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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해왔던 시장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가격이라는 매개체로 통해 자유롭게 소비자와 공급자가 경제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최적의 것으로 간주되어왔고, 그래서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라는 기구에 의해 경제의 객체가 되는 개인을 비롯한 기업이나 정부는 생산의 효율은 높이고 이익과 효용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외부의 간섭은 가급적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다행히도 시장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흘러왔고, 그런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마치 당연한 것인 양 받아 들여져왔다.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시장은 2008년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대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장구조에 많은 결함이 있음을 시인해야 했다. 이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이자 자유 경쟁시장을 주장했던 그린스펀이 말했던 미 의회 진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경제는 여전히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들은 보이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시장만능주의에 입각한 자유경쟁시장의 불합리적인 부분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지금까지 시장이 규정해왔던 가격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하고, 이를 위해 이제는 새로운 방안이 강구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우선 자유 시장에 대한 환상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이는 마치 ‘안톤의 실명(Anton's Blindness)’ 증세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질병을 잃게 되는 사람은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즉 환자 자신은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있음을 부정하고 그 이유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합리화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시장 방식에 의한 가격에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통해야 한다는 억지스런 환상에 빠지고 있는 점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시장은 욕구 충족을 위한 거래가 아닌 이윤 추구를 위한 거래로 특정지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며, 지금까지 주장되어 왔던,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는 최상의 방식은, 그동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경제 문제에 비추어 볼 때, 개입을 최소화하여 시장이 이윤을 추구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말이 일리 있게 들리는 것은, 지금의 시장 기능이 대개 가진 자들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우리의 사회가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점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권리이자 목적이다. 그러나 그가 비판하는 우리의 기업들이 행하는 사실을 놓고 보면, 이점 역시 쉽게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익을 위해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이나 생산적인 투자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하청업자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해고하는 방법을 택하며, 사원들의 복지에 대한 것에도 생색만 낼 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생산물을 제조함에 있어 파생되는 비용을 전적으로 사회에 떠넘기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무자비한 남획으로 인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의 주범이 바로 기업들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때때로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정부의 묵인 하에 벌어지는 많은 기업들의 불법과 탈법에 의한 그릇된 이윤 지향적인 사고방식은 어떤 형태로든 저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 행위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경제는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처럼 심각하게 변질되어 있는 경제의 속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장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기보다 시장에 내주었던 권력을 다시 쟁취해 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자유 시장 경제를 버리자는 것이 아닌, 가치 지향적인 삶을 위해 우리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뛰어 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도 단순히 투표행사 하는 것에 만족하고 마는 것이 아닌, 정치의 현안에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시민들의 힘을 강력하게 키워내어, 이를 바탕으로 가진 자들에 편의대로 움직이는 시장의 기능을 멈추게 하고 시장의 기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이러한 대안이 과연 오늘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 그리고 금전 만능주의와 극도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 우리의 부조리한 경제 현안들을 생각할 때,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내용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 볼만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