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눈의 아이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평점 :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었던 그 시절을 '네버랜드'라고 표현한 온다 리쿠의 책 [네버랜드]에 이어 어린 시절의 추억에 '미스터리'를 입힌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를 읽었다.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들임에도 두 작품의 매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지만 한번쯤 추억에 잠길만 한 그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어떤 인형을 좋아했었지? 잠잘 때 인형을 안고 잤었나? 단편 '지요코'를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 나에게 소중했던 인형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아마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사정으로 볼 때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던, 손 때 묻은 인형은 없었던 것 같다. 단편적인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부모님뿐이다. 있었다면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자주 등장했을 것인데 그저 신발이 그려진 책 위에 올라섰던 것이며, 친구와 종이인형, 마루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 뿐이다. 나에게 지요코와 같은 물건이 없다는 것에 슬퍼해야 할까. 아니 그냥 조금 쓸쓸해진다. 추억할 것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까지 쓸쓸하게 만드는가 보다.
유키코가 살해된지 벌써 이십 년이다. 유키코의 시체는 전날 내린 폭설로 쌓인 눈 속에서 발견되었다. 단편 '눈의 아이'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몰랐다면 쏟아져 내리는 눈을 보며 "와, 눈이 내린다"며 좋아했을 것이나 이젠 억지로라도 눈을 보며 유키코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유키코는 눈 속에서 빨간 파카에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빨간 고무장화를 신은 모습 그대로 발견되었다. 처음 유키코의 시체를 발견한 택시미터기 검사장 직원이 커다란 인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으니 그 모습을 유키코의 부모가 봤다면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아마 평생 그 모습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살아 있을 것만 같은데, 꼭 잠든 듯 보여 금세 "엄마, 아빠" 하며 일어날 것만 같은데......라며 오열하는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범인은 누구일까. 유키코를 죽인 이에게만 유키코의 유령이 보이지 않아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의 유령조차 보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며 이십년 전 유키코를 죽였을 때 그때 유키코와 함께 나 자신도 그때 죽어 버렸다고 자조하는 범인의 모습에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현실 운운하며 따질 상황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었다면 이 사건만으로도 형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을 하고 증거를 찾아내고 살인범을 잡는 것까지 이야기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었을 것이나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에 담겨진 대부분의 단편들은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또는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언제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죽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을 뿐 피해자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단편 '돌베개'와 같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고 끝을 맺는 것이 아닌 죽임을 당한 소녀가 '왜 죽어야만 했는가'에 촛점을 맞추어 그려나가는 이야기에 나의 마음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미스터리를 덧입혀 만들어진 단편들이 그 누구의 기억도 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나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기에 추억조차 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