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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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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위험요인의 하나로 사랑을 든다.  사랑을 현대사회의 위험요소로 진단하는 것은 어쩌면 형용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책에서 환경호르몬, 질병, 건물 붕괴, 가스폭발, 핵폐기물 등보다도 사랑이 더 위험요인이라는 그의 진단은 설득력을 지닌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포괄적이고 얼마나 많은 층위를 갖는지를 알기란 불가능한 일인듯 싶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은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난용종 암탉이다. 알을 품고 병아리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이 잎싹의 소망이다. 그러나 잎싹은 알을 품기는 커녕 발끝으로 만져볼 수 조차 없다. 이런 잎싹이 덤불 속의 알을 품고 부화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과는 생김새도, 울음소리도, 생활습관도 다른 청둥오리의 새끼이다. 마당의 닭과 오리의 무리에게서 외면당하고 굶주린 족제비로 부터 새끼(초록머리)와 자신을 지키려는 잎싹의 삶은 고달프다. 새끼가 점점 자라면서 자신과는 다른 청둥오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잎싹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작가는 잎싹의 입을 빌려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건 아니란다. 중요한건 서로를 이해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라는 사랑관을 펼친다. 겨울을 나고 이동하는 청둥오리의 무리를 따라 이동해가는 초록머리와 이별하고, 새끼를 낳아 굶주린 족제비의 먹이가 되는 잎싹. 알을 품어보고 새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꿈이었던 잎싹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 알이 닭의 알이 아니라 청둥오리의 알이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잎싹의 사랑은 단순한 종족 보존의 본능을 넘는 효과를 낸다. 잎싹의 사랑이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이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마당에 있는 닭의 우두머리인 수탉은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읽힌다. 병아리 여섯 마리를 거느린 암탉이 중시하는 질서 역시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청둥오리를 자신과 한 족속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무리로 끌어오려는 오리 우두머리의 주장 또한 울리히 벡이 주장하는 현대 사회의 위험요인인 사랑의 한 방식이다. 타자의 사랑을 보면서 왈가왈부하는 나는 과연 제대로 사랑을 해보기나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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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살림지식총서 282
변광배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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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이라는 말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계약 조건에 따라 일정기간 같이 사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전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혼에 이를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들을 미리 경험함으로써 불행을 미리 막는다는 취지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한 예비단계인지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한 수단인지 모호해지려고 한다.  

 사르트르와 보봐르는 1929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각각 수석과 차석으로 합격하면서 같은해 11월 부터 계약결혼에 접어든다. 처음 그들은 2년간의 계약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 계약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50여년이 넘도록 유지된다. 계약결혼의 내용은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 등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단순히 계약내용은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계약결혼은 그들의 사유를 실행하는 과정이었고, 사유와 경험을 작품을 통해 형상화해 내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런 까닭없이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자기 자신을 사물같은 존재로 여기는 유형, 두번 째 유형은 인간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로 사르트르는 이러한 형태를 자기기만의 형태로 취급하면서 통렬하게 비판한다.  세번째는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관심을 돌리는 유형으로 여기에서 타자의 존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타자는 나의 존재 이유를 담고 있는 자이다.

사르트르의 사유체계 안에서 인간은 항상 주체성을 유지해야하며 사랑 역시 타자와 내가 모두 주체성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맺는 관계여야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언어는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인간은 타자를 사랑하거나 타자의 사랑을 구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는 '말' 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 생산해 내는 모든 기호를 사르트르는 언어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사유를 토대로 살펴볼 때  그들의 계약 결혼은 육체와 정신을 좀 더 알기위한 단순한 결합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유를 기초로 한 삶을 살았고, 그들 자신의 삶을 통해 인간관계의 이상을 세우려하였다. 작고 못생긴데다 사팔뜨기인 사르트르는 지적 반려자 없이는 살 수 없었고, 말과 글을 더 없이 사랑했던 보부아르에게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던 사르트르는 그가 가진 육체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한동안 오자가 눈에 띄지 않아 편안했었는데  또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세 근데서 오자를 발견했는데, 오늘 문득 든 생각에 의하면 오자가 발견되는 책들이 철학적 사유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몇개의 오자때문에 나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심하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오타를 치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다보면 다시 읽을 여유도 없이 그대로 활자화시키기도 하면서, 더구나  잘못된 글자들을 충분히 교정하여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유난스레 민감하게 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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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8-11-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탈자가 나오면 책의 번역이나 내용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건 독자로서 당연한 것이지요.
특히 번역서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반딧불이 2018-11-14 19: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사랑님도 그러시군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서록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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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序錄. 순서가 없는 책이라는 뜻인가 싶다. 차례에 따르지 않고 펼쳐든 곳 아무 곳이나 읽어도 좋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처음 한두 편을 읽고 나면 작자의 의도를 외면한 채 혹시라도 빠트릴세라 아껴 읽게 되는 책이다.

재치와 화려한 수사로 어필하지 않는다. 난해하거나 미망을 앓을 철학적 개념어도 없다. 그의 시선은 높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눈은 낮은 자리에 있으며 마음은 더 깊은 자리에 가 있다. 그의 언어들은 창덕궁 후원에서 홀로 농익은 앵두 같다.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마른 기왓장에 성긴 빗방울 듣듯 아득하게 번져와 그윽하게 채색된다. 행간 행간에서는 향기가 베어난다. 늦가을 얼개를 펼치는 햇살에 투명하게 살아나는 창호지의 실핏줄처럼 고운 피가 심장을 뛰게 한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새벽 빈 하늘을 밟고 고요히 내려온 서리꽃 같다. 그 차고도 은은한 빛의 결정체. 태양의 가장 여린 숨결에도 형체를 잃어버리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미지만 남은 서리꽃 말이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어떤 현란한 수사도 그에게는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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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 - 전복의 문학, 모더니티총서 14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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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을 말할 때 대부분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기쁨과 슬픔의 편에서 이야기하자면 어느 정도 기쁨 편으로 기울고 있는 듯 하다. 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닥치면 우리는 '엽기'라는 표현을 곧잘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세에나 서구 쪽에는 엽기라는 어휘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환상'과 '엽기'를 더블 침대 위에 누이고 싶다.

저자인 로즈메리 잭슨은 영국 여성으로 유럽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이 영미의 저작들이다. 드라큐라 백작이나 프랑켄슈타인 박사, 변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등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들에 관점이 모아지긴 하지만 생소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을 읽고 이론서를 읽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간극은 상당하다. 급한 대로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도 보다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는 환상문학이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간주하고 무가치한 것 혹은 일회적인 유희를 위한 것쯤으로 치부해버리기 쉽다. 이러한 생각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거나 재현해야 한다는 미메시스 이론 혹은 리얼리즘의 시각에 경도된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자는 환상문학 역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산되고 사회적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환상은 낯설고 새롭고 절대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산출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종교적 도덕적 우화나 계몽적 의도를 띤 작품들은 순수 환상물에서 배제시킨다.

저자는 또한 환상이 상상력이나 욕망과 맺는 관련성에 주목하는고 있다. 특히 납량 특집물처럼 자주 대하는 드라큐라 백작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프로이트가 기뻐할 만큼 명쾌하게 그의 이론과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플라톤 시대에 환상문학이 있었다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대중을 혼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그의 공화국에서 추방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문학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또는 무엇 때문에? 라는 의문사는 괄호치기 해 두어야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계속 잠을 잤으면 별일 없었을 것을 왜 깨어나서 벌레로 변했는지 물어오면 우리는 변신을 즐길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모 마리아가 성관계도 없이 어떻게 임신을 했는지 죽었던 예수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과학적 의문 없이 종교인이 되듯 우리는 지평의 도약을 통해 환상물에 뛰어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환상에 대해 정의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의 말처럼 환상이라 불리는 어떤 추상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유사한 구조적 특성과 유사한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산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영역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끝간데 없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현대에서 환상은 어쩌면 문학의 지향점이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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