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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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미저리>로 시작된 스티븐 킹의 작품들도 어마어마하게 읽어댔답니다. 뭐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래키는 귀신 영화만 아니면 잔인한 영화도 잘 보는 편이고요. 그래서 <예쁜 여자들>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스릴러 장르라는 게 분명히 느껴져서 기대가 됐어요. 스릴러 장르는 특유의 흡입력 때문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소설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스릴러 소설 리뷰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 스포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카린 슬로터' 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slaughter(도살)'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나서 '스릴러 장르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하고 생각했어요 ㅋㅋㅋ 카린 슬로터 작가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시는데요. 무려 스릴러 소설을 17권이나 내셨다고 해요.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장악력이 느껴지곤 하더라고요. 스릴러라는 장르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집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쁜 여자들>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드릴게요. 줄리아 언니가 실종되고 20년이 지난 후, 동생 클레어는 건축가 폴의 아름다운 트로피 아내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10대 소녀가 실종되고 폴이 카페 뒷골목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믿을 수 없는 행적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는데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는 한국에서도 책, 영화, 웹툰 등 다양한 매체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친근하실 거예요.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넘치는 스토리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것을 끊임없이 찾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줄리아', '리디아', '클레어' 세 자매와 클레어의 남편인 '폴' 이 4명이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추적과 사냥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초반에는 리디아와 클레어가 폴에 대해 조사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반전이 공개되면서 완전히 국면이 달라지거든요. 제목이 '예쁜 여자들'인만큼 이들은 예쁜 여자를 대상으로 한 연쇄 납치 및 강간살해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제목의 느낌에 비해 아름다움이라는 코드를 강조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여성이 피해자, 남성이 가해자로 완전히 설정하고 진행된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했어요.


"갑자기, 남자의 머리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입과 눈 부분을 지퍼로 열어놓은 가죽 스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지었다. 비록 클레어는 폴이 그 남자를 바랍고 있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지퍼의 금속 톱니 모양 틈새로 그의 빨간 입술이 보이는 방식에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이 작품은 '스너프 포르노'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스너프 포르노란 고문과 강간 후에 살해하는 모습을 영삼으로 담은 것입니다. 가짜 피와 영화적 장치를 통해 허구적으로 연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스너프 포르노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눈 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어딘가에는 이런 영상이 정말 존재할 거라는 생각에 더 소름끼쳤어요.


"처음 네가 사라졌을 때, 네 엄마는 이렇게 경고하더구나.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거라고. 우리는 그 점에 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단다. 당시 우리를 묶어주는 끈이라고는 논쟁밖에 없었으니까.
"구체적인 내용을 안다고 해서 절대로 견디기 쉬워지는 건 아니야." 그녀가 내게 경고했지. "그 내용이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라고.""

<예쁜 여자들>에서는 중간중간 세 자매의 아버지인 샘 캐럴의 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그의 일기 내용을 통해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에 스스로를 대입해보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작품의 첫 문단으로 돌아갔을 때, 같은 문장인데도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만약 내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게 좋을까? 알던 모르던 어느 쪽이던 간에 가슴이 찢어지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이제 이거에 대비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뭔가 중요한 말처럼 들렸다. 리디아는 딱지 앉은 곳이 가렵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딱지를 떼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게 그대로 붙어 있어야 했다. 대신, 리디아는 그의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가 손가락을 전부 폈다가 구부리는 과정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는 동안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디아는 새로운 주문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들었다.

가시 철망, 쇠지레, 기다란 쇠사슬, 커다란 갈고리, 날카로운 사냥용 칼.

순간적으로 맑은 정신이 그녀 마음속의 안개를 뚫고 들어왔다.

그들은 거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몰입감과 흡입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처음 펼치고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하면서도 덮질 못했어요. 사건의 전개가 처지는 부분이 없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구조라 독자의 궁금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읽은 이후로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읽은 스릴러 소설이었어요! 이후에 영화화되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스너프 포르노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높일 수 있고요. <예쁜 여자들> 후에 작가님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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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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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 때문에 덥석 고르게 된 책이었어요. 물론 책을 고를 때 제목과 표지를 중요시 여기긴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책을 선택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읽기 전부터 어떤 내용의 책인지 몹시 궁금했어요. 하지만 제가 상상했던 책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우스꽝스러워지지 않고는 깜짝 놀랄 일을 이룰 수 없다. 전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를 알아야만 해요. '조르주 바타유' 작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그의 작품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조르주 바타유는 매독 환자에 맹인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평생 사서로 일하면서도 매음굴을 전전하며 에로티즘 소설을 썼고 생전에는 '저주의 작가'로 취급받으며 평가절하 당하기도 했지만, 사후에 여러 젊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기 전에 <눈 이야기>라는 전작을 읽으시길 권해드릴게요. :)


이 작품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인물과 스토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빛>은 유럽 전역의 역사상 가장 혼돈기에 가까웠던 1930~1940년대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에 눈뜨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며 모든 것들이 서로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진 작품일수록 역사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후 2시쯤 난 카루젤 다리 위에 있었다. 파리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로 도살장의 소형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죽을 벗긴 양들의 머리 없는 목들이 천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고,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를 넣은 백정들의 작업복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트럭은 쨍쨍한 햇빛 속을 느릿느릿 지나갔다.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을 좋아했다. 두 눈을 감으면 눈꺼풀 너머의 태양은 붉은색이었다. 태양은 무시무시했고, 폭발할 것 같았다. 태양이 폭발하여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보다 더 태양다운 것이 있을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빛에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내 앞의 라자르는 그저 한 마리의 흉조, 더럽고 하찮은 한 마리의 흉조에 불과하게 되었다. 내 두 눈은 실제로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속으로가 아니라 정오의 하늘의 푸른빛 속으로 잠겨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트로프만'은 이름부터가 뜻이 남다릅니다. '너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와 '인간'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합해져 만들어진 이름인데요. 이름답게 남보다 많이 가진 부르주아로서 글을 쓰는 인텔리의 의무보다는 술과 향락에 물들고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며, 정치나 사상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시대의 요구와 반향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소설 속에서 뚜렷한 분쟁은 드러나지 않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끊이지 않습니다. 트로프만은 시체에게서 성욕을 느끼고, 변태성애자 난봉꾼인 '잉여 인간'이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서 죽음을 사랑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는 트로프만 이외에도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부르주아로서의 권리와 향락에 취해 자유를 만끽하는 트로프만의 사랑이자 뮤즈인 '디르티',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투사이면서도 트로프만에게 두려움을 주는 '라자르', 부르주아로서 자신이 가진 걸 나눠주는 게 부르주아의 의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크세노'. 아내가 있음에도 트로프만은 작품 내내 이 세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위태로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트로프만은 즐거움에 탐닉하고, 일상의 권태로움에 그저 빠져있습니다.



"전날만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도시의 호텔방을 향해 서둘러 갔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며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길을 돌아서는 순간 빈 공간이 우리 발아래로 펼쳐졌다. 이상하게 그 빈 공간은 우리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만큼이나 무한해보였다. 무수히 많은 작은 빛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별들, 촛불들은 땅 위에서 수백 개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는 환하게 밝혀진 묘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나는 도로테아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별들의 심연에 매혹되었다."

<하늘의 푸른빛>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단연코 디르티와의 정사 장면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이념의 차이로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데 호화로운 호텔 안에서 그들의 전쟁을 관람하며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나면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어지지만 이 장면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핵심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전운이 감도는 사회 안에서도 나는 나만의 일을 하고,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이 작품은 한 남자가 죽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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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판타지 미로탐험 아티비티 (Art + Activity)
테오 기냐르 지음 / 보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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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판타지 미로탐험>이라는 이 그림책은 보림출판사의 아티비티(ARTIVITY) 시리즈 중 한 권이랍니다. 표지처럼 알록달록한 색감의 일러스트 속 미로의 세계가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신비로운 모험이 펼쳐지는 한타지 미로세계로 초대합니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보세요!"

뒷표지를 보시면 중세의 미로, 환상의 미로, 건축의 미로 등 다양한 테마의 미로들이 쓰여 있는데요. 이 테마들이 모두 이 한 권의 그림책에 담겨있답니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미로 찾기 그림책으로도 활용할 수 있고, 일러스트 그림책으로도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그림의 퀄리티가 어마어마하다는 거예요.


특히 미로의 테마가 모두 다르다는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다양한 그림체로 미로를 구성해서 '미로 찾기'라는 형식은 똑같지만 마치 새로운 그림책을 계속해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미로 찾기 같은 머리를 쓰는 게임에 약한 편인데요. 이 그림책은 미로 찾기에 약한 사람이더라도 일러스트에 관심이 가서 끝까지 해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미로예요! 칸칸이 방으로 나눠진 미로인데, 이 방들을 통과해서 출구를 찾아내는 거였어요. 출구를 찾아내면서 그 방의 구성도 살펴보게 되는데 방의 각 개성이 뚜렷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각 미로의 테마가 달라서 그 미로를 탈출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도 미로마다 달라지는데요. 이런 식으로 미래의 미로에서는 로봇인 주인공이 로봇 친구에게 놀러가는 여정을 미로로 표현해놨어요 ㅋㅋㅋ


<두근두근 판타지 미로탐험> 중에서 가장 복잡한 미로예요 ㅋㅋㅋ 얼핏 봐도 출구를 찾는 여정이 매우 험난할 것 같은데요 ㅋㅋㅋ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봤지만 참패...ㅠㅠ


미로가 아무리 어려워도 끝에 답안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난이도가 다양한 미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점차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었어요. :)


아이에게는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줄 수 있고, 어른에게는 영감까지 줄 수 있는 미로찾기 그림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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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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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힙합은 반에서 소수의 몇 명만 공유하고 있던 음악 취향이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힙합을 듣고 있다. 이는 '쇼미더머니'라는 TV 프로그램과 피처링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느 대중 가요던 중간에 랩 파트가 들어갈 정도로 대중은 힙합에 익숙해지고 있다.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의 저자인 '김봉헌' 작가님은 흔히 대중음악 평론가로 알려져 있으신 분이시지만 힙합 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더 선호하신다고 해요. 이 작가님은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는 작업, 힙합이 지닌 긍정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대중과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합니다. 이 책에 딱 맞는 작가님이 아니신가 싶어요. '서울힙합영화제'를 기획하고 주최하고 있으며, MC메타, 김겨주 시인과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 중이시기도 합니다. 힙합에 대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힙합이란 대중 음악의 한 장르를 일컫는 말인 동시에, 문화 전반에 걸친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힙합이란 단어의 유래는 '엉덩이를 흔들다'는 말에서 유래했는데요. 그만큼 힙합이라는 장르는 리듬을 강조하고 있는 음악이죠. 당초에는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 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힙합을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어떤 문화로 자리잡게 됐을까요?



"힙합의 팬들이 화성에서 왔다면, 다른 사람들은 금성에서 왔다. 화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힙합이란 가장 혁신적인 음악이자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또 삶을 구원한 존재이자 존중받아 마땅한 고도의 예술이다. 그러나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힙합이란 다른 장르에 비해 열등한 음악이자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음악이다. 또 세속적이고 물질만능적이며 올바르지 못한 음악이다. 화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금성인의 말이 모두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힙합의 '본질'과 '진면목'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얕은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힙합이 구축한 깊고 남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2명의 래퍼와 작가님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많은 래퍼들 중에서 12명의 래퍼를 선별하는 과정이 참 힘드셨다고 해요. 베테랑일 것, 부지런히 이 길을 걸어왔을 것, 자기만의 입장과 철학이 있을 것, 훗날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성취를 가지고 있을 것, 무엇보다 힙합을 '살아왔을' 것. 작가님이 이러한 기준들을 세우고 고민해서 추려낸 분들입니다. 힙합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래퍼 개인의 삶에서 배운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셨다고 해요.


"제가 차가 많은 래퍼, 돈이 많은 래퍼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게 다 부질없는 거잖아요. 누군가가 나보다 차가 더 많으면 끝나버리는 거고, 차가 많은 것만 따지면 랩 실력을 떠나서 아무 부잣집 아들이나 나와서 차를 저보다 많이 사버리면 끝나는 거니까. 하지만 바닥에서부터 쌓아가는 랩 스킬과 랩에 대한 인정은 누군가가 '내가 단기간에 열심히 해서 도끼를 꺾어버릴 거야'라고 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에서 누가 랩을 제일 잘하냐고 물을 때 바로 떠오르는 래퍼가 되는 게 목표예요."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의 첫 번째 래퍼는 요즘 예능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는 래퍼 '도끼'입니다. 도끼라고 하면 아무래도 명품이나 돈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한국의 문화에서 바라보기엔 '어린 놈의 사치'로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끼 자신은 어떻게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하는 동심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각 래퍼의 개성과 철학 뿐만 아니라 힙합에 대해서도 여러 지식을 얻을 수 있어요.


"모두가 노래를 잘 부를 순 없잖아요. 노래는 못 부르지만 뭔가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랩은 최고의 도구예요.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단어에 리듬을 싣고 언어를 배치하는 거죠. 굳이 잘생길 필요도 없고 말만 할 줄 알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랩이기 때문에 악당도 쓸 수 있고, 허풍쟁이도 쓸 수 있고, 글쟁이도 쓸 수 있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도 쓸 수 있고,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도 쓸 수 있죠."

그 다음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래퍼의 이야기는 바로 '타이거JK'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린시절부터 타이거JK의 랩을 정말 많이 들어와서 인터뷰 내용이 가장 궁금한 래퍼들 중 한 명이었어요. 힙합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 래퍼의 음악을 틀어놓으시는 걸 추천드릴게요! 책의 내용과 음악 속 목소리가 어우러져서 독자에게 직접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


힙합의 역사, 철학, 세계 그 밑바닥까지 파고든 책은 처음 봐서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제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은 책이에요. 힙합에 관심 없는 분이 읽으셔도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같은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만들어줘서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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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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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식을 다룬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에요. 요리하는 과정이나 맛을 표현하는 걸 지켜보는 게 즐겁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칼과 혀>라는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갔답니다. 대부분의 한국 소설에서 음식은 부수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음식은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선을 전달하는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세 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암살을 계획하고 시도하는 데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고, 패망으로 나아가는 전쟁의 긴박한 분위기에 요리의 모티프까지 더해져서 볼거리가 많다고 느껴졌어요. 제재가 다양한 만큼 이야기의 층이 풍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야마다 오토조는 실존인물이다.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된 그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실화가 내게는 소설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때때로 오토조가 되어 생각했다. 나에게 백만의 관동군이 있다. 본토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황제가 항복했다. 150만 이상의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오고 그 모든 장면은 꿈처럼 아침마다 의식을 뒤흔든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주 천천히, 부관이 가져온 아침식사를 들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까?"

<칼과 혀>는 이번 제 7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권정현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권정현 작가님은 2002년 '충청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신데요. 여러 장편 소설 및 소설집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역사책도 펴내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칼과 혀>에서도 역사적인 리얼리티가 느껴졌습니다. 이 소설에는 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그 중에서 관동군 사령관인 '야마다 오토조(모리)'는 실존 인물이라고 해요.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궁극의 맛과 미륵불의 미(美)에 집착하는 유약한 겁쟁이 성격은 실제 야마다 오토조가 백만 관동군을 지휘하지 못하고 소련군에게 모두 항복시켜 칠십만 관동군을 포로로 잡히게 한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중국, 일본, 한국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일본군이 만주를 점령하고 전쟁의 패망으로 점차 다가가고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 자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인 사령관인 야마다 오토조가 우위를 선점하고 있지만 후반부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첸과 길순에게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이 역사의 아이러니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잘린 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 소설에서 내세우고 있는 큰 제재 2가지는 바로 전쟁과 요리입니다. 이 글의 시작 또한 첸의 아버지와 그의 도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3명의 인물 중에서도 요리사인 첸에게 집중하게 되죠.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중국 음식을 다루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야마다 오토조에게 요리를 해주고 연명하는 첸, 자신의 요리로 그를 암살할 기회를 노리지만 음식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부딪히게 됩니다. '요리'라는 철학을 역사의 흐름 안에서 새롭게 풀어내고 있어요.


"나는 공연이 한창인 연회장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3백여 개의 의자가 대부분 채워져 있다. 스물네 개의 메인 식탁도 마찬가지다. 내가 들어서자 수레의 음식을 바라보는, 기대에 찬 제목들의 눈빛이 읽힌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구나. 다리의 힘이 풀려서 나는 가까스로 몸을 지탱한다. 나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 나의 내면을 빛나게 해준 나의 도마가 나 대신 더욱 빛나길 바란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도마였으니까. 삶 아니면 죽음, 인생은 그 어떤 요리보다 담백하다."

야마다 오토조가 첸을 살려놓은 이유는 오로지 미식을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고 있는 전쟁 중에도 사령관이 미식과 미륵상에 집착하는 것은 수하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쟁을 회피하고 싶은 그의 심정이 공감되기도 합니다.

소설의 후반부를 읽다 보면 첸이 혀를 잃었으면서도 야마다 사령관에게 순종적으로 요리를 바치는 게 답답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존재는 어쩌면 첸과 아버지의 도마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목숨을 칼로 내리쳐 요리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수없이 흠집이 나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그저 요리를 하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적을 넘어서 요리를 하는 사람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으로 그들의 관계가 변해가고 있습니다.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내가 가진 이빨들을 모두 박아넣을 수 있다면, 그 이빨들은 눈에 보이지가 않아서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의 질투와 인내, 악몽 속에서 내뱉었던 짧은 울음, 시멘트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올려다볼 때의 텅 빈 고통, 겨울밤 냄새나는 변소에 앉아 울던 기억, 가죽 채찍에 벌어진 상처, 그 상처를 맛있게 핥아대던 이미 죽어버린 사내들의 기이하게 웃는 얼굴, 그 모든 장면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그렇게 세운 날로 제몸의 세포들을 죄벌리고 들어앉아 기억의 외부를 향해 밀어올리는 그 눈부신 날카로움들, 그 강하게 단련된 상처와 그 상처가 만들어낸 이빨들이 저 사내의 목덜미에 가닿을 수 있다면, 결코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척추 하나를 허공에 세워놓고 상대의 목덜미로 내 몸을 부수어 죽어갈 수 있다면."

길순은 <칼과 혀>에서 시대의 피해자로 정의되는 인물입니다. 야마다 사령관의 암살에 동참하게 된 이유도 그녀의 오빠가 강요했기 때문에, 첸을 위해서이기 때문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 전까지 그녀의 행동은 타인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끝까지 전쟁에 대해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도 분명히 가지지 못한다는 게 보통 서민들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야마다 사령관과 첸은 '~하다'체로 이야기를 서술하지만 길순은 '~했어'체로 서술하고 있어서 다른 인물들과는 확실히 성격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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