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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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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나는 부모님의 품안에서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조차 느끼지 못한 채 성장하였다. 다만 그 시절 새마을 운동 노래는 활기찼고 집집마다 나와서 청소를 하며 보낸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땐 그랬었지'라며 회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속에서 선명하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으나 정애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객지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엄마는 떠나간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기만 하니 정애는 동생들과 엄마까지 돌봐야 했다.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울타리가 되어 줘야 하나 아버지까지 없는 이곳에서 정애는 이미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 삶은 고단하고 세상은 차갑기만 하다. 정애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제부터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친구들은 객지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들이 떠나기 전 모인 자리는 슬프기만 하다. 어두운 밤, 피빨래를 하던 정애는 우물가 너머 개울 아래로 끌려가고 쉰살의 정애는 서럽도록 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자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정애의 아버지, 정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렇게 서러웠다.

 

새마을연쇄점 마당에서 부로꾸를 찍는 남자가 정애의 집 담장을 무너뜨리고 부서진 닭장에서 닭들이 도망가고 돼지가 돌더미에 깔려 죽었다. 닭들은 정샌이 몰아가고 돼지는 이발사 박샌이 잡아먹었다. 죽은 돼지 값으로 이발사 박샌은 정애가 새마을사업에 나가지 않게 빼주고 보리쌀 한 가마니 값을 받지 않기로 했다. 정애는 밀가루죽을 먹고 나가 힘들게 시멘트 반죽을 나르는 묘자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닭들이 달아나고 돼지가 죽은 일이 억울한 일이나 어디에 하소연 할 곳 하나 없는 정애의 아버지 김종택은 이 사건을 묻어두기로 한다. 허나 "박샌이 도야지 잡아 먹어서 삐쳤냐"고 놀리는 석균이만 아니었다면 별 일 없었을 터인데, 삶은 이상하게도 늘 어긋나 버리고 만다. 순애가 죽고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에 정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찌른 사람은 죽고 찔린 사람은 죽지 않았다는 이발소 박샌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박샌이 입을 닫아 버리니 이렇게 정애의 아버지의 죽음은 묻혀버리고 마나 보다. 정애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정애의 삶이 더 팍팍해졌다는 사실이다.

 

마을을 떠난 정애에게 남은 것은 지금보다 더 불행한 일들 뿐이었으며 묘자와 다시 만난 정애의 상황은 도시에서의 삶 또한 정애에게 너무나 힘겨웠음을, 너무나 고통스러웠음을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겹지만 정애가 기댈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 1980년대 광주, 그곳에서 벌어진 지옥같은 일은 정애의 온전한 정신마저 빼앗아 버리고 만다. 마을로 다시 오게 된 정애에게 마을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겨운 곳이 아닌, 자신을 계속 밀어내기만 하는 낯선 고향일 뿐이다.

 

시대의 흐름에 갇혔으나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고자 했던 정애와 묘자의 삶은 이렇게 역사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하고 있으나 정애와 묘자를 기억해 줄 이는 없을 것이며, 정애가 가족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살아냈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 또한 없을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기억속에서 정애의 어린 시절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정애와 묘자, 그들이 죽은 후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정애, 묘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시대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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