 리가 없고, 우리는 초가을 볕이 푸짐한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이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서울에서 가져온 안주용 과자 몇 개를 내놓고 낮술을 마시니 골짜기 저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그래, 바로 이게 지리산의 맛이야하는 생각에 흐뭇한데, 시인이 한 김 올라 완성된 초록색 호박찜에 빨간 고추 고명을 얹어 내밀었다.

(81)

버들치 시인은 술잔을 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내가 왜 버들치 시인을 좋아하는지 안다. 답답해하면서 왜 그를 보면 존경을 표하는지 안다. 그는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그건 너무나 귀한 덕목이었다.

(107)

나는 공항에서 신문에 실린 그의 기사를 보았다.

한국 작가 회의의 젊은 문인들로 구성된 젊은작가포럼(위원장 임경섭)은 박남준 시인이 그 삶과 문학을 통해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을 준다고 밝혔다.”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 그 욕망에서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는 빠지리라. ‘그래도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119)

쪼물락 쭈물럭

단단하던 감들이 만지면 만져줄수록

쪼글쭈글 시들어간다

축축 늘어진다

사람의 모난 마음도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면

둥글게 두리동동 동그래질 것이다

감을 깎다가 익거나 으깨져서 물러진 부분들

서걱 베어낸 곶감이 있다

그 베어진 상처 쪼물락 쭈물럭 조심스럽게 만져주었더니

그러니까 상처가 씻기고 치유되어서

동글동글~

(124)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 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이들이 소유한 것의 양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가 의신마을 최도사다. 그는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언제든 어깨에 달랑 지는 바랑 하나에 짐을 챙겨 그는 먼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내 주변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분을 보았지만 최도사만큼 적게 소유하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 내비도의 교주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긴 간다.

(239)

여기 지리산이야, 꽁지야. 친구들이 와서 지붕 다 고치고 지네들이 고기 사 와서 먹고 갈 거야. 넌 글이나 쓰라니까.”

그래, 거기가 지리산이었다.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다른 곳, 지혜가 다른 곳. 나는 문득 또 생각했다. ‘알았어. 내가 책 팔아 돈 많이 벌어서 지리산 한편에 땅이라도 살게. 그래서 다들 편히 살다가 갈 수 있게 할게라고. 아마도 친구들은 또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지리산 식이 아니라니까.”

(263)

유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요즘 아재 개그라는 건 그러니까 유머가 아니다. 실소를 터뜨리게 하니까). 진정한 유머는 우선 교양, 그러니까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야 가능하고 그것을 구사하는 마음의 여유,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알아들을 귀 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의 핵심은 남들이 은폐하는, 혹은 하려고 하는 진실의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데 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의 말에 웃는다면 그것이 진실의 과녁을 맞혔기 때문이다. “임금님은 벌거벗었어요.”도 그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의 과녁에 닿은 것은 힘이 있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출생 연도순) 역시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 데는 그들이 가진 진리의 감화력 외에도 연설의 유머가 큰 몫을 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웃기지 않는 무명의 연설자에게 대중이 몰려들기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게 쉽다는 말은 지금은 위선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고리타분한 말일지 모르나 그 당시엔 얼마나 배꼽을 잡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얼마나 사실이며 듣는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큰 카타르시스를 주었기에 예수는 권력자들에게 죽기까지 했을까.

(326)

그의 요리를 먹은 후(어쩌면 내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밥상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것이 점점 좋아진 것도 그와 1년을 함께 한 탓이리라.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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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래, 노 후보를 만났어요. ‘오늘 아무개를 만났는데 정몽준 쪽에서 이런 것이 왔다. 정몽준하고 한번 만나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배려를 잘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야기를 하면은 그걸로써 적극 참여한다고 한다그런데 노 대통령이 저는 그런 식으로 해 가지고 대통령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더라고. ‘정몽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단일화하는데 자리 가지고 뒷거래는 안 한다고 국민 앞에 몇 차례나 이야기했는데 그건 국민을 속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단둘이 만나서 덕담으로 한 이야기라도 그걸 근거로 해서, 당시니 그전에 이런 얘기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그걸 실천하라고 요구할 때 약속한 걸 어떻게 안 했다고 합니까.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그래요. 그래서 자기는 그 사람들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그런 식으로 자리 약속하고 그 사람 협조로 대통령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소신을 지키다가 낙선하는 걸 통해서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 김원기

(47)

이해관계를 쫓아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고 엄청난 괴로움과 정치적인 손해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희생하면서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그런, 정치인으로서 찾아보기 힘든 면모, 이것이 결국 노 대통령이 국민 전체에 정치가로서 인식되는 원동력이었고 결국 그걸 통해 대통령까지 당선됐던 거고. – 김원기

(122)

노무현 후보가 나한테 유시민 씨한테 갈 건데 같이 가세그러기에, 원래 그전에도 서로 한 얘기가 있어서 그래 가죠. 유시민 씨한테 어떻든 간에 와서 좀 도와 달라고 하죠.’ ‘오케이, 그래. 오케이그래 가지고 그때 유시민 씨한테 가서 개혁당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던 거죠. 그래서 구명보트를 좀 준비해 달라. 이 배가 난파선이 됐을 때 갈아탈 수 있는 구명보드라도 하나 있어야 될 것 아니냐거기 비스듬한 5층짜리 건물의 옥탁방 같은 사무실이야. 경사가 이렇게 있는. 집필방이라고 조그맣게 있는데 거기 가 앉아서 내 기억에 내가 탈 수 있는 보트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이런 정도 얘기를 한참 주고받으면서 유시민 씨한테 그걸 부탁을 했어요. 그때 내가 왜 배석을 하게 되었나 모르겠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자리를 갈 때는 반드시 자기 참모들을 데려가는데 그 업무의 연동성과 연관성이 가장 좋은 사람을 데려 가거든요. 그래서 유시민을 끌어들인 개혁당의 출발이 그 여름에 돼요. – 안희정

(146)

1988년도에 처음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 코리아나 호텔 2층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제가 스물 세살밖에 안 되었잖아요. 그분이 1946년생이니까 마흔두 살이고, 열아홉 살 차이잖아요. 저한테 뭐라 그랬냐면 나는 정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를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 달라. 나는 그게 가장 강한 거라고 봅니다. – 이광재

(149)

나는 그게 노 대통령의 가장 큰 흡인력이었다고 봐요. 자기언어. 그러니까, 1988년도 대정부질의하고서 굉장한 평가를 받았는데 그때 우리한테 뭐라고 했냐면 지도자와 지도자 아닌 사람의 구별점은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스스로 쓰려면 그 문제가 절실해야 돼.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게 노 대통령의 힘이었다고 봐요. – 이광재

(163)

노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은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가장 어려운 사람과 더불어서 가장 전면에, 일선에서 자기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에요. 그런 걸 가진 사람이 노무현의 후예가 되지 인간적으로 가깝다고 되는 거? 난 그런 거 없다고 봐요. 그래서 친노라고 마친 큰 세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연일 싸우는 사람도 고스트(ghost)와 싸우는 거고, 또 하나는 친노 적자는 없다, 내가 볼 땐, 오히려 시대정신에 헌신하는 자가,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후계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또 탄생한다. ? 서민들이 봉하마을에 오는 걸 관찰해 보면,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면 낼수록 찾아옵니다. 그 공통분모를 믿는 사람이 또 탄생한다고 봐요. – 이광재

(214)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 그 개인의 경력으로 보나 사회적 기반으로 보나 정치적 기반은 비주류의 비주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없어요. 근데 그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노무현이라는 이 캐릭터에서 어느 한 대목인가를 자기 마음에 들어 하고 그래서 난 노무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많은 결점과 더불어서 많은 미덕을 가진 분이었잖아요. 이분이 지금 대선에 나온다면 안 된다고 봐요. 또는 그전에 나왔더라도 역시 안 됐으리라고 봐요. 이거는 그때 딱 일회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안 생길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같은 조건에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분이에요. – 유시민

(241)

우리나라 교육은 통조림을 만드는 거거든, 가세등등이라는 것 자체를 교육이 깎아 버려요. 그러니까 고등교육까지 끝나면 그런 기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어요. 그 양반은 정말 희귀한 경우지. 대학을 안 간 게 굉장히 다행인 측면도 있다고 봐요. 교육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통조림 공격을 덜 당한 거죠. 배우는 뭐냐면, 어렸을 때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거거든요. 교육과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이 끝없이 통조림화한 내면의 벽을 털어 내는 게 배우예요. 이 양반은 (이미) 털려져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매력 있다고 느낄 수 있는데. –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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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21)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처럼 소포클레스 역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포기합니다. 게다가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몇 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연극의 대본이었으니 과감한 압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미 왕좌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서사기법을 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57)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

어떤 책은 분명 위를 살짝 미치게 만듭니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작용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저는 에마 보바리처럼 소설책에 탐닉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대학 입시가 불과 반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무릎 위에 놀려놓은 소설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들이어서 표지는 너덜너덜했고 종이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67)

<돈키호테> <마담 보바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미치광이 돈키호테와 광기 어린 사랑으로 자신을 망쳐버린 에마 보바리는 세르반테스가 플로베르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그들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의 세계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그 안에 머물기를 원하는 우리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물들에 매료되고 자기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에마 보바리로 바꾸어놓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한번 읽어버린 소설은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나가사와의 말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자아 안에 공유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69)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81)

소설이든 영화든 끝까지 봐야 온전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데, 소설은 영화와 달리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물고, 일단 끝까지 보았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어떤 면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등장인물을 이해하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면 거기엔 무엇이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소한의 것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실망스러웠다면 바로 던져버리고 그 작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입을 다물었을 겁니다.

(102)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다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이없는 일을 겪습니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점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가 굳이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의 의도를 가능하고, 인물의 성격을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누군가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의 감성은 작가가 써놓은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탄복하기도 하고, 예리한 인물 묘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고난에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독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182)

누구나 알다시피 도서관은 책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등은 묘비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일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내가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대,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9)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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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1-25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
 

녹색평론25주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쭉 번창하길 바라는데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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