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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역사 박물관에 간 명화 - 명화가 된 역사의 명장면 이야기
박수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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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 제목이 길어 책 표지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가만히 책 표지를 바라보며 읊조려 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래야 이 책을 오롯이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간......역사 박물관에 간.....명화" 아, 이제서야 이 책 속에 담긴 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었구나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래, 원래 미술관에는 명화가 있고, 박물관에는 역사가 있지. 그런데 이렇게 거꾸로 표현을 해 놓으니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구나. 우리들 삶에 역사가 녹아 있듯이 미술 작품마다 사람들의 삶이 더 큰 의미의 역사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작품들 중에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솔직히 생소한 것들더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알고 있는 역사라도 그림을 통해 배우니 그 느낌이 새롭다.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은 물론 그 시대의 그림을 통해 그 때 유행한 미술 기법들까지 알 수 있으니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대작들 중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의외다. 슬픔, 원통함, 비극적인 것을 표현한 그림들이 많은데 특히 전쟁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이 많다.

 

'3천 년 전 트로이의 비극'편에서는 아킬레우스와 대결을 했지만 싸움에 져서 죽게 된 헥토르와 그의 부인 안드로마케,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이 전쟁으로 얼마나 큰 슬픔을 겪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야 당연히 슬플텐데 왜 이제서야 알았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승자인 아킬레우스만을 기억했었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아스티아낙스의 손들이 닿아 있는 그림은 헥토르의 죽음으로 얼마나 큰 슬픔에 빠졌는지 절절한 느낌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그나마 내가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정도 아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누가 자세하게 해 주겠나. 직접 눈으로 봤다면 "와, 잘 그렸다" 하고 지나간 후 잊어버리고 말 것을,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다. 이제 이 그림을 다시 본다면 다른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를 표현한 다른 작품인 이탈리아의 화가 키리코의 그림은 같은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를 그리고 있어도 앞서 설명한 그림과 느낌이 다르다. 미래를 표현한 것 같다고 할까. 그냥 봐서는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인지 알 수도 없다. 설명해주니 그런갑다 한다. 꼭 로보트를 보는 듯 하지만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보니 얼굴에 반쯤 드리워진 그림자를 통해 그들의 슬픔이 전해져 와, 애틋해진다. 그림으로 어떻게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다.  

 

안토니우스를 만난 클레오파트라가 진주 귀고리 하나를 빼 식초에 녹여 마신 그림 "클레오파트라의 연회"는 역사를 통해 이를 알고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내가 모르니 다들 모른다 생각하는 거 맞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이집트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자신과 손을 잡자는 뜻을 담아 진주 귀고리 하나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이 그림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집트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던 한 여인을 잘 표현한 그림이라고 한다.

 

알트도르퍼의 '알렉산더 대왕의 이수스 전투'는 어마어마한 수의 군사들을 그려 놓아 그 장엄함에 놀라게 되는데 화가의 정성이 대단해 보인다. 군사들의 복색, 그들이 들고 있는 창, 깃발 등을 자세하게 그려 놓아 그 방대함에 더 놀라게 된다. 고대 도시 폼페이에 묻혀 있던 작품 '이수스 전투'와 다르게 '알렉산더 대왕의 이수스 전투'는 색감의 선명함과 정교한 기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날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150만개의 작은 타일 조각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 작품인 '이수스 전투'는 2000년이 지난 후에야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이렇듯 나의 기억속에 강렬하게 자리잡은 작품들이 대부분 전쟁을 표현한 그림들이다.

 

"미술관에 간 역사 박물관에 간 명화'에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등장해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차다. 불면 날아갈까 호흡조차 멈추고 대작들을 감상하고 있으니 내가 아주 하찮게 느껴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림 속에 표현된 것들만이 역사는 아닐 것인데 왜 이렇게 나의 삶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발품을 팔아야만이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한 작품만이 아니라 같은 주제를 표현한 다른 화가의 그림도 함께 볼 수 있어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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