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이모에게서 배웠다. 내가 재밌다, 무섭다, 행복하다, 예쁘다, 나쁘다 같은 언어를 쓰기 시작하기 전에, 그런 관념을 형성한 바탕에는 이모의 세계관과 해석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모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들의 특징을 내 안에서 관념적으로 구성했고, 이모가 나쁘다고 하는 것들의 특징 또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내가 무섭고 싫고 밉다는 말을 하게 됐을 때, 그 말에는 이모의 삶을 통과한 세계관과 해석이 들어 있었다.
이모는 왜 그렇게 싫은게 많아? 왜 다 못마땅하게 여기는 거야? 왜 그렇게 불평을 해? 좋은 면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모가 감정적으로 인색한 사람이란 거 알아? 때로는 마음속으로,
때로는 이모 앞에서 소리 내어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때때로 나는 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했던 이모의 모습을 본다. - P225

나는 이모가 그 정도로 화를 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 책장에서 국어사전을 꺼내 ‘개가‘라는 말을 찾아봤다. 오촌 아저씨는 이모가 ‘개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개가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했다.
출가한 여자가 이별 또는 망부로 인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일, 나는 출가와 망부라는 단어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개가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모 인생의 큰 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순간부터였다. - P223

이모는 어려서부터 내가 모든 할 수 있고 모든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모는 그 말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것처럼 얘기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이모는 끝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모가 내게서 봤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큰 공포였다는 사실을 이모는 종종 ‘내가 너라면.…‘이라고 말을 꺼내고는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목소리에는 옅은 분노와 함께 어떤 질투가 담겨 있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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