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아 가문이 권력을 잡은 삼십 년간 이탈리아에서는 전쟁과 테러, 살인, 유혈 참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르네상스를 창조했네. 반면, 스위스 사람들은 끈끈한 동포애로 뭉쳐 오백 년 동안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렸지. 그런데 그들은 과연 무엇을 만들었을까? 뻐꾸기시계야. 자네는 르네상스와 뻐꾸기시계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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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 P12

이제 나는 평소에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P17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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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에서 일한다는 건 지독하게 암울한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하루 종일 보는 것과 흡사했다. 특히 그가 소속된 강력 범죄 수사반은 지옥문 앞에 책상을 갖다 놓고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 P35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지옥의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귀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과 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인다는 건 매일 영혼의 일부가 닳아 없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요원들은 정기적으로 정신감정을 받았고 일부는 정신적인 문제로 일을 그만뒀다. 사이먼 역시 힘든 하루 일과가 끝날 때면 남아 있는 영혼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으로 재보곤 했다. 정확한 무게는 알 수 없었지만 십 년 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건 분명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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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은 다정하구나."
"맞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이클은 너무 다정해. 한국 할머니처럼."
"정말?"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 된대요."
마이클이 잠시 기남을 보다 말을 이었다.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 기남은 마이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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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이모에게서 배웠다. 내가 재밌다, 무섭다, 행복하다, 예쁘다, 나쁘다 같은 언어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그런 관념을 형성한 바탕에는 이모의 세계관과 해석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모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들의 특징을 내 안에서 관념적으로 구성했고, 이모가 나쁘다고 하는 것들의 특징 또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내가 무섭고 싫고 밉다는 말을 하게 됐을 때, 그 말에는 이모의 삶을 통과한 세계관과 해석이 들어 있었다.
이모는 왜 그렇게 싫은게 많아? 왜 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야? 왜 그렇게 불평을 해? 좋은 면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모가 감정적으로 인색한 사람이란 거 알아? 때로는 마음속으로,
때로는 이모 앞에서 소리 내어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때때로 나는 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했던 이모의 모습을 본다. - P225

나는 이모가 그 정도로 화를 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 책장에서 국어사전을 꺼내 ‘개가‘라는 말을 찾아봤다. 오촌 아저씨는 이모가 ‘개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개가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했다.
출가한 여자가 이별 또는 망부로 인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일, 나는 출가와 망부라는 단어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개가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모 인생의 큰 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순간부터였다. - P223

이모는 어려서부터 내가 모든 할 수 있고 모든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모는 그 말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것처럼 얘기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이모는 끝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모가 내게서 봤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큰 공포였다는 사실을 이모는 종종 ‘내가 너라면.…‘이라고 말을 꺼내고는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와 함께 어떤 질투가 담겨 있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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