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들
카린 슬로터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저는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미저리>로 시작된 스티븐 킹의 작품들도 어마어마하게 읽어댔답니다. 뭐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래키는 귀신 영화만 아니면 잔인한 영화도 잘 보는 편이고요. 그래서 <예쁜 여자들>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스릴러 장르라는 게 분명히 느껴져서 기대가 됐어요. 스릴러 장르는 특유의 흡입력 때문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소설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스릴러 소설 리뷰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 스포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카린 슬로터' 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slaughter(도살)'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나서 '스릴러 장르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하고 생각했어요 ㅋㅋㅋ 카린 슬로터 작가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시는데요. 무려 스릴러 소설을 17권이나 내셨다고 해요.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장악력이 느껴지곤 하더라고요. 스릴러라는 장르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집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쁜 여자들>의 간략한 스토리를 알려드릴게요. 줄리아 언니가 실종되고 20년이 지난 후, 동생 클레어는 건축가 폴의 아름다운 트로피 아내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10대 소녀가 실종되고 폴이 카페 뒷골목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믿을 수 없는 행적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는데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는 한국에서도 책, 영화, 웹툰 등 다양한 매체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친근하실 거예요.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넘치는 스토리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것을 끊임없이 찾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줄리아', '리디아', '클레어' 세 자매와 클레어의 남편인 '폴' 이 4명이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추적과 사냥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초반에는 리디아와 클레어가 폴에 대해 조사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반전이 공개되면서 완전히 국면이 달라지거든요. 제목이 '예쁜 여자들'인만큼 이들은 예쁜 여자를 대상으로 한 연쇄 납치 및 강간살해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제목의 느낌에 비해 아름다움이라는 코드를 강조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여성이 피해자, 남성이 가해자로 완전히 설정하고 진행된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했어요.


"갑자기, 남자의 머리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입과 눈 부분을 지퍼로 열어놓은 가죽 스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지었다. 비록 클레어는 폴이 그 남자를 바랍고 있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지퍼의 금속 톱니 모양 틈새로 그의 빨간 입술이 보이는 방식에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이 작품은 '스너프 포르노'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스너프 포르노란 고문과 강간 후에 살해하는 모습을 영삼으로 담은 것입니다. 가짜 피와 영화적 장치를 통해 허구적으로 연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스너프 포르노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눈 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어딘가에는 이런 영상이 정말 존재할 거라는 생각에 더 소름끼쳤어요.


"처음 네가 사라졌을 때, 네 엄마는 이렇게 경고하더구나.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거라고. 우리는 그 점에 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단다. 당시 우리를 묶어주는 끈이라고는 논쟁밖에 없었으니까.
"구체적인 내용을 안다고 해서 절대로 견디기 쉬워지는 건 아니야." 그녀가 내게 경고했지. "그 내용이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라고.""

<예쁜 여자들>에서는 중간중간 세 자매의 아버지인 샘 캐럴의 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그의 일기 내용을 통해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에 스스로를 대입해보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작품의 첫 문단으로 돌아갔을 때, 같은 문장인데도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만약 내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아는 게 좋을까? 알던 모르던 어느 쪽이던 간에 가슴이 찢어지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이제 이거에 대비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뭔가 중요한 말처럼 들렸다. 리디아는 딱지 앉은 곳이 가렵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딱지를 떼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게 그대로 붙어 있어야 했다. 대신, 리디아는 그의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가 손가락을 전부 폈다가 구부리는 과정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는 동안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디아는 새로운 주문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들었다.

가시 철망, 쇠지레, 기다란 쇠사슬, 커다란 갈고리, 날카로운 사냥용 칼.

순간적으로 맑은 정신이 그녀 마음속의 안개를 뚫고 들어왔다.

그들은 거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몰입감과 흡입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처음 펼치고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하면서도 덮질 못했어요. 사건의 전개가 처지는 부분이 없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구조라 독자의 궁금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읽은 이후로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읽은 스릴러 소설이었어요! 이후에 영화화되어도 좋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스너프 포르노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높일 수 있고요. <예쁜 여자들> 후에 작가님의 차기작이 나온다면 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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