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
프리츠 게징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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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과연, 바이블답다. 이렇게 밑줄을 많이 쳐보기는 처음이다. 글마다 '이건 꼭 읽어야 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줄을 긋다가 포기했다. 모든 글에 줄을 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위대한 작가들이 간직해온 소설 쓰기의 비밀'이란 부제가 이 책을 더욱 읽고 싶게 만들었다. 마치 위대한 작가들의 비밀 창작노트를 엿보는 느낌이 들었고, 그의 문하생이 되어 글 쓰는 법을 체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스토리를 구성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상세하게 제시하는 소설 작법 도서이다.

책은 크게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삶, 읽기, 글쓰기
2장 : 스토리와 캐릭터
3장 : 삶이 쓰는 이야기와 헐리우드의 지침
4장 : 화자와 서술 시점
5장 : 구성과 줄거리 모델
6장 : 공간 : 신탁, 메아리, 함께 연기하는 자
7장 : 언어
8장 : 수정과 퇴고
부록 : 자극과 과제 _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줌으로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초보자들에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장인 '삶, 읽기, 글쓰기'였다. 저자인 프리츠 게징은 '왜 글을 쓰는가'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건 이 책을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을 쓰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글을 쓰라는 것, 가장 기본적이지만 늘 잊고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추천하고 있다. 학창시절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의무감에 읽었다. 그래서인지 재미가 없었다. 신들의 이름은 왜 그리도 복잡하던지. 그런데 대학 시절에 영어로 된 신화 읽기 수업을 들을 때 신화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꽤 많이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경'.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집안 어디에나 성경이 있어서인지 오히려 성경을 잘 보지 않았다. 한때 성경 통독도 시도하고, 필사도 했던 나이지만, 그 두꺼운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펜을 놓아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동기부여가 정확하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니 읽고 바로 잊어버렸다.

그런데 성경이야말로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입을 거쳐 내려온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이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어본다면, 인물이 보이고, 사건이 보이고, 배경이 보이고, 시대가 보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경을 신앙서적으로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거대한 이야기책으로 보면 또 어떤 즐거움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어떤 분위기에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을 써야 하는가, 어떤 작가는 아침형이고, 어떤 작가는 새벽형이라는 구체적인 사실까지 보여주는 등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도 많았다. 이건 굉장한 독서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법칙이다.

작가인 프리츠 게징은 독일 소설가로,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를 1994년에 처음 출간하였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23년이나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실천해도 이질감이 없는 건, 글 쓰기의 법칙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는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소설 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리고 볼수록 깨닫게 된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사람이 소설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소설을 잘 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위대한 소설이 탄생한다는 것을.

지금 당장 펜을 들어 소설을 쓰기 전에,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먼저 읽는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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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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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
워낙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 주변에 읽어본 사람들의 감탄사와 추천사를 많이 들어본 터라 그 누구보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두 번이나 아픈 상처를 준 '암'이란 단어가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표지를 열기가 두려웠다.

이 책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나는 속으로 '안 돼, 결국 이렇게 해서 떠난 거잖아.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중간중간 책 읽기를 멈추었다. 방금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한참 아무 말도 못하고,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폴 칼라니티. 1977년생. 스탠포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이후 예일대 의학대학원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을 마치며, 꽃길만 남은 그에게 다가온 암이란 존재. 서른 여섯에 폐암에 걸린 것을 알고 투병을 하다가 서른 여덟, 짧은 생을 살다 떠났다.

이 책이 마음을 울린 건 화려한 스펙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는 팩트가 아니다. 투병기간 동안 뜨거운 열정을 담아 써내려간 이 책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살다간 한 젊은 의사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왜 하필 내가...'라는 원망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덤덤한 그의 자세에 존경스런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그에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컸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차도가 보이자, 다시금 병원 현장으로 와서 온 마음을 다해 수술에 임했다. 하지만 다시 종양이 생기고 커졌다는 글을 보고 내 마음이 다 아려왔다.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해주시지, 왜 또 다시 아프게 하는가, 감정이 격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폴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마치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어렵게 얻은 딸 케이디와 아내 루시를 두고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불태웠던 열정의 씨앗은 갓난 아기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평생 그 마음 속에서 열매를 피웠으면 좋겠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엊그제는 배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 사는 게 후회하지 않는 삶인가. 매순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답이 없을 듯하다.

맨 마지막 부분에 폴의 글을 보고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가 마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가정적이고 자상했던 우리 아버지, 아니 아빠에게 내가 더 없는 기쁨이 되었기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쉬시기를.

깊어지는 가을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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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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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을 좋아했다. 고딩 시절, 듀스의 노래에 심취해 있었고, 랩을 좋아해서 신해철의 <안녕>, <재즈카페>의 가사를 적어보는 걸로 창작의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론 힙합 음악을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코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쇼미더머니>를 시즌 4를 보고, 시즌 1부터 다시 보기를 했던, 늦깎이 힙합빠순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끝난 쇼미더머니 6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정주행했다. 좋은 랩과 노래 앞에선 아이 둘이라는 것도, 나이도 잊은 채 10대 시절 그때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이 책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을 받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떨렸다. 힙합 신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인 12명의 최고 래퍼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JJK, 타이거JK, MC메타...

힙합빠는 물론 '힙알못'도 이들의 이름은 한번씩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래퍼들이다.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본 덕에 한 두명을 빼고는 다 아는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다. 집이 크고 돈이 많은 걸로 잘 알려진 도끼와 더콰이엇, 독일인 여친으로 알려진 빈지노, 착한 목소리의 팔로알토, 현대카드를 다녔던 제리케이, 호불호가 명확한 스윙스....아 특징들을 꼽자니 끝도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랩에 대한 철학과 깊이감을 잘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님의 인터뷰가 래퍼의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힙합 관련 책들을 이미 여러 권 냈던 저자이기에, 힙합팬들은 익숙한 음악평론가이다. 역시 그가 가진 힙합 지식의 스케일이 엄청났고, 래퍼가 '어떤 래퍼의 무슨 노래'라고 말하면 척 하고 알아듣는 수준 높은 인터뷰였다.

특히 허클베리피라는 래퍼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노래는 잘 몰랐던 래퍼이다. 그런데 음악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말투가 '리스펙'을 부를 만큼 진지하고 깊었다. 단순히 랩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남다른' 래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답변 하나하나가 인상적이었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12명의 인터뷰를 모두 읽어보았다. 무대 위에서 정신을 쏙 빼도록 랩을 하는 래퍼들만 봤지, 이렇게 진중하고 진지하게 힙합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줄은 몰랐다.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그들이 생각하는 'Keep it real'은 무엇인지, 힙합 정신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쇼미더머니>를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래퍼가 많구나 싶다가도, 시즌을 더해가며 인기가 많아지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래퍼도 있었다.

생각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분명한 건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처럼 힙합을 좋아했지만 잘 몰랐던 아줌마까지도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래를 찾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디스와 배틀, 사이퍼, 프리스타일, 플로우, 라임, 펀치라인...온갖 다툼이 난무하는 거친 세계이지만, 힙합만큼 인간적인 음악 장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의 힙합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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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의 순간 - 영원한 찰나, 75분의 1초
박영규 지음 / 열림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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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교도는 아니지만,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처님의 화두를 좋아한다. '진리란 이것이다', '도란 이것이다.'고 정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깨침 말이다. 이 책, <깨침의 순간>도 44명의 고승이 깨우침을 발견한 그 순간, 찰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원한 찰나, 75분의 1초'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유명한 스님들의 예화를 통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 책을 읽는 나에게 물음을 던진다. 과연 네가 생각하는 진리란, 법도란 무엇인가.

행과 행 사이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단순히 웃고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이야기인데, 여기에 무슨 '도'가 있다는 거지? 물음을 던지고 조금 더 생각했을 때, "아하!"하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여러 스님들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줄기는 비슷하다. 평범한 사람 혹은 제자들이 고승에게 묻는 공통 질문이 "도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이다. 이에 대한 고승들의 지혜로운 답변이 이어진다. 전혀 상관없는 걸 손가락으로 지시하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대답 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스님도 있었다.

그런 후의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는 것.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으라고 충고한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귀를 기울이면, 그 가운데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부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지 말고, 말 그대로 생각해보면, 답은 명쾌하게 나온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지식, 스펙,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기 전에, 나의 마음부터 닦아내자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거창한 목표 대신, 내 몸 하나 잘 들여다보고,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게 제대로 된 삶이구나.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흥미로운 건 이 책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박영규 작가의 첫 작품이었단다.
'갓 서른의 나이에 필자는 이런 이야기들을 엮어 책에 담았다. 그리고 나의 첫 책으로 세상에 내밀었다. 20년이 훌쩍 흘러 다시 이책을 세상에 내민아. 갓 서른 시절의 깨짐으로 돌아가길 염원하면서'
머리말에 이렇게 써 있었다. 얼마 전에 그의 <조선반역실록>을 재미있게 읽은 나는 이 머리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필두로,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가 탄생한 거구나, 놀라면서.

찰나, 즉 75초분의 1 그 짧은 순간에도 언제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찰나에 집중하면서, 깨우치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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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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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
워낙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 주변에 읽어본 사람들의 감탄사와 추천사를 많이 들어본 터라 그 누구보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두 번이나 아픈 상처를 준 '암'이란 단어가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표지를 열기가 두려웠다.

이 책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나는 속으로 '안 돼, 결국 이렇게 해서 떠난 거잖아.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중간중간 책 읽기를 멈추었다. 방금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한참 아무 말도 못하고,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다.

폴 칼라니티. 1977년생. 스탠포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이후 예일대 의학대학원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을 마치며, 꽃길만 남은 그에게 다가온 암이란 존재. 서른 여섯에 폐암에 걸린 것을 알고 투병을 하다가 서른 여덟, 짧은 생을 살다 떠났다.

이 책이 마음을 울린 건 화려한 스펙의 전도유망한 의사가 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는 팩트가 아니다. 투병기간 동안 뜨거운 열정을 담아 써내려간 이 책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살다간 한 젊은 의사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환자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왜 하필 내가...'라는 원망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덤덤한 그의 자세에 존경스런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그에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컸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차도가 보이자, 다시금 병원 현장으로 와서 온 마음을 다해 수술에 임했다. 하지만 다시 종양이 생기고 커졌다는 글을 보고 내 마음이 다 아려왔다.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해주시지, 왜 또 다시 아프게 하는가, 감정이 격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폴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마치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어렵게 얻은 딸 케이디와 아내 루시를 두고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불태웠던 열정의 씨앗은 갓난 아기의 마음에 뿌리를 내려 평생 그 마음 속에서 열매를 피웠으면 좋겠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엊그제는 배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 사는 게 후회하지 않는 삶인가. 매순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답이 없을 듯하다.

맨 마지막 부분에 폴의 글을 보고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가 마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가정적이고 자상했던 우리 아버지, 아니 아빠에게 내가 더 없는 기쁨이 되었기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쉬시기를.

깊어지는 가을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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