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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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조지 프리드먼의 <100년 후>는 예측의 정확도를 떠나 그냥 재미있다. 사실 21세기에 100년 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한다는 건 무모함을 넘어 어리석은 일이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가는 특정 기술의 발전 양상을 따라잡기도 어려운 세상. 눈앞에 보인 것을 제대로 붙들고 인식하기도 전에 구식이 돼버리는 시대에 무슨 수로 미래를 예측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 특히 이처럼 불멸의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웃음거리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빈말 없이 직설적으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조지 프리드먼의 추구하는 예측 방법의 핵심은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불가능한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건 후자, 즉 '불가능한 것을 예상'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미래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누군가 10년 후의 일본 경제는 완전히 몰락할 것이며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이류가 될 것이라 말했다면 조롱거리 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1997년에 IMF 구제 금융을 받은 한국은 어떨까? 20년 뒤 이 나라가 IT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로 세계인을 감동시킬 거라 말했다면?


저자의 또 다른 무기는 바로 지정학이다. 지정학이란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국가를 비롯한 국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적용한다. 지정학은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자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자기에게 무엇이 이득이 될 것인지 아는 이성적 주체라고 가정한다. 물론 각자의 판단은 실패로 귀결될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 선택이 될 대로 되라는 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은 지정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지정학은 국가와 인간을 억압하고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비인격적인 위력에 대한 것이다.(p.21)


그럼 비인격적 위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국가와 그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갖는 정체성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보다 큰 단위를 조직하고 그로써 정치에 개입한다. 정치와 조직은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여기에 천부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둘째는 바로 지리다. '지리라는 용어는 한 장소의 물리적 특성뿐 아니라 그 장소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내포'(p.22) 한다. 영국은 해상 강국이 됐던 걸까 아니면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무엇이 맞는지 논하려면 엄청난 논쟁을 거쳐야 함을 잘 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바다에서 강국이 될 확률이 높다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이상의 것들을 종합하면 특정 국가는 자신이 놓인 지리적 특성에 근거해 행동하고 그 행동은 그 국가의 정체성에 따라 세분화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면밀히 분석하면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예측의 근거가 된다.


<100년 후>는 2030년 무렵 일본이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2050년에는 터키와 손을 잡고 우주 전쟁에서 미국의 방위 시스템을 전파, 세계 전쟁의 승리를 쥘 것이라(결국 미국에 패배하지만)는 내용만으로도 코웃음을 치게 만들지만, 이런 류의 책에서 중요한 건 맞고 틀리고가 아니다. 맞으면 맞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의 논리를 찾아 배우고 보완하면 된다. 결과만큼, 혹은 그 보다 중요한 건 생각의 흐름이다. 옳은 과정을 꾸준히 추구하면, 언젠가는 맞는 결과를 얻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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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협력한다
디르크 브로크만 지음, 강민경 옮김 / 알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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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온 세상이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으며, 근본적으로 같다는 비교적 신비주의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인지편향을 더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장의 주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복잡한 연결망, 조화, 임계성, 티핑 포인트, 집단행동, 협력이며 이 주제를 설명하는 소재로 버섯, 메트로놈, 친구의 친구, 모래더미와 팬데믹, 기후 위기, 청어, 세균총 등이 등장한다.


이 난잡한 집합에 한 가지 혼란을 더하기 위해 나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싶다. 저자 디르크 브로크만은 원래 이론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독일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멀어졌는데 그의 학사 논문 주제가 '포유동물의 호흡과 호흡 조절 방식'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신경망으로 관심을 옮겼고, 안구의 무작위 운동과 앨버트로스의 먹이 탐색, 거미원숭이의 밀림 이동 경로 사이의 공통점을 연구했으며, 물리학 박사로서 생물학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는 미국에서 응용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인생인가!


그는 현재 자신을 '복잡계 과학자'라고 소개한다. 이 복잡계 과학자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를 한데 엮어 책으로 낸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이 모든 것들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보기'에 관한 책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 관점에서 도출된 이미지들을 때로는 좁고 깊게 탐구하고, 때로는 전체적으로 연결해 어느 순간 강하게 불을 튀기며 융합되는 조화의 경이를 체험한다면 우리가 몸담은 자연과 사회를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는 이 현상들 사이의 분명한 연관을 어떻게 찾아내고 탐구하는지를 돕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공통점의 흔적을 어떻게 찾아낸 걸까? 연관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평소에 잡학다식하다는, 칭찬과 비하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평을 자주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역시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함께 동류의 동료들을 찾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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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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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세상은 온통 암흑으로 느껴진다. 한참을 허우적대다 쓰러지면 더 이상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쓰러진 자리엔 어둠이 쌓여 담이 되고 가끔 스쳐가던 한 줌의 빛조차 막아버린다. 무게도, 냄새도, 색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암흑이 짓누르는 무게에 온 몸은 깊이 가라앉는다.


육체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 한계를 깨달을 때마다 멈추고 주저앉는 시간은 끝 모를 불안을 만들어낸다. 불안에 빠지면 자신에게 이 시간의 한계를 뚫고 미래를 열어갈 능력이 있다는 걸 잊게 된다. 작가는 그 능력을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기억하기.


나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무한하다. 내가 벽을 허물고 일어나 타인의 목소리를 품에 안고 내 목소리를 그에게 들려줄 때, 비로소 나는 우리가 되어 영원으로 이어진다. 좋았던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관의 먹이가 되지만 미래를 기억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래를 기억'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불행과 패배를 상징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이들을 동정하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나눠 등을 돌리고 살아왔다. 이 극단의 시대에, 혐오와 무관용의 칼날을 헤쳐나갈 방법을, 김연수는 이야기한다.


나는 지난날 김연수를 외면해왔는데 대개는 그가 펼치는 이야기가 오글거리고 희망에 대한 강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본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열혈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한두 권만 읽어봐도 이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편견인지를 깨달을 수 있지만, 비로소 이 단편집을 통해 나는 이 작가가 정말로 대가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연수는 완전히 다른 8개의 소설을 한 개의 주제로 정확히 꿰뚫는다. 몽골의 사막에서 조선의 바다로, 북한의 수도원으로, 도쿄의 진보초로, 작가는 경계를 알 수 없는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를 이끌며 소설이란 과연 시공간의 한계가 없는 궁극의 이야기 수단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해 준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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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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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이 미스터리 소설을 썼다면 아마 <류>가 나왔을 것이다. <류>의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대만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 그때부터 쭉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다.


모옌은 대륙의 남자고 히가시야마는 섬 사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루는 인물은 모두 대륙인이다. 차이는 대륙에 쭉 남았느냐 섬으로 옮겼느냐다. 여기에는 중국 역사의 슬픈 분열이 있다. 모옌의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은 국공내전을 주요한 배경으로 하고 히가시야마의 <류> 또한 그 역사를 뿌리로 이야기가 흐른다.


두 사람이 비극을 견뎌내는 방법은 유머였다. 피와 정신을 나눈 형제들끼리 잔인하게 학살하고, 그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참상을 만들어내고. 사상의 분열은 오직 피만이 피를 씻어낼 수 있다는 듯 극단으로 치닫고 피해는 늘 이름 없는 자들의 몫이 된다. 이 고리를 잘라내는 방법은 우리에게 인간성이 있음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유머는 이 일을 가장 잘 해낸다. 터질 것 같은 긴장을 순식간에 녹이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빼준다. 웃음은 전염된다. 유머는 결코 역사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부드럽게 만든다.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아볼 수 있게.


주인공 치우성은 본토에서 쫓겨나 섬에 정착한 산둥성 출신 예준린의 손자다. 배경은 70~80년대로 국민당의 아버지 총통 장제스가 죽고 흡수 합병을 위해 중국이 대만인에게도 자국의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던 시기였다.


이 혼란의 시기에 치우성은 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다. 할아버지는 운영하던 가게의 욕조에 손발이 묶인 채 누워있었다. 그의 폐를 가득 채운 건 욕조의 물이었다. 가게 어딘가에서 습격을 받은 뒤 욕조로 끌려가 익사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먼저 발견한 치우성은 오로지 이 사건에 정신을 뺏겨 학창 시절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든다.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던 할아버지였다. 비록 젊은 시절 무고한 백성 56명을 학살해 고향땅에는 그 잔인함을 새긴 비석이 세워질 정도였지만.


이야기를 열고 맺는 건 예준린의 죽음이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건 고향 땅을 떠나 대만에 정착했던 1세대와 그 자손들의 삶, 대만의 역사다. 단순하고 멍청한 삶 속에는 정과 의리가 숨어 있다. 예준린 일가를 지켜주는 도깨비불이 등장하고,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는 등 다소 황당한 사건도 펼쳐지는데 이 모든 것들이 자연히 스며들어 무리 없이 통하는 게 이 소설의 힘이다. 미스터리는 소재일 뿐, 결코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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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회계 1도 모르겠습니다 -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
고야마 아키히로 지음, 김지낭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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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가 맞다. 크게는 재무회계, 관리회계, 세무회계로 나누고 이를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라는 재무 3표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고 기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책상 앞에 각을 잡고 앉아 읽을 필요가 없다. 나는 출퇴근 길에 읽었다.


쉽다고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상 체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얻을 것인가 낚는 법을 배울 것인가. 재무 3표가 무엇이고 복식부기와 단식부기의 차이를 아는 건 물고기를 얻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이것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낚는 법에 해당한다. 재무 3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관련 자격증을 따고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재무 4표, 5표를 만들어내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그 시스템을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의 시작은 지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괜찮은 내용을 전달한다. 핵심만 간결하게. 내가 추천하는 독법은 이렇다. 일단 전체 내용을 쭉 한 번 훑어본다. 그다음 종이에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해본다. 정리한 내용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 내용만 다시 읽는다.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싶으면 상장 기업의 재무제표를 받아(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분석해본다. 이 작업을 반복한다.


최근에 서점을 가지 못해 읽을 책이 너무너무 없었고, 주변 사람들의 책장에서 안 읽은 책을 선택한 거라 사실상 기대가 0에 가까웠지만 나름 배울 게 있어 기분이 좋았던 책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프리랜서 시절 세무 신고를 할 때 수익이 낮아 복식부기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귀찮음을 덜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 바보 시절도 생각나고, 아주 먼 옛날 영업이익이 인건비를 뺀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친구와 설전을 벌이던 일도 떠올랐다. 적어도 이 두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어 마음이 가볍다.


그래도 가장 큰 불씨는 다른 회사의 재무제표를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지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가벼운 시작이 긴긴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래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는데, 더 중요한 건 가볍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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