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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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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읽다보면 신들이 인간 중에서도 최고의 멍청이들을 모아 놓은 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온갖 지혜와 진리를 획득한 신조차 어이없을 정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데, 솔직히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토록 어지러운 건가?


신화는 고대인들의 세계 해석서였다. 해가 뜨고 달 지고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고 강이 범람하고. 그들은 변덕스러운 자연 현상이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놀랍게도 이야기를 선택했다. 태양이 움직이는 것은 그것을 집어 삼키려 달려오는 늑대를 피하기 위해서고 천둥이 치는 것은 천둥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게된 사람들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됐고 그것을 섬김으로써 다가올 재앙과 화를 막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탄생한 이유와 인간이 신을 섬기게 된 유래다.


따라서 신들은 엉망진창일 수 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단 일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만물의 특성을 신의 속성으로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들은 인간과 닮았고 인간의 삶에 깊숙히 들어온다. 나는 언제나 그 시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정말로 그 시절이 그립다. 세계에 대해 최초로 입을 연 자가 이야기꾼이라는 것도 반갑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신화에 탐닉했다. 인도, 이집트, 수메르, 동이, 그리스, 북유럽 기타 등등. 만물에 깃든 신들의 세계. 모두가 각자의 신을 섬겨도 벌받거나 생존을 위협당하지 않던 세상.


그 중에서 최고는 역시 북유럽 신화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 현대 판타지물의 배경과 가장 흡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유럽 신화에는 고블린과 드워프를 연상케하는 난쟁이와 다크엘프, 트롤이 등장한다. 스케일 면에선 어떤가? 미드가르드 뱀에 비하면 메두사는 어린 애 장난 같고 미노타우루스는 펜리스의 에피타이저 수준이다. 생활도 훨씬 구체적이다. 토르는 오딘, 로키와 함께 연회장에 모여 매일 맥주를 마신다. 즐기는 고기는 돼지와 염소인데 황당하게도 그 염소가 이끄는 마차를 탄다. RPG 게임의 전설템 같은 도구들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태양신 프레이에게는 저절로 싸우는 검과 황금갈퀴를 날리는 돼지가 있고 그의 주머니에는 차곡차곡 접어 넣을 수 있는 배 한 척이 들어 있다. 오딘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 창 궁니르를, 토르는 그 유명한 망치 묠니르를 휘두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끈 건, 그들에게 라그나로크가 있었다는 것이다.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 인간만큼 어리석고 타락한 신들은 약속의 때에 이르러 서로를 죽이는 대전쟁을 벌인다. 이 날 오딘은 드디어 펜리스에게 먹혀 음흉과 비밀로 가득했던 삶을 마감한다. 항상 말보다 주먹이 빨랐던 폭력범 토르도 미드가르드 뱀이 뿜은 독에 맞아 죽는다. 나는 그 어떤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핏빛 대멸망이 마음에 든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위대한 존재도 결코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라그나로크가 벌어진 뒤 펼쳐지는 무의 잿더미는 삶의 끝이지만 동시에 싸움과 증오, 슬픔과 고통의 끝이기도 하다. 피로한 신들은 하늘에 올라 지긋지긋한 영생을 사는 게 아니라 마침내 완전한 무로 돌아간다. 나는 여기서 지극한 안도를 느낀다.


<북유럽 신화>는 어린애들도 넘어가지 않을 조악한 이야기와 대화로 가득하고 아주 조금 남은 재미마저 번역이 먹어치우지만, 나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머리를 통째로 꺼내 박박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기는 커녕 점점 넓게 번져나간다. 이것은 평생 조금씩 변하며 머리 속에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이야기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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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 - 스탠퍼드 대학교 스타트업 최고 명강의
피터 틸 & 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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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투자가 피터 틸이 이 세상의 기업인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제로에서 하나를 만들라는 것(Zero to One).


지구상의 모든 위대한 기업은 영에서 하나를 만들며 탄생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기존의 것을 10배에서 100배 정도 개선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말을 밀어냈고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최초의 인간이 됐다. 에디슨은 캄캄한 밤을 빛으로 바꿨고 벨은 우편보다 수십만배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


위대한 기업은 기본적으로 독점 기업일 수 밖에 없다. 다른 기업은 0인데 본인만 1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자신이 최초로 만들었던 시장에 경쟁자들이 난립하면서 기존의 1을 1.1이나 1.2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순간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한다. 이 징후를 확인하는 법은 쉽다. 실리콘밸리의 괴짜 CEO들이 재무에 밝은 관리형 CEO로 바뀌고 청바지에 티셔츠, 슬리퍼를 끌던 엔지니어들이 넥타이를 멘 양복쟁이들로 교체될 때를 보면 된다.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징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실제 피터 틸은 양복을 입는 스타트업 CEO에게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에서 하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두번째 공통점은 대부분 카리스마 넘치는 CEO가 회사의 전반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의견을 수렴하고, 조화를 이루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말을 듣고, 온건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중에 창조와 관련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폭군이며 자신의 엔지니어들을 주 80시간 근무의 지옥 속으로 갈아넣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며 자신의 직원들 또한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요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폭군의 군사들은 술탄의 예니체리처럼(직속 경호부대) 집단 최면에 걸린 최정예 수호병들이다.


이 책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경영의 잠언을 수없이 담고 있지만 상당히 편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독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다른 사례에 대해선 아예 귀를 닫아 버린다. 예컨대 우버는 왜 리프트가 선점한 시장에 달려들어 세계 1위의 승차공유서비스가 됐을까? 우버는 정말로 리프트보다 10배 혹은 100배 훌륭한 서비스일까? 피터 틸은 또한 MS가 모바일에서의 출혈적 경쟁을 포기하고 클라우드 사업으로 돌아섬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고 주장하는데(얼마전 애플을 밀어내고 시총 1위가 됐지만 다시 아마존에게 뺏겼다) 사실 그들은 경쟁 상대를 애플, 삼성, 구글에서 아마존으로(AWS) 바꾼 것 뿐이다. 사실 독점과 경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도저히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독점은 경쟁이 낳은 결과이지 결코 그 자체가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예전엔 기업이 정부와 유착 관계를 형성해 독점권을 얻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도 다른 기업과의 부패 경쟁을 벌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위대한 기업들 모두 물밑에선 수많은 경쟁자와 싸워왔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경쟁자를 모두 침몰시키고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단 한척의 배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에서 탄생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을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상태로 생각하며 21세기의 대다수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좋고, 옳은 것이라 믿는다. <Zero to One>은 정치와 경제 두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통념을 배반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10년도 더 된 '블루오션 전략'이나 지금도 수없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혁신가들 이야기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만, 피터 틸의 자신감 넘치는 문체와 실제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이 오버랩되며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쉽게 말해,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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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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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미래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래는 데이터다.


최근 수년 사이에 벌어진 급격한 기술 발전은 대부분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딥러닝을 이용한 기계학습은 이제 산업 전체로 확산됐다. 예전엔 슈퍼컴퓨터로도 분석이 어려웠던 대규모 데이터들이 PC와 연결된 클라우딩 컴퓨팅으로도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동안 발만 동동구르며 데이터를 쌓기만 했던 기업들이 앞다투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토록 데이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 증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실 한쪽이 틀린 주장을, 다른 쪽이 옳은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는다. 첨예한 갈등은 대개 양쪽이 모두 옳은 주장을 펼칠때 폭발한다. 양쪽은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다. 하지만 논리적인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대한민국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투기를 하기 때문일까? 양쪽 모두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선 맞는 말이 다른 시기, 다른 지역에선 완전히 틀린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특정 현상이 발생하는데 관여한 변수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모든 변수들을 수집할 방법도, 분석할 능력도 없다. 바로 여기가, 빅데이터 분석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지점이다.


데이터가 사람보다 공정하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널린 통용되는 미신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은 태어난 곳도, 졸업한 학교도 지인도 없으며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해관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누구보다 공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인간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한다. 여기 10년 동안 한 번도 연체를 해본 적이 없는 직장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나 이 사람은 그동안 신용카드도, 대출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용평가 회사에서 평가하는 신용 수준은 5등급으로 다소 낮은 편이다. 프로그램은 신용등급이 낮지만 이 사람의 과거 행적을 볼 때 성실한 채무 변제가 예상되므로 최저 이율을 적용하겠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판단을 그대로 적용할 은행은 장담컨대 단 한군데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의 설계자들은 모든 변수에 동일한 중요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변수의 중요성을 재배열 할 것이며 계속해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조정해 나갈 것이다.


프로그램이 설계자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실제 현장에서 최고의 업무 성과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업무 방식을 학습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동일하다.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편향된 사고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니 사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설계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실적이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편향된 생각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피드백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직장인에게 은행이 높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은 그 돈으로 결혼 후 살집을 구매했다. 그런데 잠깐. 은행이 요구한 변동 금리는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는데 집 값은 제자리라 매달 내야하는 원리금은 조여드는 가시처럼 압박해 온다. 결국 이 사람은 채무를 연체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최초에 높은 이율을 부과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한다. 애초에 낮은 이율을 부과했다면 이 직장인이 연체할 일은 없었을텐데도 말이다.


이와 비슷한 판단은 금융계를 비롯하여 대학 입학, 회사 취업, 의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크게 세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 그 피해가 막심하다.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왜 그런 평가를 받아야하는지 해답을 요청할 때 철저히 침묵한다(기계학습 특성상 판단의 과정은 블랙박스로 처리된다. 기계는 결론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의 근거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누구도 내부 구조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일컬어 '대량살상수학무기'라고 부른다.


데이터에 관한한 대한민국은 아직 문턱에 서 있는 수준이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알고리즘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것으로 데이터 사용자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데이터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태를 감시해야 하는 사람과 그런 사태를 만들어낸 사람이 동류라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복잡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그 미래를 만들어낸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관심갖고, 읽고, 보고, 알아가는 것. 이것만 잘해도 미래는 그렇게 실망스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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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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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0세가 된 노인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시끌벅적한 모험에 다수 빠져들었고, 그야말로 역사의 주먹질을 온 몸에 두드려 맞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들은 그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을 치명적인 상태로까지 빠뜨리진 않았습니다. 대단히 운이 좋았던 걸까요? 위기의 순간마다 노인은 재치와 위트, 삶에 대한 끝없는 낙관으로 고난을 돌파해갔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고보니 노인은 이제 시간조차 파괴할 수 없는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어 세상에 뿌리를 내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100세가 되던 해, 노인은 다시 한번 모험의 문턱에 섰습니다. 바로 등 뒤에선 지역신문까지 대동한 양로원 식구들이 그의 100세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죠.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자신을 보러온 모두를 깜짝 놀래켜주리라 마음먹었고 그 순간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다시 모험의 땅 위에 두 발을 내려놓습니다. 이렇게 100세 노인 알란 칼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알란 칼손을 대단히 멍청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노인의 바보같은 행동 속에 숨은 삶의 해답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됩니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무릎을 달고도 그 대단한 모험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노인의 모습에서 독자는 삶의 해답이 고민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인은 자기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고민하는 대신 그냥 두 다리를 한발씩 삶 속으로 전진 시킵니다. 오직 전진과 전진. 그는 인생과 끝없는 핑퐁을 벌일 뿐입니다. 물론 강력한 드라이브를 맞아 공을 놓칠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이 우리와 알란 칼손의 인생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 됩니다. 우리가 놓친 공을 생각하며 빼앗긴 1점에 괴로워하는 동안 알란 칼손은 떨어진 공을 주워 들고 자신의 서브를 날립니다. 이 게임은 누가 먼저 100점을 내느냐 하는 게 아닙니다. 삶은 단 한번도 그런식으로 게임을 만든적이 없지만 날아오는 공을 바라본 순간 우리는 그걸 반드시 이겨야 할 대결로 여기고 그 공을 놓쳤을 때, 혹은 그 공에 맞아 시퍼런 멍이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한층 더 패배에 가까워졌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공을 물어오는 개의 놀이와 비슷합니다. 그 게임을 하는 동안 공도, 개도 서로를 이기려 들지 않습니다. 공을 놓친 개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찾아 온 공원을 달립니다. 때로는 공이 하수구에 빠지거나 터져버리기도 하죠. 그럴때 개는 시무룩해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시 달려와 새로운 공을 던져달라고 짖습니다. 멍멍!


사람들 눈에는 그게 정말 바보같아 보이지만 뭐 어쩌란 말입니까? 나는 즐거워 죽겠어.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당신들이야 말로 진짜 바보지. 아마도 우리의 댕댕이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듭시다. 미래를 얻기 위해선 시간의 톱니바퀴를 돌려야 하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오직 행동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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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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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에는 다양한 소설이 실려있다. '글을 짓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물씬 풍기는 작품들, 그러니까 글쓰기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갖는지, 글쓰기 그 자체란 도대체 무엇인지 밝히려드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21세기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여자이자 작가, 그리고 엄마인 '인간 구병모'의 고충과 고민이 담긴 작품도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SF 또는 판타지의 문법으로 진행되며 그 생경함이 이야기에 독특한 결을 만들어낸다. 


구병모의 소설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건 그녀의 주인공들이 철저히 지키려 한 개인의 공간,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진정성이 난무하는 시대. 뜨겁고 강렬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을 드러내야만 참된 것이라 인정받는 투명사회에서 적절히 숨기고, 가리고, 거리를 두는 태도는 상당한 오해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이기주의자. 에고이스트. 혹은 젠체하는 얌생이. 유난떠는 똥재수.


너무 가까운 거리는 항상 나를 질식하게 했다. 나는 '함께'라는 말 속에 내포된 '감내하기'가 싫다. 같이 사는 세상이므로 때때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언젠가는 나도 그와 동일한 일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함께' 안에는 반드시 개인이 또렷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개인에게 서로 겹치지 않는 충분한 공간을 배당해야만 그것이 건강히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규정하며 자꾸만 그 거리를 없애려드는 일단의 행동들이 당혹스럽다. 우리는 섞이지 않고도 서로를 진정으로 보살필 수 있다. 거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닐까싶다.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까보이고 그걸 만져보지 않으면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관점이 구병모의 세상 살기와 일치하는 거라면, 나는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임을 자청하지 않고도 그 삶에 동의를 보낼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소설에 대단한 찬사를 보내지 않고도 그 소설에 지지를 안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보일 삶이 나에게는 너무나 평화롭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이 평화를 깨려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것은 무책임으로, 때로는 배려를 가장한채 등장한다. 함께 살기란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대는 걸로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진탕 술을 퍼마신 뒤 속마음을 꺼내보여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을 단단히 부여잡아 그것이 다른 삶에 스며들지 않도록 할 때, 오직 그럴 때만이 함께 살기는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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